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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1일 일요일

연극 -마산시절-

 

극장 앞에 서면 조희연 전 교육감이 부마항쟁에 대해 언급하지만
연극 자체는 전혀 그와는 무관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거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516쿠데타, 1212쿠데타를 통해서 긴 시간 군부정권의 강압통치를 받았기때문에
어묵한 시절이 아닐수 없다. 공권력의 물리력이 최고점인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이 시대 마산의 한 가정을 이야기긴데
내용 자체를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자식이 여섯이나 되니
집안이 항상 어수선 하다. 첫째는 결혼 해서 자식이 둘인데 내려왔고, 대학생, 직장인 둘, 백수, 학생

장르가 코미디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배경이나 상황과는 다르게 밝을 톤을 어느정도 유지해서
심정적 어려움이 없이 흘릴수 있다. 좀 특이한것은 갑자기 부산을 왜 내려가려는 것일까?
부산이 마산보다 더 번창해서? 아니면 첫째의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나서?
마산에서 평생 몇대가 살아왔는데 좀 생뚱 맞다고 해야 하나?
첫째딸이야 전업주부에 남편이 부산으로 회사 발령났다고 하면 뭐 가는게 이상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 동안 일해왔던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전화국에서 일하던 둘째는 전근 가능하다곤 함)

연극에서 잠시 이야기 하는데 아버지의 과거 행각때문인가? 그건 이미 한참 지난 후인듯 싶고
(실제 역사적으로 1960년에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지만 19년전 일인데)

내용 흐름에 개연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 희곡을 쓸때 이런 부분을 잘라버린게 아닌가 싶은데
90분 남짓 되는 걸 한 120분정도로 늘리고 이런 과거를 좀더 설명하면
의아한 부분들이 해소될거 같은데 이런 부분이 아쉽다.

연극속 배경의 시간의 흐름은 실제로 며칠 안된다. 엔딩부분(다섯째가 서울 올라가는 부분)을 제외하면
한 이틀 정도 되려나? 거의 하루의 이야기다.
첫째가 마산으로 내려오고 다음날인가? 남편이 오고 대학생 처남을 구해온 후
바로 서울 어딘가로 끌려가니 말이다.

이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진거 같지만 부연 설명등이 부족해서 저들이 웃기면 좀 웃고
소리지르면 숨죽일뿐 내가 마산 사람이 아니니 당시 상황을 되뇌일수도 없어서 공감대가 좀 떠있던거 같다.

그래도 워낙 많은 배우들이 나와서 지루하지 않고 왁자지껄 산만하고 복잡하고
때론 집중하고 몰입하도록 설정도 잘 되있어서 잘 만들어진 드라마 한편 본 느낌이다.

엄밀히 보면 어묵한 시절하곤 크게 관계 없기때문에..(당시의 항쟁으로 피박받는 좀 강한 연극들이 많이 있으나 이건 전혀 아님)
편하게 보면 되는 그런 연극. 극장을 나올때도 크게 남는거 없고
마지막엔 사건들이 해결된건지 아닌건지도 모르게 웃으면서 끝나고 크게 궁금함도 남지 않는다.
부산으로 왜 간건지 정도와 죽음을 당한 저 여인의 사정은 무엇인지.(집회하다가 끌려가 죽었다는것 정도?)

연말 연시에 보기 좋은 따뜻한 느낌까지는 아닌듯 하지만(가슴 뜨거워지는 연극하곤 거리가 좀 있음)
친구들끼리 여럿이 함께 관람하게 좋은 연극인거 같다.

출연 : 헌종식, 전서진, 송경아, 황혜진, 박채익, 최담, 이장훈, 조하연, 송경의, 권세진, 최단아, 배효미, 김병수, 조윤정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연극 -에릭 사티와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

 

연극이긴 한데 콘서트같기도 하다.
배우들은 콘서트 음악의 배경 설명을 하는 정도랄까?
현업피아니스트가 직접 연주를 10곡정도 하기때문에 '설명이 있는 에릭 사티 피아노곡 콘서트'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다.

에릭사티를 내가 아는바 없고 오늘 들은곡 중 짐노페디 정도 알뿐(영화에 음악으로 나와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도 처음 알았다.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드뷔시나 라벨도 그렇게 아는건 아니지만 이들은 최소한 이름도 알고
들어보면 알법한 몇몇 곡들은 음반도 가지고 있을정도지만

사티가 뉴에이지의 창시자격이라고 하는데 이 장르 자체를 거의 듣지 않는 편이니..

물론 가구음악 요즘시대의 BGM(백그라운드뮤직)을 창시했다곤 하지만
이 사람의 역사를 좀 보면 파리음악원 교수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들은 별볼일 없던 사람이었고
캬바레에서 음악 연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니 자신이 연주하는 것들은 대부분 BGM 취급받았을것이다.
그러니 그전의 콘서트 홀에서 연주하고 음악을 집중해서 청취하는 것들이 얼마나 꼴보기 싫었겠나..

그것의 반작용으로 음악을 아무런 격식 없이 틀어놓는 예술로서는 격하 시켜버리고자 했던것이
지금에 와서는 선구자, 창시자 뭐 그런식으로 불리우게 된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없었다면 BGM이 생겨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술은 환경에 맞춰서(필요에 의해) 생겨나기 마련이니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만들었을거란 생각이다.
각종 쇼핑공간들이 생겨나는데 적막감을 해소하기 위해 종교음악을 틀어댈순 없는것 아닌가..
(지금도 이 사람 이전의 음악이 BGM으로 많이 흘러나오고 적절한 음악들이 즐비함)

단지 1900년이전에는 전자기기가 없었기때문에 반드시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들었어야 했던 시기라서 그랬을뿐이고
고위층들은 실내악을 백그라운드로 깔아놓고 자신들의 파티를 하고 그러지 않았나.

아무튼 별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조금은 과장되게 해석하는 경향으로 한 음악가를 소개한다는것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이 사람의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기때문에 그럴수도 있다.

각 단원마다 나오는 피아노 연주. 그런데 모르는 사람의 음악이다보니
그 설명이라도 좀 해주면 좀더 이해하기 좋을거 같긴 한데. 에릭 사티의 생각, 상황, 진행과정
결과물에 대한 평가 등 평전을 드라마처럼 꾸며도 재미있을거 같지만
음악 따로, 진행 따로 같은 느낌이 들어서 피아노 콘서트에 온 기분으로 듣긴 했는데
(음악은 각각의 상황에 맞춰 설정했겠지만 피아노 연주만을 듣고 상황을 이해할만큼의 내공이 있는건 아니라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섭섭하고 막연함이 있다.

잘 알려진 피아노곡은 집중해서 들으면 쫘~악 빨려드는데 이런 맛도 없고.. 역시 사티의 음악이 내겐 잘 안맞는것일수 있다.

스탠드업 피아노 두대를 붙여놓고 밟고 올라서고 앉고 눕기도 하는. 천정에는 우산들이 막 걸려있고(조명용 우산인줄 알았음 -.-;;)
이게 사티의 집안 풍경이라고 한다. 죽은 후 집을 방문했을때 빈곤함이 많이 보였다고 하는데
무대에서는 그것을 느낄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의 집에 대려오지 않았다고 하는것만 보더라도
이 사람은 상류사회를 꿈꿔왔고 증오했던것이 아니었을까
한국도 그렇고 예술가들이 항상 우대받는것도 아니었던 시대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살아남으려면 치열한 경쟁을 뚤어야 하는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다르지 않은거 같다.

아무튼 음악도 극도 두마리 모두 나는 놓친 기분이다.

출연 : 전박찬, 차예준
연주자 : 피아니스크 황건영, 바이올리니스트 하유나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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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일 토요일

연극 -번호표-

 

입장 티켓을 은행같은곳에서 주는 진짜 번호표를 준다.
티켓보단 경품권이라 하는게 맞으려나
선물이 엄청 많은데 온갖 자잘한것들, 관객이 열명이 안되기때문에 대부분 다 받은거 같다.
나는 칸초 과자를 받았는데 인트로에 이렇게 경품 행사를 하는 이유가 코믹극인가 싶었다.
보통 관객의 기분을 약간 들뜨게 하고 난 후 코미디를 하면 훨씬 더 잘 웃기도 하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서스팬스 스릴러? 추리물? 뭐 아무튼 내용상 웃을일이 극히 없는 연극인데
초반에 이렇게 분위기를 띄운 이유는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우체국 내에서 한사람이 죽임을 당했지만 감시카메라도 없는 곳이었나보다.
게다가 사람도 없어서 일하는 사람 단 한명
그리고 내연녀, 아들, 아내, 아버지 뭐 대충 관계자들은 이렇게 여럿이 범행장소에 들락거린다.
하지만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는 모른다. 왜냐면 카메라도 없고 다들 부인하고 있으니까.
(이런 제한적인 공간, 외부엔 감시카메라 영상도 조금 있는데 못 찾는다?)

무대 장치가 제법 특이하게 설정되어 있다. 보통은 페인트 벽을 바꾸는 방식으로 배경을 변경하지만
이번 극에선 모기장 같은 벽에 배우가 들어가면 그곳에만 조명을 쏴서 나머지 모기장 벽은 그냥 투과되는
독특한 방식을 썼다. 그래서 무대 변경시간이란게 필요없었고 공연중에도 배경변화를 실시간으로 할 수 있었다.
특이하고 참신하긴 한데 문제는 그 모기장같은 가림막이 연극 집중을 방해하는 벽처럼 다가왔다는 것이다.
배우들에게 집중해야하는데 뿌연 모기장 벽때문에 다소 몽환적이기도 하고 상상같다고 해야 할지 기분도 답답했다.

그리고 일종의 범죄 스릴러 물같은 류지만 내용 전개가 좀 엉성한거 같기도 한데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것도 아니고 훌륭한 반전이 있는것도 아니라서
클리셰라고 해야 하나? 특이하게도 내용이 좀 그려지는듯한?
엄밀히 보면 나는 분명이 그런 결말을 예상하진 못했는대도 그렇게 특이하거나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이것은 연극이 범죄자와 경찰간의 긴장감이 유지되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시골 동내 아저씨들 마냥
가볍게 진행되기때문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 중간 중간 긴장감 있는 효과음향도
뭔가 모르게 꼭 알맞다곤 생각되지 않는 조금은 안맞는? 좀 가벼운 느낌? 뭐 아무튼 그렇다.

좀더 냉철하고 잔인하게 진행되고 무대를 좀더 큰 곳에서 가림막 없이 또렷하게 배우들을 직시할수 있는 곳이었다면
웬만하면 음악효과는 좀 빼는 것으로 하고..

