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일요일

연극 -양떼목장의 대혈투-

 

왜 양떼목장의 혈투라고 정했을까? 생각보다 일방적이고 종속적이었는데.

시작이 뭔가 좀 특이하다. 두 청년은 TV를 보고 있는거 같고, 한 사람(아버지)은 연극 중반까지 컴퓨터게임만을 한다.
이 두 청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내용은 지금 시대를 대변하는데 저들의 주축인 청년들일까? TV를 보며 끊임없이 과자를 먹고 있는
그것이 인생에 전부인듯 살고 있는, 하지만 어떤 존재들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인간사회를 창조한 신일지도?

얼룩말이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사건이 있었는데 작가는 그 사건속에서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본것일까?
얼룩말 입장에서는 단순히 울타리를 넘어 길따라 이리 저리 돌아다닌것 밖엔 안되는 큰 사건이 아니었는데.
(주민들은 좀 놀랐겠지만 맹수란 이미지도 아니라서 살짝 피하면 되는 정도)

그리고 제목처럼 양떼가 나온다. 순하고 개량되어 털이 끊임없이 자라는 양, 또하나 야생양도 나온다.

우리를 탈출한 말이 양과 대화를 하고 양은 말의 말에 동화되어 자신도 안락한 지금의 삶 대신
약간은 힘들것이 예상되지만 자유의 삶을 택한다. 자유로운 삶? 이것은 왠지 풍요로움와 안정됨과는 거리가 있게 그려지는데
현실에 안주하는것이 자유와는 거리가 있는것인가?

우리안에는 가짜 양인 검은양이 있다. 왜 이 양은 이렇게 그려졌는지 모르지만
양 탈을 쓴 사람으로 양들과 함께 살면서 안정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렇게 탈출하려는 양들을 잡아서 죽이거나
설득한다. 왜? 아마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칠거 같았기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막아왔던것으로 보이는데 자유를 위해 떠나는 양의 말에 다시금 현혹되어
양탈을 벗고 자유를 택한다. 영화 메트릭스의 파란알약과 빨간알약의 선택과 같다.
아버지(양농장 주인같음)라는 사람은 동물보호협회에 잡히긴 하는데. 이것도 상황은 잘 이해되 않는다.
왜? 동물을 학대한것도 없는데. 아마도 탈출한 양의 털이 숨쉬기 힘들정도로 계속 자라나서 죽기 직전에
이들이 털을 깍아 구해줬는데 이 이유로 아버지를 잡은것으로 보이지만 개연성이 조금은 부족하다.

검은양은 흥청망청 살아보기도 하고 일을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데
반복되는 실패는 시련만 깊어지며 힘이 빠지는데 이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단순히 이러한 극적 요소는 넘길 수 있지만 한국에서 청년들이 처한 처지, 내 주변에서 좌절하는 사람들
온갖 수많은것들이 떠오르면서 먹먹해지고 호흡이 가팔라지는게 꽤나 참기 쉽지 않았던 한 부분이었다.
결국은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버지의 안정된 삶으로 스스로 들어가 검은 양털을 뒤집어쓰고 목에는 밧줄을 동여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고 구하다가 지쳐서 '쉬었음'이란 짧은 한마디 내던지는것으로
외면하려는 슬픔이 현실처럼 표현되어 다시금 목이 메여진다. 

그 다음이 좀 이해가 잘 안되긴 하는데. 우리를 박차고 나온 얼룩말 세로는 잡혔지만
고친 우리는 기존과 다름없는 허술한 울타리일뿐이라 언제든지 다시 탈출 할수 있는 용기는 있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부모들을 떠올린다.
세렝게티 초원을 갈순 없다. 기껏해야 도로를 떠돌다가 마취총을 맞고 끌려올것이다.
무엇도 바뀔 수 없는 현실에 아버지(?)를 찾는다. 여기서 아버지는 포수다. 안락사 시키는 역할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죽을수 있도록 총을 두고 가는데
왜 얼룩말 세로의 죽은 부모들이 아버지를 총으로 쏘는건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종의 원한이라고 해도 이미 없어진 존재들인데

씁쓸한 현실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근래에 본 어떤 연극보다도 멋진 연극이었다.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비극으로 맽음되는 현실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끝은 왠만해서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복권당첨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성공스토리가 내게 올거란 기대를 하는 어리석은 대중에게 외치는거 같았다.
'너의 미래는 똥 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만에 하나 바꾸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투표를 하라~' 라고
(선거 시즌이었기때문에 이 생각이 든것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떠오르긴 하지만
한국사회에 맞고 좀 더 깊게 헤아리고 제법 좋은 구성으로 몰입력이 뛰어나고
현실을 극적이며 신선한 구성들로 오랜시간 기억될 훌륭한 연극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었으니 다음에 하면 꼭들 보시길

출연 : 정나무, 박수빈, 이승훈, 최지현, 권효은, 이주형, 김원태, 정연종, 김효영, 김민석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6월 6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박성희 수궁가(미산제)-

 

올해 상반기 국립극장 판소리 완창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반기에 또 시작하겠지
상반기 4회를 하는데 판소리는 다섯바탕 그러면 같은게 겹칠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거기에 같은 미산제. 시간은 좀더 짧은 느낌이다.
(3시에 시작했는데 커튼콜 후에 진도아리랑 하면서 끝났는데도 딱 6시였으니)

박성희 창자를 언제 봤더라. 분명이 어느 공연인가에서 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봤다고 생각하냐면 약간은 보이시한 낮은 톤에 힘있는 발성이 기억에 남아서다.

