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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4일 목요일

연극 -오이디푸스(안트로폴리스)-

 

올해는 오이디푸스의 해인가? 중순쯤에 한번 보고 오늘 보고
연말무렵에 또 한번이 예약되어 있다.
첫번째는 국민배우 최수종씨가 나온다고 하니 반신반의하며 보고
오늘 하는 안트로폴리스 시리즈는 보고 싶어서 보고
11월말에 보는건 창극단이 하는거라 어떨지 궁금해서 예약해놓고.

안트로폴리스 시리즈라길래 나는 인간들 사회속의 어떤 사건들이 주제인 희곡들인줄 알았다.
이것이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시리즈 작품인줄은 오늘 처음알게 됬는데 이상하게 한 사람의 시리즈 작품이란걸 알게 되니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유럽에서는 한번에 모두 보는 이벤트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 리빌드? 아무튼 각색한것이긴 한데 일단 내용은 뭐라고 해야 하나
원작 내용에서 벗어나는건 없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시대적배경을 바꾼다거나 하는것도 없다.
춘향가의 랩버전이라 해야 하나? 좀더 간결하면서도 감정선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불필요하게 너저분한 묘사들을 모두 삭제

어떻게 보면 추상화 작업을 한 오이디푸스라고 할까?
의상, 대사, 표정, 표현 등 간결하면서 포인트들만 확실하게 살린 작품으로
시간을 거의 절반으로 줄여도 느낌이 크게 바뀔거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좋은건지 아닌건지)

다만 왜 찬사를 받았는지까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간결하고 감정선이 깨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극적인 요소들이 현격히 줄고 삭제되어 오이디푸스가 선사하는 극적 긴장감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전위적 표현들로 상황을 표현한다는건 원작쯤은 다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는 무언의 조건이었을까?
아마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무슨 내용이지?' 싶었을것이다. 현대 예술인가? 싶기도 할테고
이런점에서 원작에 예의는 없고 작가 본연의 감각 그대로를 희곡으로 표현한것 같다.
원작을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지금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한다면 나 또한 모든 부연 설명따위는 넣지 않고 원작에서
너저분하게 깔린 장치와 복선들은 모두 제거하고 굵직한 한두가닥만 남기는것이 의식의 흐름 아닐까.

다시 말해서 내가 오이디푸스(왕)를 읽으며 혹은 관람하며 주된 인물 누군가에 동화되어 흐름을 파악한 사람이라면
수작이라 느낄만한다. 모든 부연설명, 배경, 심리상태들은 이미 머리속에 있으니
그 흐름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되새김질 하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으로 다가올것이다.
문제는 사전 지식이 아닌 작품의 사전에 동화된 감정이 어느정도 깊이냐에 따라서 별 감흥이 없을수도 있어보인다.

추상화가 가장 지랄맞은이유는 관람자가 나머지 90%이상을 상상으로 그려내야 한다는것다.
코끼리 상아 한조각으로 코끼리 전체를 상상해야 하기때문에 세상 온갖것들이 다 튀어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코끼리를 보고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함께 호흡이나 시선을 맞춰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다른 세계가 되어 있을테니
알면 쉽게 간결한 감동으로 다가오겠지만 모를수록 난해해지고 사라지기때문에
이런 공연예술에서 바람직한 형태로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튼 제법 충격적이며 신선하다.
곰팡내 물씬 풍기는 옛날 옛적것을 가지고 와서 현대적으로 바뀐것도 아니고
작가 의식의 흐름대로 관객을 위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이 일필휘지 했을거 같은 작품에
나는 왜 감동과 식상함과 허탈함을 모두 느껴야 하는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새삼 느끼는 거지만 명동예술극장의 음향은 끝내주는거 같다.(국립국악원도 좀 배워주길.)
연극을 보면서 난대없이 느끼게 된다. 이곳은 위치, 극장, 음향 어떤거 하나 빠지는게 없구나.

몇명 나오지도 않고 무대 전체를 막 쓰는것도 아닌데(무대의 1/4 공간만 쓴다고 함)
이 연극은 중형 이상의 큰 극장이 잘 어울리는 극이란것에서 오는 신선함도 새롭다.

마지막 LED Wall은 좀 깨는 설정인데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벽을 다 채우던가. 전광판도 아니고. LED Wall이 비싸면 프로젝터로 쏘던가.
아무튼 막판에서 감정이 깨지는 느낌이라 좀 아쉬움이 남는다.

출연 : 강세웅, 신소영, 김문희, 유은숙, 김석주, 이재호, 김신효, 조성윤, 김정아, 조의진, 김진복, 최호영, 배선희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조주선 춘향가(김세종제)-

 

어느때부터였지? 하루 세시간에서 여섯시간이나 되는 완창판소리공연이 힘들지 않게 느껴진 후부터였을까?
슬슬 품질을 생각하게 된다. 내 주제에? 가사도 제대로 이해 못하면서?
장단도 모르는데? 무슨 품질? 그래도 슬슬 느껴지긴 한다. 그렇다고 평생공부해서 일가를 이룬 저들을 품평 한다는건
예의에도 어긋나고 맞지 않아보이긴 하는데 오늘은 조금 몇 마디 하고 싶어진다.

조주선 명창의 목소리나 발음 같은것은 매우 훌륭하다. 그래서 초반 이후 점점 더 기대가 되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발음이 엉망인 창자도 많고 가사집을 봐도 못 알아듣겠는 사람들이 이 분야엔 참 많다.

조주선명창은 목에 힘과 여유가 묻어나온다. 힘든 대목에서도 여유롭고 호기롭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인물들의 표현과 특징도 잘 살려서 보는 맛까지 뛰어난 훌륭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 이리도 많이 건너뛰는건가?다. 처음엔 콘디션이 안좋은가?싶었지만
소리를 끝까지 뛰어난 기세로 몰아붙이는걸 봐서는 몇시간을 혼자서 노래하고 연기하려면
보통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일테니 대사(가사)를 까먹는 일은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건너뛰는 경향이 좀 많았다.
건더뛴다고 해도 4시간(20분쉬는시간포함) 가량을 소리했지만 김세종제가 6시간짜리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애초에 기획된것도 4시간30분정도를 기획하고 있었던거 같은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짤린 대목들이 많다.

6시간짜리가 4시간이하로 줄어들면 완창이라고 해야 하는건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춘향가는 너무 인기가 있는 판소리라서 이렇게 길어졌다고 한다.
다른것들은 4시간 이내에 끝나는거 같다. 공연예술이니 초창기 내용은 1시간정도 되는것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싶지만
아무튼 지금은 6시간이나 되는 황당한 공연인데 3분의1이나 잘라낸것은 개개인 사정에 따라 그럴수 있다고 보지만
내용 흐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가위질 당한듯 툭!툭! 끊기는 기분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잘 보다가 갑자기 응? 이란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사라질만 하면 응?의 반복
무엇인가 리듬이 계속 끊기고 대사가 끊기는것도 초반을 제외하곤 알게모르게 계속 잘려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든다는것은 기획되지 않게 잘렸다는 소리일 수 있다.
공연 전에 기획되었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장치들이 들어가 있을텐데 전혀 그런게 없었기때문에
춘향가를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쉽사리 느낄수 있을것이다. (내가 판소리 다섯바탕 중 유일하게 음반으로 자주 듣는게 춘향가)
초반의 기대와 다르게 뭉게지는 발음. 하지만 목의 힘은 그대로 살아있다는것은 참 특이하다.
그리고 조주선 명창은 목이 풀린 상태로 나온것마냥 처음과 끝의 음색이 크게 변화가 없이 좋은 콘디션을 보여주는데
이부분에서만큼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몇시간을 동일한 목 콘디션을 유지한다는건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됨)

춘향가는 들을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오늘은 거의 그러지 못했다.
조주선 명창때문이 아니라 공연기획때문인데 관객석을 무대와 큰 차이 없는 조도를 유지하는 이상한짓을 했다.
그래서 주변에 꼼지락 거리는 것들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와서 엄청 산만하다.
주변이 밝아졌으니 다들 가사집에 몰두를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얼마나 멍청한 선택인가. 훤하게 밝으니 구입한 가사집을 안볼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건너뛰고 바뀌고 하는통에 과연 제대로 읽으며 따라갈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 다들 가사집을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
어떤 노인은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고(한참을 지나야 관계자가 나타나서 보면 안된다고 제재)
재미 없으면 그냥 나가서 편한 의자에 앉아 전화기나 쳐다보다가 집에가지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건지
어떤 사람은 뭘 그리도 열심히 적고 있는지.

판소리가 관객과 상호 작용이 필요한 한국 고유의 공연방식이지만
관객석에 조명이 켜져는 순간 관객들은 웅성웅성거릴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냥 거리공연을 보지 뭐하러 이런 공연장을 오겠다.
오로시 공연자에게 집중하기 위해 이런 공연장이 있는거 아닌가? 그런데 관객석 조명을 켜버리는 빙신짓을 해대니 이 모양이 되지.