성추행범도 좀더 차갑고 나쁜놈처럼 보이도록 강조해서 나머지 피해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납득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난대없은 인플로언서의 친구는 무엇이고 이런 개연성이 좀 부족한것도 좀 섭섭했다.

80분 연극이라서 크게 지루함을 느낄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봤다는 느낌에서 한두끗 차이가 난다는게 아쉬웠다.
뭔가 긴장감이 고조되야 되는데 왜 안되지? 싶은게..

물론 뒤에 가족들이 와서 웅성웅성 떠들어대는 통에 집중이 더 안되긴 했지만  
이렇다고 해도 관객이 열명도 안들만큼 이상한 연극은 아닌데 힘들더라도 가격은 좀 낮추는게

아무튼 아이들까지 함께 온 가족이 있다면 이들과는 최대한 떨어져서 관람하는게 좋을듯하다.
(이런 연극은 초등생은 받지 않는게 낫지 않나?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만 줄텐데)

출연 : 안재완, 박승훈, 서윤, 오규원, 안수호, 김인숙, 이혜민, 황재하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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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8일 일요일

연극 -태풍(The Tempest)-

 

이곳 의자가 이렇게 푹신했던가? 그런데 하필이면 한쪽이 죽은듯한 느낌의 푹신함이다.
로비에 있는 소파가 백만배는 더 좋아서 잠이 솔솔 왔지만 시간이 되어 잠을 더 잘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쉽지만 관객석에 앉아 잠을 깨고 있는데 기울어진 느낌의 쿠션이라니.

태풍이라고 하길래 태풍이 갖는 상징성 같이 몰아붙이는 무엇이 있는것인가 했다가
세익스피어 작품이라길래. 내가 이 사람 희곡은 거의다 봤는데 왜 기억이 안날까? 싶었다.

공연이 시작되는데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은것이 잘못이었을까?
실제 악기 연주자 둘이 나와 효과음을 내는데 북소리가 너무 커서 귀에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마이크같은거 다 설치했을텐데 사이드에서 하고 소리 크기는 스피커로 하면 안되는 거였을까.
아무튼 이런 충격음에 귀가 아픈 사람은 앞쪽 자리는 꼭 피하긴 권한다.(이미 끝나서 소용없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분명히 아는 내용인데.. 어디서 본걸까? 계속 궁금했다.
세익스피어 작품들을 본건 시간이 좀 됬으니 잊어서 기억이 안나는건지
영화로 봤던가? 연극인가? 아무튼 답답함과 내용때문에 크게 감동같은건 받기 어려웠다.

일단 세익스피어 작품 중 뭐랄까? 참 고민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특별히 고뇌하는것도 없고. '한여름밤의 꿈'같이 동화같은 내용이라고 해야 할지...
대문호의 작품이라지만 내겐 그다지였던 작품이었다.(책이나 연극 모두 별로)

뭔가 심오함이 들어있는 작품이었을까? 자의식 반영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당시 유럽인들을 비아냥거린다는
식의 해석도 있는데 막상 읽어보면 블랙코미디같은 기분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냥 말년에 쓴 가십거리정도의 작품으로밖엔..(중편정도의 다른것들에 비하면 비교적 내용도 짧음)

작품이란것이 작자 본인을 투영하는 면이 있기때문에 자의식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는것엔
별다른 이견이 있지는 않다만 아무튼 읽을때, 볼때의 느낌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연극 전체는 다소 코믹스럽게 구성되어져 있다. 요즘 신작이라고 생각하면 장르를 코미디로 봐도 될법하다.
인트로에서 모든 배우들이 나와 목을 풀고 연습을 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고 개방적으로 만들며 시작되는것을
보더라도 일단 관객의 장벽을 좀 허물어야 웃음도 나오는 법이니 그런거 같았다.
(코미디 장르에 관객들 긴장감을 풀기위해 많이 사용되는 방법임)

구성이 바뀐것은 크게 없더라도 멀티배우도 없는데 칼리반 같은경우는 모양을 좀 무섭거나 흉하게 해도 되는게 아니었나?
나머지는 모두 사람이고 마법을 써봐야 아이들용도 아닌데 특수효과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에 적절하게 사운드와 효과음 등으로 표현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공감이나 긴장감이 생기진 않는 그럭적럭인 연극

국립극단 배우분들의 연기력은 두말하면 입아프겠지만 왜 이런 뭔가 심심한 작품을 왜 선택했을까?
세익스피어의 막강한 희곡들이 널려있는데.
각색이라 하는지 알수 없지만 고전도 아니고 현대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재해석한것도 아니고
어중띤 느낌이 강했다. 아예 1600년대 느낌 물씬 풍기도록 제대로 고전으로 나가던가..
(이러면 비용이 올라가서 그렇게까진 안한것인가?)

좋은 배우, 좋은 무대, 좋은 시설 모든것이 완벽했는데 딱 한가지 작품이 빈약했던 하루였다.
근데 나는 왜 이 작품을 기억 못했을까? 아무런 감동이 없었나?

출연 : 예수정, 구도균, 김나진, 김은우, 문예주, 박윤희, 성근창, 윤성원, 이강호, 이경민, 하재성, 홍선우, 황선화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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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연극 -하얀충동(白い衝動)-

 

일본에서 하얀색이 갖는 의미는 모르겠다.
극중에서 사이코패스라고 해야 할지 살인충동을 느끼는 고등학생과 그것을 고치려 애쓰는 심리상담사(스쿨카운셀러?)간의
이야기라고 보면 되는걸까. 너무 간략화 한것일까.

일본 어느 학교의 교정 중간에 정원이 있고 거기엔 상담실이 있다는 설정이다.
사방에 초.중.고가 둘러쌓여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무대에선 전혀 느껴지진 않는다.
정서적으로 안정된공간이라는데 오히려 삭막함이 감돈다.
이렇게 한것은 한 학생이 갖는 살인 충동에 대한 소재때문일수도 있긴 한데
일본 특유의 긴 설명이 많은 드라마나 영화 같이 연극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논쟁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려 애쓰는듯한 그 설교하는듯 독특한 일본풍의 냄새

그래서 대화에 관객인 나의 감정선은 껴들 틈 없이 완전한 타인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주제가 주제인 이상 몰입감이 좀 있긴 한데 그렇다고 눈에 띄는 엄청난 매력이 있다거나 하는것은 아니었다.

상담선생의 상냥하고 자상함 그리고 학생의 논리적인듯 싶은 비논리적이면서
사회적인 면을 갖고자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론 반사회적 충동이 더 앞선다.

여기에 이리이치가나메 라는 독특한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세번이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데
그 범행은 점점 잔혹해진다. 눈을 멀게하고 고막을 찢는다?
이런건 솔직히 한국 정서엔 그렇게 맞아보이진 않고 일본 영화같은곳에 이런 이상한 행위를 하는것들이 나오는데
이것도 일본이 갖는 성향인것인지..(보통 눈을 멀게 할순 있지만 고막은 왜?)
섬나라 사람들이라 그런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서 잔혹해지는건지 모르겠다만
한국보단 이상할정도의 행동으로 보이긴 한다. 물론 이것이 나라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들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만의 독특한 냄새가 풍기는 작품이다.

이리이치 가나메가 출소를 하고 동내에서 살고 있으니 주민들 반발도 심하다.
이건 한국도 그렇지. 아무래도 잔인성이 들어난경우는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쩔수 없을것이다.
그냥 그렇다. 대중이 느끼는 공포감을 이 인물로 표현한다. 왜일까? 죽여 마땅한 대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넣는것인가?
극적 요소의 동력원이 필요하니 이런 인물이 나오는것은 필요하지만 둘의 열띤 논쟁에 힘을 실어주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싶다.
사이코패스가 되기 전에 막기위해 상담선생에 초점을 두고 있는것인지
사람을 죽이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죽어도 괜찮은 사람(나쁜 사람)을 찾고 있는 노즈 아키나리에 초점을 둔 건인지.

오쿠누키 지하야(상담선생)는 살인충동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실제 심리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말하는건지 인과관계가 반드시 있다는 복선을 깔기 위해 이러는건지
연극의 끝에도 명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점에서 이런 성향의 사람은 뇌에서 자연 발생하는것일수도 있다.
절대악이니 그런식으로 나누는건 너무 단순화하는거 같고
아무튼 이런 부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까지만 연극에서는 인정하고 넘어간다.
해피엔딩으로 본다는게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대충 오쿠누키지하야의 의지대로 마무리되는 경향은 있는것도
일상적이진 않아보인다만 뭐든 마무리는 있어야 하니.

세명이 나와서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을 한다. 모두가 멀티로 나오는데 그러다보니
조금은 헷갈리고 극중 이름들이 모두 일본사람들이라서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는것도 좀 쉽진 않았다.
모두 멀티배역인데다 모두 일본이름
각색을 할거면 한국인 이름으로 해도 될거 같았다는데(한국이름은 길지도 않고)
그리고 멀티배역은 한두명정도 더 써서 멀티를 전담 배우를 설정하면 관람할때 한결 덜 헷갈리긴 하는데
이런점에선 좀 아쉽다. 그리고 배경 전환이란게 의자,책장만 좀 왔다갔다 하며 완전 다른 배경을 말로만 설정하다보니
두 벽면에 프로젝터라도 좀 쏘면서 변경하는게 어땠을까란 생각도 든다.
(프로젝터를 많이 쓰는걸 개인적으론 싫어하지만 배경을 많이 바꿔야 하는 반면 무대장치가 없다면 이렇게라고 하는게 낫다고 봄)

요즘의 한국 상황을 보면 약간은 떨어져있는 내용이지만
인간의 내면 한부분을 집중적으로 논하는 부분에선 제법 괜찮았다.
다만 충동적인 감정을 현실화 한다는것은 알긴 어려운 부분이라 조금은 먼 느낌이 드는 연극이었다.

