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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7일 토요일

창극 -효명-

 

요즘 점점 공연비가 오르는 느낌이 든다.
나라가 좀 부유해져서일까? 물가가 상승해서일까?
소극장공연은 액면가 3만원에서 4만원으로 오르고
이런 국공립은 기본이 5만원이상(R석류)
그런데 너무 아쉽게도 나는 몇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왜? 회사가 오늘 내일 하니
요즘 급여가 밀리는 회사들이 엄청 급증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딴세상 이야기인가? 나는 딴세상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왠만하면 국가 세금으로 유지하는 곳은 가격을 좀 저렴했으면 한다.
가뜩이나 메이저 배우들이 인지도 앞세워 가격을 쳐올리고 있는데 국공립마저 이러면 어쩌냐.
그리고 가급적 비싼 사설 공연을 국공립극장에선 받지 마라. 세금으로 지어지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극장을
비싼 공연들을 올리면 물론 운영비를 벌수 있겠지만 벌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가격때문에 관람을 못하면 안되는거 아니냐?
사설 극장들 널려있으니 비싸게 받겠다는 사설공연은 그런곳에서 하도록 유도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전국 국공립극단의 순회공연, 공연 패스티벌 같은것으로 다양화 시키면 되지 않겠나.

제목이 그러하듯 효명세자 이야기다.
타살설이 있으나 일단 이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반대세력들의 주장이란게 일단은 정설이다.
적어도 타임머신이나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전까지는 타살은 없다.
공연 내용처럼 자객이 있었던것도 아니다. 그러니 일부는 맞지만 효명세자를 넣은 맬로물로 보는게 되는데
일반 TV 드라마 내용을 창극으로 각색했다고 보면 되는 정도다.

국립극장 해오름의 대극장 규모는 됬지만 그렇다고 무대가 웅장하다거나 창이 심금을 울린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었다.
딱 두곳이 있는데 어떤 기녀가 한탄하듯 부를때 순간 울컥? 그리고 살수(묘묘) 여자가 부르는 장면에서 약간 몽글몽글 정도
그 외에는 많은면에서 TV사극 드라마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가장 큰 문제는 창극이니 창작 소리가 많이 나오는데 그다지 감동을 받기 어려웠다.
무슨 내용인지도 좀 어려웠지만 흐름이 뭔가 좀 난잡하다고 해야 하나?

비주얼적으로도 암살하는 장면에서도 전혀 긴장감이나 긴박함 또는 화려한 액션 따위는 없다.
주인공 살수(묘묘)와 효명이 칼무를 추는데도 전혀 멋짐이라곤 눈꼽만치도 없었고. 군무도 그다지.

분명히 급조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느낌또한 없었다.
일단 효명세자에 대해 잘 모른다. 조선조말기 고종의 명목상 아버지(효명세자의 친아들은 자식 없이 죽음)정도
예전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나왔을지 모르겠다. 이때 흥성대원군이 젊었을때 모습도 나오던게 기억나니
효명세자가 나왔을수도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명성황후를 있는대로 미화시킨 개똥드라마였으니 기억할필요도 없다.

150분(쉬는시간 15분포함)가량 되는 적지 않은 공연이니 내용의 질이 좀 중요한데
너무 뒷자리에 앉아서 배우들의 표정이나 소리들이 잘 안와서 감동마져 사라진걸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졸음이 밀려왔다가 잠깐 집중되다가.

한국에서 효명세자에 대해 애정을 갖는 사람이 있던가? 차라리 명성황후같이 드라마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정도가 있겠지.
조선조에서 태조(이성계는 드라마때문인지 책때문인지),세종,세조(영화때문?),태종(이방원),선조(이순신 괴롭힌놈) 뭐 이정도 아닌가?

이마저도 대부분 조선의 왕들은 소설책(논픽션이란게 핵심) 아니면 드라마 또는 영화 같은 매체때문에 유명세를 타는거지
이미 수백년 지난 왕조의 일원을 좋아할 필요가 있나싶다. 세종같은 경우 굴직한 업적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은 허구속 인물같은 소설 매체에서 익히는 가짜 인물일 확률이 크다.
심지어 세종은 어진(그림)도 없어서 친일매국노(김기창)놈이 지 얼굴을 처그려놓은걸 표준영정으로 삼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효명세자라니. 참 아이러니 하다.
예약을 중시했다고 해서였을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작은 무엇이라도 발견하면 우주끝까지 부풀리는건 하여튼.

이 공연을 보면서 정말 불연듯 떠오른 이상한 기분이 있다.
국립창극단에서 직접 제작한 이런 창작극엔 현대의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극이 단 한편도 없다.
근현대사에서 조선을 뺀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있냐는 것인데 없다.

