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일 토요일

국악 -광대(소춘대유희)-

 

소춘대유희가 무엇일까? 고작 100년 된 공연인데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나온다.
도데체 기록의 역사는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 이 시기는 강점기 시절도 아닌데.
현한국에서도 엿같은 정부가 들어서면 자료를 모두 파기 하는데 이때도 조선 말기라
부패한 놈들이 사료를 남김없이 불태웠던걸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당시 기사 기록으로 보면 판소리, 잡가, 탈춤, 무동놀이, 남사당의 땅재주, 쌍줄타기, 기생의 춤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도 이정도 레퍼토리는 구성되어 있는거 같다. 주로 춤이긴 한데 판소리 등 잡가도 제법 나온다.
그러고 보면 민요는 없었던거 같은데. 민중을 대상으로 12월 밤마다 했다고 하는데 민요는 있어야 할텐데.

전체적인 플롯은 타임슬립(Time slip) 구조로 예전에 국립국안원에서 했던 이습회의 구조와 무척 비슷하다.
다만 이습회같은 경우는 좁은 무대와 상대적으로 궁중음악을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공연하게 된것인데
내용이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 약간은 고리타분하다고 할까? 고급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 마저도 아이가 앞에서 알짱되는 바람에 관람은 망쳤지만 아무튼 거의 대동소이하나 구성은 완전히 다르다.
소춘대유희란 뜻이 봄에 펼치는 즐거운 잔치 정도라는데. 막상 12월 밤에 했다고 하니(입춘때도 아니고 동지때)

현대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부분은 별 의미 없고, 그 시절의 실제 소춘대유희를 재현한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만
현대에 맞게 화려하며 웅장하며 아름답게 그리고 신명나도록 새로 구성되었을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공연을 좀 보다면 비슷한 흐름의 구성이란게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분위기를 띄우고 최고조에 올라섰을때
과감하게 마무리 하며 여운이 가슴팍에 팍! 꼿히도록. 같은 플롯이라고 구성이 달라서 감동이 다를수 밖에 없는데
오늘은 짧으면서도 강렬하고 많은것들이 오갔지만 막상 뭔지 말하라고 한다면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정도말곤
대답할 수 있는게 없을만큼 저들의 춤과 연주가 내게는 어려운 암기과목일뿐이다.
그렇다고 외우려고 애쓸필요는 없다. 주된 리듬, 춤사위나 안무는 우리가 그동안 평생 알게모르게
봐오던것들이라서 리듬에 맞춰서 몸을 맏기면 그뿐이다. 한문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구성 자체가 실내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민속음악들이니 감정선이 어렵지 않다.
(이런 공연을 궁중에서 했을거 같지는 않다. 도입부 쯤에 선비들의 춤 몇자락과 아이의 소리를 빼면)

오방신의 공연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주로 이들이 가장 중추적으로 힘을 주지만
나는 이들보다는 백년광대들의 춤들이 개인적으로 훨씬 좋았다.
아름다운 선을 항상 유지하면서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묘한 현대무용이 컬레버레이션 된듯한
극도로 절제된것보다는 과감하게 모든것을 뿌려버리는 숨막히는 춤들은 모든 신경이 저들을 위해
존재하는듯 빨려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여성들의 춤선을 좋아하기때문일수도 있지만
세상 모든 미의 기준은 인구수만큼이나 개개인의 취향을 따라는것이니

시작부터 밝은 톤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그 색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춘대유희? 과거 사진 몇점을 뿌리는건 좀 지루함이 있었지만
(막상 당시대에 대한 자료도 없는데 몇점 남은 사진은 이질감만 커지지 않나? 그냥 봐도 너무 다른 상황같이 보이던데)
아무튼 80분이란 길지 않은 시간 숨가쁘게 달려간다.
생각해보면 국내 이런 레퍼토리가 몇개 있다. 묵향, 향연, 단, 만신, 축제 등 몇몇가진데.
아마도 이중에 가장 민중에 가깝게 들어와있는것이 소춘대유희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1902년대 말고 2020년 지금)

이런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조선시대에 이러한 음악,음향,안무,설비등이 있을리 없기때문에 느낌도 많이 다를수밖에)
이런 공연문화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길 바라긴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1인당 6만원이라면 할인에 해당되지 않을경우 제법 부담이 된다.
수십만원이나 하는 공연도 허다한 세상이긴 한데 한국에서 정부보조를 받으며 제작하고 공연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세금으로 제작과 공연하는 것이 아닌가? 사설 기관 주최로 하는 곳에서 비싸게 받던지 하고
가급적 이런 공연은 좀 현실적인 금액으로 낮춰줬으면 좋겠다. 내 욕심일수 있지만 세금은 이렇게 무너지는 그러나 지켜야 되는
전통예술에 쓰고 관객인 민중은 저렴하게 그것을 관람하므로 체화시켜 국가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비싸게 운영을 해서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있을런지.
(4인 가족이 공연보고 밥 먹고 디저트 조금 먹는 일정으로 하루 가족 나들이를 한다고 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나간다.
한달에 단 한번, 분기별 단 한번이면 큰 문제 없지만 문화라는 것이 몸에 베기 위해선 장시간 오랜 반복이 필요하기때문에
1회성으로만 기획하는것은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는 맞지 않다. 그냥 사라지라고 기도하는 것일뿐)