출연 : 강해진, 이강욱,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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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연극 -서재 결혼 시키기-

 

왜 제목을 헷갈리게 앤 패디먼 작품과 똑같이 했을까?
어떠한 이유에서든 제목을 같게하면 연극을 보려하는 사람들은 헷갈릴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다는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것인가?싶었지만
생각보다 그런 내용은 극중 김수영(정신상담사)과 송예은(송해원의 동생)이 그 부분을 담당한다.
주인공이자 서재의 주인인 현성주(남편)와 송해원(아내)은 이런부분과는 다른 부분을 이야기 한다.
(송해원이 나오는 것은 회상 일부와 현성주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인물임)

이미 식어버린 서로의 감정. (식었다기보다는 풀지 못해 엉킬대로 엉켜버려 더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
헤어진 상태에서 송해원이 자살을 했다는건지 사고사인지도 솔직히 불분명하다.
자살과 사고사는 감정의 상처 크기에서 다른 느낌을 줄텐데 작가는 크게 개여치 않은거 같다.
단지 현성주의 감정상태에서 집중하도록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래서 동생의 아픔이나 정신상담사의 감정상태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크다.
김수영의 누나도 자살을 했다는데 현성주는 짜증난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후벼판다. 저 친구가 곁에 있는 이유를
분명히 직시하고 있음에도. 이런점에선 우리들의 흔한 인간의 감정을 직설적이면서 멋지게 표현하지만
이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나몰라라 해버리게 되버리는 세상의 중심에 나 밖에 없는듯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는듯한 이기적 성향의 인물로 표현된다.

개인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한것이 인간이고
성주라는 인물은 이 모든것을 조금은 강하게 묘사되어 연극이니 그러겠지라고 넘긴다기보다는
관객인 내 감정은 너무 자기방어적인데 라는 기분이 훨씬 앞섰다. 그러니 성주의 모든 말들은
매우 논리적으로 대하는거 같지만 이 모든것은 무엇인가로부터 감추려는듯한 행동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은 그렇게 신선하거나 새롭다거나 한것은 없다.
단지 대사들이 논리정연하다보니 이런것이 맞는 사람은 대사에 집중하게 되고
감정에 좀더 치우친 관객이라면 조는 경우가 생기는것일거다. (조는 사람도 제법 있어보임)

흐름자체는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듯(적어도 스릴러가 아닌이상)한 한 사람
그 감춰진 감정을 토해냄으로 봄에 눈녹듯 모든것이 해결되는 참 별볼일 없는 전개인데
장장 3시간동안 단 한 순간도 나는 저들에게서 시선을 놓을수 없었다.
일단 대사에 집중을 안하고 놓치게 되면 바로 잠이 올거 같은 긴장되는 흐름속에서
대화 주제 역시 논리적이면서도 주제를 놓치 않고 치밀하고 깊게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는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점은 한 순간에 모든 해결이 되 버렸다는 어이없는 상황이란것인데
그게 그렇게 바로 정점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었는가?다. 호흡도 가다듬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게 아니라
2시간50분동안 평지를 숨가쁘게 걷다가 1분만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가서 9분동안 계단으로 설렁설렁 내려온 기분이랄까?

이 마지막 1분이 없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성주가 계속해서 벽을 허물지 않고 꽁꽁 싸매고 그대로 남들앞에서 멀쩡한듯 있다가
그냥 끝나버리는것은 이상했을까?
우리의 현실에서는 보통 그러지 않나? 한번 엉켜 더이상 풀수 없게 되면 그대로 방치해버리지 않나?

특이하지만 이렇게 깔꼼(?)하게 모든게 해결되는 연극은 꽤나 남는게 없다.
3시간가량을 미친듯 집중했는데 극장을 나올때는 이리도 홀가분하고 텅빈 감정으로 나오다니..(이게 좋은건지 그렇지 않은건지)
아무튼 기회되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하고 싶다.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함)

그리고 제목처럼 '서재 결혼 시키기'는 원작 앤패디먼 작품을 읽어보는게 나을거 같은 기분이다.
(이 연극의 서재결혼시키기는 글쎄 뭐 그다지)

나도 적당히 큰 내 서재 하나 갖고 싶다. 그러면 지금보다 책을 훨씬 많이 샀을텐데..(읽는건 싫어함)

출연 : 이강우, 김희연, 정세환, 한수림

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연극 -하얀 봄-

 

이번이 두번째 보는것인데 예매할때도 몰랐고 볼때도 초반엔 몰랐다.
중반쯤 되서야 아~ 본거였구나. 싶었고. 올해는 아르코쪽에서 동성애 관련 연극에 집중하는가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 연극은 사실 그런것하곤 거리가 있다.

세대간의 벌어질수 있는 이해의 장벽같은 존재.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하지만 그 시절 모든것을 담고 살았음에도
새로운 올챙이와의 상반된 사상들. 지향했던 삶과의 괴리, 왜곡과 굴곡
이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세대간 갈등의 문제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일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사람을 현혹시켜 인위적으로 갈등을 유발한것이지
연극에서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필연같은 현상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중의 배경 세대와 나와는 거의 같은 세대기때문에
연극을 보는내내 나의 행동이 지금 세대들에게 상처를 줬던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계속 곱씹게 된다.
그러면서도 연극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왔다 갔다 하는데(플래시 백이 좀 많지만 극단적으로 나뉘어서 헷갈리진 않음)
그와 동시에 나도 나의 과거 시간으로 왔다갔다를 해본다.
주말에는 어김없는 최루탄냄새로 친구를 만나려고 시내를 나가면 언제나 코를 막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연극 속의 그 격동기는 아니었다. 조금 흐른 김영삼-김대중 정부시절무렵이 내겐 20대였으니
김영삼정부때를 회상해보면 무언가 흥청망청 여유있는 시대였던거 같긴 하다. 하지만 내 환경은 부유함보단 빈곤함에 훨씬 가까웠다
바로 이후 IMF를 정통으로 맞았지만 워낙 저임금 직장이었기때문에 타격도 없었다. 더 내려갈수 없는 바닥.

내 바로 윗세대인 486세대가 이나라에서 제대로 민주화 학생운동을 했던 세대들이었을것이다.

이 연극의 내용도 이 세대를 주 타켓으로 하지만 연극이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이제는 같은 기성세대가 되버렸기때문에
저 교수(연수)가 고통받고 이해 못하는 그 벽이 이해되려하고 하고 있다.
젊었을때 추구하던 무엇들. 그것을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으나 이미 주변은 모두 퇴색되어
당시 타파하겠다고 목청 올렸던 바로 그 세대가 되버린 환경. 그러나 나(연수)는 계속 이어가고자 했는데
어이없겠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그것을 거부한다. 무엇이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바꿔버렸을까?
망가뜨려버렸을까? 내가 망가진것일까? 저 학생이 망가져있는것일까?
모든것이 조심스럽지만 모든것이 이해 안된다. 동시대의 친했던 친구도, 지금 세대가 나(연수)를 두려워 하며 고소한 학생의 이유도

나로서는 어떤 결론을 내주길 기대하지만 내가 못 찾았던, 내 길이 맞는지 증명받고 싶은 마음에
끝엔 어떤 해답을 원하지만, 연수 역시 아무런 해답을 찾이 못한다. 나 역시 극장을 나올때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해답도 갖질 못하고 나올수 밖에 없었다.

관객에게 너무 무겁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훌륭한 연극이지만..
아직도 좀 이해는 안된다. 학생이 시간강사를 두려워 하나? 전임교수도 아니고 문제생기면 다음학기엔 웬만해서 보기 어려운 강사에게?
학점이 엄청 좋아서 학점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하지만 성적도 별로인 친구가?
설정 배경은 좀 이해는 안된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이미 늙었기때문에 이해 못하는것일수 있다.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는 훨씬 예민하고 나약할수 있는데 젊다고해서 무조건 무모하게 덤비거나 하는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이게 나의 세대때와 지금의 세대의 어떤 행동양식이 달라서. 그 형태를 내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반대로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이해못하는건 마찬가지겠지. 오히려 이건 당연할거 같은데
왜 나는 저들을 이해 못하는 것인지.. 그냥 젊어서 저러겠거니라고 치부 해 버린다.
보기 싫어서 회피하는거 같아 마음에 드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참 우낀것이 연극에서 연수의 젊었을때의 사랑도 꽤나 어설프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이것이 미래의 연수에게까지 이어지는데 이건 누구나 비슷하지 않은가?
무엇인가 한창 어설플 나이때. 그때의 것이 생각보다 바뀌지 않고 늙을때까지 이어지는 어리숙함.

어쩌면 인간의 시간은 생각보다 이러한 결점을 고치기엔 너무 짧게 주어진 단편이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무대 효과나 장치들이 좀 섭섭하긴 했지만(좋은 무대인데 좀 장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지)
지난번에 봤을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 아마도 내년에도 보게 된다면 오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거 같아서 기대된다.

출연 : 옥자연, 장선, 송치훈, 박다미, 황재성, 최강현, 김관식, 이서한, 최수현, 김하정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1월 29일 토요일

연극 -청송-

 

퀴어영화였다니..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를 말하긴 하는데
간간히 정동극장도 그렇고 이런류를 무대에 올리지만 정작 퀴어하곤 크게 관계없다.
물론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때문에 당연히 성소수자긴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파해치거나 사회고발한다거나 하는게 아닌 그냥 멜로물이다. 이번 역시 거의 다름 없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퀴어 하면 동성애자들만 대변한다. 남여자동성애자 이들은 성소수자라고 하기엔
좀 많지 않나? 오히려 성소수자가 아닌 성비주류 라고 하는게 맞지 않나? 물론 퀴어에서도 빠져야 하고.
그리고 퀴어에 왜 양성애자가 들어있는걸까? 그리고 무성애자는 또 왜? 무성애자를 놓고 누가 뭐라 하나?
사회적 편견이 있어서 불이익을 받는 부류였던가? 세력을 키우려고 이런부류까지 억지로 붙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퀴어에 인간적으로 양성애자(이들은 엄밀히 봐서 욕심쟁이들이지)와 무성애자는 빼자.
아마도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탄압을 받는 대상은 트랜스젠더겠지만 절절한 영화나 연극을 본 기억은 없다.
동성애관련은 남녀 모두 영화도 훌륭한것들이 많아서 연극도 유명한 작품이 나올법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멜로정도로 가볍게 접근하는거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동성애를 다루는 연극은 아직 못본거 같다.
여자동성애는 한국사회에선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비아냥 거리는 반면 남자동성애는 도를 넘는 차별이 많아보이는데
남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사회에선 그렇다. 관객수도 엄청난 차이가 있을듯도 하다.

