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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조주선 춘향가(김세종제)-

 

어느때부터였지? 하루 세시간에서 여섯시간이나 되는 완창판소리공연이 힘들지 않게 느껴진 후부터였을까?
슬슬 품질을 생각하게 된다. 내 주제에? 가사도 제대로 이해 못하면서?
장단도 모르는데? 무슨 품질? 그래도 슬슬 느껴지긴 한다. 그렇다고 평생공부해서 일가를 이룬 저들을 품평 한다는건
예의에도 어긋나고 맞지 않아보이긴 하는데 오늘은 조금 몇 마디 하고 싶어진다.

조주선 명창의 목소리나 발음 같은것은 매우 훌륭하다. 그래서 초반 이후 점점 더 기대가 되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발음이 엉망인 창자도 많고 가사집을 봐도 못 알아듣겠는 사람들이 이 분야엔 참 많다.

조주선명창은 목에 힘과 여유가 묻어나온다. 힘든 대목에서도 여유롭고 호기롭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인물들의 표현과 특징도 잘 살려서 보는 맛까지 뛰어난 훌륭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 이리도 많이 건너뛰는건가?다. 처음엔 콘디션이 안좋은가?싶었지만
소리를 끝까지 뛰어난 기세로 몰아붙이는걸 봐서는 몇시간을 혼자서 노래하고 연기하려면
보통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일테니 대사(가사)를 까먹는 일은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건너뛰는 경향이 좀 많았다.
건더뛴다고 해도 4시간(20분쉬는시간포함) 가량을 소리했지만 김세종제가 6시간짜리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애초에 기획된것도 4시간30분정도를 기획하고 있었던거 같은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짤린 대목들이 많다.

6시간짜리가 4시간이하로 줄어들면 완창이라고 해야 하는건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춘향가는 너무 인기가 있는 판소리라서 이렇게 길어졌다고 한다.
다른것들은 4시간 이내에 끝나는거 같다. 공연예술이니 초창기 내용은 1시간정도 되는것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싶지만
아무튼 지금은 6시간이나 되는 황당한 공연인데 3분의1이나 잘라낸것은 개개인 사정에 따라 그럴수 있다고 보지만
내용 흐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가위질 당한듯 툭!툭! 끊기는 기분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잘 보다가 갑자기 응? 이란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사라질만 하면 응?의 반복
무엇인가 리듬이 계속 끊기고 대사가 끊기는것도 초반을 제외하곤 알게모르게 계속 잘려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든다는것은 기획되지 않게 잘렸다는 소리일 수 있다.
공연 전에 기획되었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장치들이 들어가 있을텐데 전혀 그런게 없었기때문에
춘향가를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쉽사리 느낄수 있을것이다. (내가 판소리 다섯바탕 중 유일하게 음반으로 자주 듣는게 춘향가)
초반의 기대와 다르게 뭉게지는 발음. 하지만 목의 힘은 그대로 살아있다는것은 참 특이하다.
그리고 조주선 명창은 목이 풀린 상태로 나온것마냥 처음과 끝의 음색이 크게 변화가 없이 좋은 콘디션을 보여주는데
이부분에서만큼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몇시간을 동일한 목 콘디션을 유지한다는건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됨)

춘향가는 들을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오늘은 거의 그러지 못했다.
조주선 명창때문이 아니라 공연기획때문인데 관객석을 무대와 큰 차이 없는 조도를 유지하는 이상한짓을 했다.
그래서 주변에 꼼지락 거리는 것들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와서 엄청 산만하다.
주변이 밝아졌으니 다들 가사집에 몰두를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얼마나 멍청한 선택인가. 훤하게 밝으니 구입한 가사집을 안볼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건너뛰고 바뀌고 하는통에 과연 제대로 읽으며 따라갈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 다들 가사집을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
어떤 노인은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고(한참을 지나야 관계자가 나타나서 보면 안된다고 제재)
재미 없으면 그냥 나가서 편한 의자에 앉아 전화기나 쳐다보다가 집에가지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건지
어떤 사람은 뭘 그리도 열심히 적고 있는지.

판소리가 관객과 상호 작용이 필요한 한국 고유의 공연방식이지만
관객석에 조명이 켜져는 순간 관객들은 웅성웅성거릴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냥 거리공연을 보지 뭐하러 이런 공연장을 오겠다.
오로시 공연자에게 집중하기 위해 이런 공연장이 있는거 아닌가? 그런데 관객석 조명을 켜버리는 빙신짓을 해대니 이 모양이 되지.

오늘 공연은 차마 자막을 제발 달아달라고 말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자막이 중앙 뒷벽에 나왔더라면
적어도 관객들이 고개 쳐박고 가사집에 몰두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실내전통 공연에 바리에이션은 주지말자. 추임세는 이제 어렵고 어색한 시대다.
전공자들도 많이 오던데 그들이 추임세를 좀 넣어서 흥만 좀 돋궈주는 정도에서 끝내자
가사집은 집에서 천천히 읽어볼 수 있도록 공연장 관객석은 철저히 어둡게
그리고 휴대폰으로 놀고있는 사람 있으면 재빠르게 바로 제재좀 하고
가급적 가사집을 팔지 말고 무대 중앙에 가사를 표기하자. 얘네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려는건지.

소리 : 조주선
고수 : 조용안, 조용복




2026년 9월 12일 토요일

창극 -독갑이댁 수레노래-

 

지난주에 이어 두번때 창극이다. 하반기에는 이런식으로 열편정도? 판소리 다섯편정도?
아마도 이정도 선에서 국악은 끝날듯 싶다. 이렇게 몰아서 볼 이유는 없는데 열편 일괄 할인하는
국립극장의 횡포때문에 어쩔수 없이 저렴하게 열편을 보게 된것이 좋을수도 아니면 부담스러울수도

독갑이댁? 누구누구댁이라 하면 자식중에 독갑이가 있다는 소리 아닌가? 있었나? 없었던거 같은데.
창극이라서 모두들 국악을 한다. 민요풍은 아니고 대부분 판소리 스타일로 한다.

창극이니 거칠거칠 핏줄 터질거 같이 그렇게 구성을 해야 하는건가
(민요스타일로 만들면 민요극이라 불러야 하나)

총 여덟마당으로 구성되어 처음 망량과 이매(이들은 누구지?)가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첫째마당(1막)에 독갑이댁이 지리산에 들어오는것부터 시작하는데
열댓명의 자식을 낳았다는데 모두들 왕,장군,부장군등이 되서 서로들 싸우고 있다고들 한다.
(이게 무슨 경울까? 무슨 상황이지? 남북-한민족-이 서로 지리산에서 싸우고 있는것을 의미했던건가?)

지리산이란 곳이 한국전쟁때 빨치산토벌작전이라 해서 잔존북학군과 엄청난 전투를 벌였던곳
전라도는 조선시대에서 약탈의 대상이기도 했던곳인데 평야지대니 전쟁이 나면 표적이 되는것은 당연했을테니
한이 오죽 많았을까싶기도 하고 5.18 민주항쟁도 전라도 광주에서 벌어진 참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전라도가 많은 피해를 입은건지 다른지역도 비슷한데 알려지지 않은건지
아무튼 예술적특징으로 한 맽힌 절규에 가까운 노래 스타일과 가사들은 그 지역 역사가 어땠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공연예술이다보니 관객과 공감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천천히 몇날 며칠 곱씹을수 있는 영화나 책과는 다르게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돌이킬수 없는 이런 공연의 특징상 쉬우면서 지루하지 않고
요점을 정확하게 그리고 불필효하게 감정을 소모시키지 않아야 한다.
헌데 이번 독갑이댁이란 작품은 최고조로 절규하듯 나오는 피날레 아닌 피날레를 100분간 지속한다?