그리고 자신의 귀가 좀 큰 소리에 예민하다고 생각되면, 아이와 동반한 부모라면
가급적 뒷자리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국악기들 중 꽹과리, 징, 북을 코앞에서 치면 그 소리가 어마하게 크다.
내가 앞에서 3번째 줄 자리에 앉았는데 귀가 아플정도였고 나중에는 모든소리가 섞이면서 노이즈처럼 느껴지는 구간도
일부분 있었다. 이것은 커가는 아이들의 청각에 안좋을거 같을정도로 소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연주를 조용히 하란 말이 결코 아님)
맨 앞자리는 가급적 가지 말고 둘째, 세째줄도 왠만하면 앉지 않길 권한다.
중간쯤 되는 10번째 자리는 넘어서야 좀 편히 들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소리에 예만하거나 아이가 있으면
꼭 고민해보길 권한다.

그런데 1902년 조선에서는 왜 12월 저녁부터 자정까지 공연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봄, 여름, 가을 보다는 겨울, 한적하면서 쓸쓸한 한밤 중 후끈한 열기와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귀가 하도록 한 배려가 아닐까. 술 한잔 하면 더 좋고. 아무튼 겨울에도 이 공연을 볼 수 있길 바란다.

할인에 해당되는 분들은 꼭 봐보길 권함
대부분 군무에 음량이 좀 크고 대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공연이니 중간 이후 뒷자리가 좋음
(앞자리는 가급적 피하는게 귀건강에 좋을수 있음)

출연 : 정동극장예술단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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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일 금요일

연극 -오해-

 

순전히 포스터만 보고 선택한 연극이었다.
카뮈의 '오해'는 예전에도 봤었고 느낌이 좋은 내용은 아니라서
그것이 생각났다면 예매를 망설였겠지만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예매를 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연극을 보면서 알던 내용이라 약간은 실망을 했지만

각색이 좀 묘하다. 판소리 대목도 하는 노을.

전체줄거리는 배경에 나오는 회색 하늘같다. 검은 비가 내리고
무대장치만 보면 그러지 않은데 연극에 빠져들다보면 저 무대가 눅눅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장의 밝은 이미지덕분에 그나마 암울한 눅눅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버릴수 있었다.

내용은 관객의 입장에서의 감정상태와는 다르게 감추는 것도 없이 흘러가지만
설마 설마 하지만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는것.
아들을 죽이고 따라 죽는 엄마, 비관하는 동생, 절규하는 아내.
문제는 장이 죽기 전까지 이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태니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의 끝은 강물 속 뻘에 빠져버린 절망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전체적으로 밝을수 없은 밝은 톤으로 유지된다. (조명마져 어두웠다면 꽤나 기분이 안좋았을듯)

비극의 전형을 따르는 극으로 세익스피어 비극과 비교하면 비스므리한 전개와 상황이 설정된다.
거지같은 현실과 어둡기만 한 미래, 희망을 갖기 어려운 환경 이것들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용인되는 상황
이 배경에선 무엇을 해도 비극일거다. 여기서 희극이 나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부조리하겠지.

뛰어난 전개와 표현들이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번 연극은 좀 특이했다.
노을, 셋별? 왜 이 사람들은 한국어 이름을? 거기에 강한 전라도 사투리를 빡빡 써가며
코믹함을 좀 넣어서 흑색빛을 조금이나마 회색으로 바꾸고자 했던걸까.
아들의 아내인데 엄마와 별반 차이 없어보이는 연배. 연기 호흡도 좀 특이하다.

연기가 특이한건 샛별도 못지 않다. 분노할때 그 독특하게 눌리는 톤은 어색한 보기 드믄형태다.
이런 발성은 본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특이하다고 하는게 맞을거 같다.(연기를 못한다가 아니라 특이함)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흘러가는 맛이 조금은 덜하다.
오늘이 두번째 공연이라 아직 몸이 덜 풀렸던건지.
아무튼 어두침침하고 눅눅하고 거칠어서 개운하게 털어버리고 싶은 극이다보니
그 여운이 생각보다는 길게 남지만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다.(달래 부조리극이라 하겠나)
이 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포스터와 잘 어울리는 극이란것을 느낄거 같다.
이 극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포스터만큼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낄거 같다.

나는 후자였고 포스터처럼 거친 연극이었기를 바랬지만 조금은 매끈매끈한 느낌이 살짝 아쉬웠다.

출연 : 이재희, 강선숙, 장용철, 이주화, 지근우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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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연극 -뉴스데스크-

 

사업에 실패한 어느 한 부부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9시뉴스데스크가 전국민의 이목을 끌던 시기는 지금과는 좀 시간차이가 있다.
한 20년쯤 전 이야기일수도 있고. 프렌차이즈나 각종 사기맞아서
수많은 가정이 파탄난 경우가 급격히 증가했던때가 바로 IMF 이후 한 10년정도 일거다.
왜 이런 시차가 생기냐면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평생직장이란 생각때문에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고 프렌차이즈는 더욱더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IMF를 정통으로 맞은 세대들은 갑자기 평생직장이라 생각했던 일터가 사라지거나
쫓겨났기때문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제도약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시기였다.