연극에서 청송은 지역을 말하는데 외진곳인지 이들은 이곳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못 들어봤다고 한다.
 TV가 있었을텐데.. 나도 TV에서 처음 이 말을 들은거 같은데.(애초에 관심 없는 주제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공부를 잘했다는 영주는 대학을 못들어가서 청송에 남고 가윤은 대학에 들어가서 서울로 상경했다.
서로 그렇게 좋아했다면 영주는 서울에서 재수 학원을 다니면 서로 헤어지지 않아도 될법 했지만
차별의 시선이 두려웠을까? 청송은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으니 둘만의 관계를 유지할수 있었겠지만
(내가 지금 서울을 못떠나고 어떻게든 여기에 남아있는것도 다른곳에 대한 두려움때문인데 비슷한건가)

서울에서 새로 만난 연인 은하. 이 캐릭터는 호방하다. 말 그대로 있는집 자식인지 사회생활을 하지도 않았는데
오피스텔이 있어서 가윤을 대리고 와 동거를 하면서 이 둘이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청송에 남아있는 영주. 그런데 영주는 가윤을 기다리는건가? 나(이산)역할이 계속 상황을 나래이션 하다보니
오히려 낭독극도 아닌데 좀 어지럽다고 해야 할지 산만하다고 해야 할지. 이 사람은 미래의 가윤인건지
저 가윤은 나의 과거의 나인지. (과거의 나를 회상하는거 같긴 함)

가윤은 사랑을 한것일까? 아니면 신분상승을 원했던걸까? 지상으로 나가고자 했던게
물리적 반지하 집에서 고층 오피스텔로 전환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말한것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철저하게 감추었을뿐
이걸로 보면 가윤은 영주와 은하를 이용 대상으로만 선택한 것인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반지하로 되돌아온것은 그것이 온전한 내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었기때문있었을거 같다.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처럼 쿨하게 훌훌 털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건가?
인생이란게 다 이렇게 한쪽으로 밀어내며 살아가는거긴 한데
무엇이 주제인지 모르겠고 왜 이런 연극에 퀴어라는 명사를 자꾸 써대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퀴어 어쩌구 저쩌구 하면 여성관객들이 확실이 많이 보인다. 오히려 연인관객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이러면 퀴어연극이라도 퀴어라는 수식어를 최대한 빼서 남녀 모두를 보게 해야 할텐데
연출 자신은 관객이 많이 몰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냥 멜로물..

성장통 드라마의 플롯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프고 고민하고 어려웠던 한때의 사랑 기억들의 몇조각 정도를 나열한것뿐이니
뭐라 말해야 할지 좀 난감하다.

그런데 영주는 뭐하고 있으려나. 오히려 이 사람이 훨씬 매력적인 인물인거 같은데
아직도 청송에서 살고 있나? 가윤은 청송을 왜 그렇게 증오를 했을까?
아무래도 결론은 삶의 질(돈)때문이었겠지. 그러니 누구는 좋은곳으로, 다른 누구는 꼴도 보기 싫은 곳으로 기억되는거겠지 

출연 : 김섬, 박은호, 이산, 정제이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연극 -순우삼촌-

 

언제적부터인지 이 극장에선 안똔체홉작품을 봐야 할듯하게 길들여진거 같다.
이번 연극 제목이 '순우 삼촌'이지만 변화되는 시대가 불편한 바냐 삼촌의 한국판이랄까

롯데월드 뒤쪽 석촌호수쪽 냇가가 한강 본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알게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있는 한강이 너무 거대하니 주변 지류들은 그냥 냇가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
실제 강이 이렇게 넓은것도 토목공사로 인한것일뿐 한국의 대부분 강을 보면 서울 한강처럼 넓은곳은 없다.

당시(1970년대) 잠실 일대에 개발이 들어가면서 일부는 매몰하고 일부는 한강을 더 넓게하는 등 이것저것 한 후
엄청난 아파트를 지어댄것이 지금의 대단지 아파트들일텐데 바로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당시에 잠실(섬)은 홍수가 엄청 자주 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백가구가 살곤 있었다지만
매년 장마가 있는 한국 기후에서 어떻게 살아갔을지.. 또 어떤 계층이 살았을지는 뻔한거 같다.

이곳에서 용이 나왔는데 바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강원 그리고 이 사람을 뒷바라지 한 조환
이강원이 갑자기 온것은 땅을 팔기 위함?(중간쯤 교수자리때문같음) 하지만 이 땅에서 먹고 살았던 조환은 반발한다.
우끼게도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이상하게도 순순히 모든 땅을 넘긴다. 왜 저항을 안한 것일까.
안똔체홉 작품도 그렇고 이 각색한 작품도 그렇고 (안똔체홈 바냐삼촌은 엄밀히 말해서 총으로 쏘기도 해서 팔지 않았는데)

좀 특이하다. 요즘 톨스토이 단편집을 좀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신을 빙자해서 자신의 처지에 저항하지 않는다.
왜 그러지? 왜 고통받고 탄압받는데 이것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인내하라고 하는거지?

결국 조환은 이강원의 딸마져 책임지며 남았는데 앞으로 땅도 없는데 어떻게 먹고살지도 좀 납득 안되는 상황이다.
바냐삼촌과는 좀 다르게 한국에서 개발이 들어가면 모두 다 갈아버리니 집한채 고작 있어봐야
그것으로는 어떠한 생계도 해결되지 않는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보이는 이 집에서 엄마라는 사람은 배다른 자식인 이강원은 남인데도 불구하고
이강원에 대한 엄청난 팬심을 보이는데 왜 이럴까. 바냐삼촌을 봤을때도 좀 이해는 안됬다.
하지만 그 작품과 이 작품의 배경이 좀 다른거 아닌가?
바냐삼촌은 적당히 먹고 살 정도의 토지가 있었지만 순우삼촌은 매년 홍수로 싹 슬려가는 잠실섬에서 농사로 먹고 사는 형편이다.
땅이 있어봐야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차라리 배경이 양재, 신사, 삼성 이런곳이라면 논밭이 있던 곳이니 납득될수도 있겠지만 하중도로 여의도, 밤섬, 섬유도같은 잠실섬이었는데
개천에서 용이 날순 있었지만(미국에서 공부하는 뒷바라지가 가능하긴 한 시절인가? 일단 대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연극 전반적으로 배경 해설이 좀 미흡해서
생뚱맞은 저 박사와 젊은 애인, 딸, 배다른 동생과 엄마 등 인물들에 대한 배경설명이 거의 없다.
바냐삼촌에서는 교수이자 매형을 지원하는 것이고 그쪽 세계를 동경하하니 그럴수 있는 심정적인 납득도 충분히 된다.
또한 전체적인 인물 배경도 별로 이상하지 않으며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어머니는 바냐편보단 교수편을 드는 신기한 현상이 있지만..

그러다보니 바냐삼촌의 답답하면서 암울한 격변하는 근현대서의 이면을 보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
어떻게? 왜? 저들은 뭐지? 저 사람은 왜? 라는 의문 투성이인 이상한 한국판 바냐삼촌 아류작을 본 느낌이다.

내용 흐름에도 어떤 기대를 할만하지 않고 새련되었거나 신선함은 없지만 고전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는데
이건 웬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한국의 바냐를 만들고 싶었던 욕심에서 나온 특이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은 너무 심한 격동기들이 있어서(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두번의 구테타 군부정권)
차라리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화될때가 더 잘 어울릴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출연 : 전순우, 전건우, 민다정, 전지숙, 강석준, 정문자, 정수자, 김철구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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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7일 금요일

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

 

토요일 공연은 집회가 있어서 안하는거겠지.
덕분에 쉬는 일요일도 나오게 만드는 세실극장
이상하게 이곳에서 하는 연극들은 웬만하면 다 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요즘은 연극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좌석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든다.
제법 일찍 예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자리는 늘 없다. 아주 운좋은거 아니면 희박하다.
그래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 아니겠나.

내가 좋아하는 호텔로비 배경. 하지만 카페같은 분위기의 로비. 난 폭신한 소파가 놓인 로비 배경이 좋은데
브라운톤의 약간은 어둡고 조용하지만 적막함과는 거리가 있고 약간은 사람들이 있는
대충 카페같은 로비에서 어떤 칠십이 넘은 소설가 윤숙(백현주)이 무화과에 대한 불만을 프론트 직원에게 항의하면서 시작한다.
무화과는 물러도 맛있는 과일(과일이라 해야 하나?)이긴 하지만 아무튼 여지것 먹어보지 못했어서
기대를 했다는 소설가는 어떻게 이게 물러서 안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글쓰는 사람들 특유의 집요함이랄까? 꼬투리 잡듯 프론트 직원을 괴롭히는듯 보이지만
약간은 웃기기도 해서 동화되지않고 웃음으로 지나갈수 있었다. (프론트 직원과 교감되는 순간 짜증으로 바뀔지도)

그런데 나이 칠십이 넘은 여성이 결혼을 안하면 이상한것일까?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는 수근거렸을지 몰라도 지금시대에 그게 특이하게 받아드릴것은 없을거 같은데
젋은 여성은 신기해 하는거 같다. '비혼주의자'란 말도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나 또한 결혼을 안했지만
결혼을 안하는것은 그냥 안한거지 비혼주의 뭐 이딴 유치한 발상에서 시작된것은 아닌데
오히려 결혼을 하는것이 그 동안 없던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가는 것이니 확고한 신념같은게 필요할텐데
그러면 '결혼주의자'란 말이 오히려 타당한거 아닌가? 아마도 비혼주의자란 말은 결혼한 사람들이 미혼인 사람들이 부러워
시샘하며 만들어낸 단어가 아닐까싶다. 태어날때부터 미혼이고 그냥 그대로인데 비혼주의는 무슨

이 소설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자신이 마무리하고자하는 소설을 마무리 하려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소설 속 인물의 주최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물론 특성상 소설가 본인이겠지.
전체 흐름상 큰 의미는 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분량이 적지 않아서
궁금함을 뒤로 밀어버리기엔 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호텔에서 청소일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는데 그 후엔 다른일을 한건가?(소설로 먹고사는것은 아닌듯 싶음)
어쩌면 성주신이나 지박령같은 존재인가?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죽어서 그곳에서 남아있는.
일단 배경은 좀 이러한데 매끄럽게 납득되는 설명은 없기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넘길수 밖에 없으나
크게 거슬리거나 하진 않고 소설가 본인의 이야기들도 제법 나오기때문에 궁금한정도이다.

비혼으로 살길 원하는 젊은 여자 김(백소정)과 이 사람을 무척 사랑하는 친구 윤(경지은)
이들의 관계는 동성애일수도 아닐수도 있는데 사람이 결혼을 하면 가정에 충실하게되지만
미혼일경우엔 친구와 나에게 충실하게 되기때문에 이런 관계는 어떤 상황이던 특별하거나 특이하지 않다.
나도 그래왔고 다른 미혼자들 모두가 그럴것이기때문이지만 끊임없이 갈등은 한다.
수많은것을 홀로 선택해야 한다는 고독감이 24시간 따라다니기때문인데 이것도 어느순간엔 무시가 가능하다.

