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일요일

연극 -벚꽃동산-

 

안똔체홉극장에서 벚꽃동산 작품을 여러번 본줄 알았는데 몇년전 한번본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머리속에 들어있는 벚꽃동산은 다른 극단들의 작품이었나?
바냐삼촌, 세자매 본것을 착각한것이겠지.

이 작품은 과거 러시아의 현대화에 뒤쳐지는 구세대가 자본의 생리를 따라가지 못하여 생겨나는
형태를 꼬집는 블랙코미디 같은 작품이다.
특별히 복선도 없고(러시아 역사를 몰라서 시대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어도 나로서는)
안톤체홉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렇게 어렵게 꼬아놓은것 없이 그대로 받아드리면 되는거 같다.
(러시아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꼬아놓고 감춰놓는건 싫어하는 거 같음)

대부분 주제가 명확하고 선이 비교적 굵은 편이라서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백년전 이야기라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온다.
고전은 그 시대를 글(책)이나 간접적으로 상상하는것을 붙여야 하기때문에
책을 읽던 영화, 연극 등 공연을 보던 중간에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는거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근 현대사를 보더라도 뭔가 강건너 불구경같이 멀게 느껴진다고 할까?
(현재 한국는 근 현대사의 똥들이 계속 냄새를 피우며 길에 똥을 뿌리고 있어서 현대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아무리 군주주의라 할지라도 조선말기는 돈이 우선시되던 사회 아닌가?
노비도 사라지고, 러시아도 그런게 사라진거 같고 점차 자본을 앞세운 신진세력(로파힌)이 사회를 잠식하려는 그 과도기.
한쪽에선 공산주의를 표방한 노동자 사회를 꿈꾸는 청년(트로피모프)도 나온다.

귀족사회 구태의 전형인 라넵스카야(엄마)와 가예프(엄마의 오빠), 이들의 몸종인 피르스는 사라지는 구시대의 표상같은 인물이다.

아마도 이정도면 대충 연극의 흐름은 알수 있을것이다. 대상으로서 가교 역활을 했던 벚꽃동산
구세대와 신세대에 교도부역활을 한다고 할까? 전환점의 시작이라고 할까?

무력한 구세대들의 안일함, 신진세력들의 집요하면서 치밀하다.
이렇게 어떤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바뀌는 계기는 구세대들의 나태함에서 비롯된다.
국가가 무너지고 이념이 바뀌는 시기. 전세계 어디에나 벌어지는 공통점이라 할까.

벚꽃동산은 이점을 짜증날정도로 잘 표현해주는 작품이다.
(조금 더 길고 인물들의 디테일을 더 살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도 2시간30분 연극이라 아쉬움)

안똔체홉 극장 이름처럼 이곳은 안똔체홉학회도 운영하면서 체홉 작품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가끔 체홉작품이 보고 싶을땐 이 곳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언제 연극하는지 알 수 있는데
그중에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보면 되고 아니면 다음기회를 보면 된다.

내가 체홉 작품 몇가지를 읽었는지 요즘은 고전을 마구잡이로 좀 읽다보니 섞여서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극장에서 같은 작품 몇번을 보면 어느정도 책을 읽은것처럼 섬세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
그리고 같은 작품을 비슷한 배우들이 원작을 크게 변화없이 그대로를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공연하기때문에
좀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기도 좋다. 일반 극장에서 올라오는 작품들은 언제 다시 할지 알 수 없어서
디테일함을 알아채는것이 쉽지 않지만 이곳은 다음에 또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적지 않은 크고 작은 극장들 대부분을 다녀봤지만 이곳만큼 의자가 좋은 곳은 없다.
의자만 좋다. 바닥은 좀 삐걱이고 앞뒤 간격이 제법 넓지만 대형극장만큼 여유로움은 없다. 그러나 의자는
영화극장 그것이라서 당황스러울정도로 편하다.(이곳에 올적마다 의자는 특이하단 생각이 듬)
그래서 신경통이 있음에도 불편함 없이 관람할수가 있다. 그리고 체홉 작품은 흐름에 지루함이 특별히 없고
이곳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최고 수준이라서 부족함이 없다.
역시 문제는 고전이라는 것.(이 같은 배우들이 일반 연극 할때도 한두번 본적 있는데 그땐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듬)

난 그래도 오늘같이 체홉작품이 보고 싶을때 이곳에서 뭘 하고 있나? 제일 먼저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이 내게는 표준이 된것처럼 다른 극단이 체홉작품을 올릴때 이곳 작품과 비교하게 된다.
원작을 이곳만큼 그대로 표현하는 곳이 드믈고 다른 극단들은 현대작품처럼 각색들을 하기때문에 늬앙스가 바뀌거나
난해해진다거나 하는게 대부분이라서 개인적으로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이곳 공연이 좋다.