대략 3시간동안 중간에 15분정도 쉬고 끊임없이 창을 하는 해야 하니 여간 힘든일이 아닐거다.
언제나 그렇듯 보면서도 힘들어 하는게 보인다. 3시간에서 6시간 분량의 대사와 연기를 모두 외워야 하고
관객앞에서 지친 모습을 모여줄수 없는 직업이니 당사자는 누구보다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3시간이면 이번 시즌은 상대적으로 짧게 잘 끝났네라는 오만한 생각도 든다.
(춘향가 6시간, 심청가 5시간은 편하게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이라도 막판엔 힘듬)

이분의 톤이 중성적이며 힘이 있는 소리긴 한데 창을 하는 풍에서 묘함이 좀 있다.
각 인물(수궁가에선 사람이라곤 용왕하고 도사 말곤 모두 동물)들의 대화에서 그 구분점이 명확하지가 않다.
순간 순간 배역을 바꿔야 하는 1인극이다보니 힘든것은 알겠지만
약간은 더 확실하게 구분되도록 캐릭터의 선을 명확하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소리의 영역도 넓고 억양도 좋은데 (김소희 명창께서 발음이 좋아서 예전 녹음한걸 지금 들어도 감동이 그대로 전해옴)
이분이 김소희명창의 제자라고 하니 이러한 것들을 전수받은거 같다.
예전엔 각 지역 방언이 훨씬 강했기때문에 각 지역별로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님에도 판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90%이상은 받아쓰기 어려울정도다.
대사(해설겸)집을 읽고 계속 듣다보니 대충 감으로 들을뿐 확실한 이해는 쉽지 않음에도
아직도 판소리 공연에서 자막을 안트는건 '너죽고 나죽고 모두 없애버리자'라는 심사인지 이젠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분의 발음이 좋은편임에도 오늘은 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몸 콘디션이 좀 안좋은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풍이었을수 있지만 발음이 뭉그러지는 많은 창자들과는 다르게
또렷하긴 한게 못 알아듣겠다니. 물론 한문도 많다. 이건 판소리가 원래 그 모양으로 생겨먹었으니 그러겠지만
한문의 문장 뜻을 모를순 있어도 음은 알아들어야 할텐데 도통 이 세계에선 이걸 바꾸려 하지 않지 않는다.
이런면에서 김소희명창은 어떻게 살아남으셨을까? 전반으로 뭉그러지는 발음이 주류라고 생각하면 당시엔 이단아 같았을텐데.

그리고 여자 특유의 고음이나 쇳소리(쇳소리는 남자 창자가 일품이긴 함)가 좀 적던데 이부분을 특별히 키우려 하는거같진 않아보인다.
이미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갈고 닦았는데 이제와서 스타일을 바꾼다는건 몸이 허락하지 않을테니.
(흥보가 완창무대도 했다지만 언제쯤 여기서 볼 수 있으려나)

수궁가의 줄거리는 단순한 동화같은 내용이라서 전체적으로 흐름은 쉬우나
막상 대사들이 난리도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한자들이 즐비한것을 보면
권문세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소리꾼을 초청하여 자신들만 듣던 장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내용이 권선징악도 아니고 풍습이나 사회를 반영하는것도 아니고 적벽가처럼 고전을 만든것도 아니고
뜯어보면 제법 철학적인 면이 있다. 용왕의 멍청함을 비꼬는 블랙코미디 같은 부분도 있고
토생원의 지혜와 기교, 기개가 있다손 치더라도 별주부의 말에 현혹도 잘되고 건방떨다가 막판엔 두번이나 죽을뻔한 사건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막판에 인간 올무에 걸린거나 독수리에게 잡힌 내용은 전체 흐름상 크게 필요하지 않았는데
왜 넣은걸까? 이게 없으면 토생원이 너무 기고만장하게 끝나서 넣은걸까?

쉬우면서 쉽지 않은 대사들로 3시간중 생각보다 편하게 들을수 있는 부분은 30분정도도 안되보인다.
그리고 박성희창자의 소리 풍이 약간은 느릿느릿한 템포를 유지해서 가끔 졸음이 살짝 올때가 있었다.
빠르게 희모리로 몰아치는 대사들은 좀 약한건지 아니면 자신의 색을 만든건지 아무튼 호흡이 길다.
공연중 문득 든 생각으로 이분이 심청가를 하면 그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심청가는 시종일관 무겁고 회색적인 현재와 미래만이 보이는 장르로 막판 한 10분을 제외하면
심청이에게는 디스토피아같은 세상일뿐이었다. (낙천적인 성격때문인지 선녀가 환생한것이라 다 알고 그런건지)
이런 어묵한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기에 멋진 목을 지니고 있는것이 아닐까? 그에 비하면 수궁가는 너무 밝은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기대해보게 된다.
박성희명창의 심청가 완창을 볼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나흘전에 봤던 현대 뮤지컬 서편제의 소리와 고수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를.

소리 : 박성희
고수 : 신문법, 조용안




2026년 6월 3일 수요일

연극 -서편제(뮤지컬)-

 

유튜브 매불쇼에 나온 기념으로 세일한다고 해서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윤일상이라는 음악예술가의 작품이 궁금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판소리 배경의 한에 대한 지극히 한국적인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한국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기도 하고 한국인 정서에 잘 맞기도 해선데
국악중심의 음악극 서편제는 봤지만 생각보다 감흥이 좀 적었기때문에 국악을 덜 가미하고
서양 뮤지컬의 노래 구조로 만들었다고 하니 호기심이 많이 발동됬다.
그래서 평일이고 압구정동이면 집하고도 멀기때문에 걱정되었지만 그럼에도 큰맘먹고 예매

처음알았다. 광림교회가 이렇게 큰 곳이라니. 대형 공연장이 있을정도로 건물 몇개가 붙어있는 초대형 교회
신사동에 오랜 시간 살았지만 정거장이 광림교회란 것만 알뿐 이렇게 큰 교회인줄은 생각도 못했다.