이때 바이러스처럼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것이 프렌차이즈 사업들이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것이 없던 수많은 실업자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아닐수없다.
그래서 이쪽 시장이 급성장하게 되던 시기였다.
창업을 해서 가족 먹고 살정도로만 벌면 되겠지라는 소박한꿈을 안고 시작한 창업은 결코 녹녹치 않아서
어느 시점부터 연신 8~9시 간판 뉴스들에서 폐업으로 인한 가정 파탄에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주제로 한 연극이다. 그렇지만 사회에 대한 비판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초연엔 갑질관련 내용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연극엔 그런것은 좀 빠져있어보인다.
힘없는 가장을 무시하는 자식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정작 프렌차이즈를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원인은 나오지 않아서 블랙코미디로 보기엔 조금 미흡한면이 있다.
하지만 딸과 아들이 추구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결론은 오직 한가지 '돈'이란는 추상적 존재를 표한다.
기성세대들의 돈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 생명을 유지시키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정도로
여겨왔던 세대와는 다르다. 모든것은 돈으로부터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고 믿고 있는 지금의 세대
그러나 부부는 4가족 오손도손 살아갈수 있는 정도만을 꿈꾼다. 현실은 점차 떨어져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어
곰팡이를 꽃으로 여기는 낙천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한탄하지만 이러한 아내의 모습은 한 가정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있는듯 하다.
여기서 좀 의아한 부분이 가슴속에 쌓여가는 울분을 또 다른곳에서 풀어버리는데
그것이 꿈인지 상상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개새끼만도 못한 자신의 처지등을 비관하기도 하면서
쌓인 설움을 풀지만 솔직히 좀 이해가 안된다. 아기에게 무슨짓을 했다는것인지.
좀 지나치게 잠을 오래 잔다는것은 죽음을 말하는건가?

2인극이긴한데 인물이 둘만 있는것이 아니라 동물 포함하면 총 다섯이라서 남여 둘이서 설정에 맞게
배역을 바꾸다보니 황당하게 받아드려지는 부분도 좀 있고,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난감한 부분도 있었다.

또한 아내의 그 낙천전인 면모를 연극은 충분히 잘 살리지만 좀 지나치다고 해야 하나?
그 한시간 사이에 지쳐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나만 그럴수도 아니면 의도된 결과일수도.
남편이 아내가 있음에도 도피생활을 못참고 죽겠다는 것도 이러한 배경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을 설득시킴에 있어 기가 빨린다는 느낌을 받으면 안될거 같은데 좀 그런 경향이 있었다.
(연출의 의도인지 아니게 표현했는데 나만 그렇게 받아드렸는지는 모르겠음)

어느순간 아침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상황으로 온가족이 참변을 당하게 되는데
난 여기까지는 문학적으로 충분히 넘길수 있었고 참혹한 현실을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하며 끝나는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남편의 온갖 형태가 나열되는데 엄청난 지루함이랄까?
의도치않은 아내의 죽음은 분명히 절망에 이를수밖에 없지만 그 부분은 좀 간결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건지
이부분이 없으면 한시간 공연밖에 안되서 좀 늘리기 위해 넣은건지, 그 전까지만 해도 해피엔딩이지만
저 부부를 응원할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이 기다리겠다. 정도로 마음을 닫으려 했는데
이 후 부터는 구차함이 거의 10분 이상 지속되는데 왜 이렇게 마무리를 신파도 아니고 이상하게 끌고 갔어야 했는지
그 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이 오히려 이부분때문에 산산조각나버린 기분이었다.
(공연예술은 마무리만 좋아도 여운이 몇개월은 가는데 이부분에서 무척 아쉬웠음)

공연이 80분으로 길지않은 극으로
정말 부부같은 연기로, 보면서도 저들 설마 실제 부분가?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가 일품인 연극이었지만
마무리 전개의 좀 섭섭함과 갑자기 예고없이 상황전개되는 부분은 좀 당황스러웠다.
시간을 좀더 여유있게 갖고 진솔하면서 부부만이 할 수 있는 깊은 대화가 좀더 있기를 바랬는데
뭐 다음엔 또 달라진 모습으로 나오겠지.

아무튼 부부 두분의 연기는 너무 일품이라서
무죽페스티벌은 이것만(배우자들의 연기)으로도 볼 가치가 항상 충분한거 같다.

출연 : 김현정, 손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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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5일 토요일

판소리 -절창VI(심청가)-

 

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연극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

 

명동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것은 언제봐도 참 낯선느낌이다.
번화가 한복판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벚나무같다고 할까?

시설은 대단히 좋지만 극장이 한개밖에 없다는것은 조금 섭섭하다.
이 좋은 위치에 이렇게 좋은 시설 하지만 대형 극장 한개만 있다니 소극장도 두어개 더 있었으면.

내용이 무척 무거운거에 맞게 전개 또한 엄청 암울하게 진행된다.
자식이 왜 범인이 되었는지는 솔직히 그렇게 중요하진 않게 다루는데
범죄라는 소재보다 그로 인한 부모의 심리적 변화를 깊으면서 넓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주변인물들의 고충 또한 함께 곁들여진다.

각종 언론의 만행 이런것도 이 극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머니 브렌다의 심리를 자극하는 트리거 역활정도만 할뿐이다. 그래서 다섯명이 출연하지만
막상 기억나는것은 브렌다의 감정 변화와 한숨소리, 절규만이 남는 모노드라였다.

예전 어떤 1인극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설정처럼 보여서 그다지였는데
이 연극은 다인극임에도 단 한사람만이 기억에 남도록 구성된 전형적인 주인공 한명과 엑스트라 구조를 지닌다.