오늘 공연은 차마 자막을 제발 달아달라고 말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자막이 중앙 뒷벽에 나왔더라면
적어도 관객들이 고개 쳐박고 가사집에 몰두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실내전통 공연에 바리에이션은 주지말자. 추임세는 이제 어렵고 어색한 시대다.
전공자들도 많이 오던데 그들이 추임세를 좀 넣어서 흥만 좀 돋궈주는 정도에서 끝내자
가사집은 집에서 천천히 읽어볼 수 있도록 공연장 관객석은 철저히 어둡게
그리고 휴대폰으로 놀고있는 사람 있으면 재빠르게 바로 제재좀 하고
가급적 가사집을 팔지 말고 무대 중앙에 가사를 표기하자. 얘네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려는건지.

소리 : 조주선
고수 : 조용안, 조용복




2026년 9월 12일 토요일

창극 -독갑이댁 수레노래-

 

지난주에 이어 두번때 창극이다. 하반기에는 이런식으로 열편정도? 판소리 다섯편정도?
아마도 이정도 선에서 국악은 끝날듯 싶다. 이렇게 몰아서 볼 이유는 없는데 열편 일괄 할인하는
국립극장의 횡포때문에 어쩔수 없이 저렴하게 열편을 보게 된것이 좋을수도 아니면 부담스러울수도

독갑이댁? 누구누구댁이라 하면 자식중에 독갑이가 있다는 소리 아닌가? 있었나? 없었던거 같은데.
창극이라서 모두들 국악을 한다. 민요풍은 아니고 대부분 판소리 스타일로 한다.

창극이니 거칠거칠 핏줄 터질거 같이 그렇게 구성을 해야 하는건가
(민요스타일로 만들면 민요극이라 불러야 하나)

총 여덟마당으로 구성되어 처음 망량과 이매(이들은 누구지?)가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첫째마당(1막)에 독갑이댁이 지리산에 들어오는것부터 시작하는데
열댓명의 자식을 낳았다는데 모두들 왕,장군,부장군등이 되서 서로들 싸우고 있다고들 한다.
(이게 무슨 경울까? 무슨 상황이지? 남북-한민족-이 서로 지리산에서 싸우고 있는것을 의미했던건가?)

지리산이란 곳이 한국전쟁때 빨치산토벌작전이라 해서 잔존북학군과 엄청난 전투를 벌였던곳
전라도는 조선시대에서 약탈의 대상이기도 했던곳인데 평야지대니 전쟁이 나면 표적이 되는것은 당연했을테니
한이 오죽 많았을까싶기도 하고 5.18 민주항쟁도 전라도 광주에서 벌어진 참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전라도가 많은 피해를 입은건지 다른지역도 비슷한데 알려지지 않은건지
아무튼 예술적특징으로 한 맽힌 절규에 가까운 노래 스타일과 가사들은 그 지역 역사가 어땠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공연예술이다보니 관객과 공감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천천히 몇날 며칠 곱씹을수 있는 영화나 책과는 다르게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돌이킬수 없는 이런 공연의 특징상 쉬우면서 지루하지 않고
요점을 정확하게 그리고 불필효하게 감정을 소모시키지 않아야 한다.
헌데 이번 독갑이댁이란 작품은 최고조로 절규하듯 나오는 피날레 아닌 피날레를 100분간 지속한다?

지리산과 남원에 외부 세력이 침략해 들어오는 통에 살기 힘들어 절규
지리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막고 서있는 강도들때문에 절규
(첫째 마당에서 화선이와 억득이의 노래는 매우 신선하고 너무 좋았어서 기억에 남지만 이 창극의 전부라는게 안타깝다.)
이무기에 자식들이 모두 잡혀 먹혀서 절규
이무기가 아파서 절규.
황당하게 이무기가 막내아들이어서 절규
이무기(막내아들)을 죽음(승천)으로 부모로서의 절규
화선이가 억득이를 만났지만 헤어지므로 절규(헤어진건지 죽은건지 모르겠음)
독갑이댁이 지리산에 절을 짓고 화선이를 떠나는 대목에서 절규

판소리를 들으면 기승전결이 분명히 있고 감정의 고저, 기복, 리듬, 흐름이 있기때문에 감정을 추수릴 시간이 있다.
그런데 '독갑이댁 수레노래'는 도대체가 감정을 추수릴 틈이 없이 절규 절규 절규.
중반부 부턴 저들의 절규가 소음으로 혹은 무감각으로 다가온다.

감정이란게 좋을때도 평화로운때도 때론 안정감 있게 어느때는 심박이 올라가도록 강렬한 흐름을 타기도 하고
생각할 여유나 눈물흘린 시간, 한숨도 좀 쉬고, 웃을땐 좀 웃는 등 여유가 있어야 될텐데
주마가책(走馬加鞭)말처럼 시종일관 미친듯이 달리기만 한다.
그래서 감정이 저 하늘 위에서 내려올줄 몰라서 순시간에 지쳐버린다. 배우들이야 각자 대목을 나눠서 자기 할걸 하면 되지만
관객들은 그 모든것을 한몸으로 다 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설사똥 싸듯 미친듯 뽑아내면 지쳐서 감정을 추스릴수가 있나.

어머니의 사랑은 좋다. 모성애는 동서고금과 모든 동물 세계에서 으뜸 아니던가.
창극에 신파가 늘 들어가는거 같긴 한데 좀 심하게 넣어있다.
툭하면 어머니의 사랑을 이용하여 눈물을 짜내는 최루성 신파는 좀 지양할때가 되지 않았나.
중후반부터는 분명히 착잡하고 슬프고 우울한 내용들이긴 한데 감정이 꽉! 닫혀버려서 감흥이 거의 없다.
엄밀히 보면 초반에 감정을 다 소신하게 만들어서 이 후 자극들에 반응하질 않는다. 그렇다고 지루한건 아니지만 감동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떼창 참 좋지만 이런건 피날레같은곳에서만 좀 쓰고 나머지는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도록
관객에게 호소하듯. 소리를 내지르지 말고 조곤조곤, 판소리다섯바탕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르기만 하는건 없지 않은가

다들 높은 경지의 배우들이라서 어떤 상황이던 고품격의 공연을 보여주는 분들인데
무엇인가 구성이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들지 않았나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화선이와 억득이의 노래는 정말 특이하고 신선하고 매력적이었고
이들의 장면에선 눈시울이 유독 뜨끈뜨끈해질정도로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사랑이야기 그런게 아니라 가사도 아름답고 음율도 좋고 감정도 좋고)

어머니의 사랑도 이렇게 어느정도 선을 좀 지키면 안되는 것일까.

출연 : 국립믹속국악원 외 많은 객원

2026년 9월 6일 일요일

창극 -옹옹옹-

 

난 이게 옹고집전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옹고집전은 TV에서도 아이들용으로 좀 있는거 같고
나도 봤던거 같은데(분명히 동화책같은것으로 알게 된건 아님)

판소리의 한바탕인데 전수되지 못해 필사본만 존재한다고 하니 크게 유명한 내용은 아닌듯 싶다.
내용도 보면 좀 아동용이랄까? 아무튼 우리가 하는 그 옹고집이 맞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는데 승을 못살게 굴어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보내고
자식 열명을 낳을동안 진짜 옹고집은 밖에서 거지꼴로 고생 고생하며 다니는데
어느정도 후엔 깨달음을 얻긴 하는데 엔딩이 좀 오묘하다. 미스테리?
원작 내용은 해피엔딩인데 이 창극은 왜 해피엔딩같지만 전위적인 오픈엔딩을 만들어 넣었다.
이부분에서 가족 연극이라 하기엔 좀(여러 연령이 섞인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으려나?)

이 작품은 수화를 해서 청각에 문제가 있는 분들을 위해 배려한다. 그런데.
수화하는 분이 배우 한명마다 붙어있다. 다시 말해서 출연하는 배우가 다섯명인데 수어통역사가 다섯명
그래서 총 열명. 그리고 이 수어통역사도 배우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연기를 한다. 그래서 수어통역사만
봐도 될 정도이고 나도 어느순간 수어통역사만 보고 있을때도 있었다. 또한 마침내 자막을 무대 중간에
설치해서 자막을 표기한다. 물론 좌우에도 함께 나온다. 그래서 배우가 연기하는 위치에서 편하게 자막을 볼 수 있다.
어차피 같은 자막이니 중간에 모니터 한개 더 달면 될뿐인 어렵지 않은 이것을 이제서야 실현된다는것은 한편으로 아쉽지만
그대로 지금이라도 되었다는게 무엇인가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 되는거 같아 기분좋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계속 이런식으로 자막이 나오면 좋을텐데 특히 판소리분야는 정말 필요한 장치다.

보는 내내 오묘한 기분이 드는 작품인데 뭔가 B급 냄새가 물씬 풍기면서도 구성이나 연기는 최상이라는것
B급 코미디 영화같은걸 보면 좀 황당하고 엉성하고 난대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주성치 영화 작품들을 보면 좀 황당하지만 감동이 있다.
이 옹옹옹은 이것과 더불어 공연예술에서 보여줄수 있는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설정이 좀 음음음..