바냐삼촌(한국식으로 각색한 '순우삼촌'이란 작품도 있음), 세자매, 갈매기, 벚꽃동산, 이바노프 까지는
이 곳 안똔체홉극장에서 볼수 있는데 체홉의 단편 연극도 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얼마전에 한거 같기도 하고 다른곳인거 같기도 하고)

대학로엔 이렇게 테마를 갖고 꾸준히 공연을 하는 곳들이 몇몇 있는데
나는 으뜸을 꼽으라 하면 이곳 안똔체홉극장의 작품들을 꼽는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숙련된 연기와 군더더기 없는 무대, 보기 힘든 훌륭한 관객석,
이유는 모르지만 커피도 주고 연극 관람 중에 마셔도 됨.(커피를 들고 들어가 의자에 꼿아놓으면 됨)
두번째로는 동국극장의 무죽페스티벌인데 연극만 놓고 보면 명품배우들의 능숙한 연기때문에
재미없어도 재미있지만 관객석이 너무 안좋다. 신경통때문에 객석이 안좋으면 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두 곳이 대학로의 수많은 극장들중에 가장 사랑하는 극장일것이다.

요즘같이 연극보기 좋은 계절엔 체홉 작품 한편 보는것도 후회는 없을듯 싶고
지금 한국사회가 뭔가 좀 바뀌려고 꿈틀꿈틀하기때문에 잘 어울릴수도?

출연 : 권민중, 정인범, 정연주, 한소진, 진민혁, 최재호, 김용성, 정혜원, 장희수, 최인철, 유경열, 노수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16일 토요일

연극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나는 이것을 2024년에 봤었는데 예매하고 오늘 극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때까지 몰랐다.
채승혜배우께서 관객들 안내하며 분위기을 올리고 있었는데 제목 늬앙스와는 다르게
장르가 코미디인가? 그런데 왜 제목이 철학적이지?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극이 시작되고 한 5분정도 지났을까? 응? 본거 같은데? 설마?
조금 더 지나니 확실히 본것이고 모든것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1부진행중 2부나 3부가 생각난것은 아니다. 물론 2부가 진행되고 있는데 3부가 떠오른것 또한 아니다.
진행되는 중에 봤던거였구나. 라는 정도만 생각날뿐 엄마역으로 나온 배우의 목소리가 성우같은데
처음 듣는 느낌이었다.(내용은 기억나지만 배우의 느낌은 모두 잊어버렸던거 같음.)

한번 보고서 오랜세월 기억에 남는 연극은 흔한것이 아니니 별로 이상한 현상은 아니지만
제목만으로 한참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고 할까?

총 3부작으로 되어 있고 과거, 현재,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현재이고
엄마의 과거, 딸의 현재, 엄마와 딸의 현재 이런 구성이다.

이걸 가족 연극이라 해야 할지 자기성찰극이라 해야 할지
물론 코미디는 결코 아니고 그렇게 웃긴 부분이 있는것도 아니다.
엄마와 딸, 현재의 엄마가 된 과거의 엄마의 일대기 같은?
제목과 같이 왜 당시에 없어질수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이야기.

여기서 보면 딸과 엄마 이야기 같지만 전체적으로 순수한 엄마이야기다.
엄밀히따져서 딸은 없다. 딸이 엄마에게 있었다면 항암치료를 했겠지만 끝까지 그러지 않는다.
남겨진 자에 대한 예의정도만 보일뿐인데.
2부는 연극단원들끼리 1부 과거 엄마의 내용으로 만든 연극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서
1부는 3부를 뒷받침 해주지만 2부는 왜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있어서 나쁠것 없을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충분히 재미있고 흐름상 어색함 또한 없다.
단지 필요성한 부분까지는 아닌거 같을뿐이다.
(1부에 붙어서 몇분정도 연극이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붙었으면)