지리산과 남원에 외부 세력이 침략해 들어오는 통에 살기 힘들어 절규
지리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막고 서있는 강도들때문에 절규
(첫째 마당에서 화선이와 억득이의 노래는 매우 신선하고 너무 좋았어서 기억에 남지만 이 창극의 전부라는게 안타깝다.)
이무기에 자식들이 모두 잡혀 먹혀서 절규
이무기가 아파서 절규.
황당하게 이무기가 막내아들이어서 절규
이무기(막내아들)을 죽음(승천)으로 부모로서의 절규
화선이가 억득이를 만났지만 헤어지므로 절규(헤어진건지 죽은건지 모르겠음)
독갑이댁이 지리산에 절을 짓고 화선이를 떠나는 대목에서 절규

판소리를 들으면 기승전결이 분명히 있고 감정의 고저, 기복, 리듬, 흐름이 있기때문에 감정을 추수릴 시간이 있다.
그런데 '독갑이댁 수레노래'는 도대체가 감정을 추수릴 틈이 없이 절규 절규 절규.
중반부 부턴 저들의 절규가 소음으로 혹은 무감각으로 다가온다.

감정이란게 좋을때도 평화로운때도 때론 안정감 있게 어느때는 심박이 올라가도록 강렬한 흐름을 타기도 하고
생각할 여유나 눈물흘린 시간, 한숨도 좀 쉬고, 웃을땐 좀 웃는 등 여유가 있어야 될텐데
주마가책(走馬加鞭)말처럼 시종일관 미친듯이 달리기만 한다.
그래서 감정이 저 하늘 위에서 내려올줄 몰라서 순시간에 지쳐버린다. 배우들이야 각자 대목을 나눠서 자기 할걸 하면 되지만
관객들은 그 모든것을 한몸으로 다 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설사똥 싸듯 미친듯 뽑아내면 지쳐서 감정을 추스릴수가 있나.

어머니의 사랑은 좋다. 모성애는 동서고금과 모든 동물 세계에서 으뜸 아니던가.
창극에 신파가 늘 들어가는거 같긴 한데 좀 심하게 넣어있다.
툭하면 어머니의 사랑을 이용하여 눈물을 짜내는 최루성 신파는 좀 지양할때가 되지 않았나.
중후반부터는 분명히 착잡하고 슬프고 우울한 내용들이긴 한데 감정이 꽉! 닫혀버려서 감흥이 거의 없다.
엄밀히 보면 초반에 감정을 다 소신하게 만들어서 이 후 자극들에 반응하질 않는다. 그렇다고 지루한건 아니지만 감동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떼창 참 좋지만 이런건 피날레같은곳에서만 좀 쓰고 나머지는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도록
관객에게 호소하듯. 소리를 내지르지 말고 조곤조곤, 판소리다섯바탕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르기만 하는건 없지 않은가

다들 높은 경지의 배우들이라서 어떤 상황이던 고품격의 공연을 보여주는 분들인데
무엇인가 구성이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들지 않았나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화선이와 억득이의 노래는 정말 특이하고 신선하고 매력적이었고
이들의 장면에선 눈시울이 유독 뜨끈뜨끈해질정도로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사랑이야기 그런게 아니라 가사도 아름답고 음율도 좋고 감정도 좋고)

어머니의 사랑도 이렇게 어느정도 선을 좀 지키면 안되는 것일까.

출연 : 국립믹속국악원 외 많은 객원

2026년 6월 6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박성희 수궁가(미산제)-

 

올해 상반기 국립극장 판소리 완창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반기에 또 시작하겠지
상반기 4회를 하는데 판소리는 다섯바탕 그러면 같은게 겹칠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거기에 같은 미산제. 시간은 좀더 짧은 느낌이다.
(3시에 시작했는데 커튼콜 후에 진도아리랑 하면서 끝났는데도 딱 6시였으니)

박성희 창자를 언제 봤더라. 분명이 어느 공연인가에서 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봤다고 생각하냐면 약간은 보이시한 낮은 톤에 힘있는 발성이 기억에 남아서다.

대략 3시간동안 중간에 15분정도 쉬고 끊임없이 창을 하는 해야 하니 여간 힘든일이 아닐거다.
언제나 그렇듯 보면서도 힘들어 하는게 보인다. 3시간에서 6시간 분량의 대사와 연기를 모두 외워야 하고
관객앞에서 지친 모습을 모여줄수 없는 직업이니 당사자는 누구보다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3시간이면 이번 시즌은 상대적으로 짧게 잘 끝났네라는 오만한 생각도 든다.
(춘향가 6시간, 심청가 5시간은 편하게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이라도 막판엔 힘듬)

이분의 톤이 중성적이며 힘이 있는 소리긴 한데 창을 하는 풍에서 묘함이 좀 있다.
각 인물(수궁가에선 사람이라곤 용왕하고 도사 말곤 모두 동물)들의 대화에서 그 구분점이 명확하지가 않다.
순간 순간 배역을 바꿔야 하는 1인극이다보니 힘든것은 알겠지만
약간은 더 확실하게 구분되도록 캐릭터의 선을 명확하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소리의 영역도 넓고 억양도 좋은데 (김소희 명창께서 발음이 좋아서 예전 녹음한걸 지금 들어도 감동이 그대로 전해옴)
이분이 김소희명창의 제자라고 하니 이러한 것들을 전수받은거 같다.
예전엔 각 지역 방언이 훨씬 강했기때문에 각 지역별로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님에도 판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90%이상은 받아쓰기 어려울정도다.
대사(해설겸)집을 읽고 계속 듣다보니 대충 감으로 들을뿐 확실한 이해는 쉽지 않음에도
아직도 판소리 공연에서 자막을 안트는건 '너죽고 나죽고 모두 없애버리자'라는 심사인지 이젠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분의 발음이 좋은편임에도 오늘은 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몸 콘디션이 좀 안좋은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풍이었을수 있지만 발음이 뭉그러지는 많은 창자들과는 다르게
또렷하긴 한게 못 알아듣겠다니. 물론 한문도 많다. 이건 판소리가 원래 그 모양으로 생겨먹었으니 그러겠지만
한문의 문장 뜻을 모를순 있어도 음은 알아들어야 할텐데 도통 이 세계에선 이걸 바꾸려 하지 않지 않는다.
이런면에서 김소희명창은 어떻게 살아남으셨을까? 전반으로 뭉그러지는 발음이 주류라고 생각하면 당시엔 이단아 같았을텐데.

그리고 여자 특유의 고음이나 쇳소리(쇳소리는 남자 창자가 일품이긴 함)가 좀 적던데 이부분을 특별히 키우려 하는거같진 않아보인다.
이미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갈고 닦았는데 이제와서 스타일을 바꾼다는건 몸이 허락하지 않을테니.
(흥보가 완창무대도 했다지만 언제쯤 여기서 볼 수 있으려나)

수궁가의 줄거리는 단순한 동화같은 내용이라서 전체적으로 흐름은 쉬우나
막상 대사들이 난리도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한자들이 즐비한것을 보면
권문세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소리꾼을 초청하여 자신들만 듣던 장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내용이 권선징악도 아니고 풍습이나 사회를 반영하는것도 아니고 적벽가처럼 고전을 만든것도 아니고
뜯어보면 제법 철학적인 면이 있다. 용왕의 멍청함을 비꼬는 블랙코미디 같은 부분도 있고
토생원의 지혜와 기교, 기개가 있다손 치더라도 별주부의 말에 현혹도 잘되고 건방떨다가 막판엔 두번이나 죽을뻔한 사건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막판에 인간 올무에 걸린거나 독수리에게 잡힌 내용은 전체 흐름상 크게 필요하지 않았는데
왜 넣은걸까? 이게 없으면 토생원이 너무 기고만장하게 끝나서 넣은걸까?

쉬우면서 쉽지 않은 대사들로 3시간중 생각보다 편하게 들을수 있는 부분은 30분정도도 안되보인다.
그리고 박성희창자의 소리 풍이 약간은 느릿느릿한 템포를 유지해서 가끔 졸음이 살짝 올때가 있었다.
빠르게 희모리로 몰아치는 대사들은 좀 약한건지 아니면 자신의 색을 만든건지 아무튼 호흡이 길다.
공연중 문득 든 생각으로 이분이 심청가를 하면 그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심청가는 시종일관 무겁고 회색적인 현재와 미래만이 보이는 장르로 막판 한 10분을 제외하면
심청이에게는 디스토피아같은 세상일뿐이었다. (낙천적인 성격때문인지 선녀가 환생한것이라 다 알고 그런건지)
이런 어묵한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기에 멋진 목을 지니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에 비하면 수궁가는 너무 밝은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기대해보게 된다.
박성희명창의 심청가 완창을 볼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나흘전에 봤던 현대 뮤지컬 서편제의 소리와 고수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를.