아예 확실하게 병맛 B급 고전 코미디면 그냥 허허허 웃다가 나오면 되는데
노래, 춤, 연기, 심지어 무대구성 모든것이 훌륭하다. 국립극장의 뛰어난 음향까지 함께하니 더욱더 맛이 살아난다.
코미디에서 헉! 뭐지?! 허허허 하는 무엇인가. 막 웃기도, 안웃기도 이상한 마음을 열었지만 눈치보이는?
하지만 저들 모든 배우와 통역사들은 너무 열정적이며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100분 내내 그랬다.
그래서 분명히 코미디 장르고 기획한거 같긴 한데
남녀노소 모두를 타켓으로 한거 같긴 한데
가족이 함께 볼순 있는건가? 뭔가 아리까리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게된다. ^_^;;;
그리고 노래에 맞춰 흥이 올라가면 박수도 치고 그러는데
어떤건 손을 좌우로 흔들어야 할거 같은 노래(발라드? 트롯? 민요?는 아니지만)도 있고(박수가 결코 어울리지 않음 -.-;)
또 다른건 헤드뱅은 아니지만 랩퍼들과 같이 리듬을 타야 할거 같은 노래도 나온다.
모든 세대를 넘나들다보니 웃다가 뻘쭘, 슬프려다가 멍~
그렇지만 역시 흥의 민족이라 그런지 흥겨운(가사 내용은 비록 씁쓸하더라도)노래에선 모두들 환호한다.

노래가 많기때문에 이런것에 걸맞는 추임세(박수? 손을 흔듬?)가 필요한거 같은데
이럴때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같이 해달라고 몸짓을 해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수많은 관객, 배우들 모두 함께하길 바랬을텐데 낯설은 리듬에선 섣불리 손이 올라가긴 어려우니)

추석 연휴 같은때 기획극로 제법 잘 어울릴거 같은데 왜 지금 한것인지 모르겠다만.
B급 코믹,스릴러, 멜로(?), 휴먼, 미스테리를 특급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어올린 엄청난 창극이었다.
그리고 수화통역사들의 진진한 연기가 사람 미치게 긴장하게 만드니 반드시 주의깊게 봐야 한다.
(왜 그들은 그리도 진진한 연기를 하시는지)

주모의 노래도 좋고 춤들도 좋고 가을날씨도 좋은 많은것이 적당하게 잘 어울리는 극이었다.

그런데 이건 창극은 아닌거 같은데.. 그냥 현대적 음악극이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출연 : 김솔지, 김유남, 류세일, 지혜연, 추다혜
수어통영사 : 남수현, 심다은, 윤미숙, 정지현, 조유나
연주 : 권효창, 남성훈, 지쿠




2026년 6월 28일 일요일

음악극 -피리 부는 사나이-

 

응? 이게 뭐지? 제목만 보고서 꿈을 쫓는 한 인간의 일대기인가?싶었다.
자유로워 보이고 송창식 노래 '피리 부는 사나이'도 그런 느낌이고
옛날 동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도 있지만 이것과 같은 내용일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배경에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라니.
주제가가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 라니.
이게 맞는 설정인가?

음악극들을 보면 가끔 한 가수의 노래들로만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광화문연가', 김현식'사랑했어요', 아바의 '맘마미아' 같은것들이 그러하다.

이 연극도 송창식 노래들을 웅장하게 리메이크 해서 나온다.
그런데 독립군 이야기다. 물론 허구다.
문제는 송창식의 노래들이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것들도 있지만(대표적으로 고래사냥같은?)
대부분은 사랑이야기와 담배가게아가씨같은 장르를 뭐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이런류와 '가나다라'같이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노래도 있다.
(몰랐는데 재일교포들에게 공부를 돕기위해 만들었다고 함. 교육적이라 해야 하나?)

창법도 그렇고 노래들도 그렇고 정말 훌륭한 곡들이다. 지금들어도 아름답다.

그런데 이게 일제강점기때 독립군들의 심정을 담아내는 노래로 쓰인다고?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개소리같다.

음악극(뮤지컬)을 적지않게 봐왔지만 이렇게 노래와 상황이 안맞는 노래를 불러대는건 이번이 처음일거 같다.
순사에게 고문을 당하다는데 '가나다라'를 불러댄다. 미친놈인가?
차라리 담배가게 아가씨의 '아자차차차차차차차' 하는 부분을 부르지
노래은 그래도 이부분은 주인공의 결의를 나타내는 부분인데

상황에 맞지 않는 가수 노래들을 억지로 끼어맞추다보니 감동도 없고
실화도 아니니 현실성도 없어서 굳건해지지도 않는다.

뭐지? 이 연극?
음악을 보면 분명히 급조한거 같지 않은데. 무대 연출도 매우 멋진데
왜 하필 음유시인같은 송창식 노래를 썼을까? (저항하는 노래는 그냥 '고래사냥'정도 말곤 없는거 같은데)

이분은 점심늦게 천천히 일어나서 작게 공연하는 신선같은 삶을 살고 있는 분이고
그에 맞는 노래들을 작곡하고 부르는 사람인데. 이렇게 막 붙여버린다고? 그것도 맞지도 않는곳에?

차라리 멜로를 만들지.

그리고 노래를 이렇게 못한다고? 노래 자체가 어려운 창도 아니고 일반 노래인데 전문 뮤지컬 배우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엉망으로 부른다니. 모창을 해도 이것보단 감동적이었을거 같다.
특성상 좀 나이가 있는 사람을 써도 될거 같은데 왜 그리도 젊은 사람을 앞에 쫙 깔아놓은건지.
그러니 원숙미라곤 하나도 없고 심지어 주인공이 연기조차도 못하고. 여자주인공은 노래가 혼자 튀어서 귀가 아프고.

포스터에 뮤지컬이라고 쓸거면 최소한 노래와 연기가 되는 사람들만 좀 쓰자.
티켓 한장이라도 더 팔려고 젊은이들로만 도배질 하지 말고.

근래에 뮤지컬이라고 하면서 이상하게 외모만 잘나고 실력은 엉망인 사람들이 주인공을 맏는게 유행인가본데
국공립만큼은 순수하게 실력만 좀 신경쓰면 안되는걸까?
100% 상업용으로 제작되었어도 이렇게는 캐스팅 안할거 같은데.

요즘 엄청 특이한 공통점을 느낀다.
어떠한 사유에선지 모르지만 커튼콜사진도 못 찍게 하는 음악극들이 좀 있는데
이런 극은 유독 배우들이 인사를 하면 앞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갑자리 우루루 일어난다.
그러면 뒷사람은 인사하는 배우들이 안보이니 자연히 일어날수밖에 없다.
노래(넘버)가 끝나도 박수를 거의 치지 않는 품질이 별로인 음악극인데
난대없이 우르르 일어난다? 왜 기립박수를 선동하지? 이러면 못부르던 노래가 더 잘불러지나?
앉아서 박수치면 배우들이 기죽어서 다음공연을 망치나?

뮤지컬 협회(이런게 있나?)에서 이렇게 하라고 시켰을리도 없는데 그 동안 없던 이상한 행태가 보이는게 수상하긴 하다.

이렇게 별로인 음악극에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해주면 기고만장해져서
티켓값만 올라가고 젊은 배우분들의 실력은 쥐뿔도 나아지지 않을텐데 관객 입장에서 괜찮은건가?
큰 손해일텐데.

노래의 어울림과 주인공들의 연기 빼고 구성은 제법 뛰어나고 훌륭하다.
특히 조연들의 노래와 연기는 아주 좋다.(도대체 왜 조연들은 대부분 연기력이 훨씬 좋은걸까? 반대여야 맞는거 같은데)
티켓가격이 7만원인데 나라면? 다시 선택할수 있을까?
지금 유영국 전시회를 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으니 연극보고 유영국 전시회도 보면 만원은 절약되는것이나
다름없으니 꼭 보시길.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한곳에 모이는게 쉽지 않음.

출연 : 많음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6월 27일 토요일

창극 -효명-

 

요즘 점점 공연비가 오르는 느낌이 든다.
나라가 좀 부유해져서일까? 물가가 상승해서일까?
소극장공연은 액면가 3만원에서 4만원으로 오르고
이런 국공립은 기본이 5만원이상(R석류)
그런데 너무 아쉽게도 나는 몇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왜? 회사가 오늘 내일 하니
요즘 급여가 밀리는 회사들이 엄청 급증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딴세상 이야기인가? 나는 딴세상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왠만하면 국가 세금으로 유지하는 곳은 가격을 좀 저렴했으면 한다.
가뜩이나 메이저 배우들이 인지도 앞세워 가격을 쳐올리고 있는데 국공립마저 이러면 어쩌냐.
그리고 가급적 비싼 사설 공연을 국공립극장에선 받지 마라. 세금으로 지어지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극장을
비싼 공연들을 올리면 물론 운영비를 벌수 있겠지만 벌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가격때문에 관람을 못하면 안되는거 아니냐?
사설 극장들 널려있으니 비싸게 받겠다는 사설공연은 그런곳에서 하도록 유도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전국 국공립극단의 순회공연, 공연 패스티벌 같은것으로 다양화 시키면 되지 않겠나.

제목이 그러하듯 효명세자 이야기다.
타살설이 있으나 일단 이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반대세력들의 주장이란게 일단은 정설이다.
적어도 타임머신이나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전까지는 타살은 없다.
공연 내용처럼 자객이 있었던것도 아니다. 그러니 일부는 맞지만 효명세자를 넣은 맬로물로 보는게 되는데
일반 TV 드라마 내용을 창극으로 각색했다고 보면 되는 정도다.