2024년에 봤을때의 사진 처럼 무대장치도 같고 배우의 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 든다.
배우도 같다. 심지어 연극 소개페이지도 대동소이하다. ^_^;

그때는 어땠을까? 당시 관람기를 읽어보면 지금과는 다르게 뭔가 이해하는데 약간은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안그랬는데 집중력이 좋았던건지(2년만에?) 조금 부연설명이 추가 된건지

그때는(2024년) 어머니와 딸,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관람기에 적어놨지만
묘하게도 이번에는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딸 덕분에 자기성찰의 기회를 찾았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좀더 풍요로운 심정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어쩌면 자식들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말하고자 했던것일지도.
왜 내가 없지 않고 지금 이렇게 있을수밖에 없는것인지. 이것은 내 자식때문이 아니라
나의 기억의 연속성때문이란것. 물론 내 마음대로의 해석이다.

다음에 또 공연하면 그땐 봤던것이라는 기억이 나겠지만
신경안쓰고 예매버튼을 누를거 같은 다시 보고싶어지는 연극이었다.

출연 : 구자승, 조주현, 나종민, 장하란, 하지웅, 김하리, 김태우, 이정근, 채승혜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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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미진 춘향가(김세종제)-

 

이런 긴 공연은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이것도 점점 둔감해진다.
장장 6시간의 공연, 단 한 사람이 창을 하고 고수는 얼추 2시간마다 바뀌는데
6시간을 걷거나 서있는것만으로도 쉽지 않아보이는 힘든 여정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런 공연이 현대를 제외하고 있었을까?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전체를 공연한다기보다는
인기있는 부분을 주로 했기때문에 명창 칭호를 받아도 전체를 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공연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직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도데체 왜 이렇게 완창을 쉼없이 하는것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첫걸음이 된것일까?
왜 수많은 소리꾼들을 이런 나락으로 밀어넣게 된것일까.
알진 못하지만 이것때문에 수많은 소리꾼들의 목이 날라가 좌절하게 되었을것이다. 
그래서 볼적마다 위태롭다. 저러다가 쓰러지는거 아닌가? 공연중에 목이 날라가는거 아닌가? 등

추임세를 열심히 하면 힘을 얻어서 더 잘할수 있다는데
위태로운 한명의 창자를 더 쥐어짜서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관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구성은 헤어지기 전까지 1막, 쑥대머리 2막, 그리고 마지막 3막 이렇게 나눠놨지만 중간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5분이니 이동안은 옷 갈아입는 정도 말곤 쉴수도 없는 순간에 불과하다.
관객입장에서 이 작은 시간은 몸을 좀 풀고 화장실도 다녀올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만.

처음에는 역시 목이 덜 풀린듯한 약간은 답답함이 있다.
전에도 느꼈지만 목이 덜풀린 소린지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는 소린지 알기 어렵기때문에
시작부터 약간은 관객(나)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소리꾼마다 느낌이 달라서 같은 대목이라도 묘하게 멜로디(?)나 리듬이 다르고 연기력에서도 다름이 보이니
매번 다른 기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100% 모두 '좋았다'라고 말하는건 쉽지 않다.
때에 따라서 목상태나 딕션이 너무 안좋거나 연기력이 부족하다거나 하기도 하니.

김미진 명창의 소리는 약간은 거칠지만 발음은 제법 좋은 편이라 어느정도 잘 알아들을수 있다.
(관련업 종사자가 이닌 순수한 청취자로서 듣는 입장임)
그래서 초반에 목이 덜 풀린상태라 해도 인물들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지나고 이제부터 춘향이의 고행이 시작되고 많이 슬프기도 한 중간 토막이 나온다.

여성 소리꾼들이 이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것을 수십년에 걸쳐 연마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몸에 배게 될텐데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순종적인 형태로 바뀌지 않으려나?
가수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 맞게 팔자가 바뀐다는게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판소리들은 남성우월주의가 빡빡하게 들어가있는 소설들이라서 이걸 평생 되뇌이며 산다는게
한 개인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남성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신부감은 소리하는 여성이란 소리가 되려나?)

춘향이가 열대의 장을 맞고 감옥에 투옥된 후 사경을 헤매며 저승을 오가는 귀신 꿈도 꾸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라 전체적으로 슬프다.(계면조라고 하는데 이런것 까지는 잘 모름)
이때부터 목이 좀 풀렸는지 소리도 시원해진다. 소리를 듣다보면 김미진 창자의 창은 뭔가 멜로디의 고저가 좀 다르다.
힘들어서는 아닐거고(처음부터 그랬으니) 갑자기 터져나오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식의 흐름은 처음이라서 순간 순간 좀 특이하게 느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다.

