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일 화요일

명색이 대보름인데.

 


뻘건달에 초승달까지

주식은 개폭락에 다이나믹한 하루네..

내 더위 사십쇼!

2026년 3월 1일 일요일

연극 -튤립-

 

3.1절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한 가정사를 그린 연극이라니
우연은 아닐거같고 아르코극장에서 어느정도 시기를 맞춘것을 내가 구매한것이겠지
요즘은 점차 연극을 보기 앞서서 시놉시스를 좀 보려고 애쓰는 편인데 하필 이번엔 보질 못했다.
제목이 '튤립'이니 솔직히 멜로인가? 싶었다. 포스터도 진한핑크? 보라? 배경이라서 더욱더 그렇게 생각한거 같다.
물론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지만 아쉬움따위는 생각나지 않을만큼 연극이 무척 훌륭했다.

일단 무대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사방을 막아버렸다. 대형극장이니 주변에 배우들의 통로가 있을텐데
이 모든것을 막은 대형 검은색 곽의 형태로 심지어 배우들이 입장할때도 관객석 통로에서 들어온다.
이건 무척 특이한 설정이다. 배우들은 어디도 갈곳이 없어서 자신들의 역할이 끝나면
벽쪽으로 붙어서 앉아있거나 서있는다.

환경이 이러한데 연극의 흐름은 묘한 반전이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국가 잃은 아픔의 변질된 형태인지.
아들인 쥬리프의 행동이라거나 쿠로(조선까마뒤)와의 관계라거나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무엇인가 조금씩 트러져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행인 조차 없는, 어두 침침한 암흑속

좀 특이한것은 왜 튤립이냐는 것인데 꽃말은 전반적으로 '사랑 고백' 같은 류이다.
오래전에 일본군이 한국의 갓난 아기들을 참혹하게 죽인 일들이 있다. 하지만 이 군인은
특이하게도 갓난 아기를 대려왔다. 너무나 사랑하는 친자식처럼 대려왔다.
엄밀히 보면 훔쳐왔다? 빼았다? 아기의 엄마가 있었으니까. 이부분에서 작가는 어떤 감정으로 이러한 서사를 그려같거지?
보통은 아기엄마가 죽었을때 아기를 못 본척 하려다가 마지못해 대려같다거나하는 전개인데
엄마가 죽은것이 아닌 아기를 빼앗고 엄마를 죽인다. 왜? 이 일본군은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었다.
그 이유때문에? 주변에 튤립이 엄청 많았다던데 이건 또 왜? 연해주의 연추에 튤립이 많은 곳인가?
뭔가 내가 모로는 역사가 있는것인지 궁금하지만 마땅한 정보가 없다는게 아쉽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계속되는 관계가 좀 모호하다.
일본군 부부는 이 훔쳐온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고 말한다. 엄마도 아빠도
부부의 관계는 무척 안좋지만 아이를 중심으로해서 버텨가고 있는것 같은 늬앙스를 풍긴다.
이 군인은 아이가 없으면 부인과 헤어질거 같은 두려움에 아이를 훔쳐던것이 아닐까 싶은정도의 특이한 가정.

여기에 쥬리프의 친아버지가 한국을 건너 일본으로 온다. 물론 아기를 찾기 위해서이다.
군인은 친아버지가 찾아왔을때 죽이거나 쫓아내지 않고 동경대 다니는 자식학교에서 일을 하게 해준다.(해준건지 찾은건지)
일말의 양심같은것이었을까? 침략자의 여유, 관대, 나태였을까.

독특한 흐름의 느낌을 꼭 찝어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저들의 대사 한줄 한줄에 온갖 신경이 곤두선다.
하지만 금세 잊혀진다. 몰일하다가 힘이 풀린다고 할까?

결국은 일제강점기때의 이 가정에서 한국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일본인들 비위를 맞추며 살던 미호만이 살아남는다. 쥬리프도 극상으론 살아남은거 같지만 히로시마로 일을 하러 가고
당시가 1920년대였다면 25년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명확하진 않아보이지만
적어도 당시에 한국인들의 일상과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일본인들의 합리화로 애쓰는 모습들만큼은 확실하게 그려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주제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튤립의 구근(마늘같은?)이란걸 많이 강조하는데 이것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뿌리까지 말살하지 않으면 항상 다시 되 살아난다는 의미였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는 아니라는 것이었을까.

3.1절이 일본을 긴장하게 만들고 세계적으로 알린 사건이라고 하지만
이때 우리 한국인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 또 이후로 많은 변절자들이 생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세계 상위권 강국이 되어 있는걸 보면 튤립의 구근같은 민족이 아닐까.

멋지고 훌륭한 연극이지만 기분좋게 일어나긴 어려운 연극이었다.

출연 : 김정호, 김하람, 권정훈, 윤경, 황순미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연극 -우로-

 

우로라는 뜻이 '우리 로봇'이라고 한다. 그렇게 와닿는 말은 아니지만 이름을 지을때
간단명료한것이 좋으니 나도 생각나는대로 짓다보면 이런게 되지 않을까.

영화'바이센테니얼 맨' 또는 '아이 로봇' 같은게 겹쳐진 (좋게 말하면 오마주 나쁘게 말하면 표절)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엄밀히 보면 이 영화들같이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되진 않는다.