국립극장 해오름의 대극장 규모는 됬지만 그렇다고 무대가 웅장하다거나 창이 심금을 울린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었다.
딱 두곳이 있는데 어떤 기녀가 한탄하듯 부를때 순간 울컥? 그리고 살수(묘묘) 여자가 부르는 장면에서 약간 몽글몽글 정도
그 외에는 많은면에서 TV사극 드라마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가장 큰 문제는 창극이니 창작 소리가 많이 나오는데 그다지 감동을 받기 어려웠다.
무슨 내용인지도 좀 어려웠지만 흐름이 뭔가 좀 난잡하다고 해야 하나?

비주얼적으로도 암살하는 장면에서도 전혀 긴장감이나 긴박함 또는 화려한 액션 따위는 없다.
주인공 살수(묘묘)와 효명이 칼무를 추는데도 전혀 멋짐이라곤 눈꼽만치도 없었고. 군무도 그다지.

분명히 급조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느낌또한 없었다.
일단 효명세자에 대해 잘 모른다. 조선조말기 고종의 명목상 아버지(효명세자의 친아들은 자식 없이 죽음)정도
예전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나왔을지 모르겠다. 이때 흥성대원군이 젊었을때 모습도 나오던게 기억나니
효명세자가 나왔을수도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명성황후를 있는대로 미화시킨 개똥드라마였으니 기억할필요도 없다.

150분(쉬는시간 15분포함)가량 되는 적지 않은 공연이니 내용의 질이 좀 중요한데
너무 뒷자리에 앉아서 배우들의 표정이나 소리들이 잘 안와서 감동마져 사라진걸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졸음이 밀려왔다가 잠깐 집중되다가.

한국에서 효명세자에 대해 애정을 갖는 사람이 있던가? 차라리 명성황후같이 드라마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정도가 있겠지.
조선조에서 태조(이성계는 드라마때문인지 책때문인지),세종,세조(영화때문?),태종(이방원),선조(이순신 괴롭힌놈) 뭐 이정도 아닌가?

이마저도 대부분 조선의 왕들은 소설책(논픽션이란게 핵심) 아니면 드라마 또는 영화 같은 매체때문에 유명세를 타는거지
이미 수백년 지난 왕조의 일원을 좋아할 필요가 있나싶다. 세종같은 경우 굴직한 업적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은 허구속 인물같은 소설 매체에서 익히는 가짜 인물일 확률이 크다.
심지어 세종은 어진(그림)도 없어서 친일매국노(김기창)놈이 지 얼굴을 처그려놓은걸 표준영정으로 삼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효명세자라니. 참 아이러니 하다.
예약을 중시했다고 해서였을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작은 무엇이라도 발견하면 우주끝까지 부풀리는건 하여튼.

이 공연을 보면서 정말 불연듯 떠오른 이상한 기분이 있다.
국립창극단에서 직접 제작한 이런 창작극엔 현대의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극이 단 한편도 없다.
근현대사에서 조선을 뺀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있냐는 것인데 없다.

판소리 다섯바탕은 당연히 내려오는것을 개승발전시키는거니 레퍼토리에 있는건 당연해보인다.
그런데 패왕별희?, 리어?, 토선생..?, 나무물고기탈?, 로미오와줄리엣?, 토로이의연인들?
뭐지? 정작 대한민국에 대한 따끈따끈하고 후끈하며 절망스러웠던 수많은 사건을 다룬 극은 한편도 없다.
예술가 집단 아닌가? 불의에 저항하는 세력이 예술가들 아니었나?
쪼다같이 정권 눈치만 쳐보고 있었던 집단이었나?
곰곰히 과거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곱씹어보면 대부분은 돈의 노예들이긴 했지.
예술가들은 돈 버는 기술과는 거리가 있어서 비굴하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아사하기 딱 좋은 직업군이니 납득은 된다.
그런데 어떤 또라이가 예술은 저항정신이라 했을까?
저항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으니 부러워서 지어낸것거 같다.
정말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얘들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데 정작 우리들의 현대사를 다뤘다간 쪽박 찰까봐 두려웠겠지.

가격이나 좀 내리자. 품질은 충분히 비싼 공연이지만 국공립극단이니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리고 현정부에서는 현대사를 다룬 창극이 나와도 예산을 줄이거나 하지 않을테니 이때 왕창 쏟아내라.
그 중 한두개가 한 백년 이어지면 그걸로 저항한거라 인정해주지 않겠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런 이상한 내용이나 만들어대지 말고.

출연 : 국립창극단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연극 -던터치(Dawn Touch)-

 

창작음악극? 뮤지컬? 뭐가 됬던 창작해서 성공하는것은 쉬워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노래가 많은 연극이라면 더욱더 노래와 연기와 내용과 가창력 등 많은 요소들이 한번에 맞아야해서
보는 사람사람이야 싫으면 '별로네'하면 되겠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시련의 시간일수 있다.
(내가 창작자가 되본적은 없어서 실제로 어떨지는 모름 -.-;)

돈 터치(건들지마)에서 던 터치(연결?)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멜로 음악극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꽤나 식상하고 클리셰 덩어리들에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들
그럴만도 한게 전세계 문학작품들 중 멜로가 절반 이상 차지할텐데 그 중 한대목 안섞일수는 없다.
음악 세계에서도 '모든 멜로디는 이미 다 나왔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그것이 그것같은
한정된 자원에서 창작활동을 하는거니 창작이란게 여간 힘든게 아닐거다.

세실극장은 언제쯤 좀 음향에 투자를 할지 모르지만 그다지 좋은 음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곳에서 음악극을 한다는것은 작가 입장에선 손해를 볼 수도 있는데
일단 음량 밸런스가 영 맞질 않는다. 피아노 두대가 양 끝에서 연주하는데 노래보다 훨씬 크게 들린다.
마치 피아노 독주회에 온듯한(두대니 듀엣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 마져도 음질이 좋지 않다.
세실극장이 크지않은 작은사이즈인데 그랜드피아노에 왜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하는거지?
제법 큰 극장도 그랜드 피아노 소리는 생각보다 잘 들리는데 소극장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극장에서.

이번엔 비교적 중간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소리가 너무 크다. 그리고 이 작은 극장에서 배우들에게 마이크를
채우는건 뭐 그럴수 있겠지만 뭐랄까? 균형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 목소리가 저 배우의 목소리인지 립싱크하고 대충 녹음본을 틀고 있는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정도로 별로였다.

소곤소곤얘기해도 엄청 크게 들리고, 마이크달고 스피커 볼륨을 올렸을때 최대 단점은
배우들의 무대 위치와는 별개로 동일하게 소리가 들리기때문에 눈감고 들으면 배우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수없어서
눈을 뜨고 봐도 공간감이 대단히 허접해진다.
양 끝에 배우들이 있고 서로 노래를 불렀을때 눈감고 있으면 떨어졌다는걸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작은극장에선 가급적 스피커는 맨 뒷자리 음량 보충용 정도로만 해서 배우들의 생생한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
이동할때 소리도 함께 따라가도록 하는데 이런건 개나 줘버린거 같다.

그러니 감흥도 없고 감동도 없고, 딕션도 안좋고 전체적인 줄거리는 식상한데 왜 저러나 싶기도 하다.

전체적인 흐름을 놓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길말한 내용은 아니지만 멜로는 둘간의 면밀한 호흡과
디테일한 감정을 제대로 실은 노래에서 감동을 주는게 아닌가? 그런데 생각보다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특별한 맛이 없고 밋밋한게 밍숭밍숭한 맹물을 먹는 느낌같았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의 신선함도 없다.

차라리 작은 소극장에서 하면 관객과 훨씬 가깝게 다가서니 함께 호흡하면 더 낫지 않을까?
(인기 있는 멜로 음악극들을 보면 관객들 가슴팍을 팍팍 꼿는 감미로운 그 무엇과 절묘한 타이밍과 배경이 있다.)

예전 성현아와 조동혁 배우가 나온 '애인'이란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도 하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당시엔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와 여운이 너무 깊어서
한동안은 계속 생각하게 되었었는데 이런 류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난대없이 과거 학창시절 배우가 되도록 했던 학우를 만나 다시 무엇인가 시작하는것까지는
아무리 식상한 주제라도 넘길 수 있는데 다음날 외국으로 떠난다고?
몸에 몰핀을 맞으며 고통을 참는 힘든 병인데 카메라 들고 나와서 영상을 찍고 있다고?
스위스는 왜 가는건데? (설마 스위스에서 안락사하려고?)

내용이 앞뒤도 이상하고 시간 흐름의 디테일도 떨어지고 노래가사와 상황은 안보인다.
(처음엔 분명히 don't touch 였는데 나중엔 dawn touch로 바꼈는지도 모르겠음)

무엇이 꼬인걸까? 왜들 그렇게 무표정하지? 공연전에 서로 싸웠나?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이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배우들이 열심히 노래를 불러도 박수한번 제대로 안치던 관객들이
(이번엔 싸늘함이 좀 느껴져서 민망할정도)
커튼콜때 갑자기 기립박수를 친다.
물론 앞에 몇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니 다들 따라서 일어나긴 했는데 왜?
음악극은 기립박수를 치는것으로 자리잡히는건가? 차라리 노래 한곡 끝날때마다 박수 치는게 더 나을텐데
작은 극장에서 기립박수를 치면 관객과 배우와 높이가 비슷해져서 뒷사람은 배우가 안보이는데
외국처럼 관객석 단차가 큰 극장 구조라면 모를까. 일어서면 뒷사람이 안보이는데 이게 무슨 똥매넌지.
정말 좋으면 앉아서 큰소리로 환호하고 박수를 열심히 치자.
친인척, 지인들이라면 제발 노래 끝나면 면팔림을 무릅쓰고 꼭 박수 치자. 배우들 기운나게.