변호사, 아들들, 여친, 남편, 가정부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처럼
시간이 갈수록 단 한사람만이 떠오르도록 집요하게 한사람(브렌다)에게서 시선을 끊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연극의 주인공인 브렌다의 호흡에 맞춰 분노와 짜증과 울분이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인물로 동화된다.
배경이 무겁고 전개가 다크하고 끈적이고 밀도가 높아서 보면서도 지치는 경향이 있는데
지치지 않도록 약간씩의 장치들이 호흡을 다시 가다듬게 만들어 130분의 제법 긴 연극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의 몰입력을 선보여 대단히 흡족하며 끝의 찝찝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도록 약간은 밝은 톤으로 마무리 되어
극장을 나올때도 그렇게만은 무겁진 않았다.

한 가정에서 이와같은 일이 생겼을때 돕고자 하는이와 이용하려고만 하던 이가 양분되어 나타나는데
모든 상황에서 불편하고 귀찮게 다가올때가 있는데 이런부분이 조금은 이상적으로 참고 기다려주는건
좀 이상향에 가깝다고 할런지. 보기드믈 경우긴 하지만(주변에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는건 그만큼 대인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지킬때 가능한것이 아닌가싶기때문에 조금은 소설속 환상 같음)
극적 효과로서 본다면 어느정도는 용인되어 넘길수 있는 대목이다.

내용상 좀 아쉬운건 아들 매튜가 어째서 그런일을 저질렀는지. 이 가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과 어느정도 연관성있는 설정인지 그런것까지 느낄수 없었다.
그냥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지만 배경은 한 가정같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다정다감하다는 설정은 조금은 앞뒤가 맞아보이진 않는 어색함이 좀 있다.

급발진하는 매튜의 여자친구의 정신병적 발작은 심박이 올라가면서 순간 공포감마져 느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설명이 부족해서 충격이었지만 충격으로만 남는게 아쉬웠다고 해야 할지.
(일종의 화약 터질때 놀라는 감정같이 놀람만 존재하고 넘어간다고 할까?)

제일 궁금했던건 역시 매튜다. 뭘까? 원작도 이렇게 매튜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했나?
어떤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내면에 따라 브렌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수도 있을텐데
그것을 방지하기위해 정제한것인지 원작을 보지 못해서 구체적으론 말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이 가정의 배경지식없이 한 사건으로 인한 어머니(브렌다)의 상황전개와 터져나오는 심리상태에
가끔은 물음표가 좀 생길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불필요할정도로 늘어지는 곳이 있는데
긴장감으로 피로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호흡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내 몸도 순간 맥을 놓아서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졸정도는 아님)으로 '이대로 진행되면 졸겠다' 싶은 곳이 두어곳이 있다는게
섭섭하다면 좀 섭섭했지만 이런 기분은 하루 이틀 지나면 말끔히 사라지고
다음에 하면 또 보고 싶다는 기분만이 남을거 같은 뛰어남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빈 무대를 보며 든 생각인데 오늘은 이렇게 멋진 무대위해서 연기를 하는 저 배우들과
어제 본 훌륭한 연극에서 무대가 좀 더 좋았더라면 이라는 기분과,
어제와 오늘간의 차이는 자본 말곤 없는것인가?란 예술세계에 대한 씁쓸한 맞을 남긴 시간도 함께 지나갔다.

하필 유대인들의 만행이 전쟁속에서 나타고 있는 싯점이라 뭔가 시기도 좀 묘하게 겹치지만
기회 되시면 꼭 보시길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 쌘 느낌이 있어서 지칠수도.

출연 : 진서연, 정환, 홍선우, 김서아, 최호재, 최자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연극 -이혼고백서-

 

1900년대 초 여성들의 여권신장을 위해 싸웠던 신여성이라 불리우던 한 사람의 이야긴줄은 몰랐다.
현대이야로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내용은 사뭇 지진하며 긴장감도 어느정도 지속된다.

신여성에 대한 작품 전시회도 가끔식 하고 연극도 '사의 찬미'나 이번 '이혼고백서'같은 것들이 있을텐데
아무래도 연극은 극적 요소를 부각하기때문에 어떤면에선 지금의 감각에 맞춰서 그때를 상상하는것에는
좀 무리가 따른다. 1970~80년대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유튜브같은곳에서 KBS 옛날 기록 방송을 보면 되는데
어딘가 모르게 다른 세상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시대와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40년전으로만 돌려도 이런데
100년 전이라면?
현대인들 감각에 맞게 세상을 바꿔놔서 그나마 볼수있지 타임머신을 타고 그시대로 갔다면
그들의 언어조차도 낯설지 않았을까? (서울경기 사투리를 제외하면 아예 알아듣지도 못했을 세상)

그 시대의 신여성이란것은 여성의 낮은 여권을 미약하나 신장하려고
엄밀히 따지면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사회가 억누르는것들을 못마땅히 여겨 그것을 타파하려했던 여성들을 뜻하는 것일수 있다.
엄밀히 보면 이것도 먹고 살만한 부유층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일뿐이겠지.
(일제강점기때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국가의 노예나 다름없었기때문에 사회를 거스른다는건 쉽지 않았을듯싶다.)