그리고 소설가는 자신이 결혼을 안한이유는 책임지기 싫어서라고 한다.
역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심정이다. 무엇을 선택하던 그 길에선 잃는것과 얻는것이 공평하게 분배되기때문에
책임이라는 것을 잃게되면 홀가분함을 얻을수 있고
고독이란것이 버리고 가정이란것을 얻게되면 딱 그만큼의 중압감과 책임도 함께 따라오니말이다.

교인(류경인)은 그것을 정확하게 바꿨다. 아니 바뀌었다.
어머니로서의 삶이 사라졌지만 자식의 그리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버린 본의 아니게 바뀐 삶.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속의 갈래란것은 어떤것을 놓고 다른것을 잡는 행위의 연속이므로
소설가처럼 미완성 상태에서 완성을 위한 행보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같은 끝을 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일것이다.

연극이 전체적으로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거칠거나 과격하지 않고 소설가는 끝까지 차분함을 잃지도 않는다. (작가 기억속엔 이런 안정된 모습의 노인이 있었나보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관객에게 웃음도 선사하는데 이 웃음이 인위적이지 않는 생활에서 나올법한 소박한 웃음들로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지 않는 좋은 요소로 작용한다.

내가 좋아하는 배경과 분위기, 따뜻한 대사들, 가슴절절한 감정변화들, 다양한 소재가 지루하지 않게 연결되어
집중하면서도 피로하지 않은 벽난로 앞에서 사람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하듯 추운날 잘 어울리는 연극이었다.
약간은 강한 부분도 있었지만 오래 남지 않도록 배경전환 기술도 뛰어나고 멋졌다.

그런데 왜 밤에 무화과를 먹는거지? 생각해보니 왜 제목이 이런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자막이 외국인이 미국말을 하는걸 영어 자막으로 올리면 자막을 보라는걸까?
보통 자막은 관객이 볼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 표기되는 것을 자막이라 하지않나?
특이한건지 실수인지 뭔지 모르겠다. 특히 마지막에 화를 내며 뭐라뭐라 할때 뭐라뭐라 한건지 못 알아들으면
좀 섭섭하지 않나? 아무튼 그러하다.

출연 : 경지은, 김의태, 남동진, 류경인, 백소정, 백현주, 송민규, 양대은, 이미라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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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일 일요일

연극 -묵티(Mukti)-

묵티가 해방이란 뜻이라고 리플렛 우측 상단에 나같은 노안은 볼 수 없는 작은글씨로 써놓았다.
좀 이상하지? 해방? 독립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처음에 무슨 신들의 대화가 나와서 신화 이야기인가싶었다.
시놉을 약간은 훌터보고 들어와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내용쯤으로 생각했다가
시작부터 신이라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데 무슨 소릴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2천년간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신들이 정착하려하면 인간들이 배척한다는 둥 집을 구해야 한다는 둥, 돈(금,은)을 가져야 한다는 등
별의 별 말을 다하고 있다. 조금은 추상적인거 같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복선으로 뭔가 있을거 같은 겉치레에 속았던거 같다.

전체적으로 밀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제 한국의 농어촌엔 외국인 비중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심지어 이들이 땅도 많이 사고 있단다.
이들 아니면 한국의 식량 보급에 문제가 생길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없어서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있다고하는데
타국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거 같다.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1차 산업을 등하시하게 되는거 아닌가
아니면 엄청 넓은 땅을 거의 반자동 기계로 경작하는 농가들정도나 있을까.
한국은 땅이 넓은 나라처럼 효율이 좋은것도 아니고 사계절(이게 겉보긴 좋아도 사는 사람 입장에선 참 힘든 환경)때문에
뭘 해도 쉽지 않다. 그러니 내국인은 힘들고 돈 안되고 명예가 있는것도 아니니 줄어드는것은 당연한 결과
아마도 이것때문에 도시스마트팜을 국가차원에서 계속 엿보고 있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국내 사정이 이러하니 외국인 노동자를 그것도 불법체류자들을 많이 이용하는거 같은데
임금을 적게 줘도 추방당하지 않기위해 남의 눈에 띄는 곳도 아니니 농어촌은 임금만 만족하면 괜찮은 선택지일거다.
이런와중에 이들만 노리는 사냥꾼 같은 놈들(포상금이 나오나?)이 있다곤 하는데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의 약점을 노리고 돈을 빼앗는 등 가능하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연극에서 총이 나온다. 이건 좀 오버 아닌가?

마을은 왜 이들에게 집을 임대하지 않는거지? 외국인이 외국 말 하면 안되는건가?
한국에 돈벌려 왔으니 기본적인 생활한국어정도는 웬만해서 될터인데
그리고 무엇을 먹던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 연극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먹는것도 한국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걸까?
매맞는 외국인 아내. 그런 남편을 두둔하는 어머니

왜 귀농을 해서 연근을 수확하는 일을 하는걸까...도 좀 특이하다.
진흙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깨달음)같은 것을 상징하고 싶었나?
하지만 연꽃은 단 한번도 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연꽃이 피지 않아서 연근이 더 실하다고 외국노동자가 말한다.
은연중 이 노동자들에게 꽃은 필요없다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소리였을까.

내용이 조금은 허공에 있는거 같다고 해야 할지..
지금의 한국은 분명히 다문화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밀입국자도 늘어날만큼 국가가 부유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건 부유해질수록 더욱더 심해질거 같다.

그러면 이렇게 밀입국한 사람들을 무작정 그대로 둬야 하는걸까?
지금은 인원이 워낙 적기때문에 아무런 힘을 행사하지 않지만 유럽국가들은 이러한 타국 사람들때문에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썪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나라가 나의 나라라면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
줍지는 않아도 버린사람 욕을 할것이다. 하지만 돈만 어느정도 벌면 되 돌아 가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것이다. 당연하다는듯 그 사람도 같이 쓰레기를 버리겠지
왜? 나는 이곳에 있지 않을거니까..
도둑질을 해도, 사람을 해하더라도 이곳에 있지 않을사람들은 죄책감이 적을것이다
예전 미군들이 한국사람들을 못살게 군것만냥..

그래서 한국에서 타국사람들은 조심스럽다. 왜? 그동안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으까..
그들이 세력을 지니게 되면 어떻게 될걸지 뻔하니까..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라서 한국과 기조가 거의 같다.

나 또한 이런 부분에선 상당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이 연극은 거의 일방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을 다루고
주제지만 보고 느끼는 나로서는 밀입국자를 모른척 할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추방하자고도 못한다.
왜냐면 나도 농사를 짓기는 싫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는 싶기때문에 농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때문이다. 그렇지만 확고한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권력을 행사할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는것은 반대인 입장이다.
그리고 밀입국은 더욱더 반대한다. 아무래도 절박한 사람들이 밀입국을 할텐데 돈때문일수도 있지만
나쁜짓을하고 도망온 질 나쁜 사람일수도 있기때문에. 영화 '범죄도시'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듯
중국내에서 나쁜짓 하고 한국에서도 나쁜짓을 하기에 이러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만 끼치기때문이라서
외국 노동자를 받으려면 제대로 조사를 하고 임금이나 불이익, 피해 등을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순되게도 정식절차를 거쳐 들어온 노동자들은 험하고 힘든일은 안하려 든다고 하는데 이부분도 업종별로
잘 나눠 정책이 마련되길 바라는 심정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 연극이 다루는 내용이겠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라는 것이겠으나 인간의 본능에 이기심이 있는건지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왜 그리도 무시를 하는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또 왜 그렇게들 받들어주는지.. 이게 생존본능에 연결된 반응일까.

도데체 저 신들은 무엇일까? 이 설정이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들 의지로 들어와놓고 묵티(해방)라니 이건 도데체 무슨 말이냐.
한국내에 독립국이라도 마련해달라는건지. 독립마을이라도 만들어 자신들만의 문화를 누리고 살게 하라는건지
여기가 중국이나 미국 같이 온 사방이 지평선인 넓은 대륙도 아니고
직선거리 고작 400km 자동차로 4시간이면 한국 끝을 가는 크지 않은 나라에서
중국처럼 다민족국가를 만들겠다는걸까?
잘 모르겠다. 작가는 어떤 의미로 묵티라는 제목을 단것인지 그리고 저 신들은 왜 인간을 벗삼아 꾸역 꾸역 들어오려 하는건지.
그냥 자신들의 나라에서 터 잡고 행복하게 살면 될것을. 최소한 전쟁때문에 피난온 난민은 아니지 않은가.
온 세상이 모래나 얼음이라서 먹고살게 없는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기적인놈이기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거겠지만
때로는 외국노동자들 특히 동일국가의 국민수가 많은 노동자들은 저마다 힘을 키우고 있다.
불합리하게 탄압당할땐 분명히 그들은 한국을 상대로 저항한다.

이번 어떤 베이커리 과로사 사건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일면인데
외국 노동자들 그것도 밀입국자들의 처우를 고민해야 되는지는 조금은 답답한 주제였던거 같다.

내용 전체 흐름에서 아주 약간 늘어지는 기분이 좀 있었지만 대부분은 충분히 집중하며 생각해야만하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그래서 끝난 후에도 오랜시간 답을 찾으려 고민할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나는 섣불리 저들에게 심리적인 집을 내어줄기는 쉽지 않을거 같다.

무대를 좀 넓게 쓰니 가급적 B구역을 구입하셔서 보시길 권함.

출연 : 강세웅, 강현우, 김문희, 김정아, 김진복, 박지연, 배선희, 송주희, 유은숙, 이재호, 최호영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연극 -서울의 별-

 

혜화동엔 아직도 가보지 못한 극장들이 많은거 같다. 이곳도 이번에 처음 가보는거 같은데
출입구와 티켓 받는곳이 다른곳에 있어서 초반부터 짜증이 좀
하지만 이건 건물 생김세때문에 어쩔 수 없는것이니 어쩔수 없더라도 입간판에 안내를 좀 크게 적어놓던가
관계자가 나와서 설명을 좀 해주면 좋으련만 입구는 전자키로 굳게 닫혀있어서 처음엔 연극이 취소된줄 알았다.

