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0일 일요일

연극 -갱更-

 

갱생, 갱신 이런류의 다시 한다는 의미의 갱
그런데 갱년기의 갱자도 같은 한자라일거란 생각은 못했다. 새로워진다는 의미도 있으니 그런가보다하면 되겠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은 좀 특이한 점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로 좌석 번호가 없다. 충분히 있을법한 신식 건뭉의 구조인데 없다. 그래서 선착순이라 일찍가서 기다려야 한다.
두번째로 티켓을 받으면 극장 입구(지하)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줄을 서게 만든다. 이게 다 좌석 번호가 없기때문인데
줄 서는걸 극장주인이 좋아하나?
일찍 가지 않아도 자리가 천천히 차서 정중앙 앞자리를 앉을게 아니라면 왠만해서 시간에 구애받진 않는데
아무튼 규모에 비하면 별로인 시스템이다.

그리고 의자도 접이식같은 간이의자 비스므리한 철재의자다. 그렇게 불편한건 아니지만 아무튼 별로
좌우로 엄청 길어서 관객석을 중앙무대를 기준으로 무대 앞뒤로 쪼개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이 그렇다.
참 싫어하는 구조다. 배우들의 뒷통수를 보며 대사를 듣는건 언제 봐도 적응이 안되고 별로다.

이것때문인지 관객들의 프라이버시때문에 빈무대 촬영 안되고 커튼콜도 촬영이 안된다고 한다.
뭐 사진 찍었는데 그 뒤 어두컴컴한곳에 귀신들처럼 관객들이 사진에 배경으로 깔리는것도 좀 무섭긴 하다.
구조적인 단점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습도를 맞춰주는 공조기(항온항습)가 가동되는데 가습기가 초음파 가습기같이 물 분자를 뿌린다.
그래서 그곳과 가깝기라도 하면 안경쓴 나로서는 치명적일수 있다.
이런 후진 공조시스템을 본다는건 참. 보통은 완전 기화된 공기로 습기를 맞추는데

또한 생수기가 설치 되어 있지 않다. 자판기에서 물을 사먹어야 한다. 오늘같이 습한날은 짧은 거리라도 잠시 땀이 나서
물 한모금 정도 생각나는데 마실수가 없다. 자판기 물은 다 먹기도 모하고 버리기도 그렇고 가방에 넣고 다니자니 번잡스럽다.

시설좋은 낙후된 소극장 같은 느낌이랄까?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서
초중반까지는 세대간의 인식과 표현과 시대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줄 알았다.
아버지(천태)와 딸(금옥), 딸(금옥)의 딸(피영), 그리고 할아버지(천태)와 손녀(피영)

아버지는 딸을 고아원에 맏겼다는 설정 같아보인다.
일터에서 팔 한쪽을 잃고 키우기 막막해서 좋은 집에 입양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고아원에 보낸거 같다.
부모로서 자식을 책임지기 어렵다고 판단이 된다면 차선책을 택할수도 있긴 하지만
이때 자식이 받는 불안감, 고통, 괴로움, 외로움 같은 감정도 크기때문에 서로간의 갈등의 깊이는 큰듯 싶으면서도
산재보상으로 돈을 받은 아버지는 딸에게 모두 주고 딸에게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되지만
손녀는 못마땅하다. 엄마가 그동안 큰 고통을 받고 살아왔다는 거 같음.(남편에게 폭행을 받았다는 설정같음)

두 세대간의 골은 매우 깊어보이는데 왜 깊은지는 모르겠다.

할아버지때문에 엄마가 남편의 폭행을 견딘것도 아니고 엄밀히 따지만 딸인 피영때문에 엄마가 모두 참고 인내한것인데
보면서도 답답하다고 할까? 하지만 중간에 낀 엄마는 아버지에게도 딸에게도 화 한번 제대로 못내며
참고 사는 모습에서 너무 마음이 아파왔다.
아버지는 이미 병을 얻었고 딸은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만을 전달하며 엄마의 살을 파먹는다.
(살모사도 아니고 자식을 먹고 부모를 먹고. 이런 문학적 표현을 잘 쓰나? 등골브레이커는 좀 유행이지만)

어쩌면 부모는 자식에게 먹히는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처럼 약간은 극단적으로 꾸며놓은 연극을 보며
착잡하고 답답하고 뭉클함 때문에 온간 감정을 모두 토해내는 피영에게는 상대적으로 별다른 연민이나 감정이
이입되거나 동화되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시대의 전형적인 노령층의 안좋은면을 모두 지니고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선 사랑하는 딸이 있다. 물론 이것도 과거(치매)의 산물이고 현재를 살아갈순 없는 상태기때문에
그렇게 측은하거나 암울하거나 허무하거나 한것 또한 별로 없었다. 발음이 썩 좋지 않은 설정때문에 알아듣기도 쉽지 않았고.
노인들의 현실을 어느정도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허무주의에 빠져들수 있는 위험성이 있긴 한데
이 연극에선 그런점 역시 표현되지는 않는다.
(왜 싯달타가 노병사를 깨달았는지 그리고 출가했는지 암수술이라는 절망에 찬 기분으로 다인실 병실에 누워있어보면
직접적으로 모든것을 느낄수 있다. 내가 이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오는데 거의 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도 완전한건 아니다.)

여기서 갱년기에 대해 은연 중 계속 비추는데 왜 일까? 여성에게 갱년기는 새로운 삶을 뜻하는걸까?
그럴순 있겠지. 근 40년간의 굴래에서 벗어날수 있고 한편으론 생물학적 여성성을 벗어던지는것일수도 있으니
하지만 이것이 어떤 시작을 알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갱년기를 겪을수 없기때문일텐데
이건 젊은 여자들도 크게 다를거 같진 않다.

가끔은 전위적 표현들도 좀 나오긴 하는데 그렇게 대수롭진 않고
주변인물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좀 간결하다고 해야 하나 한 사람의 손이 완전히 망가졌는데
그것을 옆에서 목도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 치고는 너무 담담했다. 자신들만의 신념은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의 인식을 대변하는 역할일텐데 그에 반해 큰 갈등이 없다는게 요즘 세대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나타낸것인지 어려운 삶을 나타낸건지 작가가 귀찮았던건지

전체적으로 많은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게 과장되고 강렬하게 표현되지만 처음 말한대로
세대간 인식과 표현의 차이, 시대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세대간 갈등 이런것은 아닌
이 가정만의 독특한(흔하지 않은?)은 사건과 쉽게 볼 수 없는 감정표현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연극이지만
엄마(금옥)의 삶이 인간적이며 서글프고 고통스럽게 보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아름답게 보인 연극이었다.