요즘은 연극 소재로 사용이 줄긴 했는데 예전엔 달동내의 소소한 사건들 스토리가 많았다.
아무래도 사람들간의 자잘한 사건 사고들은 사람들이 서로 엉켜있어야 발생하는거고
그 곳에서 인류애같은것도 생겨나는거니 많이들 사용했고 작가 자신의 과거 향수일수도 있고
이 연극은 그런 자잘한 사건들 속에 로봇(우로)이 껴들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정도이다.

그런데 작가가 로봇에 대한 이해가 좀 떨어지는지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과 다르다는듯 설명을 한다.
당연히 같은거고 휴머노이드는 그냥 사람같은 사람 친화적으로 외형이 생긴 로봇일뿐 그냥 로봇이다.
물론 로봇으로 나온 배우도 사람처럼 생겼으니 당연하다.(사이보그-로봇이 사람과 융합된 형태-와 헷갈렸나?)

그리고 내용상으론 로봇이 장장 3세대까지나 나왔는데 사람들은 1세대 로봇도 낯설어 한다.
3세대까지 연구실에서만 존재했던 사회에서는 환상속의 로봇이었나. 아무튼 뭔가 전체적인 설정이 어설프다.
그래서인지 SF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로의 성장드라마 같다.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서 점차 인간사회의 형태를 익히면서 그들의 일원이 되가는
물론 로봇의 설정 특성산 사건 사고는 다 해결한다.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도 않고 뛰어남을 몸소 보여주지도 않지만
말로 모든것을 해결한다. 이런점이 아무래도 영화와는 다르게 표현될수밖에 없다.
그래서 SF 연극은 조금은 논리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그런 면을 전혀 볼순 없다. 달동내 소박한 스토리의 미래형이랄까?

사건사고도 이모부의 바람(오해), 딸의 임신과 이혼, 엄마의 꿈 등 드라마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뿐이다.
여기서 우로(로봇)는 가정부, 말동무(벽보고 말하는거 같다고 하니 실패), 고민해결사 같은 걸 하지만
냉랭한 처리 외엔 없다. 오히려 우로의 친구 애로(로봇간에 오프라인으로 왜 만나야 하는지는 모르겠음)를 만나서
인간 사회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하지만 이것도 너무 인간같아서 저들이 갸우뚱거린다는것 자체가
아이들의 호기심에서 나오는 갸우뚱거림과 다르게 보이진 않았다.

이 연극이 빛을 내는 부분은 SF적 서사가 아니라
코믹디가 깊게 박힌 요소들에 있다. 춤, 순간순간 치고 나오는 묘사, 대사, 리듬, 환경 등
전체적으로 코미디를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 요소가 다분하지만 전체는 그냥 코미디다.
그래서 아예 분위기를 확실하게 올려놨으면 관객이 웃기 시작하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을텐데
아쉽게도 중반 이후부터나 웃음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한다.
관객들 구성은 분명 연극계 친분이 있는 사람들(선후배?)이 엄청 모인거 같음에도 그러했다.
무엇인가 템포가 약간은 웃어야 되나? 싶다가 말다가. 엄밀히 따지만 그런 매 순간에 다 터져야 하고
작가나 배우는 모두 그것을 바랬을지 모른다. 이래서 장르가 코미디면 연극 시작전에 분위기를 충분히
띄우고 시작하는 것일텐데 이 극은 그게 미흡했다.
(협찬이 있으면 선물이라도 좀 주면서 하던가. 없다면 막대사탕을 선물로 퀴즈라도 내던가)

그리고 빈약한 줄거리는 역시나 90분밖에 안되는 길지 않은 연극임에도 막판엔 지루함이 찾아온다.
코미디의 한계일수도 있고 소재의 식상함이나 전개의 따분함 등
막판에 이상한 신파같은 루즈함도 있다. 왜 이런요소를 넣었는지
(몇몇 부분이 좀 타이트 해지면 80분 미만으로 끝날거 같은 내용면으론 참 그저 그런 극임)

특이한점은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게 이 연극의 특장점인거 같다.
엄청 젊어보이는 배우부터 나이좀 있어보이는 배우 모두 정렬적이며 어색함을 찾아볼수 없고
우로와 엄마(김성희)는 모든점에서 뛰어난 연기라서 관람하는데 별 내용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사운드 좋고 소극장이지만 객석도 훌륭했다.

뭔가 재미 있으면서도 지루하고 웃기면서도 하품이 나오기도 하는
그래도 이정도면 따뜻한 초봄에 충분히 볼만한 연극이었다.

출연 : 김석, 태보라, 마수현, 김진영, 함태현, 황예진, 김민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연극 -팬데믹 플레이-

 

새삼 느끼지만 혜화당의 관객석은 손을 크게 봐야 할거 같다.
의자 쿠션은 다 죽어있는 상태이고 휘청휘청, 너무 낮아서 다리가 뜨다보니
엉덩이 뼈로 계속 앉아있어야 해서 너무 아프다.
이 상황에서 연극이 끝나니 너나할거 없이 이곳 저곳에서 엉덩이가 아프다고 아우성.