입장도 15분전에 하다보니 밖에서 제법 긴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협소한 소극장 그자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건
안내해주는 사람 한명만 나와있어도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수 있지 않으려나

극장을 들어가니 좀 당황스럽던데 사진처럼 좌우로 아주 길다.(내가 B구역이니 좌측에 A구역이 더 있음)
건물 생김세때문에 이런 불편한 구조를 갖게 된것이겠지만 내가 앉아있는 위치에선 상대적으로 좀 불편함을
감소해야 할 위치다. 관객을 모두 받아야하니 무대를 중간으로 줄일수도 없을테고
실제로 연극 구성을 보면 좌우 30%정도는 그냥 없어도 될 무대라서 불편한 극장때문에 배우도 고생이고
좌우로 너무 길어서 보기 불편한 관객도 고생인 곳이다.
이 극장 공연을 보려면 가급적 중간을 잡고 특별한 연극이 아닌이상 그 외에 좌우 밖에 안남았다면
그나마 뒷자리가 낫다는것을 생각하는게 좋다. (좌우로 너무 김)

작가가 누군가 찾아보니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희곡 작가가 안적혀있는것도 꽤나 특이하다.
어쩌면 처음인거 같다.
왜 작가를 적지 않은걸까? 챵피한가
연극 내용은 식상함 그 자체
영화 타짜2의 전광렬 배경을 짜깁기 한거 같기도 하고
달동네 이야기라 하기에도 상황이 솔직히 맞지도 않다.
월세 낼돈은 없는데 좋은 오토바이를 타고
갑자기 여성이 들어오고(월세가 저렴해서 왔다는데 3류 밤무대 가수니 개연성이 없는건 아님)
집주인은 발성이 무슨 성악전공잔지 뭔지? 왜 딕션이 그렇게 특이한지..
TV나 영화에선 이러지 않는거 같은데 정극을 처음해서 긴장한건가? 이분 연극무대에서 왔던분 아니었나?
고전 연극을 하듯 발성이 초반엔 클래식하고 대사도 철학적이라서 넘길만 했는데 계속 그러니 점차 질리는 경향이 있다.
원형무대에서 타이즈 입고 칼 찬 서양 배우가 쩌렁쩌렁하게 떠드는 역할이 딱 맞을거 같은 특이한 딕션

연극을 보면서 내용에 놀란것이 박문호란 인물인데 도박으로 인생 한방에 해결하려는
전형적인 깡패, 건달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3류가수인 조미령에게 처음부터 반말을 해대고
추파를 던진다. 캐릭터가 그러니 그런것인데 조미령에게 성추행도 과감히 해버린다.
그렇지만 나중에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남자는 지가 나이가 많다며 반 폭력적으로 반말을 하며 여자는 힘에 눌려 존칭을 한다.
뭐랄까 현대적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상황.

이 작품이 한 수십년 전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다. 당시 사회를 반영하니 당연할수 있지만
나온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온갖 곰팡내나는 식상하고
줄거리는 어디선가 가져온거 같은 3류냄새나는 구성

그래서 유명배우의 티켓파워를 이용한 치졸한 연극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고..(왜 연기를 못하는 사람일수록 소리를 질러대는걸까)
아마도 이 연극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다역을 소화한 배우일거다.
가장 연극의 연기스럽고 가장 캐릭터를 잘 살리는 훌륭한 배우였다.

내용은 딱 50대 중후반 이후부터나 어색하지 않을법한 과거 편협한 내용들이다보니
절반은 노인이 되기 직전의 세대들이고
절반은 어떤 팬클럽 모임에서 나온건지 한사람만 집중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것도 색다른 구경이었다.
보통은 커튼콜땐 전체를 찍지 않나?

관객석이 거의 만원인데 노인직전의 세대들과 나머지는 젊은단체여성들인 특이한 관객 구성

아무튼 삼류연극의 전형이니 연극이 고픈사람은 극장동국(추천), 안똔체홉극장(추천), 혜화당, 아르코 등
연극제나 작가 작품위주로 많이 하는곳 또는 국공립극단이 하는 연극들을 보는게 훨씬 기분좋은 연극을 볼 수 있으니
이상한 관람평들 너저분하게 적어놓은 이런 연극을 선택할것까지는 없어보인다.

요즘은 티켓파워가 있는 인지도 높은 사람들을 집어넣고 내용 개판인 연극들이 가끔씩 보이는데
영화시장 망하듯 연극시장도 망할까봐 걱정된다.

이 후진연극이 5만원이나 했다니....

출연 : 정은표, 유희재, 배우희, 이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연극 -농촌청년-

 

이 연극이 추석연휴의 마지막일지 한두편 더 볼지 아직 결정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이번 연휴엔 일단 예매한 3편의 마지막 연극이었다.

제목은 다소 삐리리 하다. 약간은 오래된 곰팡내가 날거 같기도 하고
연극에서 세련미가 없을거 같기도 해서 집에 오자마자 찾아보니
그리 오래된 작품은 아닌거 같다. 2021년 초연이니 아직은 따끈따끈하다고 하는게 맞을듯

연극의 흐름은 드라마 '전원일기'한편 본듯한? 아니다. '베스트극장'한편 본거 같은 기분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지극히 벗어남이 없고 의외성 역시도 없다. 중간에 주인공인 농촌청년이
사고가 나나 싶었지만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며 뜻한대로 예상한대로 고스란히 흘러간다.
그러다보니 연극을 보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게 되는데(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기진 않음)

농촌청년의 애환이랄까. 우리가 생각하지 않던 그들의 고민을 보여주는듯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 모두 그러지 않을까? 너무 넓은 범위를 안고 있어서 의외성 같은 기대감 역시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이 연극의 매력은 드라마로서 저 인물들의 자잘한 삶의 표현들에 있어보인다.
('베스트극장'은 단편극으로 제법 신선하고 참신하지만 '전원일기'는 그런 맛이 떨어져도 작품은 훌륭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자식의 희망을 이루어주고자 하는 바람과 자신의 일(농업)을 함께 해 나가길 바라는
부모들의 흔하지만 잘 안되는 심정들(가업을 이어간다는것은 쉽지 않은일일것이다. 특히 힘든 농촌생활이라면 더욱더)

연극 흐름은 끊임없는 자잘한 이벤트들로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모두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단순히 한번 웃고 끝나버리는 허무함도 없었다.
때때로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고 끌어안는 모습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눈물이 흐를정도로 강렬하진 않고
코딱지만큼 신파가 있지만 이정도는 전체의 극히 일부라서 거부감이 들려고 하다가 사라져버린다.

독특한것은 자식이 그토록 좋아했던 누렁이를 아버지는 왜 동내사람들과 함께 잡아먹었을까?
시골에서 개장국은 흔하디 흔한 음식이었는데 그게 저 청년에게 한맽힐정도가 되었으려나
조금은 극적으로 과장된듯 하지만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리고 옆집 가족은 보상금을 얼마나 받았길래 양주를 물처럼 가져와 마시고 돈이 항상 풍족한것인지
그 집의 아들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왔다는데 결국은 백수생활을 하고 있고(왜 사전만 보고 있지? 박사가 거짓인가?)
이들의 코믹은 극을 재미있게 하지만 어떤 연결성도 없고 상대적으로 너무 화려하게 입고 나온 옆집 아줌마는
화려해도 도가 지나칠정도. 읍내에 살고 있는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이 가정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서
생뚱맞게 웃기려 나와서 웃기고 사라지는 캐릭터같다. 부연설명이라곤 결혼전 땅 보상 받은거로 먹고 산다는 정도

내용이 이렇게 시시콜콜한 드라마의 약간은 황당한 전개들도 많지만
아버지(주호성)와 어머니(김순이). 이 연극의 완성은 이 두분이 다한다.
옆집이 웃음을 선사하긴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기는 가히 일품으로
늙은 노부모역할이면서 똑소리나는 딕션. 어색하지 않으면서 젊은 기색 하나 없이 노부모 그 모습 그대로를 선사한다.
보통 연세가 많으신 배우분들은 딕션이나 템포가 쉽게 깨져서 조금은 거칠어지는데
이분들은 전혀 그런기색이 없다. 주호성 배우 같은 경우 올해 연세가 74세라고 나오는데
아직도 이런 연기가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제법 긴시간 충분한거 아닌가

오늘 연극을 보면서 이시대의 기라성 같은 TV,영화 배우들께서 먹고 살만한만큼 벌어서 앞으로 큰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TV 드라마에서 젊은이들과 외모를 맞추느라 이상한 주사같은거 억지로 맞아서 이상한 얼굴로 나오지 말고
이런 정극 무대로 오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많이든다. 티켓파워를 앞세워 돈에 눈먼 기획자들 잇속을 차려주는 그런 공연 말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연으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사람들이 연극을 좋아할 수 있도록. 그리고 후학들을 키우는 스승으로.

이번 연극처럼
고전도 좋고 새롭게 각색된 혹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 속에 한국의 노장들께서 깃들길 기대해본다.

그런데 이 연극은 특성상 초등생이하 아이들이 들어오는건 좀 그렇지 않나?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입장시킨 이유가 뭔지..

출연 : 주호성, 김준이, 황성은, 정재연, 홍정재, 박신후, 윤다협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연극 -도비왈라(Dhobi Walla)-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폐지되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거 같다.
조선 말 노비제도 폐지되었지만 1900년대초까지 노비 취급 받는게 없어지지 않았으니
쉽지 않을것이고 인도는 땅도 크고 인구도 많아서 오랜시간 세습됬던것을
일순간에 바꿔놓을수 있겠는가. 특히 지배계층은 계속 유지하려고 하니 쉽지 않을것이다.
(7개의 언어가 있다는걸 보면 최소한 7개국의 연합국 형태라고 봐야하지 않나)

도비왈라란게 빨래하는 사람이란 뜻이라는데 불가촉천민들의 생활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몇년도인지는 모르겠다. 브라만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라훌이 외국으로 유학도 가고
카스트도 폐지된 후 인거 같으니 1990년대 후 2000년대 무렵이겠지.

아무튼 말 그대로 서민들의 삶이다. 한국은 과거 달동네나 천계천 판자촌이 그와 비슷하려나..
어차피 카스트는 국가차원에 폐지되었으니 차별 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공부를 할수 없다.
돈이 없으니.. 공부를 하려고 해도 안되겠지..

이런 환경에서 빨래하는 아버지의 강요로 공부하고 싶어하는 실파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도비들을 관리하는 라훌의 아버지는 라훌을 외국으로 유학보낸다? 뭐든 대가리들은 잘먹고 잘 사는건 세상 이친가?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들어와 인도의 한 정치인과 연이 되어(라훌 아버지의 노력으로)
자신의 고향에 이상한 사업을 하려고 한다. 빨래터를 없애고 세탁기를 넣어서 빨래하겠다는 구상..
세탁기는 무상으로 설치하겠다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도비들을 없애겠다는 소린지.. 라훌의 이상한 이상은 좀처럼 이해되진 않는다.
세탁기가 이곳에 설치되면 도비들의 일자리는 사라질게 뻔한데
정치인의 말에 현혹된것인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자신의 고향사람들을 포기한건지..