출연 : 강혜련, 공상아, 곽영현, 김은희, 이주협, 조하석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조주선 춘향가(김세종제)-

 

어느때부터였지? 하루 세시간에서 여섯시간이나 되는 완창판소리공연이 힘들지 않게 느껴진 후부터였을까?
슬슬 품질을 생각하게 된다. 내 주제에? 가사도 제대로 이해 못하면서?
장단도 모르는데? 무슨 품질? 그래도 슬슬 느껴지긴 한다. 그렇다고 평생공부해서 일가를 이룬 저들을 품평 한다는건
예의에도 어긋나고 맞지 않아보이긴 하는데 오늘은 조금 몇 마디 하고 싶어진다.

조주선 명창의 목소리나 발음 같은것은 매우 훌륭하다. 그래서 초반 이후 점점 더 기대가 되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발음이 엉망인 창자도 많고 가사집을 봐도 못 알아듣겠는 사람들이 이 분야엔 참 많다.

조주선명창은 목에 힘과 여유가 묻어나온다. 힘든 대목에서도 여유롭고 호기롭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인물들의 표현과 특징도 잘 살려서 보는 맛까지 뛰어난 훌륭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 이리도 많이 건너뛰는건가?다. 처음엔 콘디션이 안좋은가?싶었지만
소리를 끝까지 뛰어난 기세로 몰아붙이는걸 봐서는 몇시간을 혼자서 노래하고 연기하려면
보통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일테니 대사(가사)를 까먹는 일은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건너뛰는 경향이 좀 많았다.
건더뛴다고 해도 4시간(20분쉬는시간포함) 가량을 소리했지만 김세종제가 6시간짜리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애초에 기획된것도 4시간30분정도를 기획하고 있었던거 같은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짤린 대목들이 많다.

6시간짜리가 4시간이하로 줄어들면 완창이라고 해야 하는건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춘향가는 너무 인기가 있는 판소리라서 이렇게 길어졌다고 한다.
다른것들은 4시간 이내에 끝나는거 같다. 공연예술이니 초창기 내용은 1시간정도 되는것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싶지만
아무튼 지금은 6시간이나 되는 황당한 공연인데 3분의1이나 잘라낸것은 개개인 사정에 따라 그럴수 있다고 보지만
내용 흐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가위질 당한듯 툭!툭! 끊기는 기분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잘 보다가 갑자기 응? 이란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사라질만 하면 응?의 반복
무엇인가 리듬이 계속 끊기고 대사가 끊기는것도 초반을 제외하곤 알게모르게 계속 잘려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든다는것은 기획되지 않게 잘렸다는 소리일 수 있다.
공연 전에 기획되었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장치들이 들어가 있을텐데 전혀 그런게 없었기때문에
춘향가를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쉽사리 느낄수 있을것이다. (내가 판소리 다섯바탕 중 유일하게 음반으로 자주 듣는게 춘향가)
초반의 기대와 다르게 뭉게지는 발음. 하지만 목의 힘은 그대로 살아있다는것은 참 특이하다.
그리고 조주선 명창은 목이 풀린 상태로 나온것마냥 처음과 끝의 음색이 크게 변화가 없이 좋은 콘디션을 보여주는데
이부분에서만큼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몇시간을 동일한 목 콘디션을 유지한다는건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됨)

춘향가는 들을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오늘은 거의 그러지 못했다.
조주선 명창때문이 아니라 공연기획때문인데 관객석을 무대와 큰 차이 없는 조도를 유지하는 이상한짓을 했다.
그래서 주변에 꼼지락 거리는 것들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와서 엄청 산만하다.
주변이 밝아졌으니 다들 가사집에 몰두를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얼마나 멍청한 선택인가. 훤하게 밝으니 구입한 가사집을 안볼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건너뛰고 바뀌고 하는통에 과연 제대로 읽으며 따라갈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 다들 가사집을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
어떤 노인은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고(한참을 지나야 관계자가 나타나서 보면 안된다고 제재)
재미 없으면 그냥 나가서 편한 의자에 앉아 전화기나 쳐다보다가 집에가지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건지
어떤 사람은 뭘 그리도 열심히 적고 있는지.

판소리가 관객과 상호 작용이 필요한 한국 고유의 공연방식이지만
관객석에 조명이 켜져는 순간 관객들은 웅성웅성거릴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냥 거리공연을 보지 뭐하러 이런 공연장을 오겠다.
오로시 공연자에게 집중하기 위해 이런 공연장이 있는거 아닌가? 그런데 관객석 조명을 켜버리는 빙신짓을 해대니 이 모양이 되지.

오늘 공연은 차마 자막을 제발 달아달라고 말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자막이 중앙 뒷벽에 나왔더라면
적어도 관객들이 고개 쳐박고 가사집에 몰두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실내전통 공연에 바리에이션은 주지말자. 추임세는 이제 어렵고 어색한 시대다.
전공자들도 많이 오던데 그들이 추임세를 좀 넣어서 흥만 좀 돋궈주는 정도에서 끝내자
가사집은 집에서 천천히 읽어볼 수 있도록 공연장 관객석은 철저히 어둡게
그리고 휴대폰으로 놀고있는 사람 있으면 재빠르게 바로 제재좀 하고
가급적 가사집을 팔지 말고 무대 중앙에 가사를 표기하자. 얘네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려는건지.

소리 : 조주선
고수 : 조용안, 조용복




2026년 9월 13일 일요일

연극 -외경(外經)-

 

오랜만에 엄청나게 집중하게 만드는 연극을 봤다.
이런것을 보면 뒷끝이 썩 좋지 않고 정신도 피곤하고 막상 집에와서 관람기를 써보려 하면
기억나는게 없다가 어느순간 기억나지만 이미 의미 없는 시간

외경(Apocrypha)은 기독교 성경에서 나오는 정식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을 말한다고 한다.
성경을 편찬할때 수많은 자료들 중 필요한것은 넣고 맞지 않는것은 빼서 성서로서 가치를 만들기 위함일텐데
아무래도 당시 사회적, 역사적, 시기적 힘에 따라 정해졌을거라는것이 중론이다.

그렇다고 오늘 나온 내용이 외경의 한 부분인것은 아닌거 같다.
집에 오자마자 어떤 내용을 모티브로 한것인지 한참을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는걸 봐서는
기본 배경은 아담과 하와, 유다(?)도 나오는 신화적인 그 시대. 수백년이 흐른뒤 예수가 나온다는 말도 외경에 나온다곤 하지만
이런건 귀에 걸고 코에 걸고 막 걸어대며 눈을 흐리게 만드는 설정일뿐 연극에선 별다른 언급조차 없다.
(유다가 나오니 비슷한건가?)

배경만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네모난 어떤 공간에 갖혀서 참회하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아담은 참회하며 마른땅에 씨앗을 심지만 하와는 그러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성경같은것은 없다.
정확하게 인간의 내면만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부분 부터 심각하게 집중하지 않으면 많은것을 잃기도 한다.