소리 : 박성희
고수 : 신문법, 조용안




2026년 5월 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미진 춘향가(김세종제)-

 

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판소리 -절창VI(심청가)-

 

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수궁가 왕기석(미산제)-

 

판소리를 완창한다는건 창자도 힘들고 고수도 힘들겠지만 청자도 생각보다 힘듬이 있다.
때로 자리 선정이 잘못되어 주변이 시끄럽거나 부산스러우면 공연을 보는중에 나가버릴수도 없고
몇시간을 그냥 참아야 한다. 오늘은 적당히 이상하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노인들께서 당이 떨어지는지 사탕을 부스럭거리며 꺼내는 소리라거나
대사집을 미리 읽지 않고 펄럭이며 펼쳐보고 있다거나 하는건 좀 그렇다.

그리고 전에는 상반기, 하반기에 판소리 가사집으로 만들어 모두 들어간것을 판매하더니
이제는 프로그램식으로 개별적으로 판매한다. 이러면 미리 읽고 올수가 없는거 아닌가.
판소리 공연을 보러와서 가사집을 보며 관람하면 그게 제대로 들어오겠나.
미리 읽어보고 한문이 많으니 주석도 좀 읽어보며 개략적인 흐름같은걸 파악하고 오는게 좋은데
예전처럼 시즌별 모인 책자를 팔면 안되는건가 싶다.
이럴경우도 단점은 있다. 이번 한번만 보는 사람은 한개만 필요한데 두꺼운걸 사게 되고
지난번에 구입한 사람은 중복되는 경우도 있고.
각 공연별 프로그램도 만들어 팔면서 가사도 넣고 통합 가사집을 만들어 주석을 꼼꼼히 달아서 한문 가사를
이해할수 있도록 하면 되는게 아닌가 싶은데 다음 시즌엔 어떤식으로 할런지 모르겠다.

수궁가는 특이하게도 '범내려온다'를 뮤직비디오로 만든것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해학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이미 아이들 동화로 퍼져있고 애니매이션으로도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 같다. 수궁가, 토끼전, 별주부전 등 많은 제목으로 불린다. (나는 별주부전이 좀 익숙함)
내용은 삼국사기(1145년)에 나오는 구토지설의 이야기 기반이라고 하는데
판소리는 막상 18세기무렵 구전으로 내려오는 음악들이 어떤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거 같다.
시조(가요?)같은것도 있고 민요같은것도 있고 연기도 하기때문에 흩어진 여러가지의 장르를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낸거 같긴 한데 수많은 한문들은 접근성도 어렵지만
무조건 내용을 합친다고 합쳐지는건 아니라서 누군가 뼈대를 만들고 붙이지 않았을까.
장르도 그렇고 탄생 시기도 그렇고 들어가있는 공연은 분명히 농민들용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문을 이해할수 없다. 30%이상은 한문이라서 실제 해석을 보지 않으면 한국에서 단박에 알아들을 사람은
많지 않을만큼 오래되전에 사용되던 문장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것들은 시대에 맞춰서 바뀌는 것도 없이 미라처럼 그대로 남아있을뿐이다.(이걸 왜 안바꾸지?)

오늘 왕기성 명창의 수궁가를 들으며 새삼 또 느낀다. 자막도 없이 관객을 받는 만행은 도데체 언제쯤 끝날것인다.
외국인들 단체(한 열명쯤)는 추임세도 모르고 대사도 몰라서였을까 중간에 나간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길래 자막이 나오는줄 알았으나 없음)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국인들이 엄청 오니 유료화로 하겠다고 하고 정작 세금으로 만들었으면서
외국인들과 차별해서 요금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거 같은데
판소리도 내외국민 차별없이 모두 못알아듣게 아무런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

특성상 자막을 표기하기 쉽지 않을거란것은 알고 있다. 때로는 건너뛰기도 하고 단가를 중간에 껴넣을수도 있으니
자막을 미리 만들어 놓을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즉흥적인것은 사전에 자막이 어렵다고 고지 하고 나머지 고정적인것만이라도 제공하면 되는거 아닌가
템포가 매번 다르니 자막을 표기하는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겠지만
어려운 장르를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안될리가 없다는 생각은 드나 꽤나 안바뀐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레퍼토리는 전적으로 내국인 중 판소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을 위한 정기 공연인가.
이런곳에 나같이 알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초짜가 껴들어 초치고 있는것일까?
세금으로 자신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는것이었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 공연이 어떻게 있을수 있는것일까?

왕기석명창께서는 관객과 함께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정작 극장측에선 자막 하나 해결을 못하고 있어서
외국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내국인은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한문을 그대로 꼭 써야겠다면, 바꿀 능력이 안된다면 최소한 해석 자막이라도 달자.
기왕이면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정도의 자막은 꼭 만들자.
한국에 여행온 외국인들을 오늘처럼 못알아듣게 해서 내쫓지 말고 함께 웃으며 즐겼으면 좋겠다. 

그런데 수궁가가 이렇게 재미있고 웃긴내용이었나?
창자에 따라 여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걸 새삼 느끼게 했던 무대였다.

소리 : 왕기석
고수 : 김규형, 김동원




2026년 3월 7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박애리의 심청가(강산제)

 

박애리명창의 춘향가 완창을 국립극장에서 본게 언제인가 찾아보니 2018년 4월이었다.
난생 처음 완창을 직접 들어본것이고(그 전까진 음반으로만) 장장 6시간의 공연을 처음 본것이기때문에
행복한 고행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때를 시작으로 이후 몇년간 국립극장에서 하는 판소리 완창을 열댓번 듣게 되었지만
이렇게 한나절이나 하는 판소리는 없었다. 관객도 힘들고 창자도 힘들어서일텐데
박애리명창께서 심청가로 다시 나왔다. 기대 되지만 문제는 5시간이라는 엄청난 공연시간.

12월에 하는 판소리 완창은 여럿이 나오기도 하는데 2시간 남짓. 길어도 3시간정도인데
무엇도 빼놓는게 아쉬운듯, 풀 버전을 관객들이 충분히 감상하실 수 있는 여유로운 템포로
공연하는데. 처음에는 '어! 그 동안 듣던 것 보단 좀 템포가 느린데? 아직 목이 안풀려서
천천히 하는것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분들이 조금 빠른 템포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정도로 각 대목마다 들어있는 주제와 함의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뛰어난 구성이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춘향가와 심청가가 가장 인기 있다곤 하는데, 춘향가 같은 경우는 1995년 김소희 명창의 녹음본을
무척 좋아한다. 너무 슬프기도하고해서 잘 듣게 되진 않지만 아무튼 왜 춘향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심청가는 솔직히 그렇게 느끼진 못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위해 인신공양을 한다는게
한국사에서 없던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과한 설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리고 김소희 명창께서 부른 춘향가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부른 명창도 없었다.
(그 동안 몇번정도 공연과 음반을 들어봤지만 대부분은 창 특유의 뭉게지는 발음은 그 속에 빨려들지 못하게 하는
크나큰 장벽중 한가지로 나가왔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심청가가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된거 같다.
장장 5시간 중 한시간정도 빼면 모든시간에서 눈에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다.
이게 이렇게 슬픈 극이었다고? 시작부터 이렇다고? 춘향가는 초반부터 3분의1까지는 꽁냥꽁냥 핑크빛 물결이라
그렇게까지 애잔하지 않은데..(이 후 부터는 너무 슬픔의 슬픔의 슬픔)
심청가는 뭘까? 애초에 가난간 심봉사에 곽씨와 결혼해 곽씨는 생고생을 하다가 힘들게 자식을 얻었지만
자식 젖 한번 못 먹이고 죽은 엄마의 이야기. 그를 너무 슬퍼하는 심봉사 이야기로 시작하니
아니슬플수가 없는 시작이다. 이것을 약간은 느린 템포로 조곤조곤 또렷하게 관객 귀에 찔러대니
가슴이 안 흔들릴수가 없다. 창이나 노래란게 그 음률에 감정을 얹어 전달하기때문에 대사만 읽는다고
그 감성이 전달되진 않으니(구전문학의 특징이라면 특징) 대사집은 판 소리를 다 들은 후 읽으면
당시의 창자의 노래가락이 함께 오버랩되서 그 감정이 잘 살아나지만 이번엔 구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된다. 이런 감동이라면 다시금 꺼내고 싶을때가 있을텐데 그 그림자(대본)가 없다니.