이런 관계속에도 행동파가 있으니 바로 실파.
한맽힌 여성이고 라훌의 설득으로 라훌의 이상을 함께 따른다.(이상이 뭔지는 모르겠음)

깡패는 언제나 비슷한 역할을 하는거 같다. 물론 극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깡패들의 삶은 모른다. 아무튼 어떤 연극,영화를 보더라도 그 행태는 비슷하다.
주도적이지 못하고 빌붙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을 이용한다. 주로 폭력이겠지만
아무튼 명분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합법적이며 합리적이란 허울을 씌우려 애쓴다.
이 플롯은 어딜가나 똑같은데 왜 그런건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건지. 너무 많이 나와서
작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된것인지

연극은 전체적으로 몰입감은 괜찮았는데 실파가 갑자기 감정이 폭발한다고 할까?
왜 저러지? 라는 대목이 한두곳 있는거 같은데 워낙 거세게 밀어붙이는 통에 큰 반감으로 다가온다.
집중해서 본다고 봤는데 순간 놓친부분이 있었던건가? 그래서 저 배우의 감정선을 이해 못한건가?

전체적으로 보면 클리세도 좀 보이지만 110분 정도 되는 짧지 않은 공연치고 크게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행태인지 아니면 내면의 추악함인지
불합리한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인도인들의 미덕이라 역설하고 싶은건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많은 감정선들이 겹쳐있지만 잘라내면서 보면 괜찮았던거 같았다.
주변을 보면 조는 사람도 제법 있고. 그 조는 사람때문에 방해받는 사람도 있고

아마도 이 극에서 가장 현자는 프리타일거 같다.
왜 프리타는 교육을 받을수 있었던건지 이해는 안된다. 실파는 일을 시켰는데 둘째인 프리타는 왜 학교를 자유롭게 다니지?
환경이 좋아진것도 전혀 없어 보이는데. 권선징악 뭐 그런 드라마는 없다.
그냥 못 사는 사람은 좌절하고 억울하게 피해보고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지만 이용만 당한다.
마지막에 프리타가 세탁시설을 부순건지 플랜카드 한개 떨궜을뿐인데 정치인이나 라훌, 깡패가 두려워하는데
그 플랜카드 한개 떨구면 모든 사업이 물거품이 되는 골든키였을까?
알수 없지만 아무튼 사업이 물거품이 된거 같다. 프리타의 결단으로..

인도의 천민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들을 보며 한국의 현실을 투영하고자 했나. 그러기엔 너무 멀고 다른 세상인데.

'창작ing'는 실험과 도전,가능성을 선보이는 장이라며
나온지 몇년된것을 왜? 그러면 창작ing라는 타이틀이나 걸지 말던가..

출연 : 신윤지, 박세인, 박경주, 주창환, 박성민, 이동혁, 임준식, 이은지, 이주연




2025년 10월 2일 목요일

연극 -제로 쉴드 라이프-

 

제로 쉴드 라이프? 어떤 의미일까. 보호막이 없는 삶 정도?
여기서 보호막은 기후가 변화되어 사람이 살수 없는 환경이 된 지구의 외적 형태를 뜻할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빈민에 대한 삶을 말하기도 하는거 같다.

지구 기후를 핑계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을 말하는데 여기서 온난화 이전 세대와 온난화 이후(쉴드가 필요한세대) 태어난 세대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기득권층이 세대간 이간질을 지독하게 해놔서 극 중 상황이라면 서로 치고박고 싸우지 않았을까싶지만
그냥 평화롭게 살아간다. 돈독한 가족같지만 그다지 의미 없다.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것이 기후로 인해 지구가 망가지기 전 삶을 살았던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하지만
막상 어떤 도전따위는 하지 않는다. 반면 그때의 그 세상을 알지 못하는 젊은 청년은 빈민인 자신의 삶을 이겨내려고
이상한 재단의 꼬임에 넘어가 세상을 바꿔보려고 떠나는 시도를 한다. 기억속엔 지구의 옛모습이 없지만
지금의 삶이 너무 팍팍하니 이겨내려고 하는데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그것을 동경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간이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노력하는것은 수많은 매스컴들이
이러한 허상을 계속 주입시키기때문아닌가. 과거 SF(과학소설)영화를 보더라도 항상 저 위에서는 무엇인가
유토피아같은 세상을 홍보한다. 물론 손에 닫지 않는 먼곳에서 선전을 한다. 그러니 인간들이 저 삶을 동경하도록 만드는데
지금 이 쉴드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는 무엇을 위해서 이러는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극 자체가 그다지 치밀한 구성을 갖고있지 않다.

쉴드를 업그레이드하고 고치는데 드는 비용은 이상한 알바같은것으로 돈을 버는 모양세인데
이 부분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한국 SF의 특징이나 심각한 문제점은 미래의 어느 세계를 대충 그리면 있지도 않은 세상이니 되겠거니 하는것이다.
치밀하고 세밀하면서 집요해야 하는 연결성이 결부된다. 그래서 한국의 SF는 대부분 똥망한다.
동기가 명확해야 인물들의 행동이 어느정도 납득되고 설득되고 동화되는것 아닌가..

그나마 2050년쯤엔 가능할듯한것정도는 도우미 로봇정도? 지금 기술발전을 보면 25년 후면 충분히 가능할거 같긴 한데
문제는 빈민이 구입할수는 없을것이다. 그정도로 보편화되기엔 멀고 험한 분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허구 세계의 약간은 수용가능할 수 있는정도로 넘길수 있다. 그러기때문에 로봇 배우의 행동은
매우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다지 갈등요소에 들어오지도 않기때문에 더욱더 신경이 안쓰인다.
만약에 두 배우간의 갈등속에서 로봇이 중재하겠다고 끼어들었다면 아주 짜증이 날뻔했지만 그런 사고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에서 독특하거나 신선하거나 긴장감 같은 몰입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긴 어려웠다.
처음엔 스릴러인가?싶다가도 갑자기 모 단체가 나왔지만 허무하게도 자신의 잇속만 챙기기 위한 존재정도
(세기말에 나타나는 사이비같은 존재들. 사람들의 돈만을 노리고 영달만을 추구하는 집단들)

어떠한 배경이 되는 무엇인가 필요할듯 한데
쉴드란게 구체적으로 왜 필요한것인지 모르겠고
이산화 탄소가 왜? 지구 온난화와 이상한 복장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거지?
자외선은 밤에 다니면 해결되는건데. 모르는 유독가스가 있나?
아니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람이 살수 없을정도로 많은가?
이산화탄소가 실내에서 많이 배출된다고 세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건 무슨 헛소리지?
산소를 중앙에서 재공하는 시스템인가. 쉴드 비용은 개인이 직접 지불하도록 되어 있는데

다들 뛰어난 연기로 눈으로는 거슬리는 것이 없지만
머리속에선 거슬리는게 한두가지가 아닌 엉성한 연극이 아닐 수 없다.

연출가전이니 연출께서 좋은 작품을 선정하면 되는 문제인데 왜 이런 엉성한 작품을 선정한것인지..
배우들 연기도 훌륭한 일품 연기자들인데 작품이 좀 섭섭했다.

출연 : 팽준영, 김신영, 김난희, 최숙, 강지수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9월 5일 금요일

창극 -심청-

 

아~ 저녁 7시30분 공연인데 중간 쉬는 시간 포함해서 170분?
가끔은 이렇게 한밤중 공연 한편 기분좋게 보고 집에 오는것도 좋긴 한데
집까지 또 한시간을 가야하니 쉽지 않다. 올해는 앞으로도 적지 않은 편수를 평일공연으로 예매해놨으니 조금은 한숨이 나온다.

흔한 심청을 생각하고 왔다가 큰코다칠수도 있을수 있지만 전체적으론 그렇지 않다.
일단 한 90%는 심청전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1인 판소리 장르를 떼창으로 하니
다들 끝까지 좋은 목 상태를 유지해서 안쓰러움도 없고(한명이 하는 판소리 완창은 언제나 힘들어 보임)

현대적인 의상, 현대적인 배경으로 바껴있다.
현대물로 완전히 바꿔놓은것인가?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현대 버전같이?

인당수에 빠지는 부분까지만 봤을때는 옷만 현대적이지 그냥 고전물인가 싶었는데
끝은 그것과 거리가 멀어보이고 이해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뜬다?까지는 내용 흐름상 장르가 판타지니  그러려니 하는데
이번 각색된것은 저 소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심봉사는? 환경은 조폭에게 당하는 일가족을 말하는거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안되는 부분이 많다.
파격적이네 뭐네 하긴 하는데 기존 극에서 잔인성을 부각하게되면 웬만해선 파격적이 된다.
이 창극 역시 노랫가락으로 부드럽게 넘기는 부분을 좀더 현실감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들때 다리를 묶고 무거운 물체에 매달았다거나 하는건
아무리 심청이의 심정이 굳건하더라도 죽음앞에선 쉽지않기때문에 잔인한 현실의 실감나는 설정이다.

전제적으로 다른 공연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기괴하면서 아방가르드(전위적)한 창연극인데
이런류의 특징이 너무 작가주의적이라서 이해해야 하는 관객입장을 잘 고려되지 않는다는것이 심각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심청전을 보면서 ???????? 라는 물음표가 나오게 하는것이겠지

좀 그렇고 그런 내용을 무대장치와 음악 그리고 창으로 떼우고 있는거 같다.

처음보는 광경으로 카메라맨 한명이 라이브로 계속 무대를 왔다갔다하면서 찍는다
그것을 무대 윗쪽에 실시간으로 적절하게 화면으로 뿌려지는데 개인적으로 저장영상을 무대에 플레이하는걸 싫어하지만
이번은 획기적이라 해야 할지 단순히 막 찍는걸 그냥 보여주는게 아니라 잘 짜여진 동선 그대로
연출이 원하는 그림을 그대로 만들어가는듯, 관객은 영상이나 무대의 배우들이 하나된 공연을 보는듯
거슬림 없는 훌륭한 무대를 만드는걸 보면서 감탄을 안할 수 없었다. 특히 흑백으로 표현되는 영상은 그 특유의
자극적으로 부각되는 표현은 일반 무대의 배우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인물의 이중적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할할수 있다.
다만 카메라맨이 기계를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 갔다 하니 시선을 빼앗기는거 같아서 좀 그렇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하고 창의적 연출을 본거 같은 뿌뜻함? 기분좋음? 대충 그런느낌이긴 한데

문제는 내용이겠지..