윤심덕과 마찬가지로 나혜석도 자신이 하려고 했고 이끌리는 감정대로 살고자 했지만
나혜석은 윤심덕과는 다르게 관습에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연극에서 그렇다는것일뿐 실제는 어떤지 모름)
뜨거운 남편? 다르게 생각하면 열정은 있으나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을 말할수 있다.
그러니 처음엔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 하지만 점차 그것에 익숙해져가는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거 같아서
매달리는 모습도 보이지만 당시 남성의 힘은 막강했던 시기라서 신여성을 아무리 내세워도
사회에서 받쳐주는 세력이 없는이상 허공에 외쳐대는 외로운 처지로
최후는 비참하게 마무리 된다.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그 모든것이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예정된 결과로 달려간 한 여성의 일대기를 그리는데
사회의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대부분은 실패하고 성공했더라도 금세 덮어버려 수십년에서 수백년이 흐른뒤 학자들에게나 발견되는 정도일뿐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초석이 되어 지금의 한국이 되었고 세계가 되었다는 것은 알겠지만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의 성경책 구절이 있듯 이들의 노고는 분명이 지금을 과정이라보면
언젠가 그 끝은 창대할거 같다.
하지만 그 미약한 시작의 선봉에 선 인물은 온갖 고생과 수모를 겪어야만 한다.
그것이 선구자들이 갖는 숙명같은것이다. 이런것들은 생각하며 나혜석이란 인물을
연극속에서 찾아보면 대단히 서글퍼지는 연극이 아닐수없다.

모든 표현 하나 하나가 불안의 연속으로 자신의 요구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며 장님처럼 두드려가며
시간을 걸어야 하는 나혜석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어둡기만 한 연극은 아니다.
전체적인 서사가 마치 인상파의 회화를 보듯 표현들이 서정적이면서도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한조각 한조각 퍼즐처럼 그려나가는 대사들을 모으고 모으면 나혜주라는 인물의 내면이
눈앞에서 그림으로 펼쳐지는거 같다. (작가가 회화를 좋아하나? 표현들이 좀 산들거림)

전에 봤던 연극 '사의 찬미'는 당시의 여성상에 대한 묘사보다는 사랑드라마란 인상이 강했는데
이 연극은 그 시대에 한발짝 더 들어가 여성들이 겪었던, 나혜석와 윤심덕이 느꼈던 세상을
조금 더 느낄수 있는 뛰어난 묘사와 표현 그리고 훌륭한 연기까지
많은것들이 잘 어우러져 무겁게 다오면서도 봄바람같고 때론 외줄을 타기듯 숨막히는 멋진 연극이었다.

하지만 무대시설이 너무 빈약했다는것과 나혜석의 말로가 좀더 비극적으로 표현되었더라면하는 부분?

좀더 좋은 무대장치들이 있으나 크기는 크지 않아서
배우들의 표정과 시간이 멈춰진 호흡과 뜨거운 열정과 격정에 가득찬 눈빛
이 모든것이 느껴지는 그런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연 : 조혜석, 송흥진, 이현호, 고규빈, 김지영, 백운철, 서보찬, 서혜주, 엄태준, 윤주희, 임성덕
연주 : 엄태훈, 장정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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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2일 일요일

연극 -키리에(Kyrie)-

 

키리에가 무슨 뜻인가 싶어 찾아보면 주님? 신?정도로 보면 되는거 같다.

신의 뜻대로 하라는 의민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론적 이야기인지 뭔지 모르겠다.
다운받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퀴어 러브스토리라고 하는데 이런건 그냥 말장난 같고
(성주신하고 사람하고 사랑하는데 귀신이 전에 여자 사람이었다고 퀴어면 처녀귀신를 사랑하는 여자면 퀴어인가?)

여기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이다.
딱 한사람 집귀신만이 과로사로 자신도 모르게 죽었는데 집에 애정이 강했던지 집에 달라붙어버렸다.
퀴어라고 하지 말고 그냥 판타지라고 해야 하는게 맞아보인다.
물론 배경만 그런거고 전체적인 흐름은 드라마다.

표현이나 구성이 제법 신선하고 새로워서 웃음을 자아낸다.(장르가 코미디는 아니니 그냥 약간의 웃음정도)
집 귀신에 국한된것으로 등장 인물들중 가장 한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이 없는데 왜 귀신이 된거지?)

어떤 예술가가 이 집을 사서 들어와 여행객들에게 게스트하우스 마냥 임대업을 하게 되는데
검은 숲이란 것이 있기때문인지 인생 끝을 위해 오는 사람들만 있다.
(극중 독일의 검은숲은 슈바르츠발트를 뜻하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의 옛날 이야기로 마녀와 유령들이 살고 있다고 함)

집중이 되면서 집중이 안되는것은 왜였을까?
한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플롯때문인가? 집귀신은 모든것에 참견을 한다. 참견이라기보다는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종의 나레이션을 하는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보니 말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사람 한명이 등장할때마다 그들만의 줄거리가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회를 등졌다는것
사회가 이들을 등진게 아니라 이들이 사회를 등졌다는것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을
말하는것이 아니기때문에 저들의 저 행동은 약간 색안경끼고 보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수도 있다.

괴로워하고 고뇌하고 아파한다는것은 보통 타력에 의해 어쩔수 없게된 처지를 비관하는걸텐데
집귀신은 과로사했고, 관수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목련과 분재는 또 무엇인가.
무용수 부부 엠마만이 어찌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엠마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건지 모르겠다. 남편은 근육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거 같은데 루게릭병일수 있을것이다.