기분일까?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박애리명창의 목소리가 달라진게 느껴진다.
좀더 뻗어나가며 고음도 전보다 날카롭게 찢어내는거 같고.
소리꾼들은 한시쯤 불러야 목이 풀린다더니 정말 그런거 같다. 처음보다 훨씬 시원스럽다.
처음엔 '생각보다 목이 달라졌는데 연습을 너무 해서 그런건가'란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슬픈대목이 슬픔으로 밀려오는걸 보면 평생 소리를 공부한 사람들의 내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래방에서 혼자 한시간 노랠 부르면 목이 쉬어서 말 하기도 어려운데 이때쯤 되야 목이 풀리다니)

심청가는 해학스러운 부분이 심청이가 죽은 후부터나 좀 나오는 약간은 특이한 구성이다.
보통 문학에서 보면 이렇게 긴 시간 애환을 쌓아가는 장르가 있나 싶을정도로 좀 심하게 뒤흔다.
무엇인가 사건의 전개가 물 흐르듯 고저가 있으면서 점차 발달하다가 폭발하듯 터지고 마무리 되게되는 그런것이 아니라
끝도 없이 계속 슬프다. 각 대목별로 마무리가 있지만 다음 대목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된것이 아무래도 예전에는 한번에 모두 부르는 공연이 아니라 각 대목만 불러왔기때문에
그 대목에서 기승전결이 모두 이뤄져야 해서 그런것이 아닌가싶다.
그러다보니 어미가 죽기 전에 심청이를 안고 말하는 독백도 미치게 슬픈데
심봉사가 장례를 치르는 상여소리부터 모든 부분이 또 그렇다.

대부분 이렇게 몇 대목이 하나의 공연 시리즈 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픈 그런 이상한 예술 장르가 된것이 아닐까.

각색해서 나오는 요즘 공연들을 보면 이런 반복되는 플롯을 좀 바꿔서 나오는거 같긴 하는데 이 감성이 고스란히 오는거 같진 않다.
각 단원마다 주제가 조금씩 달라져서 그런것일수도 있고 현대에 잘 적응 못하는 문학일수도 있고.

고수는 세분이 나눠서 북을 잡지만 소리는 단사람 소리꾼 박애리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게 좀 묘한 감정이 드는게. 한 사람이 장장 5시간을 혼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면
힘듬이 전달되어 측은함이 생겨나서 위로해주고 싶고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진다.

한시간정도 지나 목이 풀리고 서너시간 지나면 목이 지쳐지는게 느껴지는데 관객이 해줄 수 있는것은
박수밖에 없다. 한 대목 한대목 끝날때마다 힘차게 박수갈채를 보내는것이 전부.
이럴때 내 박수가 저 사람을 벼랑에서 떠미는게 아닌가?란 죄책감도 생겨난다.
'좀더 힘을 내서 내게 좋은 공연을 보여줘'라는 잔인한 아우성같은 박수소리들.

한 자리에서 한번에 판소리 한바탕을 완창하는 공연은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외로롭고 힘겨운 고단함이 관객석까지 전달되어 애처로운 심정이 공연장에 가득차는 예술이다.
이래서 공연 막바지엔 특이하게도 절정의 끝을 달려간다기보단
이 고행의 끝이 보이는 환희? 희망? 같은 관객과 창자가 함께 달려가는 묘한 일체감이 느껴진다.
고진감래, 동병상련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하면 되겠지.

이렇게 힘든 공연을 보고 나오면 다음 완창 공연을 또 볼 수 있을까? 란 걱정도 되지만
그럼에도 아니볼수 없게 만드는게 이런 가슴 벅찬 감동을 한번으로 끝내기엔 인생이 섭섭하니
다음 공연을 기다리지 않을수가 없다.

각종 매스컴이나 예전에 봤던 춘향가완창때는 몰랐는데 박애리명창께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대목이 있다.
판소리란게 창자 의도에 따라서 각 대목에서 내용을 좀 늘리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분위에 맞게 조절하기때문에 같은 판소리라도 공연시간이나 창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판소리 자체가 엄청 길기도 하니 소리꾼 기억의 왜곡으로 한대목 빠뜨릴수도 있을수 있고 이것을 부드럽게 넘기는것도
소리꾼의 역량이라고 보는데 박애리명창은 이걸 용납하지 않는다. 심봉사가 맹인잔치가다가 옷을 모두 잃어버리고
한탄하는 대목이 실수로 빠진거 같은데 즉시 관객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되돌린다.
보통은 이렇게 안하고 슬쩍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렇게까지 한다니. 이 분에게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을까.
딸이 관객석에서 엄마의 공연을 보고 있다곤 하지만 딸이 모두 외우고 있진 않을텐데.
엄마의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창을 가르쳐준 스승들에게 이렇게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걸까?
이도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일까?
자신의 실수를 되돌려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모습이 그러지 않은 사회에 던지는 일침같아서
다른 형태의 감동이었고 한 예술가의 인생을 이 한장면으로 상상하며 설명되는거 같았다.

구슬픈 특이한 한국의 노래들. 재즈도 흑인들 사회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남의 문화기때문에
깊이 와닿기 쉽지 않은데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에서 녹아있는
소리 속에 담긴 정서는 어쩌면 한국사람들만이 느낄수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일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보는내내 외국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서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체감할수 있을까.
재즈가 내 일부로 다가오지 않듯 판소리도 외국인들에겐 한국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보호해주는 로션정도로 다가오겠지.

고된 무대라 며칠 더 해달라는 말 조차 말하기 힘든 한국만의 특이하고 고유한 공연예술이었지만
몇번이고 다시 보고싶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무대였다.

소리 : 박애리
고수 : 김청만, 이태백, 전계열

-추신-
박애리 명창의 6시간 춘향가 완창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건 욕심이지만 다시 보고 싶습니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판소리 -소리정담-

 

올해 처음 선보이는 토크쇼형식의 판소리 공연으로 사뭇 기대가 되긴 했는데
아무래도 진행이 매끄러운 TV토크쇼에 익숙해져있으니 조금은 거칠게 느껴진다.
시범적으로 한번 진행하는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순 내부 사정을 알순 없지만
계속 정규 편성을 하게 된다면 점차 좋아질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대화라는것만 놓고 봤을때이고

두 출연자 모두 이쪽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들로 공연의 품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분명히 의자에서 일어날때는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소리를 시작하면 그 힘겹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젊은이들 못지 않는 엄청난 파워가 뿜어져 나온다.
이것이 공연예술가들의 힘일까? 이들에게 무대와 관객은 생명이나 다름없어보였다.

김일구명창께서는 아쟁같은 악기도 출중한 능력의 지니고 계셔서
악기 연주를 하면서 관객과 은연중 밀땅을 하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오랜 시간 노력한 자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같이 보였다.

적벽가, 심청가 한대목과 민요 그리고 마지막에 창극 춘향전의 한 대목을 부부께서 함께 공연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부분은 무척 인상깊고 감동적이었다.

판소리와는 다르게 창극은 연기의 비중이 높은 공연인데 나무꾼역을 맏은 김영자명창께서는
완전 다른 사람처럼 젊은 현역 배우 못지 않은 역동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이몽룡 역인 김일구 명창께서는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눌때는 부부의 대화가 좀 서먹서먹 하던데
창극에서는 어쩜 그리도 찰떡같은지. 평생 광대의 인생을 살아온 한 부부의 결정체를 보는 기분이어서
공연 막바지에 깊은 울림을 선사한 공연이었다.

좀 아쉽다면 두분 연세가 연로하시니 앉았다 일어났다 할때 힘겨워하는 모습에 나도 힘들다고 할지
꼭 바닥에 앉아야만 공연이 가능한건지. 테이블위에서 아쟁연주를 한다거 하는건 불가능 한것일까
아니면 바닥에서 일어날때 전동의자같은것으로 연주자가 힘들지 않게 일어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치를
고민하면 충분히 가능할것도 같지만 아직 한국에서 예술인에 대한 이런 배려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는거 같다.