그리고 극장 관계자들은 배우들 더운것만 신경쓰지 말고 관객 추워하는것도 좀 신경써주고.

무엇인가 총체적으로 좀 엉켜있고 무관심하고 무~심한~ 음악극이었다.

아무튼 백개의 음악극이 나오면 그 중 한두개 성공하고 그게 백년 넘게 계속 공연하면 한국 고전 되고 그런거겠지
그 고전되는 작품을 언젠가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윤일상 작곡의 뮤지컬 서편제는 배우에 따라선 충분히 가능한 보기드문 명작이던데 특성상 노래를 정말 잘해야 되고 소리도 잘해야 되서)

그런데 커튼콜은 왜 못찍하면서 커튼콜을 찍을 수 있는 주간을 두는 멍청이같은 기획을 왜 하는거지?
또라이짓은 제발 적당히. 없는거 감추려다가 더 티난다.

출연 : 한재아, 류제윤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6월 7일 일요일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

 

왜 양떼목장의 혈투라고 정했을까? 생각보다 일방적이고 종속적이었는데.

시작이 뭔가 좀 특이하다. 두 청년은 TV를 보고 있는거 같고, 한 사람(아버지)은 연극 중반까지 컴퓨터게임만을 한다.
이 두 청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내용은 지금 시대를 대변하는데 저들의 주축인 청년들일까? TV를 보며 끊임없이 과자를 먹고 있는
그것이 인생에 전부인듯 살고 있는, 하지만 어떤 존재들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인간사회를 창조한 신일지도?

얼룩말이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사건이 있었는데 작가는 그 사건속에서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본것일까?
얼룩말 입장에서는 단순히 울타리를 넘어 길따라 이리 저리 돌아다닌것 밖엔 안되는 큰 사건이 아니었는데.
(주민들은 좀 놀랐겠지만 맹수란 이미지도 아니라서 살짝 피하면 되는 정도)

그리고 제목처럼 양떼가 나온다. 순하고 개량되어 털이 끊임없이 자라는 양, 또하나 야생양도 나온다.

우리를 탈출한 말이 양과 대화를 하고 양은 말의 말에 동화되어 자신도 안락한 지금의 삶 대신
약간은 힘들것이 예상되지만 자유의 삶을 택한다. 자유로운 삶? 이것은 왠지 풍요로움와 안정됨과는 거리가 있게 그려지는데
현실에 안주하는것이 자유와는 거리가 있는것인가?

우리안에는 가짜 양인 검은양이 있다. 왜 이 양은 이렇게 그려졌는지 모르지만
양 탈을 쓴 사람으로 양들과 함께 살면서 안정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렇게 탈출하려는 양들을 잡아서 죽이거나
설득한다. 왜? 아마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칠거 같았기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막아왔던것으로 보이는데 자유를 위해 떠나는 양의 말에 다시금 현혹되어
양탈을 벗고 자유를 택한다. 영화 메트릭스의 파란알약과 빨간알약의 선택과 같다.
아버지(양농장 주인같음)라는 사람은 동물보호협회에 잡히긴 하는데. 이것도 상황은 잘 이해되 않는다.
왜? 동물을 학대한것도 없는데. 아마도 탈출한 양의 털이 숨쉬기 힘들정도로 계속 자라나서 죽기 직전에
이들이 털을 깍아 구해줬는데 이 이유로 아버지를 잡은것으로 보이지만 개연성이 조금은 부족하다.

검은양은 흥청망청 살아보기도 하고 일을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데
반복되는 실패는 시련만 깊어지며 힘이 빠지는데 이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단순히 이러한 극적 요소는 넘길 수 있지만 한국에서 청년들이 처한 처지, 내 주변에서 좌절하는 사람들
온갖 수많은것들이 떠오르면서 먹먹해지고 호흡이 가팔라지는게 꽤나 참기 쉽지 않았던 한 부분이었다.
결국은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버지의 안정된 삶으로 스스로 들어가 검은 양털을 뒤집어쓰고 목에는 밧줄을 동여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고 구하다가 지쳐서 '쉬었음'이란 짧은 한마디 내던지는것으로
외면하려는 슬픔이 현실처럼 표현되어 다시금 목이 메여진다. 

그 다음이 좀 이해가 잘 안되긴 하는데. 우리를 박차고 나온 얼룩말 세로는 잡혔지만
고친 우리는 기존과 다름없는 허술한 울타리일뿐이라 언제든지 다시 탈출 할수 있는 용기는 있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부모들을 떠올린다.
세렝게티 초원을 갈순 없다. 기껏해야 도로를 떠돌다가 마취총을 맞고 끌려올것이다.
무엇도 바뀔 수 없는 현실에 아버지(?)를 찾는다. 여기서 아버지는 포수다. 안락사 시키는 역할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죽을수 있도록 총을 두고 가는데
왜 얼룩말 세로의 죽은 부모들이 아버지를 총으로 쏘는건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종의 원한이라고 해도 이미 없어진 존재들인데

씁쓸한 현실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근래에 본 어떤 연극보다도 멋진 연극이었다.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비극으로 맽음되는 현실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끝은 왠만해서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복권당첨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성공스토리가 내게 올거란 기대를 하는 어리석은 대중에게 외치는거 같았다.
'너의 미래는 똥 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만에 하나 바꾸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투표를 하라~' 라고
(선거 시즌이었기때문에 이 생각이 든것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떠오르긴 하지만
한국사회에 맞고 좀 더 깊게 헤아리고 제법 좋은 구성으로 몰입력이 뛰어나고
현실을 극적이며 신선한 구성들로 오랜시간 기억될 훌륭한 연극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었으니 다음에 하면 꼭들 보시길

출연 : 정나무, 박수빈, 이승훈, 최지현, 권효은, 이주형, 김원태, 정연종, 김효영, 김민석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6월 6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박성희 수궁가(미산제)-

 

올해 상반기 국립극장 판소리 완창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반기에 또 시작하겠지
상반기 4회를 하는데 판소리는 다섯바탕 그러면 같은게 겹칠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거기에 같은 미산제. 시간은 좀더 짧은 느낌이다.
(3시에 시작했는데 커튼콜 후에 진도아리랑 하면서 끝났는데도 딱 6시였으니)

박성희 창자를 언제 봤더라. 분명이 어느 공연인가에서 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봤다고 생각하냐면 약간은 보이시한 낮은 톤에 힘있는 발성이 기억에 남아서다.

대략 3시간동안 중간에 15분정도 쉬고 끊임없이 창을 하는 해야 하니 여간 힘든일이 아닐거다.
언제나 그렇듯 보면서도 힘들어 하는게 보인다. 3시간에서 6시간 분량의 대사와 연기를 모두 외워야 하고
관객앞에서 지친 모습을 모여줄수 없는 직업이니 당사자는 누구보다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3시간이면 이번 시즌은 상대적으로 짧게 잘 끝났네라는 오만한 생각도 든다.
(춘향가 6시간, 심청가 5시간은 편하게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이라도 막판엔 힘듬)

이분의 톤이 중성적이며 힘이 있는 소리긴 한데 창을 하는 풍에서 묘함이 좀 있다.
각 인물(수궁가에선 사람이라곤 용왕하고 도사 말곤 모두 동물)들의 대화에서 그 구분점이 명확하지가 않다.
순간 순간 배역을 바꿔야 하는 1인극이다보니 힘든것은 알겠지만
약간은 더 확실하게 구분되도록 캐릭터의 선을 명확하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소리의 영역도 넓고 억양도 좋은데 (김소희 명창께서 발음이 좋아서 예전 녹음한걸 지금 들어도 감동이 그대로 전해옴)
이분이 김소희명창의 제자라고 하니 이러한 것들을 전수받은거 같다.
예전엔 각 지역 방언이 훨씬 강했기때문에 각 지역별로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님에도 판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90%이상은 받아쓰기 어려울정도다.
대사(해설겸)집을 읽고 계속 듣다보니 대충 감으로 들을뿐 확실한 이해는 쉽지 않음에도
아직도 판소리 공연에서 자막을 안트는건 '너죽고 나죽고 모두 없애버리자'라는 심사인지 이젠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분의 발음이 좋은편임에도 오늘은 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몸 콘디션이 좀 안좋은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풍이었을수 있지만 발음이 뭉그러지는 많은 창자들과는 다르게
또렷하긴 한게 못 알아듣겠다니. 물론 한문도 많다. 이건 판소리가 원래 그 모양으로 생겨먹었으니 그러겠지만
한문의 문장 뜻을 모를순 있어도 음은 알아들어야 할텐데 도통 이 세계에선 이걸 바꾸려 하지 않지 않는다.
이런면에서 김소희명창은 어떻게 살아남으셨을까? 전반으로 뭉그러지는 발음이 주류라고 생각하면 당시엔 이단아 같았을텐데.