도데체 이들은 왜? 

집귀신은 왜 엠마를 위해 자신을 부셔서 구했어야 하는거지?
서로 어떤 작용을 한것도 없다. 엠마가 집귀신이 있다는것을 아는것도 아니고 집을 끔찍히 아끼는것도 아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거면 차라리 자신을 희생하고 병을 낫게 해주던가.
목맨 사람을 구했다고 해도 엠마의 병은 그대로이다. 이게 뭐지?

집귀신의 표현들은 제법 참신하고 관객인 내게 좋은 감각을 제공하지만
내용은 뭐가 뭔지 무엇을 주고 싶은건지. 집이란 존재와 저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건지
내게 와닿는것이 그렇게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뛰어난 연기와 신선함만으로는 중간 중간 찾아오는 졸음을 방어하기엔 개연성들이 너무 부족했다.
대사량도 많은 연극이지만 이거다싶은 대목도 그다지.

정동세실극장의 무대장치도 너무 비약하던데 이렇게 계속 검은 큐브에서 배우들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태로 운영할건가?
요즘 LED WALL로 무대장치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런거라도 도입을 좀 해보면 안되는건지.
(이번에 코미디언 서승만씨가 정동극장 대표직을 맡았던데 이런 시설 개선을 요청하면 안되려나)

출연 : 최희진, 유은숙, 백성철, 조어진, 윤경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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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1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수궁가 왕기석(미산제)-

 

판소리를 완창한다는건 창자도 힘들고 고수도 힘들겠지만 청자도 생각보다 힘듬이 있다.
때로 자리 선정이 잘못되어 주변이 시끄럽거나 부산스러우면 공연을 보는중에 나가버릴수도 없고
몇시간을 그냥 참아야 한다. 오늘은 적당히 이상하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노인들께서 당이 떨어지는지 사탕을 부스럭거리며 꺼내는 소리라거나
대사집을 미리 읽지 않고 펄럭이며 펼쳐보고 있다거나 하는건 좀 그렇다.

그리고 전에는 상반기, 하반기에 판소리 가사집으로 만들어 모두 들어간것을 판매하더니
이제는 프로그램식으로 개별적으로 판매한다. 이러면 미리 읽고 올수가 없는거 아닌가.
판소리 공연을 보러와서 가사집을 보며 관람하면 그게 제대로 들어오겠나.
미리 읽어보고 한문이 많으니 주석도 좀 읽어보며 개략적인 흐름같은걸 파악하고 오는게 좋은데
예전처럼 시즌별 모인 책자를 팔면 안되는건가 싶다.
이럴경우도 단점은 있다. 이번 한번만 보는 사람은 한개만 필요한데 두꺼운걸 사게 되고
지난번에 구입한 사람은 중복되는 경우도 있고.
각 공연별 프로그램도 만들어 팔면서 가사도 넣고 통합 가사집을 만들어 주석을 꼼꼼히 달아서 한문 가사를
이해할수 있도록 하면 되는게 아닌가 싶은데 다음 시즌엔 어떤식으로 할런지 모르겠다.

수궁가는 특이하게도 '범내려온다'를 뮤직비디오로 만든것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해학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이미 아이들 동화로 퍼져있고 애니매이션으로도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 같다. 수궁가, 토끼전, 별주부전 등 많은 제목으로 불린다. (나는 별주부전이 좀 익숙함)
내용은 삼국사기(1145년)에 나오는 구토지설의 이야기 기반이라고 하는데
판소리는 막상 18세기무렵 구전으로 내려오는 음악들이 어떤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거 같다.
시조(가요?)같은것도 있고 민요같은것도 있고 연기도 하기때문에 흩어진 여러가지의 장르를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낸거 같긴 한데 수많은 한문들은 접근성도 어렵지만
무조건 내용을 합친다고 합쳐지는건 아니라서 누군가 뼈대를 만들고 붙이지 않았을까.
장르도 그렇고 탄생 시기도 그렇고 들어가있는 공연은 분명히 농민들용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문을 이해할수 없다. 30%이상은 한문이라서 실제 해석을 보지 않으면 한국에서 단박에 알아들을 사람은
많지 않을만큼 오래되전에 사용되던 문장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것들은 시대에 맞춰서 바뀌는 것도 없이 미라처럼 그대로 남아있을뿐이다.(이걸 왜 안바꾸지?)

오늘 왕기성 명창의 수궁가를 들으며 새삼 또 느낀다. 자막도 없이 관객을 받는 만행은 도데체 언제쯤 끝날것인다.
외국인들 단체(한 열명쯤)는 추임세도 모르고 대사도 몰라서였을까 중간에 나간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길래 자막이 나오는줄 알았으나 없음)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국인들이 엄청 오니 유료화로 하겠다고 하고 정작 세금으로 만들었으면서
외국인들과 차별해서 요금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거 같은데
판소리도 내외국민 차별없이 모두 못알아듣게 아무런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

특성상 자막을 표기하기 쉽지 않을거란것은 알고 있다. 때로는 건너뛰기도 하고 단가를 중간에 껴넣을수도 있으니
자막을 미리 만들어 놓을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즉흥적인것은 사전에 자막이 어렵다고 고지 하고 나머지 고정적인것만이라도 제공하면 되는거 아닌가
템포가 매번 다르니 자막을 표기하는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겠지만
어려운 장르를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안될리가 없다는 생각은 드나 꽤나 안바뀐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레퍼토리는 전적으로 내국인 중 판소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을 위한 정기 공연인가.
이런곳에 나같이 알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초짜가 껴들어 초치고 있는것일까?
세금으로 자신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는것이었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 공연이 어떻게 있을수 있는것일까?