그리고 관객들의 추임세는 흥을 돋우니 좋지만 바로 옆에서 추임세를 큰소리로 질르듯 넣을땐
옆에 앉은 나로서는 대단히 거슬릴수밖에 없다.
좀 작게 추임세를 넣어도 다 들릴텐데 비명을 지르듯 큰소리를 내면 좀 그렇지 않을까.

이부분을 우리 마당놀이 문화에서 어느정도 해결해야 할 숙제같은 부분으로 보인다.
분명 관객과 소통의 한 부분으로 괜찮을수 있지만 현대 공연 구조는 이게 좀 맞아보이진 않는다.
(추임세를 넣는 분들은 아무래도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보이는데
이런 분들은 좀 앞자리에 배정할수 있도록해서 공연하는 분들도 신나고 일반 관객도 놀라지 않는 구성이 어려울까?고민이 된다.)

이틀간 공연인데 왜 다른 구성으로 만들었을까?
평일 공연을 보기 위해 일반인이 두번이나 시간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다회 공연을 하더라도 레퍼토리는 같게 하는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무슨 판소리 축제로 매일 매일 다른 인물이 나와서 다른 공연을 하는것도 아니고
같은 명창이 나오는데 다른 구성을 만든다는것은 어이없는 것이다. 이것은 힘들게 시간내서 보러온 사람을
반쪽만 보고 가는거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상한 구성은 좀 지양했으면 좋겠다.
왜 국악은 이런 형태로 자주 공연기획을 하는지

이번 계기를 통해 예술인들의 진솔한 얘기도 들어보고 공연도 보고
이런 무대는 국립극장보다는 국립국악원의 풍류사랑방 같은곳이 딱 적절한 무대인거 같은데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토크쇼를 하기엔 좀)
이번 한번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정기적으로 하는 공연이길 기대해본다.

소리 : 김영자, 김일구
고수 : 김태영
사회 : 유은선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창극 -송년음악회-어질더질-

 

회사가 하남에 있다는 것은 서울에서 하는 평일 저녁 공연을 보기쉽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오후 7시 30분 공연이고 서울 중간쯤 위치한 남산의 공연장 하지만 하남에서는 2시간이상 걸린다.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본다는건 갈땐 괴로워도 공연이 끝나고 나올땐 흐믓하기때문이겠지

2025년 마지막 날의 공연이니 조금더 기대됬다.
저들은 프로기때문에 특별한 날이라고 공연이 더 좋다거나 하면 안되지만
아무튼 관객입장에서 기대하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어질더질'의 뜻이 소리꾼들이 이제 지쳤으니 그만하고자 할때 하는 말이라는데
실제로 들어본 기억은 없다. 마무리를 위해 이쯤에서 2025년 국립창극단 공연은 끝이란 소린지
2025년까지만 창극단 단원생활을 하는(정년퇴임 두명, 자발 퇴사 두명)사람들의 끝이 있어서 하는 소린지
(이 공연을 이번만 한것은 아닐테니 그냥 한해를 마무리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될듯)

한국에서 국립이 운영하는 극단은 몇개나 되는걸까? 인원수도 제법 많아보이는데
각 지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예술단체를 모두 포함하면 제법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특히나 한국에서 국악은 인기가 무척 없기때문에 국가가 운영하지 않으면
진작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 정년 퇴임을 맞는 두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걸까?
선생으로서 예능인으로서 나머지 생을 지금과 같이 살아갈수 있는걸까?
그렇다고 정년을 늦추자니 젊은 세대들의 자리가 없어지고.. 참 난감하다.
당사자들은 더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강제로 나가야 한다니..
(외국은 일본정도 그 외 나라에는 법으로 강제한다기 보단 연금 수령년도와 연계와 강제 퇴사 금지정도)

아무튼 공연은 사랑, 운명, 해학, 악, 비극 큰 주제를 놓고 여기에 해당됬던 창극들의 한 대목들을
발취해서 공연을 한다. 그래서 제법 가짓수가 된다. 이중에 내가 본건 몇편 안되는거 같다.
창극단이 이렇게 많은 공연들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목록을 보면 관심이 가는 창극이라 하면
만신 정도가 좀 보고 싶다는 정도랄까..(2026년도 하려나.)

창극 갈라쇼같이 주제에 맞는 부분들을 선보이는데 시상도 한다.
물론 어느정도는 쇼의 형식정도로 보이는 수준으로 별 신경은 안쓰이지만
시상식 구조를 선호하지 않다보니 마지막에 떠나는 이들에게 공로패정도 주는건 그거려니 하겠는데
(내 돈내고 완전 타인이 상받는걸 왜 봐야 하는지 이해를 못함. 상을 내게 준다해도 입장료를 낸다그러면 안갈듯)
주제마다 시상식과 해설자가 나와서 일일히 호명하는 등 불필요한 일들을 전체 공연시간의 절반가량이나 할애 한다.

이런 구조였다면 나는 6만원이 받는 이 공연을 보진 않았을것이다.
보아하니 관객들도 다들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류인듯 보이기도 한데
동내 잔체에 시간과 돈 내가면서 이래야 하나 싶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전에 관람 한적있어서 있던 공연들은 중간 토막만 선보여도 맥락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것들은 상황을 알 수 없다. 게다가 창극이니 느낌도 달라서 해당 공연을 보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더 난감할거다.
그래서 갈라쇼같은건 많이 유명해진 넘버들이 주로 나오는게 아니겠나. 그래야 관객들도 함께 즐길수 있으니
내가 이들 공연을 거의 보지 못했기때문에 앞뒤를 상상으로 만들어가며 5분정도 되는 중간토막을 봐야 했다.

연말에 자신들만의 잔치를 왜 비싼돈 주고 보러왔나 싶은 생각이 조금은 들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 이런 공연이 6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받는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차라리 100%초대권으로 관계자들만 초청해서 시상식 하고 관련한 짤막한 관계 공연하는 형식으로 하지.
그리고 유튜브같은곳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 다 같이 즐기는게 아니겠나.

내년에도 또 같은 공연을 할거라면 시상과 관련된 맨트는 전체 포함해서 10분이내로 끊자.
2시간 공연이라며 1시간을 시상관련으로 영상시청과 해설자 이야기가 차지하는데
이럴바에 공연시간은 1시간 먼저 하고 이후 1시간 시상식(볼 사람만 보는거로) 이런식으로 하던가
그리고 이렇게 길게 시상 할거면 관람료는 받지 말자.
자신들의 잔치에 엄한 사람들 주머니 털지 말고 그냥 초대권으로 알아서들 하던지 하시고
완창판소리 공연같이 이 가격-너무 저렴-에 봐도 되나 싶은 공연도 있지만 이번같은 공연은 돈 아까워 본전생각이 날정도였다.

그런데 '송년음악회'라고 하지 말고 '송년창극회'라고 하면 안됬나? 창극도 음악이긴 하지만
극에 가까운 것을 놓고 왜 '음악회'라고 붙인걸까?
엄연히 설명이 있었음에도 나는 왜 판소리 유명한 대목들, 단가 같은것을 들을거라 기대는 또 왜했을까? 에휴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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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1일 일요일

 

판소리는 근래엔 좀 뜸했다.
이유는 아무래도 좀 길고 가사가 한문 그자체인경우가 많아서 어렵기도 하고
몇시간동안 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안쓰럽고 나도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국립극장은 음향이나 무대는 훌륭하지만 의자는 별로기때문에 서너시간 동연을 본다는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오늘 공연은 3시간 공연이었는데 특이한것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
3시간 공연인데 쉬는시간이 없다고? 주로 관객은 노인층이 많은데?

판소리 공연 문화가 특별히 쉬는 시간이란게 주어지는 공연은 아니다.
한국의 마당놀이란게 화장실가고 싶으면 그냥 다녀오면 된다.
이런점이 아무래도 서양 공연예술과는 많이 다르긴 하다. 조선시대에 무대라는게 특별히 있던것도 아니었고
실내악도 아닌 고관대작들 혹은 부자들이 초정하면 마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듣고 즐겼던 문화니
(영화 '서편제'를 보면 소리꾼은 돈있는 양반이 불러오지만 모든 사람이 다 듣도록 열어둔다)

일반적인 무대공연이 익숙한 나로서는 3시간은 그냥 참는 시간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다녀오는거 같다. 물론 한시간마다 해설자가 나와서 해설을 하는데 그때 잠시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별다르게 시간을 정해두진 않고 이때 다녀오라고 해설시간엔 관객석도 불을 환하게 켜둔게 아닐까싶다.

