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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