왕기석명창께서는 관객과 함께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정작 극장측에선 자막 하나 해결을 못하고 있어서
외국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내국인은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한문을 그대로 꼭 써야겠다면, 바꿀 능력이 안된다면 최소한 해석 자막이라도 달자.
기왕이면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정도의 자막은 꼭 만들자.
한국에 여행온 외국인들을 오늘처럼 못알아듣게 해서 내쫓지 말고 함께 웃으며 즐겼으면 좋겠다. 

그런데 수궁가가 이렇게 재미있고 웃긴내용이었나?
창자에 따라 여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걸 새삼 느끼게 했던 무대였다.

소리 : 왕기석
고수 : 김규형, 김동원




2026년 4월 5일 일요일

 

돔박아시? 이게 무슨 말이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연극을 보니
가수 이미자씨의 노래 동백아가씨를 말하나? 했는데 동백나무란 의미라 한다.
동백꽃이 왜 4.3사건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고이래는 4.3사건때 돌아가신 어느 가족 중 생존한 딸 이름이며 연극의 주인공이다.

제목이 이래서 제목 자체가 무슨 뜻이 있는 말인가? 싶었는데 그것까지는 아니었다.
(돔박아시가 동백꽃을 의미하고 그것이 4.3사건을 상징하는 꽃인줄 알았다면 좀더 마음의 준비를 했을텐데)

연극은 전체적으로 4.3사건때의 비극을 겪었던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전개된다.
제주도주민을 학살한 장교가 지금 세상에선 위대한 인물로 바뀌어 동상을 세우려는것과
그에 대해 진실을 토로하는 사람들과의 대립을 보여준다.
시작부터 묵직한 저음이 몸을 감싸고 어둡고 침침한 조명의 경찰서에서 시작한다.
교도소에서 끝맽음 되기때문에 전체적으로 편히 보기엔 무척 어려운 내용이다.
그리고 제법 슬프고 때론 짜증나기도 하며 분노도 생기는 참혹한 현실을 반영한거 같다.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실제 상황은 이것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웠겠지)

제주도 해군기지를 강정마을에 짓는다고 하여 사람들이 양분되서 서로 싸우게 만들어버린 사건이
불과 십수년전 이야기인데 이때 찬성파를 선동해서 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든
개같은 놈들의 농간에 쑥대밭이 되어가던것을 지금 우리 세대들이 직시하였지만
언제그랬냐는듯 모두 잊혀지고 그곳에선 군함들이 정박하고 있는지 십수년이 되어가고 있다.
4.3사건에도 이승만 매국노가 저지른 참사로 이때 수만명을 살해당했다.
그리고 도민들의 사상을 검증하고 연좌제등으로 괴롭히고 감시하며 그들의 입을 철저히 막아왔다.
그렇기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4.3사건은 널리 알려지지도 않고
진실을 아는 사람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주된 범죄자인 친일매국노 박진경 대령에 대한 내용인지 구체적으론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연극은 비단 4.3사건만을 비추진 않는다. 어떤의미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
매국노들의 삶과 이 후 세대들의 면면을 보여주므로 현실에 섞여있는 매국노들의 후손들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서 국민을 핏박하는 이중성을 보여주는데 이건은 인간의 본능일까?

815해방이 된지 100년도 안되었는데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는 조선시대보다 오래된 역사로 받아드려진다.
수많은 초중고 교육에서도 이 시기의 역사보다 조선시대를 훨씬 깊이 공부한다.
그래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나라를 세울때의 공신들이 화폐에 없는 유일한 나라가 되어있다.

일제강점기, 4.3사건. 한국전쟁, 광주민주항쟁 등 수많은 사건들의 바탕엔
한국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매국노들로부터 비롯된것으로밖엔 생각되지 않으며
친일매국노 동상을 무너뜨렸다고 후손들이 형사처벌을 바는 이 연극의 내용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이재명 정부 이렇게 20여년의 민주정부가 들어왔어도
아직도 4.3사건을 공산당 처벌따위로 떠드는 사람들이 4월3일 제주도 4.3 행사를 방해하기 위한
집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니 무엇이 이들의 넋을 위로해줄수나 있을런지.
설사 공산당을 지지했다손 치더라도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헌법에 떡하니 명시(제19조) 되어 있는데
아직도 집회에 나와서 빨갱이 운운하고 내란세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활보한다.
민주정부 20여년이 다 되어가도 매국노들의 뿌리는 깊고 넓어서 캐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국립묘지에서 이승만과 다카키마사오(박정희)와 매국노 군인들은 캐내야 하는게 아닌가?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노역을 한 한국 국민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계신대도 일들을 놓고 온갖 모함을 하는
매국노들이 아직도 있고 4.3사건도 그렇고 민주항쟁도 그렇고 과거사 청산은 쉽지 않게 돌아가니
이때 당했던 수많은 생존자들의 한을 어떻게 풀어줄려는지.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서 한 가정의 역사를 통하여 비통한 한국의 현대사를 보여준다.
파탄났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남아있는, 사랑을 하는 그래서 슬픈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
세대가 지나도 힘을 갖고 있는 매국노 집안 그리고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깡패들은 여지없이 저들을 밟으려 한다.