언제부터 홀로그램 아닌 홀로그램이라며 프로젝터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상을 틀어준다.
40주년이다보니 완창판소리에 출연한 모든 분들을 보여주는듯 싶다.
특이한것은 내가 알고 있는 분들이 제법 있다는 것인데 판소리를 들은게 몇년 안되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것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알게모르게 TV에 나왔었기때문에 알고 있는것일텐데
조금은 특이한 기분이었다.

공연은 한분당 30분정도씩 총 6분의 명창들께서 나오시고 고수는 두분이 맏으셨는데

김영자 '수궁가' 중 '토끼 배 가르는데 ~ 세상 나오는데'
조소녀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
성준숙 '적벽가' 중 '적벽강 불 지르는데 ~ 장승타령'
유영애 '심청가' 중 '추월만정 ~ 황성 올라가는데'
정순임 '흥보가' 중 '제비 강남 가는데 ~ 박 타는 대목'
김일구 '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데 ~ 자룡 활 쏘는데'

이런 레퍼토리였다. 이중엔 정순임 명창께서 올해 여든다섯이란 연세가 믿기지 않을정도로의 열정 그자체를
선보여서 보는 내내 감탄에 마지않았다. 젊은 사람 못지 않은 파워와 오랜 공연에서 익혀진 노련미까지

오늘은 40주년 기념 공연이므로 원로 명창분들만 나오셨기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우면서도 기분좋은 그리고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의 한장르를 보는거 같아서
소리보다는 예술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거 같아 눈물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오는걸 닦느라 신경좀 쓰였다.

개인적으론 사람들이 은퇴란것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힘들어서 쉴 지언정 자신이 평생 해왔던것을 일어서기도 힘들어하는 석양의 끝 자락일지라도
소년, 소녀가 무대에 처음 오르듯 한껏 긴장된 심정으로 공연해주시는 저들처럼
다른 모든이들도 그 끝까지 처음의 설램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던 시간으로

너무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끝에 다같이 모여서 인사해주셨으면 사진이라도 한컷 찍었을텐데 그런 커튼콜이 없다는게 아쉬웠던 진행이었다.

소리 : 김영자, 조소녀, 성준숙, 유영애, 정순임, 김일구
고수 : 조용안, 이태백
해설 : 김성녀, 최동현, 유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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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일 수요일

공연 -송년판소리-

 

회사에 일이 있어서 특근 아닌 특근을 하게 됬다. 너댓시간 있으니 졸리워 회사의자에 앉아 수십분 졸음
하지만 이상하게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뭘 그리 힘든 삶을 산다고 피로가 풀리지 않을까
신사동에서 이사하기 전에 첫눈이 많이 내려서 무척 기뻤는데 그 후론 눈다운 눈을 서울에서 본 적이 없다.
약간 흣날린정도. 오늘도 청명하고 싸늘하고 냉정한 하늘만 무심하다.
춥지만 막상 겨울옷을 꺼내 입기엔 무엇인가 내키질 않아서 아직도 늦가을 옷에 조끼 한개를 껴입고 다니니 올 겨울은
다른 해보다 조금 더 춥게 다가오는거 같다.

송년판소리는 안숙선 명창의 독무대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번이 두번째 공연을 보는것이지만
특이하긴 하다. 이 좋은 무대를 오래도록 왜 이분의 정기 공연장이 되었을까?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다. 무엇인가 분위기가 기념하는듯한 약간은 침침한 분위기

시작부터 홀로그램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홀로그램이 아닌거 같은데 왜 홀로그램이라하는지) 며칠전 찍은
안숙선명창의 저장 판소리를 틀어준다. 왜 이랬을까? 그냥 명창께서 나와서 직접 불러주시지 이상한 퍼포먼스는 왜 하는걸까?란
의문이 들다가 문득 '안숙선명창께서 연세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창을 못하실정도가 되셨나?'란 약간의 불안한 기분이 감돈다.
2년전인가 3년전이가 그때 송년판소리엔 그래도 건강하셨던거 같은데..

아무튼 1부 한시간 무대는 이렇게 불안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제자분들이 나와서 모든 공연을 했다.
안숙선명창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와중에 '사랑가'는 왠지 좀 그랬다. 손녀라고 하는데....
아무리 같은 길을 나섰다곤 하지만 어설프디 어설픈.. 이런 좋은 무대를 손녀라는 이유로? 그냥 예쁘고 귀여운 꼬맹이정도던데.
다른 훌륭한 제자들이 많고 많을텐데 뭔가 아쉽고 섭섭한 무대였다.
나머지 모든 공연은 말하면 입아픈 멋진 공연으로 평생을 몸바친 말 그대로 전무가들의 공연이니 아무리 못해도 프로패셔날 그 자체다.

새타령과 추월만정은 왜 그리도 슬픈지.. 눈물이 잘 나는 편이 아닌데 눈꼬리가 쓰라리다.

피날레는 역시 마지막 단원인 안숙선 명창의 명예로운 상패수여식을 하는데 재자들이 부축이며 나오는 모습에
아~ 내년 연말엔 뵐수 있으려나..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민요 몇 소절 하실때에는 쩌렁쩌렁 하신것을 봐서는 소리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큼은 그대로인듯 싶다.

조금 힘드셨어도 앉아서도 좋으니 판소리 한두대목 해주셨면 어땠을까란 안타까움도 든다.
관객인 나를 위함이 아니라
소리로 평생을 관객과 함께한 안숙선명창 그 자신을 증명하기 위함의 무대로서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할까? 안숙선명창은 수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두셔서 외롭지 않으시겠단 안도가 든다.
아직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공옥진여사 말년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예인의 안타까움일지 시대와 맞지 않아 대중으로부터 냉정하게 버림받은 예인의 마지막 모습
문화예술이란게 때론 냉정하게 내동댕이 쳐지기도 하기때문에 때때로 모르게 사라진 기억의 인물들의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르기때문에
안타까움이 버릇처럼 앞장서지만 역시나 안숙선명창은 그렇지는 않을거 같은 생각이다.

TV나 우연히 알게 되어 팬이 되었던 그런 사람이 평생 몇이나 된다고 이제는 슬슬 명을 달리하시는데
이건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되지만 그럼에도 오늘 공연에서 제자들이 부추겨 나오시고
부채를 한 손으로 펼 힘도 없으셔서 양손으로 힘겹게 펼치시고 제자들과 민요를 맞추시는 안숙선명창을 보고있노라면
한사람 인생의 끝자락은 어떤 환경이나 어떤 상황이라도 기쁘게 맞아주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공연은
눈꼬리에서 눈물이 마르질 못했던거 같다.

우리의 명창 안숙선.
앞으로 남은 시간 끝까지 관객앞에서 멋진 노래를 하시길 기원합니다.

출연 : 명창안숙선, 제자들, 국립창극단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판소리완창_성준숙의 적벽가_동초제

 

코로나도 끝나고, 정부도 바뀌고, 회사 일도 많아지고
올해는 환경 변화는 많은데 막상 내 자신의 변화는 없다.

어젠가 그젠가 국립극장 홍보메일이 왔길래 뭐 있나 보니 판소리가 껴있다.
하지만 코로나때문에 자리도 별로 없고 그나마도 안좋은 자리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때문에
별 생각없었지만 예매처를 한번 들어가보니 제법 좋은 자리가 남아있던데 기존 예매자가 취소를 했던것인가?
아무튼 잠시 고민에 빠진다. 다음달 초까지는 공부할게 많아서 공연 보는것은 좀 쉬려고 했는데
좋은 자리와 판소리중 좀 특이한 적벽가를 하니 예매하고 만다.