부부로서 동반자로서 하지만 한 사람의 실수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에 대한 회한, 원망 등이 서로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환경도 좋지 않은 뙤약볕의 마른 사각 공간이니 아담은 은연 중 원죄에 대한 원인을 이야기 하고
하와는 그것의 본의는 서로 잘 되기 위함이고 모두 (뱀->하와, 하와->아담)승락했는데
그것을 자신의 책임인냥 말하는 것에 서운함을 토로한다.

삶에서 원죄에 대한 갈등으로 부부, 연인, 친구 등 인간 관계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매우 보편적인 사건들인데 이것의 묘사를 치밀하고 집요하게 진행된다.

두번째 장에서는 갑자기 뱀(사탄)이 나타나서 아담을 설득한다.(사탄이 아담을 계속해서 괴롭혔다고 함)
죄악 시 되었던 관례에 대한 항변같다고 할까?
결국 아담은 그 꼬임에 넘어가는듯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 본성에 대한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다.
뱀을 품에 안을정도로 포용력 있다는 것을 신께 알리면서도 내부적으론 자신이 원하는(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것을
취하기 위해 신 야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이중성을 보인다. 영화 메트릭스의 사이퍼같다고 해야 하나?
본성과도 같은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재를 바꿔가며 이어지는데
이렇게 뱀이 몸에 들어갔으나 신은 그를 보지 않는다. 그로인해 몸은 망가지고 있다고 한다.
(뱀이 뜯어먹고 있다고 표현하는데 자신의 탐욕적 이기심이 자신을 좀먹는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드렸음)
점차 팔과 다리가 사라지고 얼굴이 망가지고

여기서 두루미(?)가 나타는데 두루미의 상징성은 모르겠다. (문학적 의미로 봐도 특별히 어울리는 상황은 없어서 행운정도?)
두루미의 이름을 아담이 지어줬다고 해서 이런 내용이 성경이나 다른 자료에 나온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두루미는 분명히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로서 실존적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되었기때문에
아담이 구해달라는것을 무시하고 떠날순 없었다. (도덕경 1장과는 다소 상반되는 개념으로 봐도 되려나)

외적 힘으로 내면적 지향점을 뒤집어 놓을수 있다는것에서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지만(중국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뱀이 빠져나가면서 아담의 몸에 독을 넣어놔서 독이 퍼진 상태로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 두루미에게 간곡히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데
마지못해 알려준다. 흰 새 다섯마리를 먹으면 여차저차해서 치유 완료
흰새라는 대목에서 알겠지만 여기서 인간의 어리석음이 다시 발동된다.
하와가 등장하지만 아담을 설득해 순교?(고?) 하고 두루미를 풀어준다. 그리고 하와는 자식에게 아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그 동안 한이 쌓인 두루미는 자신의 한을 하와에게 푼다????

원죄. 카르마, 업 이런것은 생각보다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에 가까운데 그것도 기독교보다는 불교에 가깝다.

전체적인 흐름은 업을 쌓아가는 인류를 표현하여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이 떠오르고
실존주의적 가치에 대해 빗겨가듯 스치는 현실적으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식일수도
약간 좁게 봐서 한국 사회에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종교적 관점보다는
종교화 되었지만 모두들 외면하는 척 하는 외경의 한 단락으로 표현된것이 아닌가도 싶은 독특한 연극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치밀한 전개 그리고 잘 짜여진 구성과 연출
엄청난 연극 한편을 본거 같다. 하지만 오늘이 끝이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런지.

출연 : 김영민, 광성은, 이강민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9월 12일 토요일

창극 -독갑이댁 수레노래-

 

지난주에 이어 두번때 창극이다. 하반기에는 이런식으로 열편정도? 판소리 다섯편정도?
아마도 이정도 선에서 국악은 끝날듯 싶다. 이렇게 몰아서 볼 이유는 없는데 열편 일괄 할인하는
국립극장의 횡포때문에 어쩔수 없이 저렴하게 열편을 보게 된것이 좋을수도 아니면 부담스러울수도

독갑이댁? 누구누구댁이라 하면 자식중에 독갑이가 있다는 소리 아닌가? 있었나? 없었던거 같은데.
창극이라서 모두들 국악을 한다. 민요풍은 아니고 대부분 판소리 스타일로 한다.

창극이니 거칠거칠 핏줄 터질거 같이 그렇게 구성을 해야 하는건가
(민요스타일로 만들면 민요극이라 불러야 하나)

총 여덟마당으로 구성되어 처음 망량과 이매(이들은 누구지?)가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첫째마당(1막)에 독갑이댁이 지리산에 들어오는것부터 시작하는데
열댓명의 자식을 낳았다는데 모두들 왕,장군,부장군등이 되서 서로들 싸우고 있다고들 한다.
(이게 무슨 경울까? 무슨 상황이지? 남북-한민족-이 서로 지리산에서 싸우고 있는것을 의미했던건가?)

지리산이란 곳이 한국전쟁때 빨치산토벌작전이라 해서 잔존북학군과 엄청난 전투를 벌였던곳
전라도는 조선시대에서 약탈의 대상이기도 했던곳인데 평야지대니 전쟁이 나면 표적이 되는것은 당연했을테니
한이 오죽 많았을까싶기도 하고 5.18 민주항쟁도 전라도 광주에서 벌어진 참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전라도가 많은 피해를 입은건지 다른지역도 비슷한데 알려지지 않은건지
아무튼 예술적특징으로 한 맽힌 절규에 가까운 노래 스타일과 가사들은 그 지역 역사가 어땠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공연예술이다보니 관객과 공감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천천히 몇날 며칠 곱씹을수 있는 영화나 책과는 다르게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돌이킬수 없는 이런 공연의 특징상 쉬우면서 지루하지 않고
요점을 정확하게 그리고 불필효하게 감정을 소모시키지 않아야 한다.
헌데 이번 독갑이댁이란 작품은 최고조로 절규하듯 나오는 피날레 아닌 피날레를 100분간 지속한다?

지리산과 남원에 외부 세력이 침략해 들어오는 통에 살기 힘들어 절규
지리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막고 서있는 강도들때문에 절규
(첫째 마당에서 화선이와 억득이의 노래는 매우 신선하고 너무 좋았어서 기억에 남지만 이 창극의 전부라는게 안타깝다.)
이무기에 자식들이 모두 잡혀 먹혀서 절규
이무기가 아파서 절규.
황당하게 이무기가 막내아들이어서 절규
이무기(막내아들)을 죽음(승천)으로 부모로서의 절규
화선이가 억득이를 만났지만 헤어지므로 절규(헤어진건지 죽은건지 모르겠음)
독갑이댁이 지리산에 절을 짓고 화선이를 떠나는 대목에서 절규

판소리를 들으면 기승전결이 분명히 있고 감정의 고저, 기복, 리듬, 흐름이 있기때문에 감정을 추수릴 시간이 있다.
그런데 '독갑이댁 수레노래'는 도대체가 감정을 추수릴 틈이 없이 절규 절규 절규.
중반부 부턴 저들의 절규가 소음으로 혹은 무감각으로 다가온다.