구성이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매력이 넘치지만 3시간 가까운 공연이라면 내용도 중요하지 않겠나..

심청전 배경엔 분명 인신공양이 있었던 무지한 세계였을것이다.
왕과 함께 죽는 순장도 조선이전에 있었을정도였으니 인류 역사 한 1~2백년만 앞서가면 얼마나 미개한 생태계였는지
단번에 알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 인신공양은 대부분 여자아이, 갓난아기등을 했다는 것이다.
(여아를 주로 했던것은 아무래도 전쟁으로 남자수가 부족하고 성인여자는 출산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니 그런것이 아닌가생각됨)

아무리 그렇다고 지금 시대의 여자 아이들이 떼로 웃으면서 나오고(거의 백명은 되보임) 나중에 심청이가 죽고 다시 살아났을때도
떼로 서있는 장면은 뭔가 섬뜩하다. 특히 초입부분에 아이들이 막 웃을땐 공포심마져 들던데 일부 중년 여성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귀엽다고 좋아하지만 나는 왜 공포심으로 다가왔을까? 인위적 웃음소리를 떼로 들어서 그런것인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웃어서 그런가?
물론 나는 저 웃음을 공감못한다. 심청이의 추정나이는 15세정도로 중학생정도인데 저 아이들은 누가봐도 초등생들이니
심청이 나이 15세면 그 시기 기준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로 예전 환경으론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시기라서 아이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데
저 기괴한 아이들의 설정은 무엇일까? 작가가 당시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를 착각하는것인가? 꼬맹이 철부지 아이의 심청이를 생각하는것인가?

그리고 현대의상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심청이의 어머니(곽씨)가 돌아가셨을때 마피아, 조폭같은 의상은 뭐지?
심학규가 엄청 잘 사는 조폭인가?싶었다. 그런데 조폭같은 사람들은 심학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상가집에 온 사람들인데 한국사회에서 상가집에 방문한 사람들의 태도가 저렇다고?
어디서 조폭영화만 잔뜩 보고 온것일까? 이 연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심청전이 무슨 전쟁, 스릴러, 폭력물인줄 착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심학규가 심청이 젖동냥할때 정말 무서웠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여자들이 저고리 한쪽을 모두 풀어해치고 무표정하게 서있다.
그것도 수십명이.. 마치 자신은 젖동냥하는 마네킹인냥.. 그래서 더욱더 심봉사가 조폭 두목이고 저 여자들은 어떠한 환경으로
억지 젖동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식했다. 물론 그것과는 관계없는 나만의 오산같다.
이런 전위적이며 추상적인 장르의 특징인 작가가 꼴리는대로 설명하니 좀 거북스럽고 이해가 안되는것은 필수인가. 이런것을 파격이라 하면..
심청이가 심봉사를 이용해 돈벌고 장기 팔고 흥청망청 사는 내용으로 바꿔놔도 파격이라 포장하겠지.

현대적 해석은 일단 고전의 내용을 충실히 하면서 현대인들의 시각을 가미해서 재해석해야 하는데 이렇게 비꼬아놓고 해석을 달리했다는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이 작가 작품중 '점찌고 옹녀'를 봐도 여성주의적(페미니즘) 시각으로 좀 이상하게 꼬아놔서 비주얼은 좋아도 막상 내용은
별로였는데 이 작가의 특징인지..(작가마다 뷰에 몰빵하고 내용은 겉치레에 불과한 사람도 있고 반대인 사람도 있고)

아무튼 이상한 오해를 받을수 있는 충분함이 있다.

그리고 장승상댁 부인은 무슨 매춘부 알선하는 사람처럼 묘사하는건 왜일까. 조폭 느아르를 만들고 싶었던거인지도 모르겠다.
선인을 악인으로 바꿔놓는것이 현시대의 시선이란소린지
아마도 이부분은 심청이가 막판에 만신창이가 되니 그 일환으로 장승상댁도 그런 주변인물로 바꿔놓은것일수 있긴 하지만
이럴바엔 '심청'이란 제목을 쓰지 말던가. 이게 이렇게 되면 심청전 원전대로 만들어지는 공연을 볼때 색안경이 씌어지지 않겠나.
선악이 갈리는 장르는 아니지만 묘사된 인물의 성품에 색이 있다면 그 성향은 바꿔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가 문제 됬던것은 수많은 사람 중 소수가 미화된 혹은 악화된 것을 그대로 받아드려 사회 문제가 될수 있기때문 아니었나)

그리고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수 있다고 얘기했던 화주승을 거의 악의 화신처럼 그려놓고 있다.
공양미 이야기 자체가 가스라이팅해서 자신의 딸을 사창가(장기 매매인가?) 같은곳에 팔라고 강요하는듯한 나쁜놈의 우두머리처럼 그리고 표현한다.
이름이 요나김(김요나라고 한국 이름표기법대로 사용하는것도 아니고 외국 방식대로 했다는것은 자신은 한국인이 아니라는것을 표현한것일텐데
한국사람 껍떼기를 한 외국인인가? 글로벌시대에 이런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사람인척 하면서 뒷구멍으로 한국 욕하고
자신의 이익추구만을 일삼는 매국노들이 문제지)이던데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오는건 나의 선입견때문일거 같다.
(찾아보면 요나는 남자 세레명이라 하던데 이분은 여성 아닌가?)

전체 배경이 조선시대 어떤 효를 강요하듯 꾸며낸듯한 이런 내용이 아닌
거친 배경에서 생존을 위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 악마화 된 종교인이 없을리는 없겠지만
심청전에서 화주승이 갖는 의미는 종교에 대한 어떤 망상같은 성찰과 거짓 능력 등이 부각되는 주된 장면으로서
서유기에서 멍청해보이는 삼장법사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상징성과 비슷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인데
시정잡배, 사기꾼따위로 만들어 놨다는것은 기독교의 에반겔리즘(복음주의)으로 비롯된 배타주의의 파생이 아닐까?
'너네가 믿는 저 종교의 뒷모습은 이렇게 추악한 사탄과 같은 존재다~'라는것을 우회하여 비꼬듯

화주승때문에 심청이는 인당수에서 죽게 되는데 문제는 이로인해 다시 살아나고 황후(조선시대에 황후가 있나?)가 된다는
온갖 설화를 막 가져온듯한 이상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전체 뼈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고?
그것도 사상적 뼈대가 되는 불교와 도교의 자비롭고 신비로웠던 세계를 개깡패같은 놈으로?

작금의 한국은 이상한 미신에 휘둘려 나라가 개판일보직전까지 몰렸다가 한국 민중들께서 합심해서 간신히 위기를 되돌려놓은 상황이니
종교의 폐해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렇다면 고전을 현대물로 재해석하는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신작을 만들어야지
멀쩡히 있는 과거로부터 사랑받아왔던 한국인 정서에 잘 부합하는(아비가 딸을 파는것 말고) 내용을 가지고 와서 썩어버린 사회에서 치유되지 못하게
만들어놓는것은 어떤 저의가 있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이 공연을 본 사람은 앞으로 심청전을 효녀심청이로 볼 수 있을까?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살리에르를 천하에 못된놈으로 바꿔버렸는데(아무리 영화적 허용이라해도 이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효자,효녀란게 과거에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부모님을 공양했다는 것이 지금 통용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판소리 심청가는 전체적으로 보면 좀 해학스럽다.
심청이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남편을 극진히 모시고 심청을 낳았지만 딸이라서 좀 서운해 하기도 하고
(심학규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심학규가 봉사기때문에 부귀영화도 힘든 상황)

심청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대목은 무척 슬프다만 이 후부터는 심학규와 심청이의 부녀지간 사이도 적당한 그냥 형편 어려운 가정이었다.
딸자식을 어떤 꾀임에 빠져 300석에 팔았다손 치더라도 황당한건 생각보다 심학규의 삶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는것
뺑덕어멈과 동거를 할때도 딸 팔아 공양 후 남은 돈으로 적당히 잘 먹고 잘 살다가 돈이 거의 떨어질 무렵에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져 죽다가 살아나 용궁에서 엄마도 보고 착하게 살았다고 황후가 되서 맹인잔치를 열고 각 고을에선 돈을 줘가며 잔치에 보내니
심학규 입장에는 땡큐 아닌가?

제일 특이한건 심학규는 맹인잔치에 가면서 뺑덕어멈을 잃었지만 홀로가면서 여인네들 일좀 도와주며 밥,고기 등 얻어먹고
옷을 홀라당 잃어버렸음에도 기지를 발휘해 옷, 노잣돈, 담배(당시엔 비쌌다고 함)도 얻는등 웃기게도 좀 황당한 호사를 누린다.
게다가 안씨를 만나서 결과적으론 재혼까지 하게 되는데 안씨는 부자기도 하다. 아마도 심청전에서 승자는 심학규가 아닐까싶을정도

심청전의 특징은 웬만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게 끝난다는 것.
심청가, 춘향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이런 한국 공연문화를 보면 한놈만 완벽하게 나쁜놈을 만드는 경향을 보긴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다같이 조화롭게 잘 살아간다는 황당한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특정 종교적 시선이 가미되면 선악이 확실하게 구분되면서 중간에 선을 딱! 그어놓으려 애쓴다.
이번 '심청' 창극을 꼭 그렇게 볼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3시간 남짓되는 동안 해학은 어디에도 없고
우울하고 암울하며 더럽고 추악하다. 영화 '베트맨'의 고담시티나 영화 '씬시티'같이 디스토피아도 아니고 유토피아도 아닌
못된짓을 하면 적당히 밥은 먹고 살거 같은 세상이랄까?

왜곡된 섹스어필, 이런 배경이라면 당연히 필요하겠지. 괴기스러운 여자들, 북에 피는 왜 발라놓은것일까?
이럴때 피는 여자의 그것을 상징하긴 하는데 그것이 맞을까?

오늘 콘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퇴근 후 3시간동안 졸음따위는 개나 줘버린 몰입력 끝장나는 창극이었으나
무엇인가 가슴한편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있다는것은 전위예술의 특징이려나.. 신선함은 최고인데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걸까..
재미있는지 없는지 가늠하기엔 어려우니 두어번은 더 봐봐야 할듯

그런데 심학규 주변엔 왜 조폭밖에 없는것일까?

출연 :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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