역시 힘들어서일까? 춘향의 고통의 전달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진다.
딕션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리듬도 좀 꼬이고
이때는 이미 홀로 창 한지 3~4시간이 흐르고 있는 중이니 일반인이었으면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는 시기겠지

개인적인 욕심으론 2막 부분을 처음에 하고 1막 부분을 중간에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춘향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어이없는 생각도 해본다.
(녹음 음반은 항상 좋은 상태로 녹음되니 뭉개지는 현상이 없지만 실황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쯤부터는 관객도 힘들고 소리꾼도 지쳐간다. 마지막을 앞둔 잠시의 휴식시간
하필 이때 떡을 나눠줘서 다들 먹고 들어오느라 관객 입장이 늦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중간에 나눠주면 입장이 늦어지니 끝나고 줘야 한다고 했다던데
이번 판소리는 6시간이나 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눠준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늦게 들어온다)

초반에는 소리가 위태로웠다. 지친 기색도 역력하고. 아무리 공연예술이 화려한 업종이라도
한 예술가가 4시간을 쉼없이 공연하고 다음 2시간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면 그 누가 화려하게 보이겠는가

나머지 두시간을 버틴다는 표현은 예술가에겐 맞지 않아보인다. 이들은 처음처럼 관객의 감동을 위해 달려갈뿐이고
이 후 벌어질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나방같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불꽃이라는 하는건 단 한번의 마지막 같긴 해서 그렇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몸도 힘들어 보이는데 소리는 더 좋아진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판소리 완창이란 무대는 판소리를 한번에 다 부른다에 의미보다는
소리꾼의 인생을 단 몇시간 동안 함축하여 폭발하듯 선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질 더질'이 나올땐 감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벅참으로 밀려온다.

그럼에도 판소리완창 무대는 저들을 너무 사지로 몰아넣는거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은것도 외면하기 어려운거 같다.

소리 : 김미진
고수 :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




2026년 5월 8일 금요일

국악 -세실풍류_득무(得舞)의 순간-

 그나마 평일에 회사에서 퇴근후에 가기 편한곳일까?
버스 한번타고 좀 걸으면 정동세실극장이 나온다.

오늘 공연은 총 6명의 명인들께서 한 10분정도씩 각각의 춤을 선사한다.
이승주의 '청연(淸緣)', 이창순의 '송정(松停)', 이정애의 '흥춤'
장인숙의 '무화(舞畵)', 이동숙의 '부채입춤', 허창열의 '고성오광대 덧배기춤'

이러한 공연중 내가 꼭 찝어 이것은 최고다 이것은 어렵다, 난해하다 등을 논할수 있는것은 없다.
익숙한것은 덧배기춤으로 좀 많이 본듯한(탈이 없는 탈춤버전같다고 할까?) 기분만.

저들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매혹적이긴 한데 이 춤들은 어디서 행했던 공연예술이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술마시는 기방에서 공연 하기엔 넓은 공간에 미치지 못할거 같고
조선시대 백성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하기엔 분위기나 형태가 맞지 않아보인다.
옛날 기인들은 어디서 이런 공연예술을 했던걸까. (궁중의 군무는 이것과는 많이 다름)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무대란것이 생겨나고 그 환경에 맞게 완전히 바뀐,
형태만 차용할뿐 옛것의 원조와는 거리가 먼 그런 장르로 봐야 하는건가?

개인적으로 여성의 춤사위 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남자가 거의 없는것은
춤은 원래가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분야인지도 궁금해진다.
(국립무용단 같은곳의 공연을 보면 남자들의 춤도 있고 여자들의 춤도 있지만
이런 독자적인 무대를 위한 춤엔 남자들이 것이 원래가 적은건지 판소리마냥 줄어든건지)