극장 운영이 어려우니 이런 허접한 관객석을 유지하겠지만
당근이나 중고나라에서라도 좀 구하거나 쿠션이라도 위에 붙이거나 하지않으면 안될상황으로 보인다.
(요즘 이런 허접한 의자를 써도 위에 두꺼운 쿠션을 덧대는 소극장도 좀 있음)

코로나가 끝난지 벌써 4년이 되가고 있지 않나?
끝났다기보다 마스크 의무 착용을 안한지라고 해야 맞겠지. 요즘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흔하다
코로나때문은 아니고 공기가 안좋다거나 독한 감기가 유행이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 비염때문에 착용하는 편이다.

연극 배경이 코로나 한창때보단 한풀 꺾인 무렵인지 마스크를 안쓰고 공원 산책도 하고 그런다
결혼식장 하객 제한을 둔 편도 나오니 한창때인 시기도 있다.

전체 여섯편의 각기 다른 짧은 연극들이 붙어있다.
작년에 할땐 아홉편이던데 왜 3개를 줄였을까. 1,2편으로 나눠 공연하는게 부담스러워
여섯편만 추려내서 한편의 공연으로 만들려 했을거 같은 기분이다.

제목만 좀 나열하자만 '새벽,호모마스쿠스','순대만주세요','숙주','우리는만나지않았다',
'사랑할수없는사랑에대한극적소고','파인다이닝' 이렇게 인데
서로 연관성은 없고 코로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아마도 여기서 코로나가 어떤 원인제공이 된것은 '순대만주세요'정도일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때 결혼식 하객 제한을 해서 생겨난 예비 부부의 갈등을 다루기때문이다.
그 외에는 코로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냥 코로나 시기에 벌어진 일상적인 일들이였다.
골이 깊어진 부부, 연인, 우연한 만남 등 그냥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다.

검색을 해보면 2022년도에 희곡집이 출판됬던데 이때라면 코로나로 인해 독한 사건사고들이
많았을거 같고 그에 관련된 내용들도 많았을거 같았는데 내용은 역시 드라마를 벗어나긴 어려운거 같다.
(이때 이런 주제로 좀 쌔게 만든 연극도 있었음)

연극들 자체가 워낙 짧기때문에 집중 좀 하려하면 갑자기 암전이 되면서 끝난다.
짧아도 너무 짧다. 그렇다고 기승전결이 없는건 아니지만 너무 압축해놔서
개콘을 보는 느낌정도랄까? 어떤 감동이나 여운, 생각 따위를 할 여유가 없다.
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서로 연결성 자체가 전혀 없기때문에 바로 머리속을 비워야 한다.
코로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주제를 좀 연결하는 기획으로 각각 작가를 붙이면
여러편을 보더라도 심리적인 여유가 있었을거 같은데 그럴 결흘이 없다.

한 작가가 일생동안 쓴 단편들을 모아놓고 한번에 공연하면
작가의 일관된 세계관이 투영되기때문에 완전 다른 내용같아도 그 속에서 연결된 고리를 찾을수 있는데
이건 작가와 연출이 모두 다르고, 배경만 툭! 던져놨는지 그냥 쌩판 다른 연극일뿐이다.
옴니버스형식은 그래도 굵직한 하나의 주제를 통일시키는데 어쩜 이리도 따로노는지.

그래서 100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고 머리속에 남는것도 하나도 없는 킬링타임용 연극이었다.
(킬링타임용 연극이라니. 좀 모욕적인가?)

볼만은 했는데 기억에 안남고 코미디도 아니라서 스트레스 해소가 됬던것도 아니고 그럴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멜로는 있지만 여섯편중 코미디 장르는 없다. (상황이 암울한데 코미디로 승화하기엔 쉽지 않겠지)

이런 펜데믹은 또 다른 형태로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발생할테니
비슷한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것도 재밌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요즘같이 주식시장이 난리통이라면 이때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언젠가 또 다른 바이러스가 한국을 강타할수 있고, AI 로봇들이 인간사회를 뒤집어놓을수도 있으니
그런 굵직한 배경을 바탕으로 시리즈로 나오면 매년 찾아서 보는 맛이 쏠쏠하지 않을까싶다. ^_^

출연 : 이준우, 전해리, 안수민, 황원규, 곽지유, 정진호, 도경, 강여정, 송은지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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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7일 화요일

연극 -사의 찬미(死의 讚美)-

 

설 당일에 공연을 본적이 전에도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이번엔 예외적으로 본가에는 다른 날 가게되어 설 당일에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사의 찬미' 많이 들어본 제목. 찾아보면 노래 제목으로 1920년대 번안곡이라 한다.
(나는 사의 찬미가 소설 제목인줄 알았음)

좋은 극장에서 공연을 볼때의 기대감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좋은 무대장치들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소극장이나 초대형 극장이나 다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예산 문제로 작은 극장에서 할 땐 무대가 좀 아쉬운경우가 많다. 반면 대형 극장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극들은 그지같이 비싸지만 객석 좋고 무대가 좋다.
이에 부합하는 연극 극장이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가 아닐까 싶다. 대형 무대는 아니지만 무엇을 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크기에 훌륭한 관객석과 뛰어난 설비들.