연극이 끝나고 집에 오는데. 아직도 지구에선 수많은 나라들이 내전중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같이 고치기 힘든 현대사로 남을까? 아니면 프랑스 혁명이나 1,2차세계대전때 전범들 처리하듯
관련자들을 처단하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할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한국과 같이 매국노들이 계속해서 세력을 유지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쿠데타가 몇번은 거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항하다가 살해당하며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가겠지. 하지만 이때까지 고통 받던 이들은 누가 위로해줄 수 있는걸까?

고이래씨는 감옥에서 위로받았을까?

출연 : 황세원, 윤일식, 송철호, 황재희, 서미영, 민경준, 조성현, 한은주, 백지선, 이의현, 이현종, 신수호,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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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4일 토요일

연극 -정희(나의 아저씨 스핀오프작)-

 

뭔 극장이 입장전 대기할때 사람 앉아있을곳 하나 없고 안내하는 사람 하나 없을까?
극장은 내부는 제법 좋던데(쿠션이 좋은건 아니라서 오래 앉아있으면 엉덩이 아픔)
좌우로 긴 형태라서 앞자리보단 뒷자리가 어울리는 극장.

좀 특이한 연극이다. 원작 자체가 TV 드라마 '나의 아저씨'이고 이것의 특정 일부를
다시 내용을 만들어(술집 '정희네'의 정희)놓은 연극이다.
난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가수 아이유의 연기가 좋고 드라마 내용도 좋다고 하지만
영화처럼 한두시간에 끝나는게 아니다보니 섣불리 시작하진 못하는 편이다.

아무튼 그것의 스핀오프 작이라지만 막상 나의 아저씨를 보지 않아서 검색 사이트에서 좀 찾아보면
드라마나 연극으로 만든 '나의 아저씨'를 보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었을거 같다.
다만 지안이란 인물이 왜 팔을 다치고 어딜 다니는건지 그런것에 설명은 없고
갑자기 정이네 술집으로 들어온것과 동훈이란 인물과 어떤식으로든 엮여있는거 같지만
사전지식이 조금이나마 필요해 보인다.
(연극을 보는 동안 드라마의 스핀오프란걸 알지 못했고 연극에서 스핀오프 작이 있을거라고 생각도 안했음)

그리고 보면서도 조금은 잘려나간거 같은게 겸덕은 왜? 왜 중이 되는거지?
일반적으로 사람이 속세를 떠나게 되는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거나 할때인데
이 사람은 갑자기 머리깍고 절로 들어간다. 그러면 남겨진 정희는 뭐지?
서로 별 탈 없이 좋아하는거 같았는데 갑자기 중이 되니 정희는 온갖 절로 겸덕을 찾아 헤맨다.
찾았지만 이미 중이 되버렸으니 어찌 할 수없으나 사랑했기때문에 그만큼 괴로워 하는데
이후 정희는 폐인처럼 낮에는 정희네 술집을 운영하고 자기전까지 취해서 횡설수설 왜?

둘은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드라마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나?
검색해보면 단순히 헤어졌다고 나오는데
일부분을 잘라서 스핀오프작을 만들면 그 인물들의 내면을 좀더 세밀화하면서 부각하지 않나.
생선 중간 토막만 툭!툭! 잘라놓은 기분의 연극이다.

아무튼 드라마 원작이나 연극을 본것도 아닌 상태에서 스핀오프 작품을 보니
이해 안되는건 당연한것일 수 있는데 100분 공연시간중에 좀 늘어지는 부분을
차라리 이런 배경 설명을 좀 넣어서 파생작품이 아닌 독자 생존도 가능할정도의 구성을 하는건 어려웠을까.

이해 안되고 납득 안되는 부분 빼면
사랑에 실패한 한 인물(정희)의 내면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으로 다가온다.
술집 정희내에서 손님들이 서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 하는 장면이 없다는게 좀 아쉽지만
한 인물의 짧은 일대기에서 힘든 어떤 시기를 극복한다는 뻔할뻔자의 스토리지만 보는 재미로서는 괜찮은 연극이었다.
(정희의 학생시절부터 중년 여성이 될때까지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을 어느정도는 표현함)

스핀오프까지 나올정도로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였나? 아니면 연극이 인기였나?
다음엔 '나의 아저씨' 연극도 봐보긴 해야될거 같지만 모르겠다.

정희 역을 맡은 이지현 배우를 보고 바로 지난주에 본 연극에서 본거 같은데..라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리어왕 외전'에서 코딜리어 역을 했던 배우였다.
였다가 아니라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다.
연극도 이렇게 겹치기 출연이 가능한 분야인가? 그러면 두 연극 대사를 모두 외워야 할텐데
게다가 둘다 주연급인데(정희는 완전 주연). 이정도면 미친 열정 아닌가? 신기할정도다.
거의 만석이던데 드라마때문인지. 배우들때문인지. 이것도 신기하다.

아무튼 가급적 드라마던 연극이던 '나의 아저씨'를 본 사람이 보는게 낫겠단 생각임.

출연 : 이지현, 이강우, 박세미, 강은비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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