감정이란게 좋을때도 평화로운때도 때론 안정감 있게 어느때는 심박이 올라가도록 강렬한 흐름을 타기도 하고
생각할 여유나 눈물흘린 시간, 한숨도 좀 쉬고, 웃을땐 좀 웃는 등 여유가 있어야 될텐데
주마가책(走馬加鞭)말처럼 시종일관 미친듯이 달리기만 한다.
그래서 감정이 저 하늘 위에서 내려올줄 몰라서 순시간에 지쳐버린다. 배우들이야 각자 대목을 나눠서 자기 할걸 하면 되지만
관객들은 그 모든것을 한몸으로 다 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설사똥 싸듯 미친듯 뽑아내면 지쳐서 감정을 추스릴수가 있나.

어머니의 사랑은 좋다. 모성애는 동서고금과 모든 동물 세계에서 으뜸 아니던가.
창극에 신파가 늘 들어가는거 같긴 한데 좀 심하게 넣어있다.
툭하면 어머니의 사랑을 이용하여 눈물을 짜내는 최루성 신파는 좀 지양할때가 되지 않았나.
중후반부터는 분명히 착잡하고 슬프고 우울한 내용들이긴 한데 감정이 꽉! 닫혀버려서 감흥이 거의 없다.
엄밀히 보면 초반에 감정을 다 소신하게 만들어서 이 후 자극들에 반응하질 않는다. 그렇다고 지루한건 아니지만 감동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떼창 참 좋지만 이런건 피날레같은곳에서만 좀 쓰고 나머지는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도록
관객에게 호소하듯. 소리를 내지르지 말고 조곤조곤, 판소리다섯바탕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르기만 하는건 없지 않은가

다들 높은 경지의 배우들이라서 어떤 상황이던 고품격의 공연을 보여주는 분들인데
무엇인가 구성이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들지 않았나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화선이와 억득이의 노래는 정말 특이하고 신선하고 매력적이었고
이들의 장면에선 눈시울이 유독 뜨끈뜨끈해질정도로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사랑이야기 그런게 아니라 가사도 아름답고 음율도 좋고 감정도 좋고)

어머니의 사랑도 이렇게 어느정도 선을 좀 지키면 안되는 것일까.

출연 : 국립믹속국악원 외 많은 객원

2026년 9월 6일 일요일

창극 -옹옹옹-

 

난 이게 옹고집전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옹고집전은 TV에서도 아이들용으로 좀 있는거 같고
나도 봤던거 같은데(분명히 동화책같은것으로 알게 된건 아님)

판소리의 한바탕인데 전수되지 못해 필사본만 존재한다고 하니 크게 유명한 내용은 아닌듯 싶다.
내용도 보면 좀 아동용이랄까? 아무튼 우리가 하는 그 옹고집이 맞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는데 승을 못살게 굴어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보내고
자식 열명을 낳을동안 진짜 옹고집은 밖에서 거지꼴로 고생 고생하며 다니는데
어느정도 후엔 깨달음을 얻긴 하는데 엔딩이 좀 오묘하다. 미스테리?
원작 내용은 해피엔딩인데 이 창극은 왜 해피엔딩같지만 전위적인 오픈엔딩을 만들어 넣었다.
이부분에서 가족 연극이라 하기엔 좀(여러 연령이 섞인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으려나?)

이 작품은 수화를 해서 청각에 문제가 있는 분들을 위해 배려한다. 그런데.
수화하는 분이 배우 한명마다 붙어있다. 다시 말해서 출연하는 배우가 다섯명인데 수어통역사가 다섯명
그래서 총 열명. 그리고 이 수어통역사도 배우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연기를 한다. 그래서 수어통역사만
봐도 될 정도이고 나도 어느순간 수어통역사만 보고 있을때도 있었다. 또한 마침내 자막을 무대 중간에
설치해서 자막을 표기한다. 물론 좌우에도 함께 나온다. 그래서 배우가 연기하는 위치에서 편하게 자막을 볼 수 있다.
어차피 같은 자막이니 중간에 모니터 한개 더 달면 될뿐인 어렵지 않은 이것을 이제서야 실현된다는것은 한편으로 아쉽지만
그대로 지금이라도 되었다는게 무엇인가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 되는거 같아 기분좋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계속 이런식으로 자막이 나오면 좋을텐데 특히 판소리분야는 정말 필요한 장치다.

보는 내내 오묘한 기분이 드는 작품인데 뭔가 B급 냄새가 물씬 풍기면서도 구성이나 연기는 최상이라는것
B급 코미디 영화같은걸 보면 좀 황당하고 엉성하고 난대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주성치 영화 작품들을 보면 좀 황당하지만 감동이 있다.
이 옹옹옹은 이것과 더불어 공연예술에서 보여줄수 있는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설정이 좀 음음음..

아예 확실하게 병맛 B급 고전 코미디면 그냥 허허허 웃다가 나오면 되는데
노래, 춤, 연기, 심지어 무대구성 모든것이 훌륭하다. 국립극장의 뛰어난 음향까지 함께하니 더욱더 맛이 살아난다.
코미디에서 헉! 뭐지?! 허허허 하는 무엇인가. 막 웃기도, 안웃기도 이상한 마음을 열었지만 눈치보이는?
하지만 저들 모든 배우와 통역사들은 너무 열정적이며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100분 내내 그랬다.
그래서 분명히 코미디 장르고 기획한거 같긴 한데
남녀노소 모두를 타켓으로 한거 같긴 한데
가족이 함께 볼순 있는건가? 뭔가 아리까리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게된다. ^_^;;;
그리고 노래에 맞춰 흥이 올라가면 박수도 치고 그러는데
어떤건 손을 좌우로 흔들어야 할거 같은 노래(발라드? 트롯? 민요?는 아니지만)도 있고(박수가 결코 어울리지 않음 -.-;)
또 다른건 헤드뱅은 아니지만 랩퍼들과 같이 리듬을 타야 할거 같은 노래도 나온다.
모든 세대를 넘나들다보니 웃다가 뻘쭘, 슬프려다가 멍~
그렇지만 역시 흥의 민족이라 그런지 흥겨운(가사 내용은 비록 씁쓸하더라도)노래에선 모두들 환호한다.

노래가 많기때문에 이런것에 걸맞는 추임세(박수? 손을 흔듬?)가 필요한거 같은데
이럴때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같이 해달라고 몸짓을 해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수많은 관객, 배우들 모두 함께하길 바랬을텐데 낯설은 리듬에선 섣불리 손이 올라가긴 어려우니)

추석 연휴 같은때 기획극로 제법 잘 어울릴거 같은데 왜 지금 한것인지 모르겠다만.
B급 코믹,스릴러, 멜로(?), 휴먼, 미스테리를 특급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어올린 엄청난 창극이었다.
그리고 수화통역사들의 진진한 연기가 사람 미치게 긴장하게 만드니 반드시 주의깊게 봐야 한다.
(왜 그들은 그리도 진진한 연기를 하시는지)

주모의 노래도 좋고 춤들도 좋고 가을날씨도 좋은 많은것이 적당하게 잘 어울리는 극이었다.