극장도 대형극장급이긴 한데 의자 폭이 좀 작아서 옆사람 팔뚝이 자꾸 부딧혀 신경쓰였지만
아무튼 큰 곳이다. 운영하는 사람들도 다른 대형 공연장과 같은 수준의 안내를 진행하고 있다.
(무슨 메뉴얼이 있나? 왜 다들 비슷한 포즈, 맨트 등을 하지? 극장마다 특색이 있을법 한데)

일단 첫 느낌은 인간의 한을 판소리에 담는다는 내용이라서 소리, 민요같은게 적절하게 나오는 영화와는 다르게
대형 서양뮤지컬 못지 않은 그냥 서양 풍의 노래로 시작된다. 내가 기대했던 부분도 이부분이긴 하다.
감미롭기도 하기고 웅장하기도 하다. 그런데 동호의 어머니가 아버지때문에 고생했다 설정은 불안한 예감으로 시작한다?
왜? 어머니가 아버지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죽었다고 끌고 가는거지?
물론 소리가 좋아서 둘이 결혼했고 다른 마을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죽었기때문에 자식된 입장에서 아버지를 원망할순 있지만
이게 동호의 트라우마로 평생 괴롭힐 이유가 될 정도였나?
이때 나는 내심 '조졌네' 라는 생각을 했었다. 흐름이 이런 피해의식에 휩쌓인 히스테리성 연극은 전개가 뻔하기때문인다.
물론 서편제는 이미 내용 흐름이 다 나와있기때문에 어느정도 따라갈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걱정됬다.

꼬마 송화와 동호의 어린시절을 맡은 아역 배우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연기를 하는건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다.
특히 영화나 TV가 아닌 이런 공연에서 직접 아이들의 연기를 볼땐 좀 간지럽다고 할까? 아무튼 어색한 기분이 들지만
아역 배우들은 뛰어나고 성숙한 연기를 보인다. 딕션도 또박또박 좋고 (아이 연기의 전형적인 또박또박함이 있음)

문제는 청년기의 송화와 동호인데 딕션이 너무 안좋다.
음악극이면 노래 가사가 곧 대사, 지문, 감정, 환경, 시간 등 많은것을 담아내고 있는데
대사 전달이 너무 안좋아서 감정 전달이 거의 안됬다. 이게 배우의 문제인지 음향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음악과 목소리 밸런스도 맞지 않고(B열에 앉았기때문에 너무 앞쪽이어서 그럴수 있음)

그리고 요즘 노래 풍이 그런건지 바이브레이션을 호흡으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요즘 유행인가?싶었는데
조금 노련미 있어 보이는 동호 엄머니의 노래나 배역명이 '명창'인 분의 노래를 들으면 전혀 안그렇다.
벨칸토 아니면 쭉쭉 뻗는 벨팅으로 멋지게 불러서 가슴 웅장하며 뭉클하게 만들어주는데
막상 주연 이 두명은 뭔가 묘하게 후지다고 해야 하나? 멀티캐스팅 되어 있고 상 받은 사람이 나오는 때가 아니었어서
그 분이 연기하는걸 보면 다를 수 있지만 아무튼 오늘 본 주연 배우들의 노래는 솔직히 별로였다.

심지어 소리를 해야 할때 송화역을 하는 배우는 아예 국악을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거 같을정도로 엉망으로
어떻게 이런사람을 캐스팅했나싶을정도. 얼굴은 너무 아기처럼 곱상하게 생겼지만 역시 노래가 중요한 뮤지컬(음악극)인 이상
노래에서 감정이 깨지면 좀 그런거 같다.

그러면 서양적으로 개작 된 서편제의 음악들이 어땠냐?라고 말한다면
아~ 예술세계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따라가는것은 어려운것인가?란 감동과 먹먹함이 중첩된다.
윤일상이라는 음악예술가의 음악들은 대형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 이상의 감동이었다.
먹먹함이 든 이유는 창작 음악극들을 심심치 않게 접하는 입장에서 이런 감동을 받은적은 솔직히 잘 없었기때문이다.
다른 음악 예술가들도 영혼을 태워가며 만든 노래들일텐데 이리도 차이가 큰것인지
요즘은 장비가 워낙 좋아져서 장비탓을 할 수도 없는 세상인데.

어느정도였냐면? 요즘은 음반을 잘 안사는데 잘 녹음된 서편제 OST를 갖고싶다는 충동이 생길정도였다.

차이가 느껴진다는것은 관객입장에선 감동일수 있지만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좌절일수 있으니
동종업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양가적인 감정이 한동안 지속될정도로 격 높은 음악을 들었다.
'그래 뮤지컬에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래(넘버)는 이렇게 전반적으로 좋은 곡들이 깔리는 속에서 더 으뜸인 명작이 나오는거겠지'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감상하는 차원까지 올라갈수 있었다. (연극을 보며 음악 감상을 한다는건 희소한 일임)

무대는 프로젝터를 이용하긴 했지만 배경 그 이상으론 사용하지 않았기때문에 거부감또한 들지 않았으며
몇가지 않되는 장치로 훌륭한 배경을 만들어 뛰어난 구성도 멋졌다.
(무대가 화려했을때도 멋질수 있지만 적은 무대장치를 확실하게 잘 사용해도 감동이 있음)

종합적으로 봤을때 국악 일색의 서편제를 현대적이며 서양스타일의 한국적이진 않은
구성으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형 뮤지컬의 면모를 모두 선보인거 같다.
퍼포먼스도 훌륭하고 너무 한국적인 서편제가 아닌 현대음악을 사랑하는 동호의 이탈로
전체 분위기를 많이 바꿔놔서(k-pop 아이돌 지망생으로 나왔다면 이상했을거 같음) 어색함이나 거부감이 없었다.
(창작 국악 예술 장르의 이상한 점은 한국적이라며 너무 국악만을 우겨넣어서 어색하게 만드는것)

영화와 비교했을때 더 나은가?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영화가 나는 더 좋았다라고 말하지만
이건 영화가 갖는 특징때문에 그런것이고 뮤지컬도 영화로 만들면 훨씬 다양하고 다채롭게 만들 수 있기때문에
공연예술과 영화예술을 비교하는건 조금 그렇고 영화 서편제는 막강한 감독과 엄청난 김수철 음악감독의 작품들이라
자체로 예술이고 명작이다보니 언제나 티클하나 변화없는 상황이라도 감동이 계속 된다.
(명작 영화의 위력은 언제봐도 너무 좋다는 것이니 비교하는게 조금은 기울어진 운동장같음)