그리고 여자 특유의 고음이나 쇳소리(쇳소리는 남자 창자가 일품이긴 함)가 좀 적던데 이부분을 특별히 키우려 하는거같진 않아보인다.
이미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갈고 닦았는데 이제와서 스타일을 바꾼다는건 몸이 허락하지 않을테니.
(흥보가 완창무대도 했다지만 언제쯤 여기서 볼 수 있으려나)

수궁가의 줄거리는 단순한 동화같은 내용이라서 전체적으로 흐름은 쉬우나
막상 대사들이 난리도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한자들이 즐비한것을 보면
권문세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소리꾼을 초청하여 자신들만 듣던 장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내용이 권선징악도 아니고 풍습이나 사회를 반영하는것도 아니고 적벽가처럼 고전을 만든것도 아니고
뜯어보면 제법 철학적인 면이 있다. 용왕의 멍청함을 비꼬는 블랙코미디 같은 부분도 있고
토생원의 지혜와 기교, 기개가 있다손 치더라도 별주부의 말에 현혹도 잘되고 건방떨다가 막판엔 두번이나 죽을뻔한 사건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막판에 인간 올무에 걸린거나 독수리에게 잡힌 내용은 전체 흐름상 크게 필요하지 않았는데
왜 넣은걸까? 이게 없으면 토생원이 너무 기고만장하게 끝나서 넣은걸까?

쉬우면서 쉽지 않은 대사들로 3시간중 생각보다 편하게 들을수 있는 부분은 30분정도도 안되보인다.
그리고 박성희창자의 소리 풍이 약간은 느릿느릿한 템포를 유지해서 가끔 졸음이 살짝 올때가 있었다.
빠르게 희모리로 몰아치는 대사들은 좀 약한건지 아니면 자신의 색을 만든건지 아무튼 호흡이 길다.
공연중 문득 든 생각으로 이분이 심청가를 하면 그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심청가는 시종일관 무겁고 회색적인 현재와 미래만이 보이는 장르로 막판 한 10분을 제외하면
심청이에게는 디스토피아같은 세상일뿐이었다. (낙천적인 성격때문인지 선녀가 환생한것이라 다 알고 그런건지)
이런 어묵한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기에 멋진 목을 지니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에 비하면 수궁가는 너무 밝은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기대해보게 된다.
박성희명창의 심청가 완창을 볼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나흘전에 봤던 현대 뮤지컬 서편제의 소리와 고수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를.

소리 : 박성희
고수 : 신문법, 조용안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연극 -반야 아재-

 

요즘 안톤체홉 시즌인가? 왜 이곳 저곳에서 체홉 작품을 많이 하지?
반야아재, 반야아저씨 이 두 제목으로 인지도 높은 탈랜트들이 정극에 출연한다.

요즘 배우들이 지상파 TV 인기가 시들해지니 이런 연극에 나오는건가?
문제는 티켓파워를 앞세워서 가격만 더럽게 올려놓고있는것인데 연극 품질도 특별하진 않다.
인지도 빵빵한 배우들이 나오니 무대 좋고 연출 좋고 구성 좋은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연극의 품질이 좋다고 말 할순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오늘 제대로 본거 같다.

국립극장 해오름은 국립극장중 가장 크고 좋은 극장이다.
무대가 너무 넓어서 채울것이 마땅치 않았을까? 중간에 연못을 만들어놓고 그 중간에 정자같이 만들어놨다.
시골 촌부의 삶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럭셔리한 한옥은 뭐지?

좌우 수십미터는 떨어진 양쪽 끝에 개수대(펌프)와 의자, 다른 끝엔 평상
약간은 앞쪽에 앉아있어서 이것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 시골의 집들 구조는 중앙에 평상이 있고 한쪽에 개수대와 수동펌프가 있어야 하는데
구조 자체가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설정한것마냥 터무니 없이 벌려놨다.

원작에서 바냐가 왜 제대로 된 공부를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배경은 이렇다.
누나의 남편인 매형(서병후)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이건 원작에서 매형의 학식을 존경했기때문에
그렇게 된것이라고 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이러한 배경 설명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시대극도 아니라 역사를 안다고 설명되는게 아니라서 배경설명이 안되면 반야아재는 엄청 이상한 연극이 된다.

도데체 내 자식도 아닌 매형의 뒷바라지를 왜 하지? 조카인 딸마져도 시골에서 바냐와 고생하고 있고
어머니는 왜 매형 편을 드는걸까? 바냐는 뭔데 매형의 새부인(오영란)을 사랑하는건지.
일제강점기는 또 뭘까?(여기서 좀 놀랐음. 일본 순사와 군인도 구분못하는거 같음.)

안똔체홉학회에서 만든 '순우삼촌'이란 한국배경에 맞게 각색한 반야삼촌이 있다.
이건 배경을 한국 시골로 하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매형과의 갈등을 다루는 전체 플롯이 동일한
원작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다. 그래서 한국의 시선으로 보면 좀 이상할 수 있지만
한국사람을 러시아사람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크게 문제 없다는 정도인데
(인물이 한국사람으로 바꼈기때문에 보는것은 훨씬 편함)

이번 반야아재는 기본적으로 배경도 이상하고 노동의 가치와 가식적인 인텔리들의 무기력함과 오만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노동의 순결함과 고귀함 같은 것으로 연극이 마무리 되며
조카(서은희)가 몇마디 한다고 그것이 모두 표현되는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짬짬히 나타나야 하는데 역시 전혀 없다.
반야가 힘들어하고 싫어했지만 계속해서 해왔고 해오고 있는 노동의 가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도데체 일제강점기 배경은 뭐지? 각색한 다른 유사 작품들을 최대한 피해가고 싶었나?
(처음 시작할때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에 일본어가 나오길래 내가 생각한 바냐가 아닌줄 알고 순간 놀랐음)
정미소(쌀 도정하는곳)도 좀 설정이 이상하다. 그냥 농사 짓는 설정이 별로였던가?

현대물로 바꾼것도 아니고 원작도 아니고 치정멜로에만 중점을 둔거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연극의 내용은 별로였고 어울리진 않았지만 무대 연출은 멋지고 훌륭했다.
(이부분이 참 아이러니 함. 왜 이렇게 무대에 공을 드렸을까)

돈많은 기획자가 비싼 무대와 장치 그리고 비싼 배우들을 써서 화려하게 만들어 팔아먹기 위해 만든 연극같았다고 하면 심한 표현이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체홉연극을 치정멜로로 만든극으로 느껴지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관객이 많을까? 앞으로 남은 공연 모두가 매진이라니
소극장 연극들은 텅텅 비어있던데 이쪽 세계도 꽤나 빈부격차가 살벌하다.

어차피 세금으로 국립극단을 운영하고 이렇게 좋은 극장에서 공연도 하게 해줄거라면
일반 사설 극단도 정동세실극장처럼 해오름, 달오름, 하늘극장에서 연극 페스티발 형식으로 좀 해주면 안되나?
관객은 저렴하게 관람할수 있도록 하고.
판소리 3~6시간씩 하는 엄청난 공연도 단돈 2만원에 볼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이상하게 연극은 비싸다. 왜일까.

출연 : 손숙, 남명렬, 임강희, 심은경, 조성하, 김승대, 기주봉, 정경순, 심완준, 민재완, 김신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미진 춘향가(김세종제)-

 

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2026년 5월 8일 금요일

국악 -세실풍류_득무(得舞)의 순간-

 그나마 평일에 회사에서 퇴근후에 가기 편한곳일까?
버스 한번타고 좀 걸으면 정동세실극장이 나온다.

오늘 공연은 총 6명의 명인들께서 한 10분정도씩 각각의 춤을 선사한다.
이승주의 '청연(淸緣)', 이창순의 '송정(松停)', 이정애의 '흥춤'
장인숙의 '무화(舞畵)', 이동숙의 '부채입춤', 허창열의 '고성오광대 덧배기춤'

이러한 공연중 내가 꼭 찝어 이것은 최고다 이것은 어렵다, 난해하다 등을 논할수 있는것은 없다.
익숙한것은 덧배기춤으로 좀 많이 본듯한(탈이 없는 탈춤버전같다고 할까?) 기분만.

저들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매혹적이긴 한데 이 춤들은 어디서 행했던 공연예술이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술마시는 기방에서 공연 하기엔 넓은 공간에 미치지 못할거 같고
조선시대 백성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하기엔 분위기나 형태가 맞지 않아보인다.
옛날 기인들은 어디서 이런 공연예술을 했던걸까. (궁중의 군무는 이것과는 많이 다름)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무대란것이 생겨나고 그 환경에 맞게 완전히 바뀐,
형태만 차용할뿐 옛것의 원조와는 거리가 먼 그런 장르로 봐야 하는건가?