그런데 이건 창극은 아닌거 같은데.. 그냥 현대적 음악극이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출연 : 김솔지, 김유남, 류세일, 지혜연, 추다혜
수어통영사 : 남수현, 심다은, 윤미숙, 정지현, 조유나
연주 : 권효창, 남성훈, 지쿠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연극 -늙지 않는 마음-

 

마음이 늙지 않는다는게 무엇일까? 철학적인듯 싶으면서도 별 얘기 아닌듯 하기도 하고
연극에서 사람의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낮춰서 장수하게 하는 '저속 노화 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한 남녀가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본인들은 돈이 없으니 한 사람 10년동안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은 돈을 벌고
10년 후엔 교대하는 뭐 그런 시작이다. (왜 같이 10년간 벌어서 10년간 들어갈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

신기한것은 10년이란 시간동안 한쪽은 많이 늙고 센터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거의 안늙는다는것
그래서 10년 이상의 외모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한쪽은 일을 해야 하기때문에 대인과 사회에 대한 모든
제약과 규약을 따라야 하기때문에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반면 센터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생활하는 사람은
시간이 멈춘듯 매일 매일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오직 오래 살기 위한 생활만을 한다. (이건 사람의 생활이라 할 수 있나?)
이 연극의 전개는 이곳에서 이미 깨진거 같다.
인간이란 존재가 태어나서부터 쳇바퀴 돌 듯 살아왔던것도 아니고 이미 젊은 시절은 일반 세상에서 살다가
갑자기 안락한 센터에서 수명연장만을 위한 무료한 삶을 살아갈수 있다고? 이 부분에서 이미 오류로 시작한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티 조차 없다. 왜냐하면 사람간의 대화는 스트레스가 발생할수 있기때문이라나
그러면 수명이 줄어드니까. (이런 기술이면 차라리 냉동 수면이 나은거 아닌가? 어차피 살아간다고 말할수 없는 상황인데)

SF라고 하기엔 당위성같은게 좀, 자연스럽지도 않다.
설사 센터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한다면 과연 그 곳을 나올 수 있을까?
강과 현의 관계는 어떤 사이길래 10년 동안 하루에 일을 세가지나 해줄수 있는거지?
사랑하는 사이를 이렇게 오래 지속할수 있다? 둘다 동일하게?
그리고 10년 후 과감히 센터에 나와 상대를 위해 10년간 미친듯 일을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너무 예외적 사건이 아닌가?
보편적이면서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 애초 시작부터 극단적인 상황으로 시작하니 도무지 납득도 안되고 공감도 안된다.
서로 사랑하니까로 모두 퉁치는 기분. 작가는 사랑이란 소재를 이용하면 인간에게서 신적인 포용력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그것도 수십년이란 시간을. 이 저속 노화센터가 참 좋은게 늙어진 사람도 들어가면 다시 젊어지는지 젊은 분이 나온다.

전체적인 줄거리나 소재는 SF라 하기에도 좀 민망하고
(SF는 허구-과학소설-를 바탕으로 하기때문에 엄청 치밀하게 설득해나가지 않으면 똥되는건 시간문제)
연인간의 감정 변화를 표면적인 노화라는 소재를 이용한것이라 보면 마음 편한듯 싶다.

바쁘고 고달픈 현대인들. 이들의 연예전선도 그다지 순탄한것은 아닐것이다.
서로 바라보는 마음이 같더라도 엄밀히 보면 완전한 타인이며 독립된 생활이 존재하기때문에
한쪽이 잠시 다른곳을 볼 수도, 상황에 따라선 다시 반대 상황이 될수도,
때때로 완전히 갈라질수도 있지만 본심은 그것이 아니니 그 오해를 서로 풀어가기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같은곳을 바라봤다고 해도 서로의 지향점의 갭은 점점 넓어질수밖에
결국 한쪽은 변화없는 지금의 삶에서 안주하는 삶을 택하고
다른 한쪽은 늙어 죽더라도 변화무쌍한 세상을 택한다. 자신이 먹던 빵을 위해, 그때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모든것들의 연속성엔 필연적으로 늙어버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필요하겠지.

인간의 지속적인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던지기때문에 곱씹어 볼 대목들이 좀 있긴 한데.
확실하게 와닿는 맛이 좀 떨어져서 깊게 새겨지질 못하는 아쉬움이 생겨서 한번만 봐서는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서 두번이상은
봐야 하는 연극이 아닌가 싶긴 한데 여러번 볼 만큼의 흥미로운 전개였냐가 문제라면 문제겠지.

요즘은 왜 이렇게 여러번 보고 싶어지는 연극들이 많아지는지.
연극 보는 횟수를 좀 줄여야 하는데 도무지 줄일수가 없네 에휴

출연 : 경지은, 권지숙, 김하람, 남명렬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



2026년 8월 30일 일요일

가무극 -청사초롱 불 밝혀라-

 

제목부터가 샤방샤방할거 같은 내용같다. 예매처를 들어가서 봐도
내용이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코믹멜로? 아니 그냥 코미디 장르
근데 내가 왜 이렇게 맨 앞자리를 예약했을까?
큰 극장에서 맨 앞자리는 무대바닥과 눈높이가 같아진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앞에서 두번째 줄이라는것에 안도한거 같은데 맨 앞자리는 없애고 거기까지 무대를 확장했기때문에
결국은 내가 맨 앞자리. 목이 아플거 같이 높은 무대
하지만 정동극장은 R,S,A,B,C석이 없다. 그냥 모두 동일한 가격
아마도 이렇게 좌석 등급이 있었더라도 이 개똥같은 자리는 R석이었겠지.
(요즘 좌석 등급이 실제론 가격올리는 수단일뿐)

좌석에 너무 큰 후회를 하다보니 연극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고 만석인것도 아니었는데
앞으론 극장마다 적당한 위치를 함께 적어놔야지 이런 실수를 안하지. 꼭 보고 싶었던 연극도 아니고.

극은 화려하게 시작한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특별히 기억남는 장면이 있다거나
감동스럽다거나 하진 않고 흥겹게 시작하고 흥겹게 끝난다.
중간에 살짝 껴있는 사건도 대수롭지 않을정도로 간소하게 끝이난다.
너무 싱그러울정도로 별 볼일 없이 끝나서 당황스럽긴 한데, 주된 관객 설정을 젊은쪽보단 장노년쪽인듯 싶은 기분이다.
그래서 효를 중시하는 내용과 약간은 억압받던 여성들의 삶도 좀 녹아있고
시대에 맞게 동성애 코미디도 코딱지만큼 섞여있다. 오히려 남녀간의 사랑은 거의 없다.