주연배우들의 노래 딕션이 별로고 국악을 너무 못하는건 확실히 실망포인트였다.
얼마나 못하면 말년 송화 배우(정은혜)가 나와서 심청가 한 대목을 따로 하고 있겠는가.
명색이 대형뮤지컬인데 이럴땐 얼굴 이쁜것보단 노래실력에 90%이상 비중으로 캐스팅 해야 하는거 아닌가?
(이자람 배우가 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데 이분 나올때를 봐야 맞을지도)

그리고 매불쇼 출연 기념이라며 50% 할인을 한다고 해서 큰맘먹고 예매했더니
이번엔 무슨 그지같은 타이틀을 걸고 50% 할인을 또 한다. 관객을 너무 기망하는거 아닌가?
티켓이 안팔리니 온갖 개같은 할인 정책을 하는거 같은데 이럴바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50% 가격을 낮춰서 팔아라.
기분나쁘게 그지같은 할인 타이틀 걸지 말고. (매불쇼만 아니었다면 터무니 없이 할인하는 공연은 왠만해서 안보는데) 
15만원 주고 볼만하냐?라고 한다면 내가 본 회차는 적어도 아니었지만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건 어떨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커튼콜을 못 찍게 하는걸까? 이미 지들이 홍보용 사진들을 이곳 저곳에 처돌렸으면서
배우들 인사하는거 한컷 찍고, 봤다고 자랑도 하고, 기분좋은 하루 이벤트일수 있는데 하여튼.
게다가 각 노래(넘버)가 끝나도 사람들이 박수 한번 제대로 안친게 90%였는데
갑자기 커튼콜때 기립박수를 친다고? 기립박수 선동하지 말자. 키 작은 사람 안보인다.

특별 커튼콜이라는거 만들어서 소리 한대목을 완전히 똑같이 한다는게 너무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뭐지?
이 그지같은 기획한놈은 누굴까? (특별 커튼콜이라길래 배우들이 나와서 재미난 포즈를 취하는줄 알았음)
그다지 소리를 잘 하는거 같지도 않았는데 그걸 다 듣고 있던 내가 조금은 뻘쭘했다.
(얼마전 심청가 완창 공연을 봐선지는 아무튼 별로였고 북치는 고수는 개판 그 자체)

출연 : 시은, 정은혜, 김준수, 김태한, 박재이, 배훈 외 많음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31일 일요일

연극 -오남매-

 

오랜만에 가족 드라마 한편 본거 같다.
예매 티켓을 받을때 무더운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게 운영에서 조금 섭섭했다고 할까?
(날이 추웠으면 더 짜증이 났을까? 지정석인데 막상 예매할땐 좌석을 선정할수 없는것도 좀)

작은 소극장, 너무 작은 무대에 아기자기하게 많은것을 우겨넣은 모습이
옛 생각도 나고.(예전엔 무대가 작어도 이렇게 많은것을 넣으려 했던거 같은데 요즘은 너무 간소화 되서)
소극장 특성상 관객석이 좁지만 계단식이라 뒤로가면 많이 높은 그런곳
그래도 관객을 위한 배려였을까? 두꺼운 쿠션이 깔려있어서 그렇게 불편한것은 아니었다.

연극의 배경은 오래된 팬션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식구들이 다 모였을때 생기는 에피소드들인데
막상 팬션 리모델링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한다. (엔딩에 살짝?나오지만 그냥 끝내기 위함정도?)
서로 불만을 주장하면서 싸우다가 해결하고 뭐 그런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이 예상은 벗어나고 서로 시작부터 끝까지 우애는 계속 좋다.
그런데 왜? 노인이 온걸까? 가족간 불화가 있는것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가정에서 더 좋게 해주려고?
(부자집에 복권번호 알려주려는 것과 다름 없을거 같은데)

그래서 극적인 긴장감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장르가 완전 코미디도 아니라서 무작정 우끼고 보겠다는것도 아니니
웃음이 엄청난것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뭔가 있으려다가 없는? 재채기가 나오려다 만 느낌? 그래서 시원하고 개운한 기분이 조금은 부족하다.
확실하게 웃겨주건가. 가슴 뭉클하며 따뜻하게 나올수 있게 해주던가.

우애가 좋아서 별 갈등이 없는 집에서 생겨나는 소소한 일들
(자식의 진로, 솔로가 된 부모를 걱정하는 자식들, 오래도록 솔로였던 사람의 국제결혼 그리고 파혼)
2남2녀의 소소한 생활을 90분동안 담아낸다. 시간으로 보면 이틀인가?

경제적으로도 다들 어려워보이는 집은 없어보인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거지? 그냥 적당히 잘 사는 집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리움을 함께 느껴야 하는걸까?

아마도 가장 큰 사건은 막내의 파혼일텐데 이것도 순식간에 마무리된다?

큰 생각없이 드라마 '전원일기' 혹은 '대추 나무 사랑 걸렸네' 같은 거 한편 본 느낌 같다.
자잘한 웃음과 내 주변을 잠시 생각해보는 정도로 극장을 나오면 강렬한 태양빛 속에 연극의 기억은 말라버린다.

가볍게 별부담없이 보기에 괜찮은 주제와 내용이다.
오늘은 가족단위로 많이들 오셨던데 가족이 보기에도 딱 적당한 연극이다.
(너무 살벌한 사건이나 선정적이거나 너무 어려운 내용은 다양한 연령층이 섞인 가족이 보기엔 어려움이 있음)

이런 연극은 극장이 약간 더 크고(무대가 조금 더 커서 팬션 느낌이 더 들었으면) 관객석 또한 노인도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는 그런 극장이면
딱 알맞는 연극인데 이점은 약간의 아쉬울수 있다.
(요즘 새로 생기는 좋은 시설의 극장들은 비싸고 돈되는 연극들만 하려고 들어서)

출연 : 최용민, 신박석, 조지훈, 이유선, 신예온, 허정호, 김주은, Lesina Alina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30일 토요일

연극 -화성에서의 나날-

 

참 오랜만에 어려운 연극을 접하게 되는거 같다.
대사가 너무 많고 불필요한 상황설명이 너무 많다.
저 사람이 지금 누구인지 왜 두명인데 일지는 모두 '환'인지
분명히 환과 욱이 얘기 하고 있는거 같은데 비관적인 욱과 희망적인 환
하지만 막판엔 한명만 남은것인가? 아니면 죽은 사후인가?