총 나흘동안 한 주에 2회씩 수,금을 하는데 모두 출연자가 다르기때문에
4시간 공연을 며칠의 인터미션을 두고 한다고 보면 되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1회공연을 두시간으로 하고 반복 2회(수,금 혹은 토,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관람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나흘동안 퇴근 후 시간을 뺀다는건 쉽지 않다.
이런 명인들의 춤을 언제 또 볼지도 알수 없는데 나흘동안 공연시간을 찢어놓고 그것도 평일에만 하니
나는 그 중 하루만을 선택할수밖에 없어서 찝찝함이 훨씬 더 크다.
(나머지 공연들은 어땠을까? 이분도 멋지고 저분도 멋져보이는데. 등)
공연 기획을 할땐 이렇게 만석이 될줄 몰랐겠지만 관람객 입장에서 기획해줬으면 좋겠다.
토요일은 극꼴집회때문에 공연은 하기 어렵더라도(토요일 저녁에라도 하지. 이땐 조용한데)

평일 저녁 힘들게 와서 한시간 남짓 보고 돌아가면 공연을 보는 시간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불쌍사가 벌어지는데 이러면 감동도 버스안에서 피곤과 함께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시간 배정, 횟수, 주된 관객 등을 고려한 공연을 기획해주고 가급적 1회로 끝내지 말거나
아예 정기공연으로 분기마다 해주던가.(국립국악원에서 하는 '토요명품'같은 매주는 어렵겠지만 시즌별로라도)

국내 국악공연들이 특히 좀 두드러지는 경향은 자신들만의 잔치가 된다는것
어떤 노인은 추임세를 고래고래 소리친다. 다른 관객도 생각해서 적당한 톤으로 해야지
자기가 그 분야에 몸담고 있을테니 저러는건 이해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대다수는 추임세가 어색하다.
기껏해야 리듬에 맞게 치는 박수정도인데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서 좀 어울리는 추임세를 넣어도 되는게 아닌가?
분위기 조절 못하고 질러대듯 해대는 동종 종사자들의 추임세는 때때론 꽤나 거슬린다.
이러한 것들이 반복될수록 그들만의 모임 공연밖엔 되지 않으니 스스로들 알아서 적당한 선을 지켜주길.
(허창열 무인의 덧배기춤을 출땐 이분은 추임세를 어느때 넣으라고 잘 알려준다. 이건 흥을 올리기 위한 장치기도 하니
적당한 시기에 그에 맞는 추임세를 알려주고 관객은 그를 따라서 추임세를 넣으면 공연이 더 즐거워 지니 서로 좋은게 아닌가.
혼자만 툭! 튀어나와 추임세를 넣지 말고. 꼭 넣어야 겠다면 좀 작은 소리로.)

춤이란게 몸으로 어떠한 것을 표현하는것이니 잘 모르는 입장에선 느껴지는 추상적이며 형의상학적인
감정상태를 글자로 표현한다는건 쉽지 않아서 주변 소리만 했지만
공연은 눈물 날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다들 어느정도 연세가 있어보이는 분들인데
몸을 쓰는 예술분야라서 기력이 중요함에도 그 어떤 제약도 느껴지지 않는것또한 신기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것 중에는 말도 있고 몸짓, 의상, 냄새, 생김세 등 많은것들이 사람을 판단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춤이란게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수단중엔 가장 으뜸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냐면 저들은 자신이 정해진 절차대로 표현하고자 하는것을 표현하는데
저들의 일생이 저 춤과 같은 고혹적이며 기품있는 인격을 지녔을거란 착각(?)마져 들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머지 이틀 남은 공연은 모두 매진이라 보고 싶어도 못본다.
개똥같다.

출연 : 이창순, 이동숙, 이승주, 이정애, 장인숙, 허창열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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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일 일요일

연극 -감찰관-

 

사회풍자극이라고 하는 감찰관. 이런 블랙코미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훌륭한 소재다.
푸시킨이 실제로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니콜라이고글이 쓴 희곡이라고 하니 러시아도 부패 됬던 시기였을까?
지방관료가 부패했다는것은 사회 형태가 그러했다는것일수도 있었으니
단순히 재미있는 일화로 희곡을 만든것은 아닐거다. (대중의 호응은 사회적 현상에 맞아야 함)

사다리움직임연구소란 극단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극단 이름처럼 움직임이 크고 약간은 기괴하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해서 해학스러움을 높기이 위한 
광대(크라운)적 요소들이 다분하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이런 형태의 연극들은
몇년에 한번 이상씩은 접해지는거 같다.
하지만 이 극단이 올렸던 '이방인'도 봤었는데 지금과 같은 느낌까지는 아니었던것 같다.