혼례에 대한 플레너 역할을 하는 업체 '청사초롱'이 배경인데 결혼은 막상 재혼 하는 부부 한쌍
초반에 결혼하는 부부 한쌍이 전부이고 재혼하는게 조선시대엔 금지됬다고 해서 몰래 하기 위한
계획을 하고 그 사이에 사건이 발생하고 뭐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들이다.
내용은 그렇다.

이렇게 단조로운 내용을 소재로 한 코미디라면 이제부터는 구성으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시작부터 분위기를 올리기 위해 양평과 가평 두 연인을 시작으로 주제가가 나온다.
관객의 기분을 올린 후 부턴 몰아부쳐야 하는데 그런 뒷심은 좀 부족한듯 맥이 끊긴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백분간인데 이 짧은 시간 관객들이 숨쉬기 힘들정도로 몰아붙이고 하얗게 불태우길 원했지만
나의 개인적인 바람일뿐이고 듬성 듬성 호흡이 느렸다 빨랐다 웃을만 하다가 힘을 풀다가해서
전체적으론 분명히 업!되어 있지만 쒼난다거나 하는 맛이 좀 부족했다.

맨 앞자리였기때문일까. 음향이 너무 엉망. 딕션이 아주 조금만 좋지 않아도 알아듣기 힘들정도로 소리가 먹어들어간다.
그리고 감미로운 노래던 빠르고 흥이 나는 노래던 가사를 알아듣기가 무척 어려웠다.
음악극에서 가사가 귀에 안들어오면 극이 망가질 수 있어서 음향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자리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그 모양이었는지 솔직히 개판이었다.
(좌우에 자막용 TV가 있는데 어이없게도 영어만 나온다. 요즘은 자막 기획하는 사람들이 한글이 챵피한 또라이만 채용하나?
그리고 좀 밝기좀 조절하자. 기본적인것도 생각안하는 어이없는 기획력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자막에서 눈뽕맞기는 새롭다.)

그리고 제발 능력 안되면 객석으로 객기좀 부리지 말자. 무대 양옆에 객석을 마련했는데
정작 배우들은 전방에 있는 객석에 시선을 줄 뿐이다. 이러면 그곳에 앉아있는 관객은 뭐가 되냐
시종일관 배우들의 뒷통수만 보는데 만석이라 어쩔수 없이 관객석을 만든것도 아니고 배우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구매했을텐데
이들에겐 50%는 환불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기획을 너무 잘해서 이들도 좋은 관람을 했다손 치면 정면에 있는 관객들은 그만큼
배우들의 시선을 빼앗기는게 되는게 된다. 이러나 저러나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 멍청한 짓이 아닐수 없다.
하객처럼 보이고 싶었던건지 알 수 없지만(그런 느낌도 늘진 않았음) 제발 좀 미친짓은 집에서만 하자.

지난해 초연도 정동극장에서 했던데 왜 못 봤을까?
아마도 비싸서였겠지?
7만원이다. 에휴
가족할인 30%를 해도 한사람당 5만원 4인가족이면 20만원
유명 해회 뮤지션이 오면 몇십만원인 가격도 흔하니 비싸다고 할 순 없는것일까?

비싸게 제대로 된 값을 받고 싶으면 사설시관에서 공연하면 안되는걸까?
국가에서 운영자금(세금)을 받아가며 전전긍긍 하는곳에서 눈치보고 할 필요 없이
사설공연장 대관 해서 10만원 이상씩 마음대로 받으며 공연해도 볼 사람은 보지 않겠는가

지원금은 그냥 날로 먹는 돈일뿐이란 소린지. (2024년도 92억원 지원금)
100억원이란 돈이 이런 대형 극장을 운영하는 비용치고 큰돈은 아닐것이다. 그러면 대형공연을 비싸게 가격 책정해서
보기 힘들게 만들지 말고 가격이 낮은 소규모의 공연을 많이 기획해서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고
관객들도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으로 고민을 덜해도 되는 공연을 좋은 극장에서 볼 수 있게 하면 그게 문화발전에 기여하는거 아닌가?

도대체가 7만원이 뭐냐. 연일 삼성전자, 하이닉스 성과급을 몇 억씩 받는다고 하니 몇만원이 우숩게 보이는건지
(이 두 회사 주가를 빼면 코스피 4천포인트 정도 된다는건 대부분의 한국 경재 사정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윤가놈 정권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거다.)

공연은 흥겹고 흥겹고 흥겹다. 기분좋게 극장을 나올정도까진지는 모르겠다.
(시립미술관을 그냥 지나온걸 보면 그렇게 상쾌했던건 아닌거 같음. 유영국작품전을 엄청 크게 하고 있어서 몇번을 가도 좋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이야기인데 민요나 판소리 한대목 나온게 없다.
그래서 더 자연스러웠던건가? 자연스럽다는것은 이런 장르에 국악의 거친 소리가 들어가는건 녹아들기 쉽지 않다는 소리일수 있겠지.

아무튼 이 공연을 볼 분은 앞에서 4번째 줄 뒤로만 예매하시길 권함.
그보다 앞자리들은 시선 높이가 잘 맞지 않음. 그리고 무대석은 왠만하면 사지 마시길.(이곳은 가격이 1/3이 되기전까지 사지 마시길 권함)

출연 : 이기완, 김건혜, 고석진, 인재홍, 윤태호, 박재은, 서연정, 정지만, 김백현, 유경아, 최병규, 오현정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8월 29일 토요일

연극 -쿠쉬나메(끝나지 않는 이야기)-

 

쿠쉬나메란 페르시아(이란)의 설화가 유명한가? 신라시대에 교역도 있었다고 하고 신라공주와 결혼도 했다고 하는데
신라에서 사람 이름에 프라랑(화랑의 랑은 남자를 뜻하는데)이란 이름이 있다니. 신라왕이 타이후르?
찾아보니 그런 왕은 설화속의 허구라고 한다. 그런데 왜 신라라고 했을까? 교역이 활발했던 증거라고도 하는데
예전엔 동맹의 상징으로 서로 자식들을 결혼시켰던 시절이니(요즘도 전략결혼이란 말이 없는건 아님)
결론은 그냥 허구로 보면 된다. 그리고 페르시아왕과 신라공주의 결혼의 내용도 사랑같은 달달한 그런내용으로
채워진것도 아니다.(장르를 멜로로 생각하면 안됨)

영웅서사극이라곤 하는데 연극 구성은 소박하다 못해 빈약할정도다
이 허술한 무대를 배우 세명이 뛰어난 연기와 수많은 대사로 채워간다. 그래서 보는 맛보단 상상하는 맛이 좋다.
공연예술이라 비주얼적인 요소도 좀 신경 써야 하는데 텅빈 무대를 보더라도 쉽지 않아보인다.