스토리 전개가 어렵고 대사량이 많은 반면 귀담아 들을 내용이 잘 없다보니 흘리게 되는데
이러다가 중요한 내용들을 모두 함께 흘려보낸 느낌이다.

가끔 아주 가끔 집중하게 되지만 90% 이상은 흘린다.
모노드라마가 아닌데 그렇게 많은 부연설명들을 해대야 했을까? 눈감고 들어도 되는 라디오 드라마도 아니고
요즘 유행인지 이렇게 상황 설명을 과할정도로 많이 붙이는 연극들이 있는데
작가의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
원래 다인극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가 인원을 축소하면서 관객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지문까지 모두 읽게 하는건지
몰라도 될 배경까지 다 들어오니 심각할정도로 피로해지는데 이런식으로 두시간을 진행한다.
절반은 지문.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

그리고 제발 가운데 무대를 놓고 좌우로 객석을 찢어놓지좀 말자
가끔 우연히 앞사람과 눈이 맞아버리면 매우 어색해지는데 뻘쭘한 기분때문에 한동안 대사가 귀에 안들어온다.
그래야 될 상황도 전혀 없는데 뭘 좀 있어보이겠다고 이 지랄로 무대를 셋팅 하는지
대극장의 무대가 크니 무대 위에 관객석을 만들어놓은것이다.
엄연히 좋은 관객석이 있음에도 엉덩이 아픈 간이의자. 두시간 공연
이 무슨 빙신같은 연출이란 말인가?
이런 구성이면 소극장에서 하면 딱인 구성이다. 이런 대극장이 아니라 딱 소극장용 연극
소극장 대관이 안되서 대극장을 어쩔수 없이 쓴건지 알수 없지만 낭비도 이런 낭비가 있을까?

아무튼 전체적으로 난해하지 않은데 난해해진 이상한 연극을 불편한 의자에서 시야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무대를 연신 고개를 돌려가며 보고 나온거 같다.
집중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대사 한마다 기억나질 않는다.
그래서 뭐라 쓸 말이 도무지 생각나질 않는다.

제발 무대는 일반적인 형태를 쓰자 아니면 아예 가운데가 찢어진 극장을 섭외하던가.
그리고 불필요한 말들은 좀 빼자. 집중 안되고 산만하다.
단 두명 나오는데 어쩜 이리도 정신이 없는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노고 그리고 큰 대형 극장이 너무 아깝기만 한 연극이었다.

출연 : 강희제, 백종승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24일 일요일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

 

아~ 홍길동전의 홍길동 어머니의 스핀오프 연극이라 해야 하나? 에피소드라 해야 하나? 프리퀄?

홍길동의 어머니 춘섬이가 어떻게 길동이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소설에선 홍대감이 청룡꿈을 꾸고 아내와 잠자리를 하려 하였으나 낮에 할 수 없다하여
종인 춘섬이와 잠자리 하게 되어 낳게 된 아이라는 설정이다. 아이를 낳는 부분까진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홍길동전을 모른다는 것. 단지 호부호형을 못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실제 소설속 내용에서 알게 된게 아니라 각종 코미디에서 많이 사용되었기때문에 알뿐이다.

만화시리즈는 대부분 출생이야기는 짧고 탐관오리를 찾아서 해결하는것들로 권선징악의 단편 단편으로 이루어진것들
나중에 율도국인가? 떠나는것도 실제론 거의 모른다. 그러니 홍길동의 어머니가 춘섬이었다는것을 알턱이 있나.

청룡꿈이 왜 뱀으로 바뀌는지. 홍대감은 성폭행을 하고 그의 어머니도 성폭행을 하려고 해서 자해한거같은 늬앙스로 그려져있다.
홍길동의 기본 배경이 조선이고 노비가 있던 시절이었으며 이때 여자노비들은 양반들의 성적대상이 되었다는 말도 있긴 하다.
시대가 그러니 이런식으로 표현하는것도 어떤면에선 이상하진 않을수 있으나
표현에서 좀 거부감이 온다. 1980년대 TV 드라마를 보면 담배를 당당하게 피는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대의 그 드라마를 접할땐 저 시대는 저랬겠거니 하며 받아드린다.
그 시대를 이해 할순 없더라도 사회는 저랬으니까.
조선시대 여자노비들을 성적 대상정도로 생각했던 양반들도 있었을테지만
그것은 그 시대엔 그러려니 했던 미개한 시기였다. 지금 그랬다간 철창속에서 평생을 보냈겠지만 그 시대는 그랬다.
이건 비단 조선만 그런게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단 노예는 사람취급 안한곳도 많고 여권은 바닥이었다.
오히려 조신의 여권이 훨씬 높았다는 어떤 학자의 말도 있다.(여기서 말하는 여권은 중인, 양반들 이야기일뿐 서민은 아님)

그 시대 그랬던것을 지금의 시점으로 풀어서 성폭행으로 모든것을 내던지는듯 표현한것은
뭔가 패미니스트적 관점의 표현이 아닌가? 지금이 아니라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놓고
남자들이 저렇게 개차반이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것이 과연 정당한가란 생각이 든다.
엄마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대부분을 편협한 시각으로 그려지는거 같은 불편함이 있다.
반면에 여성들은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한다. 조선시대에? 그 말만고 탈 많았다던 유교의 끝판왕이던 시기에?
홍길동이 서자출신이 아닌 완전 다른 사람의 자식을 여자(춘섬)가 거짓말을 해서
양반으로 만들어놓으면서 이것을 정당화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것은 당연한것이고?

뭐랄까? 남자의 잘못은 울분을 토하듯 표현하면서 여자의 잘못(거짓말)은 그럴수밖에 없는 당연하다는듯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
어쩌면 이것도 현시대의 주류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내가 이해못하는 것일지도.