개인적으로 여성의 춤사위 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남자가 거의 없는것은
춤은 원래가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분야인지도 궁금해진다.
(국립무용단 같은곳의 공연을 보면 남자들의 춤도 있고 여자들의 춤도 있지만
이런 독자적인 무대를 위한 춤엔 남자들이 것이 원래가 적은건지 판소리마냥 줄어든건지)

총 나흘동안 한 주에 2회씩 수,금을 하는데 모두 출연자가 다르기때문에
4시간 공연을 며칠의 인터미션을 두고 한다고 보면 되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1회공연을 두시간으로 하고 반복 2회(수,금 혹은 토,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관람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나흘동안 퇴근 후 시간을 뺀다는건 쉽지 않다.
이런 명인들의 춤을 언제 또 볼지도 알수 없는데 나흘동안 공연시간을 찢어놓고 그것도 평일에만 하니
나는 그 중 하루만을 선택할수밖에 없어서 찝찝함이 훨씬 더 크다.
(나머지 공연들은 어땠을까? 이분도 멋지고 저분도 멋져보이는데. 등)
공연 기획을 할땐 이렇게 만석이 될줄 몰랐겠지만 관람객 입장에서 기획해줬으면 좋겠다.
토요일은 극꼴집회때문에 공연은 하기 어렵더라도(토요일 저녁에라도 하지. 이땐 조용한데)

평일 저녁 힘들게 와서 한시간 남짓 보고 돌아가면 공연을 보는 시간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불쌍사가 벌어지는데 이러면 감동도 버스안에서 피곤과 함께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시간 배정, 횟수, 주된 관객 등을 고려한 공연을 기획해주고 가급적 1회로 끝내지 말거나
아예 정기공연으로 분기마다 해주던가.(국립국악원에서 하는 '토요명품'같은 매주는 어렵겠지만 시즌별로라도)

국내 국악공연들이 특히 좀 두드러지는 경향은 자신들만의 잔치가 된다는것
어떤 노인은 추임세를 고래고래 소리친다. 다른 관객도 생각해서 적당한 톤으로 해야지
자기가 그 분야에 몸담고 있을테니 저러는건 이해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대다수는 추임세가 어색하다.
기껏해야 리듬에 맞게 치는 박수정도인데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서 좀 어울리는 추임세를 넣어도 되는게 아닌가?
분위기 조절 못하고 질러대듯 해대는 동종 종사자들의 추임세는 때때론 꽤나 거슬린다.
이러한 것들이 반복될수록 그들만의 모임 공연밖엔 되지 않으니 스스로들 알아서 적당한 선을 지켜주길.
(허창열 무인의 덧배기춤을 출땐 이분은 추임세를 어느때 넣으라고 잘 알려준다. 이건 흥을 올리기 위한 장치기도 하니
적당한 시기에 그에 맞는 추임세를 알려주고 관객은 그를 따라서 추임세를 넣으면 공연이 더 즐거워 지니 서로 좋은게 아닌가.
혼자만 툭! 튀어나와 추임세를 넣지 말고. 꼭 넣어야 겠다면 좀 작은 소리로.)

춤이란게 몸으로 어떠한 것을 표현하는것이니 잘 모르는 입장에선 느껴지는 추상적이며 형의상학적인
감정상태를 글자로 표현한다는건 쉽지 않아서 주변 소리만 했지만
공연은 눈물 날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다들 어느정도 연세가 있어보이는 분들인데
몸을 쓰는 예술분야라서 기력이 중요함에도 그 어떤 제약도 느껴지지 않는것또한 신기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것 중에는 말도 있고 몸짓, 의상, 냄새, 생김세 등 많은것들이 사람을 판단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춤이란게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수단중엔 가장 으뜸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냐면 저들은 자신이 정해진 절차대로 표현하고자 하는것을 표현하는데
저들의 일생이 저 춤과 같은 고혹적이며 기품있는 인격을 지녔을거란 착각(?)마져 들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머지 이틀 남은 공연은 모두 매진이라 보고 싶어도 못본다.
개똥같다.

출연 : 이창순, 이동숙, 이승주, 이정애, 장인숙, 허창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2일 토요일

국악 -광대(소춘대유희)-

 

소춘대유희가 무엇일까? 고작 100년 된 공연인데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나온다.
도데체 기록의 역사는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 이 시기는 강점기 시절도 아닌데.
현한국에서도 엿같은 정부가 들어서면 자료를 모두 파기 하는데 이때도 조선 말기라
부패한 놈들이 사료를 남김없이 불태웠던걸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당시 기사 기록으로 보면 판소리, 잡가, 탈춤, 무동놀이, 남사당의 땅재주, 쌍줄타기, 기생의 춤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도 이정도 레퍼토리는 구성되어 있는거 같다. 주로 춤이긴 한데 판소리 등 잡가도 제법 나온다.
그러고 보면 민요는 없었던거 같은데. 민중을 대상으로 12월 밤마다 했다고 하는데 민요는 있어야 할텐데.

전체적인 플롯은 타임슬립(Time slip) 구조로 예전에 국립국안원에서 했던 이습회의 구조와 무척 비슷하다.
다만 이습회같은 경우는 좁은 무대와 상대적으로 궁중음악을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공연하게 된것인데
내용이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 약간은 고리타분하다고 할까? 고급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 마저도 아이가 앞에서 알짱되는 바람에 관람은 망쳤지만 아무튼 거의 대동소이하나 구성은 완전히 다르다.
소춘대유희란 뜻이 봄에 펼치는 즐거운 잔치 정도라는데. 막상 12월 밤에 했다고 하니(입춘때도 아니고 동지때)

현대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부분은 별 의미 없고, 그 시절의 실제 소춘대유희를 재현한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만
현대에 맞게 화려하며 웅장하며 아름답게 그리고 신명나도록 새로 구성되었을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공연을 좀 보다면 비슷한 흐름의 구성이란게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분위기를 띄우고 최고조에 올라섰을때
과감하게 마무리 하며 여운이 가슴팍에 팍! 꼿히도록. 같은 플롯이라고 구성이 달라서 감동이 다를수 밖에 없는데
오늘은 짧으면서도 강렬하고 많은것들이 오갔지만 막상 뭔지 말하라고 한다면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정도말곤
대답할 수 있는게 없을만큼 저들의 춤과 연주가 내게는 어려운 암기과목일뿐이다.
그렇다고 외우려고 애쓸필요는 없다. 주된 리듬, 춤사위나 안무는 우리가 그동안 평생 알게모르게
봐오던것들이라서 리듬에 맞춰서 몸을 맏기면 그뿐이다. 한문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구성 자체가 실내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민속음악들이니 감정선이 어렵지 않다.
(이런 공연을 궁중에서 했을거 같지는 않다. 도입부 쯤에 선비들의 춤 몇자락과 아이의 소리를 빼면)

오방신의 공연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주로 이들이 가장 중추적으로 힘을 주지만
나는 이들보다는 백년광대들의 춤들이 개인적으로 훨씬 좋았다.
아름다운 선을 항상 유지하면서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묘한 현대무용이 컬레버레이션 된듯한
극도로 절제된것보다는 과감하게 모든것을 뿌려버리는 숨막히는 춤들은 모든 신경이 저들을 위해
존재하는듯 빨려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여성들의 춤선을 좋아하기때문일수도 있지만
세상 모든 미의 기준은 인구수만큼이나 개개인의 취향을 따라는것이니

시작부터 밝은 톤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그 색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춘대유희? 과거 사진 몇점을 뿌리는건 좀 지루함이 있었지만
(막상 당시대에 대한 자료도 없는데 몇점 남은 사진은 이질감만 커지지 않나? 그냥 봐도 너무 다른 상황같이 보이던데)
아무튼 80분이란 길지 않은 시간 숨가쁘게 달려간다.
생각해보면 국내 이런 레퍼토리가 몇개 있다. 묵향, 향연, 단, 만신, 축제 등 몇몇가진데.
아마도 이중에 가장 민중에 가깝게 들어와있는것이 소춘대유희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1902년대 말고 2020년 지금)

이런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조선시대에 이러한 음악,음향,안무,설비등이 있을리 없기때문에 느낌도 많이 다를수밖에)
이런 공연문화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길 바라긴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1인당 6만원이라면 할인에 해당되지 않을경우 제법 부담이 된다.
수십만원이나 하는 공연도 허다한 세상이긴 한데 한국에서 정부보조를 받으며 제작하고 공연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세금으로 제작과 공연하는 것이 아닌가? 사설 기관 주최로 하는 곳에서 비싸게 받던지 하고
가급적 이런 공연은 좀 현실적인 금액으로 낮춰줬으면 좋겠다. 내 욕심일수 있지만 세금은 이렇게 무너지는 그러나 지켜야 되는
전통예술에 쓰고 관객인 민중은 저렴하게 그것을 관람하므로 체화시켜 국가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비싸게 운영을 해서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있을런지.
(4인 가족이 공연보고 밥 먹고 디저트 조금 먹는 일정으로 하루 가족 나들이를 한다고 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나간다.
한달에 단 한번, 분기별 단 한번이면 큰 문제 없지만 문화라는 것이 몸에 베기 위해선 장시간 오랜 반복이 필요하기때문에
1회성으로만 기획하는것은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는 맞지 않다. 그냥 사라지라고 기도하는 것일뿐)

그리고 자신의 귀가 좀 큰 소리에 예민하다고 생각되면, 아이와 동반한 부모라면
가급적 뒷자리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국악기들 중 꽹과리, 징, 북을 코앞에서 치면 그 소리가 어마하게 크다.
내가 앞에서 3번째 줄 자리에 앉았는데 귀가 아플정도였고 나중에는 모든소리가 섞이면서 노이즈처럼 느껴지는 구간도
일부분 있었다. 이것은 커가는 아이들의 청각에 안좋을거 같을정도로 소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연주를 조용히 하란 말이 결코 아님)
맨 앞자리는 가급적 가지 말고 둘째, 세째줄도 왠만하면 앉지 않길 권한다.
중간쯤 되는 10번째 자리는 넘어서야 좀 편히 들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소리에 예만하거나 아이가 있으면
꼭 고민해보길 권한다.