쿠쉬라는 열등감에 빠져있는 한 인물에 대한 피묻은 절규같은 이야기다.
쿠쉬나메라는 의미가 '쿠쉬의 책'의 뜻이라 하니 악인이라도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기에 페르시아의 영운 파리둔의 이야기. 영웅의 탄생을 뒷받침 해주는 아비틴과 프라랑(신라공주)의 결혼

쿠쉬나메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들어서 인터넷으로 내용도 좀 뒤져보고 했는데 잘 나오질 않는다.
예전 이희수란 분이 썼던 것을 토대로 위키피디아에 좀 나오는 줄거리를 보면
연극은 그것을 또 각색했지만 한국식 맬로로 만들진 않아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며
쿠쉬이야기인 만큼 쿠쉬의 심리갈등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이 설화 자체를 모르기때문에 이것이 원작의 쿠쉬를 좀더 깊에 살려낸것인지
완전 새롭게 만들어낸 설정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라랑이란 인물을 원작에서 충분히 묘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연극에선 제법 건조하게 표현된다. 꿈많고 세계를 여행하고싶어하는 한 여성
아비틴이란 페르시아 왕자가 피신해와서 그것을 이용해 여행하려고 따라 나섰다가
결혼하고 아이(파리둔)를 낳고 정착한다. 왜 세계를 여행하고픈 생각은 다 접은걸까?
정착하기 전에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기때문이겠지 그렇지만
이 연극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물의 나이, 시간의 흐름과 주변 환경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틴이 전사했지만 왜? 갑자기? 어떠한 상황 표현이 없다. 물론 죽기 전에 프라랑과 파리둔, 아비틴 셋이
이야기 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리고 갑자기 파리둔이 성장해서 전쟁을 한다? 그리고 쿠쉬를 잡는다?
이 사이에 수많은 시간들도 필요했을텐데 그러한 흐름이 없다.
그래서 액자식이나 플래시백을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현재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게 쉽지 않다.
쿠쉬도 파이둔에 갑자기 잡히고. (영웅서사의 엔딩만큼은 그 긴박함을 좀 확실하게 만들어줘야 하는거 아닌가?)

대략적인 원작 줄거리를 보면 쿠쉬는 파이둔에게 잡혀서 40년간 감옥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나와서 또 전쟁을 한다? 이 시대 평균수명이 한 100년은 되나? 물론 이런 내용이 연극에 포함되진 않았다.
파리둔에게 잡히면서 연극이 끝나긴 하는데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에도 어떠한 내용도 없다.

아마도 이후 이야기를 다루게 되면 쿠쉬의 서사를 수정해야 하기때문일지도 모르겠고
드라마적 요소를 여기까지 끝내서 쿠쉬의 무너지는 심리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게 낫겠단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전개때문에 쿠쉬나메라는 어느나라의 영웅서사가 많이 뒤틀린게 아닌가란 예상을 하게 된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기때문에 단정할순 없는데 이희수작은 이미 절판되어 구입할수도 없고 원작을 읽을수도 없으니
단순히 상상만하지만 뭔가 찝찝함이 있는건 어쩔수 없다.)

그럼에도
배우 세명의 특출난 연기로 구성의 구멍들을 모두 메우기때문에
인물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젊은 분들같은데 여유로우며 능숙한 연기
호흡이 엉키지도 않고 1인다역을 모두 하지만 인물들의 어색함 또한 없었다.
멀티용 남녀 한명씩 더 들어오면 산만해졌을까? 세명으로 모두 채우기엔 조금 아쉬움이 조금 있었지만
배우들이 멋지게 무대를 장악하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출연 : 김세환, 임진구, 이서현

-추신-
할인을 할땐 최소한 개막기념타임세일이라며 뒤늦게 할인하는 행위는 하지 말자.
조기 예매기간에 할인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일찍 예매 했더니 그보다 더 저렴하게 널널한 할인을 그것도 끝도 아니고 개막기념이라니.
그런데 마포구민 할인은 뭐지? 산울림 지원금을 마포구청에서 받는건가? 그러면 타지역 사람들에겐 후훤을 받지 말던가.
국립극장은 말 그대로 국립인데 중구,용산구 구민들을 할인을 처하고 있던데 요즘 왜들 이러는지.
어떤 또라이는 매불쇼에 나와서 자신들이 나오는 연극 '너 없이' 홍보를 해서 예매하려고 들어갔더니
대학생 62.5% 할인 해서 1만5천원만 받겠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4만원을 내야 한다고 한다.
청년지원이 열풍이니 이런 병신같은 할인 정책을 내놓는건가? 미친 놈들인가?




2026년 8월 23일 일요일

연극 -플리백(Fleabag)-

 

두산아트센터의 연강홀은 이번에 처음 가본곳인데 큰 극장이었다.
좌우로 엄청 큰것을 보면 뒤로도 깊을거 같지만 이번 극을 위해 막은것이 아니었을까
객석도 넓어서 국내에서 한손에 꼽히는 좋은 극장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공연전 기다리는 시간에 음악이 나오는데 음향 또한 대단히 훌륭하다.
마치 잘 조율된 콘써트홀을 온 기분이랄까? 무대나 내부 디자인은 그렇게 화려하진 않은데.
(보통 오페라하우스나 콘써트홀은 아무래도 음악을 주로 다루다보니 내부 인테리어도 화려고 웅장한데
이곳은 그런 느낌은 없었지만 소리가 디테인하면서 잔향도 적고 또렷한것이 뛰어난 음향전문가가 셋팅한것이 아닐까싶다.)

플리백이 무슨 뜻일까? 검색을 해보면 벼룩(flea)이 많은 자루 정도로 행색이 남루한 사람을 말하거나
싸구려 숙박업소같은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인 플리백 본인의 처지가 남루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섹스를 좋아하기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쉽게 들락 거려서일까?(영국의 성 문화는 모름)

실제로 본적은 없으나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이성이 있어야 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주로 여성을 의존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지만 남성도 이런 캐릭터인 경우도 가끔 있다.

연극에서 플리백은 이성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강박증이 있어보이진 않으나
애인과 동거를 하면서도 밤새 자위를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이별통보를 당하기도 하는걸 봐서는
극도의 외로움을 이성에게 찾고(후천성), 자신의 본능의 욕구는(선천성) 다른곳에서 찾은 모습은 보인다.

나같은 경우는 이 두가지가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연극에서 플리백은 이것을 나눠놓는다.
그 단면으로 썸타는 사람이 쥐공포증이 있다며 키우는 기니피그(햄스터?)를 발로 걷어차버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때 플리백은 그 상실감을 사람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서
방황하는 모습이 그리도 안타깝게 느껴진것을 보면 은연중 나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거 같다.