이 연극은 오히려 춘섬이의 이야기보다는
기생을 버리고 떠나려는 쇠퇴한 양반의 이야기가 훨씬 절절하고 애달팠다.
한달동안 서로 잘 지내다가 왜 떠나는지 모르겠지만 기생은 임신을 했으나 관기의 몸이라
아기가 그 사람(양반)의 아기라는 것만 알려주면 낳을때까지 좀 쉴수 있는건지 그것만 해결해달라고 매달린다.
왜 이 부분이 그리도 가슴 절절했을까?
기생은 아기가 중요했던걸까? 사랑하는 그 양반을 어떻게든 잡으려 했던걸까.
달밤에 서로 괴로워 하다가 이별을 하고 기생은 아이를 지우려고 돌에서 뛰어내리며 구르는데
이 과정이 어찌나 슬프던지. 눈가에 눈물이 가득고인다. (지금 생각해도 기생은 그 양반을 사랑해서 못 헤어졌던거 같다.)
그런데 난대없이 이 이야기는 왜 나온걸까. 정말 이해할수 없다. 여자를 단순히 성노리개쯤으로 생각하는
당시의 양반들을 비판하고 싶었던건지도 모르지만 연관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진짜 아버지였던 개불이는 홍대감의 부인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도 못한다.
이건 춘섬이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생각해보지만 전체적으로 남자에 대한 표현을 보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 하는 무책임한 남자로 보는게 전체적으로 일관성있게 생각된다.

아무튼 홍길동전에서 보여주는 사회는 부폐했고 그것들을 처단하는 역할을 홍길동이 하지만
이것과는 사뭇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개와 흐름 그리고 어머니의 자세
사회의 부조리를 무시하지 않도록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영화 '터미네이터1'에서 존코너를 임신한 사라코너같은 느낌이라기보단(사라코너는 존코너를 훈련시킴)
종의 자식으로 태어나 다시 종을 되물림되지 않도록 하여 내 자식이(아빠가 누구던 관계 없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로서 당연하면서도 편협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모성애의 본질은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어떠한 이기적 행동도 감안하는 것으로
모든 동물이 보존,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한가지라고 생각함)
마지막에 실제 아버지가 활빈당으로 간다면서 뻐꾸기 이야기를 하는데 뻐꾸기 생태계와 정말 비슷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활빈당을? 이건 홍길동이 만든거 아닌가? 시간이 뭔가 엉킨 기분이다.
그렇다면 활빈당에서 홍길동의 최측근이 아버지? ㅎㅎㅎ

전체적으로 템포는 느리고 지루하다. 내용도 이해가 어렵고 설득력을 갖추지도 못한 구성도 제법 있지만
우리 한국의 고전앞에 붙는 새로운 이야기라는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긍정적으로 보였다.(과거에도 있었나?)
이런것들이 붙으면서 내용이 풍성해지고 재미있어지는것인데.
요즘 중국에서 서유기, 삼국지같은 고전에 온갖 생 난리를 치며 내용들이 무한히 뻗어나가는걸 보면서 부러웠는데
고전이라며 궤짝안에 넣어두지만 말고 이렇게 고치고 바꾸고 붙이면서 우리와 함께 현재를 호흡하며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출연 : 이다솜, 고예본, 정래석, 박옥출, 성장순, 채연정, 서도민, 고훈목, 김의연, 홍정연, 송성애, 오명준, 김명애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연극 -반야 아재-

 

요즘 안톤체홉 시즌인가? 왜 이곳 저곳에서 체홉 작품을 많이 하지?
반야아재, 반야아저씨 이 두 제목으로 인지도 높은 탈랜트들이 정극에 출연한다.

요즘 배우들이 지상파 TV 인기가 시들해지니 이런 연극에 나오는건가?
문제는 티켓파워를 앞세워서 가격만 더럽게 올려놓고있는것인데 연극 품질도 특별하진 않다.
인지도 빵빵한 배우들이 나오니 무대 좋고 연출 좋고 구성 좋은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연극의 품질이 좋다고 말 할순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오늘 제대로 본거 같다.

국립극장 해오름은 국립극장중 가장 크고 좋은 극장이다.
무대가 너무 넓어서 채울것이 마땅치 않았을까? 중간에 연못을 만들어놓고 그 중간에 정자같이 만들어놨다.
시골 촌부의 삶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럭셔리한 한옥은 뭐지?

좌우 수십미터는 떨어진 양쪽 끝에 개수대(펌프)와 의자, 다른 끝엔 평상
약간은 앞쪽에 앉아있어서 이것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 시골의 집들 구조는 중앙에 평상이 있고 한쪽에 개수대와 수동펌프가 있어야 하는데
구조 자체가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설정한것마냥 터무니 없이 벌려놨다.

원작에서 바냐가 왜 제대로 된 공부를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배경은 이렇다.
누나의 남편인 매형(서병후)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이건 원작에서 매형의 학식을 존경했기때문에
그렇게 된것이라고 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이러한 배경 설명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시대극도 아니라 역사를 안다고 설명되는게 아니라서 배경설명이 안되면 반야아재는 엄청 이상한 연극이 된다.

도데체 내 자식도 아닌 매형의 뒷바라지를 왜 하지? 조카인 딸마져도 시골에서 바냐와 고생하고 있고
어머니는 왜 매형 편을 드는걸까? 바냐는 뭔데 매형의 새부인(오영란)을 사랑하는건지.
일제강점기는 또 뭘까?(여기서 좀 놀랐음. 일본 순사와 군인도 구분못하는거 같음.)