하지막 걱정되는것은 1920년대의 이야기라는 것인데 일제강점기라서 친일파 미화 하는것은 아닌가라 걱정도 좀 있었지만
단순한 멜로로 생각하게 하는 연극이었다.
여기에 무슨 이것저것 당시의 시대상에 어떤 이상주의와 현실 어쩌구 저쩌구 헛소리들이 많은데 그냥 멜로다. 
불륜, 삼각관계(친일매국노 홍난파도 아무 조금 합세), 신파라고 하기는 주연의 연기가 달려서 신파로 접근이 안된 신파?
흐름은 액자식 구성으로 현재는 과거이야기로 접근하기 위한 데코레이션에 불과하다. (이런게 대부분 비슷한 구성)
특이한점이라면 홍난파의 플래시백과 화가쪽(나혜석) 윤심덕의 플래시백이 동시에 전개된다.
하지만 둘을 하나로 합쳐도 이야기상 아무런 변화는 없어보인다.
뭐랄까? 홍난파가 이야기 하는 것도 윤신덕 입장이고 파리에서 윤심덕의 이야기도 윤심덕 이야기니 말이다.
최소한 홍난파가 이야기 할땐 홍난파의 심정이나 시선도 어느정도 들어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이렇게 둘이 나눠 이야기 할거라면.

처음 시작할때 놀랐는데 연극(희곡) 배우가 아닌 서예지(TV,영화) 배우가 나온다. 요즘은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흔하게 나오니까 그러려니 넘길수 있는데 발성때문인지 마이크를 착용하고 나오는데
(TV배우들은 특성상 생으로 하면 개미콧구멍만한 소리밖에 안됨)
음향이 너무 개판이라는것이다. 중앙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무대 양쪽에 스피커에 배우들이 있는줄 알았다.
거의 중앙에 앉았음에도 좌우 밸런스도 맞지 않는다. (요즘은 음향감독이 부족한가? 왜 이런식으로)
이럴거면 중앙 센터쪽에 스피커를 배치하면 이질감이 훨씬 줄어들텐데 스테레오도 아니면서
편파적이며 음향도 좋지 않은 멍텅구리 음향 설정은 무엇일까? 이곳을 처음 온것이 아닌데
그동안 대부분은 배우들의 자체 발성으로 들었던적이 많았는지 이곳의 음향이 이렇게 똥망인줄 몰랐다.
당연히 좋을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던건지. 이번만 이런것인지.

그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윤심덕 배역을 맡은 서예지라는 주인공이다.
제발 정극을 처음하는 TV,영화 배우들은 주연좀 시키지 마라. 제발.
발성도 이상하고 딕션도 이상하고 소프라노 치고 보이시하면 굴직한 중선톤에 연기는 또 왜 이런지..
보는 내내 어색함에 거슬리는 오열, 과열, 감정고조 연기, 이상하게 꺽이는 톤, 알아들을수 없는 순간 순간의 대사들
(이정도면 오늘 출연한 배우들중 단연 최하라고 해도 될정도 같은데)

아무리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라 할지라도 무대 공연은 분명히 다르니 그에 맞는 트레이닝을 확실하게 시키던가
아니면 조금 역할이 적은 화가 역을 시키던가. 인지도 높은 TV배우라고 이렇게 중앙에 막 꼿아넣으면 되겠냐?
연극의 감정선을 다 망치는건 생각 안하는건지. 웬지 엄청 안타까운 기분마져 들 정도였다.

설 당일. 적지 않은 금액을 내고 기분좋게 극장에 왔는데 주연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저따위라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개똥같은 기분이 들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멜로는 감성이 노골노골해저서 웬만하면 좋아하는 장르인데
연극보는 내내 쟤 뭐지? 왜? 갸우뚱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멍청한 선택은 좀
배우 인지도만 놓고 무조건 중앙에 세워놓지 말고 검증 단계를 좀 거친후 무대에 올리자.
연기 짱짱하고 미모 훌륭한 연극 배우들이 널렸는데 하여튼 돈의 노예들 에이.
(서양은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도 오디션을 반드시 보고 결정한다는데 우리 한국은 왜 이모양인지)

차라리 말은 많지만 최소한 연기가 이상한건 아니니 안나카레니나를 보시길 권함.
가격이 둘다 흉측하니 쉣이지만.

출연 : 서예지, 곽시양, 진소연, 박선호, 김태향, 고주희, 허동수, 박지훈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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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5일 일요일

연극 -멸종위기종-

 

멸종 위기라는게 요즘은 다른 생명체보다 인류의 멸종을 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인류의 멸종을 의미하는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실제 멸종위기에 빠진 조류를 촬영하는 사진작가, 기획한 매거진, 동물원 등 몇가지의 인물배경이 나온다.
여기서 가장 현실적이며 독특한 설정이 매거진 기획자이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가스라이팅하는 전형적인 영업맨(최유형)의 면모를 보인다.
문제는 이 사람의 논리가 사회에 통용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예술가라 하더라도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 예술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잡아야만 본인이 하고자 했던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게 된다는 점 등
사람들이 혹 할만한 현실의 꼭지점 같은 요점의 비수로 심장을 찌르듯 들어온다.
이러니 두 사진작가가 안넘어갈 수 있겠는가.