자신에게 정작 중요한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변하는 현실마다 익숙한 동굴을 찾아가는 동물적 성향만을
나타내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삶에 대한 자화상일까?
그 돌파구가 이 여성(플리백)에겐 무엇이었을까?

기니피그 카페에서 함께 창업했던 부우는 특이하게도 남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가벼운 사고를 내려고 하다가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여기서 이상한게 그 바람핀 대상이 플리백이었다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플리백에게 부우는 어떤 존재였을까?란 생각도 들게 한다. 플리백이 님포(메니악)도 아닌듯 싶지만
어떤면에서는 그런거 같기도 하고 내가 이쪽은 모르기때문에 플리백의 이성 의존성이 높지만
쾌락주의자는 아닌거 같단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더라도 동시대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립된 삶을
단편적이며 극단적으로 그리고 괴변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 전위적이도 않게 관객을 설득하는것이
초반엔 코미디인가?싶다가 점차 거울같이 투영되는 플리백의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이 죽어갈때의 그 나약함. 마지막 손가락 욕을 할때의 소심한 복수

모노드라마라서 기운이 빠질법도 하지만 처음과 끝이 다름 없는 일관된 훌륭한 연기와
좀 과하게 큰 무대를 종횡무진 부족함없이 꼼꼼히 오가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아름답고 처절한 멋진 연극이었다.
연인보다는 혼자나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보러가서 웃음 포인트에 편하게 웃으며 관람하길 권한다.
영국식 웃음 코드가 한국에서 통용 안될수도 있는데(인터넷에서 작가 초연한 연극 있으니 볼 사람은 찾아봐도 됨. 자막없음)
아무튼 웃어도 될(?) 부분들은 많이 있으니 눈치보며 삐죽삐죽하면 보인만 손해 아닌가?

세명의 여자배우들의 공연 모두가 보고 싶어지는 보기드믄 연극 플리백.

출연 : 김주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8월 22일 토요일

연극 -플레이위드 햄릿-

 요즘 산울림 소극장이 내부 공사가 많은거 같다. 공연이 연기되기도 하고
그런데 극장은 그대로던데 외부 커피숍겸 대기실이 좀 바뀌고 있는건가?
아니면 극장을 더 짓는건가? 극장이 더 생기면 그것대로 좋지.

고전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겠다. 2013년부터 올렸다곤 하는데 연극은 한참 전부터 봤지만
산울림 소극장을 온것은 몇년 안됬고 신촌은 아무래도 동선이 쉽지 않아서 1년에 한두번 올까말까
아무튼 고전극장이란 타이틀의 첫화다.(총 세편 모두 예약 완료)

햄릿! 참 많이 인용 되는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어쩌구 저쩌구
이 부분만 아는 사람도 많을거 같다. 나도 제법 나이 먹고 난후 이 작품을 읽었으니 그 전까지는 이부분만 알뿐.
그리 길지도 않고 400년전 작품이라 신선함도 없고 철학적 사유도 400년전이니 뭐.

이 연극은 원작에서 햄릿의 사고를 여러 사람이 나와서 여러 인격체인냥 이끌어간다.
모노드라마도 다중적인 형태의 독백이지만 대화 형식을 띈것이 흔한데
왜 네명이나 나와서 이것을 분할해서 이야기 하는걸까.

그리고 장르가 비극이 아니고 코미디인가? 세심히 저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면 햄릿의 고뇌는 모두 들어있다.
문제는 여럿이고 서로 말이 섞인다는 것인데 아무리 다중인격체라도 한번에 여러가지 말을 동시에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모노드라마도 말이 엉키거나 섞이지 않기때문에 당자의 심연속으로 들어가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데 물리적인 인격체가 넷이나 되고 물리적인 입이 넷이나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햄릿 한 사람의 심리적 갈등이 아니라 그냥 네사람이 나와서 각 인간 연기를 할뿐이다.

햄릿의 수많은 심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까? 복잡미묘한 이 상황을 한사람의 독백으로 전달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처음 봐서 이런 기분이 드는것일 수 있다.
두번 이상을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세밀하며 예민한 부분까지 모두 느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이다. 그것이 오늘 내가 느낌 감정의 중요한 이유다.

장르는 비극적 요소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다.
(내용 전개는 원작과 다르지는 않음)

그리고 네명이 멀티로 여러 배역도 맡는다.
네명중 여자 한명정도 넣어서 여자 역할은 여자가 하게 하고(거트루드, 오필리어)
남자들은 나머지 모든 사람이 남자니 나눠서 멀티를 하고
어차피 다들 햄릿이고 왕이고 왕비이고 애인과 친구, 신하 아닌가?

너무 어둡고 눅눅한 프랑스 느아르같은 작품이라 각색해서 새로운 시도를 한것이겠지만
햄릿의 번뇌, 고뇌, 갈등 그리고 원망 들이 좀 뭉게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도 하고
다른 연극을 본 느낌 같기도 하다 (제목만 햄릿? 뭐 이런?)

배우들의 팬들인가 카메라로 다들 열심히들 배우를 클로즈업해서 찍고 있던데
유명하기 전에 미리 선점하는건지 아니면 이미 유명한 배우인데 내가 몰라본건지
소극장은 좋아하는 배우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엄청난 매력이 있으니
더 유명해지기 전에 많이들 봐두는것도 좋아보인다. ^_^
우의를 입고들 왔던데 공연중에 부스럭 부스럭, 유독 한사람이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아서 부스럭 부스럭
뭐라 그러고 싶어도 인터미션이 있는것도 아니니 공연 보다말고 말 할 수도 없고 계속 부스럭 부스럭
(우산을 들고 오면 안되는데 우의는 비 맞은걸 입고 들어와도 되는건가? 바닥에 꼬랑내 생긴텐데)

햄릿을 보여주고자 했던 극이겠지만 본연의 맛과는 상충되는 각색으로
(보통 각색을 해도 극에서 풍기는 공기는 비슷하게 맞추지 않나?)
햄릿을 책으로나 연극이던 뭐던 원작대로 혹은 그와 비슷한 류로 본적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나중에 원작 그대로 만든 햄릿을 접하게 되면 '이런 느낌이었나?'란 기분이 들거 같다.
(원작을 완전히 뒤집어 놓거나 상대 입장에서 해석한 것들은
아무래도 원작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봐야 시야가 넓어질수 있지만 순서가 바뀌면 색안경이 씌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 크게 길진 않다. (공연은 90분 정도, 엔딩 공연과 커튼콜은 10분정도?)
코미디 탈을 쓴 비극이라서 무겁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귀가 좋아야 햄릿의 절망적인 불신을 느낄 수 있는
충분히 추전할 수 있으면서도 봐도 되나?싶은 양가 감정이 교차되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출연 : 김성훈, 김영욱, 차예준, 최기욱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끝 노래 공연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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