판소리 다섯바탕은 당연히 내려오는것을 개승발전시키는거니 레퍼토리에 있는건 당연해보인다.
그런데 패왕별희?, 리어?, 토선생..?, 나무물고기탈?, 로미오와줄리엣?, 토로이의연인들?
뭐지? 정작 대한민국에 대한 따끈따끈하고 후끈하며 절망스러웠던 수많은 사건을 다룬 극은 한편도 없다.
예술가 집단 아닌가? 불의에 저항하는 세력이 예술가들 아니었나?
쪼다같이 정권 눈치만 쳐보고 있었던 집단이었나?
곰곰히 과거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곱씹어보면 대부분은 돈의 노예들이긴 했지.
예술가들은 돈 버는 기술과는 거리가 있어서 비굴하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아사하기 딱 좋은 직업군이니 납득은 된다.
그런데 어떤 또라이가 예술은 저항정신이라 했을까?
저항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으니 부러워서 지어낸것거 같다.
정말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얘들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데 정작 우리들의 현대사를 다뤘다간 쪽박 찰까봐 두려웠겠지.

가격이나 좀 내리자. 품질은 충분히 비싼 공연이지만 국공립극단이니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리고 현정부에서는 현대사를 다룬 창극이 나와도 예산을 줄이거나 하지 않을테니 이때 왕창 쏟아내라.
그 중 한두개가 한 백년 이어지면 그걸로 저항한거라 인정해주지 않겠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런 이상한 내용이나 만들어대지 말고.

출연 : 국립창극단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판소리 -절창VI(심청가)-

 

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창극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

 

사람들이 계유정난에 대해 다들 잘 알고 있나?
난 영화같은것에서나 보고 과거 역사시간의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500여년 전일이니 글자 몇개 시험때문에 본건과 극히 일부의 내용을 과장한 영화 정도
이게 내가 아는 전부일것이다. 아니 그 마져도 다 잊고 지금은 배우 이정재(수양) 정도만이 생각날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의 만석이 다름 없을정도로 사람들이 많다니
내가 얼마나 무지한 상태로 이 연극을 접하게 되었냐면 보허자란 뜻이 허공을 걷는자라길래
무협연극인줄 알았다. -.-;; 일종의 신선을 말하고 궁중에서 왕이 이렇게 무병장수하라는의미의 정악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그런 무지속에서 극을 보는데 처음 시작부터 웅장한 무대와 음악 그리고 노래(창)가 나온다.
비주얼적으로 엄청 신경쓴거 같은 장엄함이 돋보인다. 이건 끝까지 지속된다.
무대 장치는 그렇게 별볼인 없지만 조명과 음악, 음향이 매우 훌륭했다.

110분 연극인데 110분동안 절규 절규 절규 회한 절규 절규 회한 절규 절규 끝까지 절규 절규로 끝난다.
유명한 극들중 이런게 꼭 없다곤 할 수 없다. 특히 오페라중엔 이런게 종종 있지만
이렇게 그 어떤 고저도 없이 끝까지 바닥에서 올라올줄 모르는 극은 처음인거 같다.
배경이 모두 죽어나고 있는 계유정난 후 수십년이 지났지만 서로들 한만을 가슴에 담고 있었으니
그 골이 오죽 깊었겠냐만은 극이라는게 산꼭떼기는 안되더라도 언덕정도라도 잠시 올랐가나 내려오고
그러면서 감정도 추스리고 상황도 엿보면서 다음 씬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하고 그러는데
그냥 계속 바닥이다. 판소리중에도 이런건 없고 다른 창극들도 이런건 없는데 이걸 이렇게 기획한 의도가 무엇일까.

27년이나 지났다면서 이들에겐 이 시간동안 약간의 마음이 여유도 찾을수 없는 세월이었단 말인가.

다시 봐야 좀더 알 수 있을지 정확하진 않다. 무엇이 정사고 무엇이 야사나 허구인지
이것때문에 공부를 해야 할정도 감동은 전혀 없었다.
그냥 비주얼 적으로 멋있게 꾸며진 통곡의 110분이었다.

단테의 신곡을 얼마전전 읽었는데 '지옥편'을 이런 느낌으로 그려내면 더 와닿을 것 같다.

노래한 대목이 끝나서 누가 봐도 '지금을 박수 칠 때야~'라는 쉼이 있는데 그 어떤 사람도
단 한번의 박수 치는이 없는 이 이상한 작품을 사람들이 만석에 가깝게 보는걸까?
천만관객영화 '왕과 사는 남자' 때문인가? 작년에도 이렇게 관객이 많았다고 하던데

연극이 단순히 멋만 잔뜩 있다고 해서 감동을 주는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예의 창극이었다.
(명색이 창작극이면 전라도 말투만 고집하지 말고 전국 말투 골고루 넣어주길.
창작극인데 아직도 자막없으면 발음을 못알아듣는 부분이 생긴다는건 이젠 발성도 좀 옛것만 고집할때는 아닌듯)

출연 : 국립창극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