원로 사진작가(반우)는 이미 수많은 이런 현실을 겪어왔고 그에게서 배우려고 들어온 젊은 작가(정은호)는
그 현실을 아직은 알지 못하여 유형(매거진)의 말에 현혹되어 넘어간다. 반우는 이러한 현실을 알고 은호에게
그럴때가 아니니 네 길을 찾으라고 말하지만 젊고 혈기에 왕성하고 의욕 넘치는 은호에게 그것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결국 반우를 배신아닌 배신하게 되지만 높은자리를 쉽게 올라가면 떨어지는것도 아픈법이니
그것을 깨닫게 되지만 원로 사진 작가 반우는 이미 많은 경험을 해왔기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기회를 손쉽게 잡는다.

젊은 작가 은호도 다시 기회가 올때가 있을것이고(안올수도) 그러한 사이클을 한번 경험했으니
몇번의 되풀로 굳은살이 생기는, 사회에서 성공의 쳇바퀴를 단편적으로 그려낸다.
이 셋과의 관계는 많이 보이기도 하고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들은 많다.
하지만 보통은 기성세대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서 시샘으로 신세대와 결별하는 내용이 흔한데
이 작품에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단면이라도 가르쳐 주지만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젊은이의 혈기로 실수 하는것을 그 스승이 떠안게 되는 장르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연극에서 두 사진작가는 스승과 제자라는 표면보다는 동료관계 같은 심리가 깔려있어보인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는 다른 흐름이 보여서 그동안 봐왔던 전개와는 조금은 다른 결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물의 관점이 새로 들어온다.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닌데 제가가 스승의 작업을 촬영하는 것 또한
다른 시선을 표현하는거라서 이 연극의 주제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흘러가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 사람과 다른 매체 등 다양하지만 일관된 두개의 선을 나타낸다.

반우가 은호를 보는 시선과 은호가 반우를 보는 시선이 서로 다르다는 것.
작가가 보는 멸종위기에 빠진 새와 인간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새가 작가를 보는데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 부분에서 조금은 독특한 사고가 생겨나는데 사회에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점차 퇴색되고 있는 지금에서 이러한 주제를 걸었다면, 집단이라는 인간사회가 파편화 되는 과정속에서 나오는
회기본능의 일종인지 신세계를 맞이하기 전 마지막 회상이라는 형식을 빌어 떠나보내는 예우의 과정일수도 있다. 
작가의 생각이 무엇이든 분명한것은 무엇인가는 멸종위기에 처한것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존재의 오만함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몰입감이 뛰어나고 호흡도 좋다. 매체도 다양하게 활용하여 보는 재미도 뛰어난
훌륭한 연극이었다. 다음에 또 볼수 있으면 좋겠는데 언제 할런지.

출연 : 최희진, 박용우, 송석근, 최도혁, 신윤지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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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4일 토요일

전통무용 -2026 축제(祝.祭)-

 

2024년 공연은 봤는데 2025년엔 왜 안봤지? 2024년때 그렇게 좋은 느낌이 아니었어서 안봤나?

설연휴가 짧지만 그래도 5일이나 쉬는데 이번엔 두편밖에 예매를 할 수 없었다.
월요일은 대부분 쉬고 설 당일엔 아무래도 집에 가야 하니 예매 안했고
마지막 일은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니 예매를 안했는데 이번엔 본가를 마지막날 가게 되서
월요일과 설 당일이 빈다. 그래서 오늘 보는 공연이 더욱더 소중하다. 물론 내일 보는 공연도 그렇다.

2024년에 본 관람기를 읽어보니 공연이 짧고 레퍼토리가 식상하다거나 한거였는데
이번 2026년은 구성이 분명히 다르다. 공연시간도 90분 남짓으로 길어졌다.

그런데 특이한것은 설은 음력 1월1일이기때문에 그믐이다. 그런데 왜 보름달을 바닥에 둔것일까?
우끼게도 첫번째 공연이 강강술래. 설에 하는건 좀 이상한거 아닌가?
더욱더 충격은 강강술래 노래를 1970년대 라디오 소리같은 오래전에 녹음된 음악을 튼다는것이다.
1972년 처음 공연예술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때 녹음된 소리인가? 왜 설에 강강술래를 하고
오래된 녹음본을 트는 이유가 뭘까? 이상한 녹음본을 틀거면 그 배경이라도 설명을 하던가
처음 녹음됬던 것이라거나 어떤 명창의 끝내주는 노래라거나
정원대보름도 원래 큰 명절이었다고 하니 강강술래를 한거 같은데. 엄동설한에 강강술래를?

공연이 시작하는데 그 어떤 안내 텍스트 하나 없다. 뭐 이렇게 공연이 엉성할까.

황당해서였을까. 강강술래는 관객들이 함께하기 좋은 공연인데
그누구도 리듬에 맞춰서 박수 치는 사람 한명 없다.

다음은 분위기 난감함 살풀이춤. 소복같은거 입은 분들의 묘한 춤들
역시 음향이 개판이다. 국립극장은 음향만큼은 웬만해서 좋은데 이렇게 거슬렸던적이 있던가.
공연장은 너무 덥고 정신이 너무 산만해져서 공연에 집중이 안된다.

선비들 춤 같은(학을 형상화 한거 같기도 하고)것도 나오지만 예전부터 의문점이
선비들이 이런 춤을 추며 놀았을까?이다.