2020년 10월에 본게 마지막이었으니 1년반만에 보는 판소리. 그렇다고 그전에 많이 본것도 아니다.
판소리 공연을 본게 몇년 안되고 볼 곳이 많은것도 아니니 분기별 행사정도

판소리 적벽가는 소재가 삼국지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도원결의 한 후 재갈량과 합세하여
관우와 조조와의 관계, 장판 전투, 적벽 대전까지 제법 긴 내용을 다룬다.
그런것 치고는 2시간30분정도(자르지 않으면 한 3시간30분정도 되려나)

소설을 보면 흥미진진하지만 단조로운 플롯에 비해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좀 어지럽고 조잡스럽지만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판소리의 적벽가는 이런 소설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세력간의 치열한 싸움과는 거리 멀어도 너무 멀다. 특히 적벽대전에서 박살난 조조는 군사들의 조롱거리처럼
다뤄진다. 호칭만 승상일뿐 다같이 죽어가는 처지라 그런지 친구처럼 대하며 농담을 주고 받는다.
소설이 상류층의 시각으로 쓰여졌다면, 판소리 적벽가는 졸병들의 시각에서 쓰였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것은 일부에서 그렇다는 것일뿐, 대부분 삼국지의 주역들이 등장하기때문에 판소리라고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것은 아니다. 몇몇 부분에서만 졸병들의 애환을 다룬것으로 소설에는 이런 얘기는 당연히 없다.

손오공 고전 소설을 원작에 가깝게 만든것은(구전을 모아서 만든것들) 전개가 단조롭고 화려하지 않지만
이후에 나온것들은 없던것들이 달라붙으면서 화려해지고 조잡해지고 난잡해졌듯
적벽가도 비슷한 현상으로 봐도 될법 하다.(한국에 먹힐듯하게 각색하고 첨삭해서)
그래서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만하다. 물론 대부분이 한문을 그대로 읽어대는 대사때문에
반드시 해설이 적힌 대사집은 읽어봐야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수 있으니 이부분은 참고 바란다.

간만에 자리에 앉았으나 여전히 불편한 좌석.. 이런 그지같은 자리에서 두세시간을 관람해야 하다니.
그리고 무대와 엄청 먼거리.. 이번엔 운이 좋아서 맨 앞자리였으나 소리꾼의 표정들이 잘 안보일정도로 멀다

성준숙 명창께서는 올해 여든이 다 되셨다고 해서인지 대사를 자주 까먹으신다.
그럴수도 있지만 수십년 한 프로치고는 대처 능력이 좀 아쉽다고 할까
리듬이 너무 많이 깨지는 느낌이라 해야 할지
판소리 완창을 언제까지 외워서만 해야 하는건지.. 저 노인이 받을, 수많은 소리꾼들이 받을 스트레스들
과학 기술이 발달되었으니 뒤에 쥐처럼 숨어 대사를 불러주지 말고
무선 마이크와 이어폰등을 이용해 또렷하게 불러주자. 아니면 프롬프터를 이용해서 주던가

책 한권이나 되는 대사에 모노드라마처럼 한사람의 일대기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서로 다른 느낌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데 대사를 까먹지 않는게 이상한거 아닌가

과거의 환경에서 어쩔수 없었던 이런 고문에 가까운 공연예술도 현대에 맞게 좀 편리하게 바꿔줄 필요도 있어보인다.

그리고 대본을 사서 판소리 할때 함께 보라는 엿같은 말을 하지 말고 자막을 틀어줘라
이런 사소한 편의기능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망하지 않는것을 보면 밑빠진 독에 얼마 많은 세금을
쳐박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되는거 같다. 관객이 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종사자들의 환경도 좋아질텐데
단지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말곤 없다.
서울에 무수히 많은 공연장들중 남산에 특어박혀있는 극장 한곳에서만..
이곳 대관료 보다 저렴한곳이 널려있을텐데 각 구별로 돌아가면서 할 수도 있는거고
때로는 거리공연으로 판소리 완창을 할 수도 있는것인데 유독 이곳에서만 한다. 접근성 똥이고 젊은이들 없는 이곳에서

인생 끝자락에 있는 한 소리꾼의 잃어가는 대사들을 보고 있자니
이쪽도 얼마 안남은것인지 착잡하고 쓸쓸한 고독이 밀려오는거 같다.





2020년 11월 21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수연의 수궁가_미산제-


근래엔 회사 일도 많고 이런 저런일도 많고 연말이고 해서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는다.
이럴땐 공연을 보며 좀 차분해지길 원하기도 하지만 나만의 욕심이겠지

극장에 앉아서 시작하기를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더욱더 의자가 불편하다. 몸 콘디션이 엉망은 아니지만
아무튼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는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조금 후 사회가 나와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바로 시작하는데 역시나 어렵다.
그전에 대본을 두어번 읽어본적이 있어서 개략적으로 이해 할 수 있지만 그정도에 그친다.
한글이 만들어지고 배포된지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사회에서 한문은 언제나 가득차있다.

별주부가 물위로 나오자 마자 1막이 끝났는데 이상할정도 짧다.
한 45분정도? 해설이 포함된 시간이니 한 30분만에 중간 쉬는 시간이 온것이다.
왜? 김수연명창 몸이 안좋은가.
두번째 역시 얼추 비슷한 시간만에 끝이 나버렸다. 역시 해설시간 빼면 공연시간은 35분정도일까?
이후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나와 육지에서도 몇몇 사건 이후 여생을 잘 보냈다는 마무리까지 하니 6시정도에 끝이 났다.

시원스럽지만 두툼한 목소리가 매력적인데 애원성이 좋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창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강한것은 몸 콘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건지 원래 수궁가의 특정 대목이 그런건지
여러번 본것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색하다.

소리하는 사람들은 평생동안 다섯개의 판소리중 몇가지를 완창할까?

표현의 무게 무거워지고 깊어질무렵엔 목이 망가지고 몸이 쇠하여 더이상 못하게 되는것은 아닐까?

아무튼 자막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든 판소리라는 것을 듣기 위해 애쓴 나도 고생이고
어려운 판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닦는 소리꾼들도 고생이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영자의 심청가_강산제-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상반기에 예정되었던 판소리 4편이 모두 취소 되고
하반기 첫 공연도 취소되어 이후 3편도 모두 취소되려나 싶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성세를 보여
취소되지 않고 다행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올해 처음 보는 판소리 공연이다.

심청가를 그 동안 몇번은 본거 같다 그런데 4시간을 한적이 있었던가? 아무튼 이번은 4시간 공연이다.

심청가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부분을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내용이 거의 후반부라서 크게 지루함이 없는데
초중반부까지는 한문을 많이 알아야 하니 창자의 발음이 또박 또박해도 이해못할 내용들이 많다.

그렇지만 전라도억양에 판소리 특유의 발음까지 섞이니 심청가 대본을 두세번을 읽었음에도 대사가 귀에 들어올리없다.

이번은 왠일로 무대가 바꼈지면만 무대에 돈을 쓴 흔적은 볼 수 없다.
관객과는 불필요하게 멀고 4시간 공연을 보기엔 의자가 너무 저질이다.

그리고 역시나 자막은 어디에도 볼 수 없다.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하소연이 주변에서 들여온다.

언제봐도 공연의 세부적인 기획은 그지같다. 그냥 저렴하게 볼뿐 모든 불편함은 관객이 감수해야 한다.

이번엔 코로나로 듬성듬성 앉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빈틈이 많다.
몇일전에 더 좋은 자리가 있나싶어서 예매를 눌렀더니 예매할수 있는 자리는 없던데
한칸씩 띄어 앉으니 자리가 널널하고 좋긴 하지만
이렇게 빈자리가 많이 있다면 관객을 좀 모아서 앉히게 하는 센스가 저들에겐 없는걸까?
관객이 모여있으면 공연하는 사람도 시선처리하기 좋을텐데
부채꼴 모양의 관객석이라 한 구역만 줄어들어도 서로 좋을텐데, 노인들은 앞쪽 빈자리에 좀 앉히고

아무튼 운영은 고지식한것을 넘어서서 좀 멍청해보인다.

그나저나 김영자명창의 소리는 정말 뛰어나다.
특유의 못알아먹겠는 발음은 좀 그렇지만 아니리에서 돋보이는 연기력이 일품이다.
몇시간을 노래 부르면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거의 안나올텐데 처음과 크게 다름 없는 힘을 선보이는데
69세라는게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내니 오히려 내가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든다.