안똔체홉학회에서 만든 '순우삼촌'이란 한국배경에 맞게 각색한 반야삼촌이 있다.
이건 배경을 한국 시골로 하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매형과의 갈등을 다루는 전체 플롯이 동일한
원작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다. 그래서 한국의 시선으로 보면 좀 이상할 수 있지만
한국사람을 러시아사람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크게 문제 없다는 정도인데
(인물이 한국사람으로 바꼈기때문에 보는것은 훨씬 편함)

이번 반야아재는 기본적으로 배경도 이상하고 노동의 가치와 가식적인 인텔리들의 무기력함과 오만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노동의 순결함과 고귀함 같은 것으로 연극이 마무리 되며
조카(서은희)가 몇마디 한다고 그것이 모두 표현되는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짬짬히 나타나야 하는데 역시 전혀 없다.
반야가 힘들어하고 싫어했지만 계속해서 해왔고 해오고 있는 노동의 가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도데체 일제강점기 배경은 뭐지? 각색한 다른 유사 작품들을 최대한 피해가고 싶었나?
(처음 시작할때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에 일본어가 나오길래 내가 생각한 바냐가 아닌줄 알고 순간 놀랐음)
정미소(쌀 도정하는곳)도 좀 설정이 이상하다. 그냥 농사 짓는 설정이 별로였던가?

현대물로 바꾼것도 아니고 원작도 아니고 치정멜로에만 중점을 둔거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연극의 내용은 별로였고 어울리진 않았지만 무대 연출은 멋지고 훌륭했다.
(이부분이 참 아이러니 함. 왜 이렇게 무대에 공을 드렸을까)

돈많은 기획자가 비싼 무대와 장치 그리고 비싼 배우들을 써서 화려하게 만들어 팔아먹기 위해 만든 연극같았다고 하면 심한 표현이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체홉연극을 치정멜로로 만든극으로 느껴지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관객이 많을까? 앞으로 남은 공연 모두가 매진이라니
소극장 연극들은 텅텅 비어있던데 이쪽 세계도 꽤나 빈부격차가 살벌하다.

어차피 세금으로 국립극단을 운영하고 이렇게 좋은 극장에서 공연도 하게 해줄거라면
일반 사설 극단도 정동세실극장처럼 해오름, 달오름, 하늘극장에서 연극 페스티발 형식으로 좀 해주면 안되나?
관객은 저렴하게 관람할수 있도록 하고.
판소리 3~6시간씩 하는 엄청난 공연도 단돈 2만원에 볼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이상하게 연극은 비싸다. 왜일까.

출연 : 손숙, 남명렬, 임강희, 심은경, 조성하, 김승대, 기주봉, 정경순, 심완준, 민재완, 김신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17일 일요일

연극 -벚꽃동산-

 

안똔체홉극장에서 벚꽃동산 작품을 여러번 본줄 알았는데 몇년전 한번본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머리속에 들어있는 벚꽃동산은 다른 극단들의 작품이었나?
바냐삼촌, 세자매 본것을 착각한것이겠지.

이 작품은 과거 러시아의 현대화에 뒤쳐지는 구세대가 자본의 생리를 따라가지 못하여 생겨나는
형태를 꼬집는 블랙코미디 같은 작품이다.
특별히 복선도 없고(러시아 역사를 몰라서 시대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어도 나로서는)
안톤체홉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렇게 어렵게 꼬아놓은것 없이 그대로 받아드리면 되는거 같다.
(러시아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꼬아놓고 감춰놓는건 싫어하는 거 같음)

대부분 주제가 명확하고 선이 비교적 굵은 편이라서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백년전 이야기라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온다.
고전은 그 시대를 글(책)이나 간접적으로 상상하는것을 붙여야 하기때문에
책을 읽던 영화, 연극 등 공연을 보던 중간에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는거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근 현대사를 보더라도 뭔가 강건너 불구경같이 멀게 느껴진다고 할까?
(현재 한국는 근 현대사의 똥들이 계속 냄새를 피우며 길에 똥을 뿌리고 있어서 현대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아무리 군주주의라 할지라도 조선말기는 돈이 우선시되던 사회 아닌가?
노비도 사라지고, 러시아도 그런게 사라진거 같고 점차 자본을 앞세운 신진세력(로파힌)이 사회를 잠식하려는 그 과도기.
한쪽에선 공산주의를 표방한 노동자 사회를 꿈꾸는 청년(트로피모프)도 나온다.

귀족사회 구태의 전형인 라넵스카야(엄마)와 가예프(엄마의 오빠), 이들의 몸종인 피르스는 사라지는 구시대의 표상같은 인물이다.

아마도 이정도면 대충 연극의 흐름은 알수 있을것이다. 대상으로서 가교 역활을 했던 벚꽃동산
구세대와 신세대에 교도부역활을 한다고 할까? 전환점의 시작이라고 할까?

무력한 구세대들의 안일함, 신진세력들의 집요하면서 치밀하다.
이렇게 어떤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바뀌는 계기는 구세대들의 나태함에서 비롯된다.
국가가 무너지고 이념이 바뀌는 시기. 전세계 어디에나 벌어지는 공통점이라 할까.

벚꽃동산은 이점을 짜증날정도로 잘 표현해주는 작품이다.
(조금 더 길고 인물들의 디테일을 더 살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도 2시간30분 연극이라 아쉬움)

안똔체홉 극장 이름처럼 이곳은 안똔체홉학회도 운영하면서 체홉 작품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가끔 체홉작품이 보고 싶을땐 이 곳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언제 연극하는지 알 수 있는데
그중에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보면 되고 아니면 다음기회를 보면 된다.