유두(검무)에서 조금 기대가 됬었다. 현대 음악으로 컬레보레이션 한거 같은
좀 쌘 리듬이 뒷받침되는 검무라서 기대를 하다가 말아버린다.
도데체 음향감독이 누구길래 이딴식으로 흥을 다 죽여버리는걸까?
이런 리듬과 춤이라면 가슴을 울릴정도의 공연장내에 귀가 아플수도 있을정도로 음악이 가득차야 하는데
멋진춤을 확실하게 받쳐줘는 음악이 없어서 다 망쳐버린 기분이다. 간만에 새로운 시도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깝다.

그리고 아쉬웠던게 바로 장고춤. 이거 뭐지? 장고가 무슨 애들 가지고 노는 장난감 같은 소리가 나는 이유는 뭘까?
촤~ 소리와 덩~ 하는 소리는 오간데없이 그냥 첵!첵! 거리는 이상한 소리만 난다.
음향 밸런스도 맞지 않아서(이건 또 소리를 왜 그렇게 키운거지? 엿같은 음향설정 젠장)
장고춤은 리듬악기와 화려한 춤이 돋보이기때문에 인기 많은 품목인데 장고 소리가 개판이고
배경음악은 더럽게 커서 즐길수가 없다. 이 훌륭한 공연을 왜 이렇게 망쳐놓는것인지.
어떤놈이 초짜 음향감독을 대려와 앉혀놓은건지?

남자들이 북을 들고 나와 춤추며 북을 치는데 쓸모없는 음향이 사라지니 흥이 살아난다.
모든 사람들이 흥겨워 하고 좋아하는것에서 완전 다른 모습을 본다.
여기 온 모든 관객은 이런 분위기를 원했던듯 박수와 환호로 공연장이 공연장스러워보인다.

피날레는 고무. 여성들의 5-7고무는 화려하면서 흥겹고 아름답다.
엄청난 에너지로 압도당하고 마무리 역시 깔끔하게 암전되며 막을 내린다.
북의 특성과 안무의 화려함이 잘 어우러진 훌륭한 무대였다.

개판 일보직전인 음향과 설명 한자 없이 시작해버리는 진행연출(여러가지 공연을 섞은건데 자막으로 제목이라도 보여주면 안되나?)
설에 강강술래를 하는 특이한 공연 구성 그리고 더워서 옷을 벗어도 늘어지는 환경.
설이니 1년의 염원을 모두 담으려 한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찰떡같은 구성은 아닌거 같다.
그리고 무대도 작게 느껴지는것이 좀 답답함도 있었는데
내년엔 축제라는 제목에 걸맞게 가장 큰 극장인 해오름에서 하길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유두(검무)는 가슴을 후려치는 제대로 된 사운드를 깔고서 다시 보고 싶은데 언제나 또 볼수 있을런지.

출연 : 국립무용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연극 -공상가 김씨 이야기-

 

전체 내용이 공상가 김씨의 이야기라는 소릴까?
노량진꼴통이란 작가가 공상가란 소릴까. 무엇이 되었던 내용은 공상이란 소리겠지.

안드로메다 어딘가의 고등한 생명체가 인류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했다는 설정부터가 공상스럽다.

SF물은 당연히 아니고 네편의 극 사이에 껴있는 내용으로 외계인이 지구의 인류를 멸종시킬것인가
존속할만한 가치가 있는것인가를 논하지만 크게 와닿는다거나 새롭거나 한 부분은 없어서
그렇고 그런 내용을 코미디로 꾸며놓은것인데 왜 이 막간극이 들어이유를 생각해보면
나머지 네개의 극에 크게 연결되는거 같아보이지도 않지만
중간 중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엔 좋은 막간극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보인다.

총 4편의 극이 있는데 나는 첫편이 가장 연극으로 괜찮은 소재였던거 같다.
두명의 친구가 서로의 기준에 맞춰서 주장하는것에 매료된다고 할까
하지만 4편이나 있기때문에 길게 진행되지 못한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두 친구는 자신의 주장을 하지만 어느쪽의 편을 들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인간은 이상도 필요하고 현실도 필요하기때문이다. 네편 중 이 극이 가장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싶다.

두번째부터 좀 감정적으로 과한 설정이 들어가는데 노인들의 고독에 대한 주제다.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 못해서 전화를 붙잡고 몇분만이라도 이야기 나누려 하는 애처로움이라거나
꿈속에서 사별한 남편과 대화를 하는 부분이라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움에 사무친 힘없는 한 노인의 짧은 이야기인데
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난감하다. 슬퍼야 할지 아니면 사회문제고 내 미래도 걱정이라며
고민을 해야 할지. 아무튼 나 역시 고민이 되는 부분이긴 한데 연극에서는 관객과의 공감대보단
저 노인 자신에게 너무 휩쌓여있는듯해서 쉽사리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독거노인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를 외면할수는 없는 주제였다.

거리의 보헤미안이라는 세번째 극은 노숙자한명이 객사 한 후 다른 노숙자들이 이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게 되는데
노숙인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한 복지 공간의 비리같은게 있는지 관련 기사를 접하질 못해서 모르겠으나
내용을 그런식으로 간다는것은 그만큼 문제가 있던 곳이 있었던거 같다.
노숙인들 역시 인간이고 존엄하기때문에 돌아가신 분에 대해 예를 다하여 보내드리긴 하는데
설정상 현실과는 좀 맞지 않아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죽은 사람을 인위적으로 막 대리고 다닐수는 없기때문에
저들의 저 심정은 단편적으로나마 납득은 되지만 쉽게 설득되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정도는 애도하고
망자 가시는 길 배웅정도는 인간사에서 허용되지 않겠나 싶은 잔잔한 드라마였다.
노숙자는 보헤미안보다는 집시가 더 어울리는게 아닌가란 생각도 잠시 해본다.