시작한지 한시간이 지났는대로 목이 안풀렸다고 하소연하실정도니
과연 후반부에 소리는 확실히 다르다.
오랜 기간 수많은 공연과 연습으로 다져진 기개를 느낄수 있으며 뛰어난 연기력으로 들으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판소리는 한문이 많이 나오기때문에 이런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계속 이대로 진행됬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거 같다.

4시간동안 대장정의 끝이 났음에도 김영자명창께서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조용히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들어가신다. 그것으로 이 훌륭한 무대는 끝이 났는데 품격있는 고수의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안숙선의 수궁가_정광수제-


올해 마지막 '판소리 완창'으로 8편의 끝이 났다
그럼과 동시에 처음으로 판소리 다섯마당을 다 들은 날이기도 하다.

춘향전이 가장 많았고 심청전, 놀부가, 적벽가등 2년동안 채워졌지만 수궁가(별주부전)는
한편도 없었다. 왜 일까? 없어질 판소리중 한가지인가?

대사집을 읽어보면 소리꾼들이 하기 싫어할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일단 한시등 한문이 많아도 너무 많다.
현재 많이 쓰이는 한자도 아니기때문에 관중도 이해가 안되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창자중 그 한자들을 모두 외워 쓸수 있는 사람도 극히 없을것이다.

한자를 많이 쓴다는 것은 표의문자 특성상 음 하나 하나에 뜻이 들어있기때문에
간결하다는 것인데 이것때문일까? 시조 같은 음율이 대단히 많다. 물론 한시도 많다.

이러한것이 소리꾼과 관객이 멀리하게 되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그로 인하여 2년동안 단 한번 오늘 안숙선명창의 제자 3명이 분창을 하였는데
가사 특성상 한시간남짓 되는 분량도 가사를 잊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쪽 계통이 제자라 해도 그들은 이미 베테랑)

이번 가사집은 해석도 똥같이 되어 있어서(한문 열개중 한개정도만 해석을 달고 나머지는 한문으로만 적혀있음)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 모두 해석을 달아놨다면 본문보다 해설이 많았을게다.

조선 후기무렵 나왔다고 해설자가 말하던데 대사 자체가 자왈 뭐라 뭐라 뭐라.. 하듯 대화를 하는것 봐서는
다른것들과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가사집을 보면 중국 문헌을 읽은 느낌도 들고

아무튼 동물을 의인화 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해설자는 당시 부폐한 사회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동물들이 서로 자리 다툼을 하는걸 봐선
파벌싸움이 좀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용왕의 어리석음등을 보면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것을 빗대어 표현하는것인가 싶기도 하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지탄의 대상이 될까봐 동물들을?)

아무튼 이 작품은 다른 판소리들에 비하여 손을 봐서 현대 감각에 맞게 대사를 바꾸지 않으면
적벽가와 함께 빠르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고 아이들 동화책의 우화로만 남게 될거 같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판소리의 내용이 바뀐적이 있던가?

사람들의 언어는 계속 바뀌고 있는데 전통예술들은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된 현상인가? 보통 이러면 사장되지 않나. 이미 식물인간처럼 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다른 음악과 컬레버레이션이나 해서 튀어보이려 할뿐

안숙선명창을 포함해서 총 4명이서 나눠 하는데 4명은 조금 많다.
그리고 안숙성 명창은 토끼가 육지에 올라온 마지막 몇분정도만 할뿐인데
(이럴거면 최소한 포스터엔 제자 3명도 함께 찍던가..)

사람이 바뀔적마다 그 느낌이 모두 달라서 새로운 것을 듣는 신선함이 있지만
그만큼 연결성에서 조금은 생소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분창을 하게 되면 싫어도 실력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데
(비교를 한다는게 의미 없으나 비교가 될수밖에 없음)
관객에게도 그렇고 참여자들에게도 그렇고 과연 이게 좋은것인가?

차라리 2일정도 기획으로 절반씩 나눠 하는것을 어떨런지
왜 꼭 몇시간내 한자리에서 모두 끝내야 한다는건지 이렇게 예술가를
특별한 이유없이 혹사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흥겹게 잠시 놀다 갈 수 있도록 기획하는것이 좋을텐데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에게 이상한 미안함이 든다.

2019년 판소리 완창은 맽음 하였지만 귀에 전혀 안들어오는것을
어떠한 배려도 없이 생으로 들어야 하는 엿같은 기획을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외국인들도 종종 보이던데 이들에겐 그냥 웅얼웅얼 아기들 옹아리같은 멜로디로만 들리지 않았으려나

내년엔 무대도 좀 바꾸고
지저분한 천정도 좀 가려놓고
무대를 관객쪽에 좀 더 가깝게 하고
자막도 좀 달자.... 월급만 받아쳐먹지 말고

그리고 오늘 2020년 상반기 판소리 완창도 예매하였는데 예매하면서 기분이 좀 더러워진다.
누가 나오고 무엇을 부를건지 전혀 없다.
뭐지?
'니들이 판소리를 아냐? 그냥 주는대로 쳐먹어라'라는건가?
위기의식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세금만 쳐먹는 기획자 놈들. 에이

분창 안숙선, 이선희, 남상일, 서정민
고수 김청만, 조용수, 조용복



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일구의 적벽가_박봉술제-


적벽가는 이번이 두번째인가?
포스터를 보고 소리 김일구 명창은 젊은 분인줄 알았는데 실물을 보니 백발 노인

판소리란게 몇시간동안 쉼 없이 노래와 연기를 하는건데 아무리 평생 했다 하더라도
노인이라면 쉽지 않을텐데 노익장을 발휘한다.

그런데 해설자께서 김일구명창의 목에 핏대가 설때등 이상한 소리를 한다.
소리하는 사람들중 목에 굵은 핏대 안서는 사람 있었나 싶은데(남녀모두)
왜 이런 불필요한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내세울게 없다는 소린지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초기 몇십분정도는 목이 덜 풀렸는지 소리가 답답하다.
이건 거의 대부분의 소리꾼에서 나타난다.
서양음악처럼 무대 뒤에서 목을 풀고 나오기엔 너무 긴시간을 공연해야 하니 무리하지 않는건가
그래서인지 항상 초반엔 좀 그렇다.(내 귀에 솜뭉치 끼고 듣는거 같음)

이분의 목에선 대금의 청 소리를 들을순 없었다. 남창들만의 특유의 쇳소리를 좋아하는데 없다니
그럼에도 낮은 저음으로 깔리는 그 묵직함은 무척 매력적이다. 하지만 절정의 맛이 좀 덜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판소리의 터무니 없이 넓은 대역을 원하는 장르와는 좀 다른 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가 이 분 역시 퍼포먼스가 많이 발달하고 멋지다.
연극 그 자체를 보여주는 뛰어난 표현력이 있어서
소리는 연기를 뒷받침 하기 위한 수단처럼 느껴질정도다.

또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내가 끌려갔다 밀렸다 하는 숨막힘이 지속된다.

오랜 노력의 산물이겠지만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맛이랄까?
같은 곡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을 입혀 선사하니 항상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판소리가 다섯이야기밖에 없다는것의 섭섭함은 지워지질 않는다.
(현대물로 새로 만들어서 발표회같은걸 열면 안되나? 2시간정도로)

오늘도 여지없다.
이 낡고 오래된 예술은 아직도 그 태를 벗지 못하여 노랫가사가 귀에 들어오질 못한다.
당연한거겠지. 한문들이 즐비하니 음만 들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음조차도 잘 안들린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한국말로 잘 들릴수록 사람들의 호응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하지만 오늘도 이 극장에서 자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추임세를 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지만 역시나 대다수는 상황의 감정조차도 찾지 못하는것이 아닌가싶다.

외국 노래를 들을때 감미로운 음정은 들리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른다면
수박 겉핥기식 답답함이 깔리는데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같은 답답함을 안고 집에가지 않았을런지

판소리의 가장 큰문제는 한문이 너무 많다는 것
이것을 바꿔줄 소리꾼 어디 없으려나..

녹음이나 기록 보관용 촬영같은건 할거 같은데 이런건 어디서 다시 볼 수 있는것일까
설마 녹음을 안하는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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