내가 체홉 작품 몇가지를 읽었는지 요즘은 고전을 마구잡이로 좀 읽다보니 섞여서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극장에서 같은 작품 몇번을 보면 어느정도 책을 읽은것처럼 섬세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
그리고 같은 작품을 비슷한 배우들이 원작을 크게 변화없이 그대로를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공연하기때문에
좀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기도 좋다. 일반 극장에서 올라오는 작품들은 언제 다시 할지 알 수 없어서
디테일함을 알아채는것이 쉽지 않지만 이곳은 다음에 또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적지 않은 크고 작은 극장들 대부분을 다녀봤지만 이곳만큼 의자가 좋은 곳은 없다.
의자만 좋다. 바닥은 좀 삐걱이고 앞뒤 간격이 제법 넓지만 대형극장만큼 여유로움은 없다. 그러나 의자는
영화극장 그것이라서 당황스러울정도로 편하다.(이곳에 올적마다 의자는 특이하단 생각이 듬)
그래서 신경통이 있음에도 불편함 없이 관람할수가 있다. 그리고 체홉 작품은 흐름에 지루함이 특별히 없고
이곳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최고 수준이라서 부족함이 없다.
역시 문제는 고전이라는 것.(이 같은 배우들이 일반 연극 할때도 한두번 본적 있는데 그땐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듬)

난 그래도 오늘같이 체홉작품이 보고 싶을때 이곳에서 뭘 하고 있나? 제일 먼저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이 내게는 표준이 된것처럼 다른 극단이 체홉작품을 올릴때 이곳 작품과 비교하게 된다.
원작을 이곳만큼 그대로 표현하는 곳이 드믈고 다른 극단들은 현대작품처럼 각색들을 하기때문에 늬앙스가 바뀌거나
난해해진다거나 하는게 대부분이라서 개인적으로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이곳 공연이 좋다.

바냐삼촌(한국식으로 각색한 '순우삼촌'이란 작품도 있음), 세자매, 갈매기, 벚꽃동산, 이바노프 까지는
이 곳 안똔체홉극장에서 볼수 있는데 체홉의 단편 연극도 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얼마전에 한거 같기도 하고 다른곳인거 같기도 하고)

대학로엔 이렇게 테마를 갖고 꾸준히 공연을 하는 곳들이 몇몇 있는데
나는 으뜸을 꼽으라 하면 이곳 안똔체홉극장의 작품들을 꼽는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숙련된 연기와 군더더기 없는 무대, 보기 힘든 훌륭한 관객석,
이유는 모르지만 커피도 주고 연극 관람 중에 마셔도 됨.(커피를 들고 들어가 의자에 꼿아놓으면 됨)
두번째로는 동국극장의 무죽페스티벌인데 연극만 놓고 보면 명품배우들의 능숙한 연기때문에
재미없어도 재미있지만 관객석이 너무 안좋다. 신경통때문에 객석이 안좋으면 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두 곳이 대학로의 수많은 극장들중에 가장 사랑하는 극장일것이다.

요즘같이 연극보기 좋은 계절엔 체홉 작품 한편 보는것도 후회는 없을듯 싶고
지금 한국사회가 뭔가 좀 바뀌려고 꿈틀꿈틀하기때문에 잘 어울릴수도?

출연 : 권민중, 정인범, 정연주, 한소진, 진민혁, 최재호, 김용성, 정혜원, 장희수, 최인철, 유경열, 노수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16일 토요일

연극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나는 이것을 2024년에 봤었는데 예매하고 오늘 극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때까지 몰랐다.
채승혜배우께서 관객들 안내하며 분위기을 올리고 있었는데 제목 늬앙스와는 다르게
장르가 코미디인가? 그런데 왜 제목이 철학적이지?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극이 시작되고 한 5분정도 지났을까? 응? 본거 같은데? 설마?
조금 더 지나니 확실히 본것이고 모든것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1부진행중 2부나 3부가 생각난것은 아니다. 물론 2부가 진행되고 있는데 3부가 떠오른것 또한 아니다.
진행되는 중에 봤던거였구나. 라는 정도만 생각날뿐 엄마역으로 나온 배우의 목소리가 성우같은데
처음 듣는 느낌이었다.(내용은 기억나지만 배우의 느낌은 모두 잊어버렸던거 같음.)

한번 보고서 오랜세월 기억에 남는 연극은 흔한것이 아니니 별로 이상한 현상은 아니지만
제목만으로 한참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고 할까?

총 3부작으로 되어 있고 과거, 현재,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현재이고
엄마의 과거, 딸의 현재, 엄마와 딸의 현재 이런 구성이다.

이걸 가족 연극이라 해야 할지 자기성찰극이라 해야 할지
물론 코미디는 결코 아니고 그렇게 웃긴 부분이 있는것도 아니다.
엄마와 딸, 현재의 엄마가 된 과거의 엄마의 일대기 같은?
제목과 같이 왜 당시에 없어질수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이야기.

여기서 보면 딸과 엄마 이야기 같지만 전체적으로 순수한 엄마이야기다.
엄밀히따져서 딸은 없다. 딸이 엄마에게 있었다면 항암치료를 했겠지만 끝까지 그러지 않는다.
남겨진 자에 대한 예의정도만 보일뿐인데.
2부는 연극단원들끼리 1부 과거 엄마의 내용으로 만든 연극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서
1부는 3부를 뒷받침 해주지만 2부는 왜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있어서 나쁠것 없을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충분히 재미있고 흐름상 어색함 또한 없다.
단지 필요성한 부분까지는 아닌거 같을뿐이다.
(1부에 붙어서 몇분정도 연극이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붙었으면)

2024년에 봤을때의 사진 처럼 무대장치도 같고 배우의 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 든다.
배우도 같다. 심지어 연극 소개페이지도 대동소이하다. ^_^;

그때는 어땠을까? 당시 관람기를 읽어보면 지금과는 다르게 뭔가 이해하는데 약간은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안그랬는데 집중력이 좋았던건지(2년만에?) 조금 부연설명이 추가 된건지

그때는(2024년) 어머니와 딸,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관람기에 적어놨지만
묘하게도 이번에는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딸 덕분에 자기성찰의 기회를 찾았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좀더 풍요로운 심정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어쩌면 자식들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말하고자 했던것일지도.
왜 내가 없지 않고 지금 이렇게 있을수밖에 없는것인지. 이것은 내 자식때문이 아니라
나의 기억의 연속성때문이란것. 물론 내 마음대로의 해석이다.

다음에 또 공연하면 그땐 봤던것이라는 기억이 나겠지만
신경안쓰고 예매버튼을 누를거 같은 다시 보고싶어지는 연극이었다.

출연 : 구자승, 조주현,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김하리, 김태우, 이정근, 채승혜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미진 춘향가(김세종제)-

 

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스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