전체적으로 가면과 같은 분장으로 자신을 감추면서 표정의 다채로움으로 심리묘사를 훌륭히 표현한다.
관객입장에서 한번에 모두 표정을 알아챈다는게 쉽지는 않을만큼 다양하지만
일단 등장인물들이 많기때문에 처음 보는 입장에서 주된 인물 몇명에게 집중하는것만으로도
피곤함이 밀려오는데 하이텐션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된다는것은 배우들이야 자신들의 역할때만
몰입하면 되지만 관객은 모든 시간을 몰입하지 않으면 감정이 깨지기때문에 이렇게 팽팽한 상태로
연극을 두시간동안 집중한다는것은 단순한 일은 아니다.

내용자체는 단순한 플롯이다. 지방 관료가 떠돌이를 착각해서 감찰관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비리가 들통나지 않기위해 온갖 비위를 맞춘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모든것을 알게 되어 분노하지만 이미 이반 홀레스타코프(푸치니)는 떠나간 뒤.
시장을 오래도록 했기때문에 주변 인물도 함께 비리에 동참하였으니 감찰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정도의 이야기다.

희곡에서는 시장이 심하게 부패한 인물로 묘사되진 않는다고 한다.
그다지 멍청한 인물로 그려지는것도 아니라고 하고. 외국 공연을 유튜브같은곳에서 봐도
아주 엉망인 사람으로 표현되진 않는다.
그런 반면 이 극단에서는 광대분장과 도구들 그리고 무대 디자인들이 철저하게 부패된 관료와 매관매직처럼
모든 구성들을 채워간다. 이것은 이 극단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인지 아니면 원작 희곡을
연출은 이렇게 해석한것인지까지는 알수 없지만 예전 '이방인'도 상대적으로 거칠고 날카롭게 표현한것을 보면
극단의 색채를 이어가기 위해 원작을 찢어놓은게 아닌가란 상상을 해본다.

예리한 칼날로 도려내는것은 좋은데. 문제는 높은 긴장감이 유지되며 발생하는 감정의 피곤함이다.

극이란게 고요할때도 있고 괴팍해야 할때도 있고 좀 다스려야 할때도 있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시작해서 미치게 덤벼들기를 두시간. 그 중 초반 한시간은 흥미롭게 집중할 수 있었는데
나머지 반은 좀 지친상태로 몸에 힘을 풀어놓고 눈과 귀에만 피를 공급할수밖에 없는\
기운빠진 상태로 지속된다는게 한편으론 정신적 고통이라고 봐도 될법하다.

관객도 좀 쉬게 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미친말처럼 달려가면
나중에 관객도 정신줄을 놓아버릴수 있다. 시끄럽고 부산스러우니 졸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감명이 생기는것도 아닌 멍~한 상태로 맽음 될수 있는 위험한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아쉽게도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거 같다. 끝까지 웃는 사람도 있었지만(극히 없었음)
내용이 잘 안들어고 어느부분에선 지루함 마져 들어서 저 파트는 좀 빨리 끝내줬으면 하는 감정도 들었었다.
이 부분만 떼어내서 보면 결코 지루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이미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으니
필요한 부분임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것일거다.

간결한 흐름의 코믹하면서 풍자적인 구성은 좋은데
한국에서 인기있는 블랙코미디류를 보면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히 코미디라서 관객이 웃고
배우들은 날뛰지만 관객이 지치지 않도록 심리적 휴식의 시간이 주어져서
다시 웃을수 있는 기력을 회복하고 소진하고 또 다시 회복하고 극장을 나올때 '잘 봤네' 라는 기분으로 나와서
집에선 침대에 푹 쓰러져 단잠을 잘것이다.
이부분에서 이 극단은 너무 기운차게 달려만 가다가 지쳐버린게 아닌가 싶다.
조금은 호흡을 다듬을 시간도 관객에 주어지길 바라며 나머지 이틀 공연도 만석이 되길 바란다.

코미디라도 아이들이 볼만한 극은 아니고
봄보단 가을이 어울릴거 같은 연극인데 가을에 다시 해주려나.

그나저나 요즘 왜 이렇게 보고 싶은 연극들이 많을까. 좀 멀어져야 하는데.