그런데 1902년 조선에서는 왜 12월 저녁부터 자정까지 공연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봄, 여름, 가을 보다는 겨울, 한적하면서 쓸쓸한 한밤 중 후끈한 열기와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귀가 하도록 한 배려가 아닐까. 술 한잔 하면 더 좋고. 아무튼 겨울에도 이 공연을 볼 수 있길 바란다.

할인에 해당되는 분들은 꼭 봐보길 권함
대부분 군무에 음량이 좀 크고 대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공연이니 중간 이후 뒷자리가 좋음
(앞자리는 가급적 피하는게 귀건강에 좋을수 있음)

출연 : 정동극장예술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판소리 -절창VI(심청가)-

 

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연극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

 

명동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것은 언제봐도 참 낯선느낌이다.
번화가 한복판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벚나무같다고 할까?

시설은 대단히 좋지만 극장이 한개밖에 없다는것은 조금 섭섭하다.
이 좋은 위치에 이렇게 좋은 시설 하지만 대형 극장 한개만 있다니 소극장도 두어개 더 있었으면.

내용이 무척 무거운거에 맞게 전개 또한 엄청 암울하게 진행된다.
자식이 왜 범인이 되었는지는 솔직히 그렇게 중요하진 않게 다루는데
범죄라는 소재보다 그로 인한 부모의 심리적 변화를 깊으면서 넓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주변인물들의 고충 또한 함께 곁들여진다.

각종 언론의 만행 이런것도 이 극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머니 브렌다의 심리를 자극하는 트리거 역활정도만 할뿐이다. 그래서 다섯명이 출연하지만
막상 기억나는것은 브렌다의 감정 변화와 한숨소리, 절규만이 남는 모노드라였다.

예전 어떤 1인극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설정처럼 보여서 그다지였는데
이 연극은 다인극임에도 단 한사람만이 기억에 남도록 구성된 전형적인 주인공 한명과 엑스트라 구조를 지닌다.

변호사, 아들들, 여친, 남편, 가정부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처럼
시간이 갈수록 단 한사람만이 떠오르도록 집요하게 한사람(브렌다)에게서 시선을 끊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연극의 주인공인 브렌다의 호흡에 맞춰 분노와 짜증과 울분이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인물로 동화된다.
배경이 무겁고 전개가 다크하고 끈적이고 밀도가 높아서 보면서도 지치는 경향이 있는데
지치지 않도록 약간씩의 장치들이 호흡을 다시 가다듬게 만들어 130분의 제법 긴 연극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의 몰입력을 선보여 대단히 흡족하며 끝의 찝찝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도록 약간은 밝은 톤으로 마무리 되어
극장을 나올때도 그렇게만은 무겁진 않았다.

한 가정에서 이와같은 일이 생겼을때 돕고자 하는이와 이용하려고만 하던 이가 양분되어 나타나는데
모든 상황에서 불편하고 귀찮게 다가올때가 있는데 이런부분이 조금은 이상적으로 참고 기다려주는건
좀 이상향에 가깝다고 할런지. 보기드믈 경우긴 하지만(주변에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는건 그만큼 대인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지킬때 가능한것이 아닌가싶기때문에 조금은 소설속 환상 같음)
극적 효과로서 본다면 어느정도는 용인되어 넘길수 있는 대목이다.

내용상 좀 아쉬운건 아들 매튜가 어째서 그런일을 저질렀는지. 이 가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과 어느정도 연관성있는 설정인지 그런것까지 느낄수 없었다.
그냥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지만 배경은 한 가정같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다정다감하다는 설정은 조금은 앞뒤가 맞아보이진 않는 어색함이 좀 있다.

급발진하는 매튜의 여자친구의 정신병적 발작은 심박이 올라가면서 순간 공포감마져 느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설명이 부족해서 충격이었지만 충격으로만 남는게 아쉬웠다고 해야 할지.
(일종의 화약 터질때 놀라는 감정같이 놀람만 존재하고 넘어간다고 할까?)

제일 궁금했던건 역시 매튜다. 뭘까? 원작도 이렇게 매튜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했나?
어떤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내면에 따라 브렌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수도 있을텐데
그것을 방지하기위해 정제한것인지 원작을 보지 못해서 구체적으론 말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이 가정의 배경지식없이 한 사건으로 인한 어머니(브렌다)의 상황전개와 터져나오는 심리상태에
가끔은 물음표가 좀 생길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불필요할정도로 늘어지는 곳이 있는데
긴장감으로 피로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호흡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내 몸도 순간 맥을 놓아서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졸정도는 아님)으로 '이대로 진행되면 졸겠다' 싶은 곳이 두어곳이 있다는게
섭섭하다면 좀 섭섭했지만 이런 기분은 하루 이틀 지나면 말끔히 사라지고
다음에 하면 또 보고 싶다는 기분만이 남을거 같은 뛰어남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빈 무대를 보며 든 생각인데 오늘은 이렇게 멋진 무대위해서 연기를 하는 저 배우들과
어제 본 훌륭한 연극에서 무대가 좀 더 좋았더라면 이라는 기분과,
어제와 오늘간의 차이는 자본 말곤 없는것인가?란 예술세계에 대한 씁쓸한 맞을 남긴 시간도 함께 지나갔다.

하필 유대인들의 만행이 전쟁속에서 나타고 있는 싯점이라 뭔가 시기도 좀 묘하게 겹치지만
기회 되시면 꼭 보시길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 쌘 느낌이 있어서 지칠수도.

출연 : 진서연, 정환, 홍선우, 김서아, 최호재, 최자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12일 일요일

연극 -키리에(Kyrie)-

 

키리에가 무슨 뜻인가 싶어 찾아보면 주님? 신?정도로 보면 되는거 같다.

신의 뜻대로 하라는 의민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론적 이야기인지 뭔지 모르겠다.
다운받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퀴어 러브스토리라고 하는데 이런건 그냥 말장난 같고
(성주신하고 사람하고 사랑하는데 귀신이 전에 여자 사람이었다고 퀴어면 처녀귀신를 사랑하는 여자면 퀴어인가?)

여기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이다.
딱 한사람 집귀신만이 과로사로 자신도 모르게 죽었는데 집에 애정이 강했던지 집에 달라붙어버렸다.
퀴어라고 하지 말고 그냥 판타지라고 해야 하는게 맞아보인다.
물론 배경만 그런거고 전체적인 흐름은 드라마다.

표현이나 구성이 제법 신선하고 새로워서 웃음을 자아낸다.(장르가 코미디는 아니니 그냥 약간의 웃음정도)
집 귀신에 국한된것으로 등장 인물들중 가장 한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이 없는데 왜 귀신이 된거지?)

어떤 예술가가 이 집을 사서 들어와 여행객들에게 게스트하우스 마냥 임대업을 하게 되는데
검은 숲이란 것이 있기때문인지 인생 끝을 위해 오는 사람들만 있다.
(극중 독일의 검은숲은 슈바르츠발트를 뜻하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의 옛날 이야기로 마녀와 유령들이 살고 있다고 함)

집중이 되면서 집중이 안되는것은 왜였을까?
한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플롯때문인가? 집귀신은 모든것에 참견을 한다. 참견이라기보다는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종의 나레이션을 하는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보니 말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사람 한명이 등장할때마다 그들만의 줄거리가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회를 등졌다는것
사회가 이들을 등진게 아니라 이들이 사회를 등졌다는것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을
말하는것이 아니기때문에 저들의 저 행동은 약간 색안경끼고 보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수도 있다.

괴로워하고 고뇌하고 아파한다는것은 보통 타력에 의해 어쩔수 없게된 처지를 비관하는걸텐데
집귀신은 과로사했고, 관수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목련과 분재는 또 무엇인가.
무용수 부부 엠마만이 어찌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엠마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건지 모르겠다. 남편은 근육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거 같은데 루게릭병일수 있을것이다.

도데체 이들은 왜? 

집귀신은 왜 엠마를 위해 자신을 부셔서 구했어야 하는거지?
서로 어떤 작용을 한것도 없다. 엠마가 집귀신이 있다는것을 아는것도 아니고 집을 끔찍히 아끼는것도 아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거면 차라리 자신을 희생하고 병을 낫게 해주던가.
목맨 사람을 구했다고 해도 엠마의 병은 그대로이다. 이게 뭐지?

집귀신의 표현들은 제법 참신하고 관객인 내게 좋은 감각을 제공하지만
내용은 뭐가 뭔지 무엇을 주고 싶은건지. 집이란 존재와 저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건지
내게 와닿는것이 그렇게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뛰어난 연기와 신선함만으로는 중간 중간 찾아오는 졸음을 방어하기엔 개연성들이 너무 부족했다.
대사량도 많은 연극이지만 이거다싶은 대목도 그다지.

정동세실극장의 무대장치도 너무 비약하던데 이렇게 계속 검은 큐브에서 배우들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태로 운영할건가?
요즘 LED WALL로 무대장치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런거라도 도입을 좀 해보면 안되는건지.
(이번에 코미디언 서승만씨가 정동극장 대표직을 맡았던데 이런 시설 개선을 요청하면 안되려나)

출연 : 최희진, 유은숙, 백성철, 조어진, 윤경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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