마지막 극은 이 모든것의 어떤 결과물같은 주제로 행복에 대한것을 이야기 한다.
추울땐 단순히 쓸모없는 박스 한개도 소중하고 따뜻하고 안정된 행복감을 선사한다.
빈명 몇개와 몇마디 대화가 어떤 노인에겐 더할나이없는 큰행복이고
무료급식소에서 가끔씩 나오는 제육볶음은 전날 잠을 설치게 할정도의 행복이다.
이렇듯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행복은 상황에 맞아떨어질때 기존 지니고 있던 가치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마지막 극은 이러한것들을 진솔하게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준다.
조금은 뻔한 내용에 사건해결같은게 불필요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무리 극다운 면모가 있었다.

이 연극은 우리가 직면한 무엇인가를 계속 반복해서 보여준다. 조금씩 조금씩 주제를 바꿔가며
그래서 조금더 생각하게 하고 조금더 다가서게 한다.
총 다섯편이나 되는 극 치곤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는게 아쉽지만 살을 좀더 붙여서
각 주제별로 관객이 아주 조금만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면 감동이 배가되지 않을까싶은
멋지고 훌륭한 연극이었다.

출연 : 김진태, 강경림, 이현화, 김진현, 강병조, 권남옥, 황민우, 윤성준, 황신영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2월 7일 토요일

판소리 -소리정담-

 

올해 처음 선보이는 토크쇼형식의 판소리 공연으로 사뭇 기대가 되긴 했는데
아무래도 진행이 매끄러운 TV토크쇼에 익숙해져있으니 조금은 거칠게 느껴진다.
시범적으로 한번 진행하는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순 내부 사정을 알순 없지만
계속 정규 편성을 하게 된다면 점차 좋아질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대화라는것만 놓고 봤을때이고

두 출연자 모두 이쪽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들로 공연의 품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분명히 의자에서 일어날때는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소리를 시작하면 그 힘겹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젊은이들 못지 않는 엄청난 파워가 뿜어져 나온다.
이것이 공연예술가들의 힘일까? 이들에게 무대와 관객은 생명이나 다름없어보였다.

김일구명창께서는 아쟁같은 악기도 출중한 능력의 지니고 계셔서
악기 연주를 하면서 관객과 은연중 밀땅을 하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오랜 시간 노력한 자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같이 보였다.

적벽가, 심청가 한대목과 민요 그리고 마지막에 창극 춘향전의 한 대목을 부부께서 함께 공연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부분은 무척 인상깊고 감동적이었다.

판소리와는 다르게 창극은 연기의 비중이 높은 공연인데 나무꾼역을 맏은 김영자명창께서는
완전 다른 사람처럼 젊은 현역 배우 못지 않은 역동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이몽룡 역인 김일구 명창께서는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눌때는 부부의 대화가 좀 서먹서먹 하던데
창극에서는 어쩜 그리도 찰떡같은지. 평생 광대의 인생을 살아온 한 부부의 결정체를 보는 기분이어서
공연 막바지에 깊은 울림을 선사한 공연이었다.

좀 아쉽다면 두분 연세가 연로하시니 앉았다 일어났다 할때 힘겨워하는 모습에 나도 힘들다고 할지
꼭 바닥에 앉아야만 공연이 가능한건지. 테이블위에서 아쟁연주를 한다거 하는건 불가능 한것일까
아니면 바닥에서 일어날때 전동의자같은것으로 연주자가 힘들지 않게 일어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치를
고민하면 충분히 가능할것도 같지만 아직 한국에서 예술인에 대한 이런 배려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는거 같다.

그리고 관객들의 추임세는 흥을 돋우니 좋지만 바로 옆에서 추임세를 큰소리로 질르듯 넣을땐
옆에 앉은 나로서는 대단히 거슬릴수밖에 없다.
좀 작게 추임세를 넣어도 다 들릴텐데 비명을 지르듯 큰소리를 내면 좀 그렇지 않을까.

이부분을 우리 마당놀이 문화에서 어느정도 해결해야 할 숙제같은 부분으로 보인다.
분명 관객과 소통의 한 부분으로 괜찮을수 있지만 현대 공연 구조는 이게 좀 맞아보이진 않는다.
(추임세를 넣는 분들은 아무래도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보이는데
이런 분들은 좀 앞자리에 배정할수 있도록해서 공연하는 분들도 신나고 일반 관객도 놀라지 않는 구성이 어려울까?고민이 된다.)

이틀간 공연인데 왜 다른 구성으로 만들었을까?
평일 공연을 보기 위해 일반인이 두번이나 시간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다회 공연을 하더라도 레퍼토리는 같게 하는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무슨 판소리 축제로 매일 매일 다른 인물이 나와서 다른 공연을 하는것도 아니고
같은 명창이 나오는데 다른 구성을 만든다는것은 어이없는 것이다. 이것은 힘들게 시간내서 보러온 사람을
반쪽만 보고 가는거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상한 구성은 좀 지양했으면 좋겠다.
왜 국악은 이런 형태로 자주 공연기획을 하는지

이번 계기를 통해 예술인들의 진솔한 얘기도 들어보고 공연도 보고
이런 무대는 국립극장보다는 국립국악원의 풍류사랑방 같은곳이 딱 적절한 무대인거 같은데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토크쇼를 하기엔 좀)
이번 한번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정기적으로 하는 공연이길 기대해본다.