출연 : 이지선, 임채현, 조성경, 최이영, 강정탁, 박해린, 이강민, 최승민, 이병희,
김한빈, 이상민, 백승연, 전박이진, 한하연, 이예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5월 2일 토요일

국악 -광대(소춘대유희)-

 

소춘대유희가 무엇일까? 고작 100년 된 공연인데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나온다.
도데체 기록의 역사는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 이 시기는 강점기 시절도 아닌데.
현한국에서도 엿같은 정부가 들어서면 자료를 모두 파기 하는데 이때도 조선 말기라
부패한 놈들이 사료를 남김없이 불태웠던걸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당시 기사 기록으로 보면 판소리, 잡가, 탈춤, 무동놀이, 남사당의 땅재주, 쌍줄타기, 기생의 춤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도 이정도 레퍼토리는 구성되어 있는거 같다. 주로 춤이긴 한데 판소리 등 잡가도 제법 나온다.
그러고 보면 민요는 없었던거 같은데. 민중을 대상으로 12월 밤마다 했다고 하는데 민요는 있어야 할텐데.

전체적인 플롯은 타임슬립(Time slip) 구조로 예전에 국립국안원에서 했던 이습회의 구조와 무척 비슷하다.
다만 이습회같은 경우는 좁은 무대와 상대적으로 궁중음악을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공연하게 된것인데
내용이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 약간은 고리타분하다고 할까? 고급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 마저도 아이가 앞에서 알짱되는 바람에 관람은 망쳤지만 아무튼 거의 대동소이하나 구성은 완전히 다르다.
소춘대유희란 뜻이 봄에 펼치는 즐거운 잔치 정도라는데. 막상 12월 밤에 했다고 하니(입춘때도 아니고 동지때)

현대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부분은 별 의미 없고, 그 시절의 실제 소춘대유희를 재현한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만
현대에 맞게 화려하며 웅장하며 아름답게 그리고 신명나도록 새로 구성되었을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공연을 좀 보다면 비슷한 흐름의 구성이란게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분위기를 띄우고 최고조에 올라섰을때
과감하게 마무리 하며 여운이 가슴팍에 팍! 꼿히도록. 같은 플롯이라고 구성이 달라서 감동이 다를수 밖에 없는데
오늘은 짧으면서도 강렬하고 많은것들이 오갔지만 막상 뭔지 말하라고 한다면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정도말곤
대답할 수 있는게 없을만큼 저들의 춤과 연주가 내게는 어려운 암기과목일뿐이다.
그렇다고 외우려고 애쓸필요는 없다. 주된 리듬, 춤사위나 안무는 우리가 그동안 평생 알게모르게
봐오던것들이라서 리듬에 맞춰서 몸을 맏기면 그뿐이다. 한문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구성 자체가 실내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민속음악들이니 감정선이 어렵지 않다.
(이런 공연을 궁중에서 했을거 같지는 않다. 도입부 쯤에 선비들의 춤 몇자락과 아이의 소리를 빼면)

오방신의 공연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주로 이들이 가장 중추적으로 힘을 주지만
나는 이들보다는 백년광대들의 춤들이 개인적으로 훨씬 좋았다.
아름다운 선을 항상 유지하면서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묘한 현대무용이 컬레버레이션 된듯한
극도로 절제된것보다는 과감하게 모든것을 뿌려버리는 숨막히는 춤들은 모든 신경이 저들을 위해
존재하는듯 빨려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여성들의 춤선을 좋아하기때문일수도 있지만
세상 모든 미의 기준은 인구수만큼이나 개개인의 취향을 따라는것이니

시작부터 밝은 톤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그 색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춘대유희? 과거 사진 몇점을 뿌리는건 좀 지루함이 있었지만
(막상 당시대에 대한 자료도 없는데 몇점 남은 사진은 이질감만 커지지 않나? 그냥 봐도 너무 다른 상황같이 보이던데)
아무튼 80분이란 길지 않은 시간 숨가쁘게 달려간다.
생각해보면 국내 이런 레퍼토리가 몇개 있다. 묵향, 향연, 단, 만신, 축제 등 몇몇가진데.
아마도 이중에 가장 민중에 가깝게 들어와있는것이 소춘대유희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1902년대 말고 2020년 지금)