소리 : 김영자, 김일구
고수 : 김태영
사회 : 유은선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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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일 일요일

연극 -몸 기울여-

 

하얗고 어두침침한 조명, 차가운 콘크리트 구조물. 고기같은게 걸려있는 배경
공연20분전부터 입장인데 20분 기다리는게 어딘가 힘들게 느껴진다.
묵직한 무대 디자인때문이었을까.

전체적으로 주제가 나뉘는 소재를 생각해보자면
사이코패스, 집단괴롭힘, 이기주의, 동물에 대한 이중적사고(캣맘?), 권력비리, 회피?
이정도 되는거 같다. 다양한 주제 하지만 한쪽에만 치우치진 않는다?

고깃집은 단순 배경일까? 괭이를 재미로 죽이는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살육하는것과
상반된 사고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일까? 고깃집인지 정육점인지 잘 모르겠다.
발골한다고 하길래 처음엔 도살장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거 같다.(정육형 고깃집 같음)

시작은 기르던 괭이를 잃어버려 찾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중간에 떡하니 덩치큰 사람이 앉아있어서
스릴러 호러, 고어물같은건줄 알았다. 도살장을 배경으로 하는 그런류?

잃어버린 괭이를 배경으로 사건이 엮여이게 되는데 과거 또한 괭이부터 시작한다.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일깨워준 동내 양아치들.
그들은 이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동물 학대도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단순한 동내 양아치처럼
살아가는 존재들? 일을 하며 살아가는거 같은데. 늬앙스는 양아치 아닌 양아치.

사이코패스인 동파만이 군수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지만 야망이 있는 인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왜일까? 공인으로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괭이를 죽이므로서 기분전환을 하는데
이 사람은 왜 정치인이 되려는 것인지. 그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괭이를 죽이는것 빼면 그냥 청렴해 보이는 선출직공무원인 사람이었다.

은연중 알게모르게 난폭함이 나타나긴 하지만 오랜 동내 친구들과 즐기면서 나오는것이라면
뭐 그냥 납득이 안된다고도 할 수없다.

다른 친구들도 그다지. 경찰도 그렇고 괭이를 잃어버려 매일 찾으러 다니는 친구 홍인도 그렇고

사건을 만드는 두 종류의 인간이 나오는데 (이 두 종류가 이 연극의 본질인지는 모르겠음)
한 사람은 전형적인 동내 양아치. 어떻게든 동파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다.
동파가 괭이를 죽이는 장면을 다른 친구와 찍어서 협박하여 동파는 사이코패스에서 부패한 정치인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다른 한사람은 내가 보기엔 캣맘이다. 전 남편(홍인)을 계속 가스라이팅 한다.
주는 고기는 잘 먹으면서 야생괭이에게 계속 먹을것을 줘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전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는 답답함이 있다.
(홍인은 괭이를 찾기 위해 이 여자를 불러온것이지만 잘한것일까?)

괭이도 전남편이 키우다가 실수로 집밖을 나갔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 한다. 부부도 아닌데

아마도 두 캐릭터가 이 연극에서 가장 큰 줄기로 나뉘게 되는거 같다.
동내 양아치와 남을 생각하지 않는 캣맘의 이기적 형태
이 둘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용당하는 모습?

사회 부조리를 만드는 존재들은 언제나 소수다.
자신이 갖은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소수의 인물들.
한국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하는것은 과연 대중일까?란 생각에서 이 연극은 또 다른 단면을 생각하게 해준다.

폭력으로부터 생겨난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한 인물인 동파도 특이하고
칼 가는것에 집착하는 고깃집 발골맨(정형사) 괭이 주인 홍인도 그 속이 약간은 어두침침하지만
열린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뽀족한곳으로 모이는 맛이 전혀 없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왜 '몸 기울여'라는 제목이 붙은걸까?
연극에선 생각보다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두 인물을 제외하면 그다지 다른 길을 열어놓지 않는다.
한곳으로만 몰아넣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것일까.

전체적으로 다양한 주제를 지니고 있어서 자칫 산만할수도 있지만
주제들은 각 단락마다 섞이지 않으며 깊이있게 논한다. 그리고 생각할 여유를 준다.

110분간 고조되지 않는 긴장감속에 진행되는데 조금 아쉽다면 뭔가 터져야 할거 같은데
터지질 않았다는것이다. 사이코패스가 보여야 할것들이거나. 괭이 주인의 터져나오는 증오심과 폭력성?

끝은 좀 허전하다고 할까? 그래서 좀더 생각을 하게 되는 연극이긴 했는데
세상이 멸망할거같이 분위기를 잡아놓고 좀 독특하게 마무리되는걸 보면 좋은 연극이긴 한데
꼭 찝어서 뭐가 좋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무튼 훌륭한 연극이었다. ^_^

출연 : 김상보, 유독현, 조형래, 강혜련, 홍성민, 박상윤, 임솔균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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