이런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조선시대에 이러한 음악,음향,안무,설비등이 있을리 없기때문에 느낌도 많이 다를수밖에)
이런 공연문화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길 바라긴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1인당 6만원이라면 할인에 해당되지 않을경우 제법 부담이 된다.
수십만원이나 하는 공연도 허다한 세상이긴 한데 한국에서 정부보조를 받으며 제작하고 공연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세금으로 제작과 공연하는 것이 아닌가? 사설 기관 주최로 하는 곳에서 비싸게 받던지 하고
가급적 이런 공연은 좀 현실적인 금액으로 낮춰줬으면 좋겠다. 내 욕심일수 있지만 세금은 이렇게 무너지는 그러나 지켜야 되는
전통예술에 쓰고 관객인 민중은 저렴하게 그것을 관람하므로 체화시켜 국가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비싸게 운영을 해서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있을런지.
(4인 가족이 공연보고 밥 먹고 디저트 조금 먹는 일정으로 하루 가족 나들이를 한다고 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나간다.
한달에 단 한번, 분기별 단 한번이면 큰 문제 없지만 문화라는 것이 몸에 베기 위해선 장시간 오랜 반복이 필요하기때문에
1회성으로만 기획하는것은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는 맞지 않다. 그냥 사라지라고 기도하는 것일뿐)

그리고 자신의 귀가 좀 큰 소리에 예민하다고 생각되면, 아이와 동반한 부모라면
가급적 뒷자리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국악기들 중 꽹과리, 징, 북을 코앞에서 치면 그 소리가 어마하게 크다.
내가 앞에서 3번째 줄 자리에 앉았는데 귀가 아플정도였고 나중에는 모든소리가 섞이면서 노이즈처럼 느껴지는 구간도
일부분 있었다. 이것은 커가는 아이들의 청각에 안좋을거 같을정도로 소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연주를 조용히 하란 말이 결코 아님)
맨 앞자리는 가급적 가지 말고 둘째, 세째줄도 왠만하면 앉지 않길 권한다.
중간쯤 되는 10번째 자리는 넘어서야 좀 편히 들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소리에 예만하거나 아이가 있으면
꼭 고민해보길 권한다.

그런데 1902년 조선에서는 왜 12월 저녁부터 자정까지 공연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봄, 여름, 가을 보다는 겨울, 한적하면서 쓸쓸한 한밤 중 후끈한 열기와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귀가 하도록 한 배려가 아닐까. 술 한잔 하면 더 좋고. 아무튼 겨울에도 이 공연을 볼 수 있길 바란다.

할인에 해당되는 분들은 꼭 봐보길 권함
대부분 군무에 음량이 좀 크고 대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공연이니 중간 이후 뒷자리가 좋음
(앞자리는 가급적 피하는게 귀건강에 좋을수 있음)

출연 : 정동극장예술단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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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일 금요일

연극 -오해-

 

순전히 포스터만 보고 선택한 연극이었다.
카뮈의 '오해'는 예전에도 봤었고 느낌이 좋은 내용은 아니라서
그것이 생각났다면 예매를 망설였겠지만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예매를 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연극을 보면서 알던 내용이라 약간은 실망을 했지만

각색이 좀 묘하다. 판소리 대목도 하는 노을.

전체줄거리는 배경에 나오는 회색 하늘같다. 검은 비가 내리고
무대장치만 보면 그러지 않은데 연극에 빠져들다보면 저 무대가 눅눅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장의 밝은 이미지덕분에 그나마 암울한 눅눅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버릴수 있었다.

내용은 관객의 입장에서의 감정상태와는 다르게 감추는 것도 없이 흘러가지만
설마 설마 하지만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는것.
아들을 죽이고 따라 죽는 엄마, 비관하는 동생, 절규하는 아내.
문제는 장이 죽기 전까지 이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태니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의 끝은 강물 속 뻘에 빠져버린 절망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전체적으로 밝을수 없은 밝은 톤으로 유지된다. (조명마져 어두웠다면 꽤나 기분이 안좋았을듯)

비극의 전형을 따르는 극으로 세익스피어 비극과 비교하면 비스므리한 전개와 상황이 설정된다.
거지같은 현실과 어둡기만 한 미래, 희망을 갖기 어려운 환경 이것들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용인되는 상황
이 배경에선 무엇을 해도 비극일거다. 여기서 희극이 나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부조리하겠지.

뛰어난 전개와 표현들이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번 연극은 좀 특이했다.
노을, 셋별? 왜 이 사람들은 한국어 이름을? 거기에 강한 전라도 사투리를 빡빡 써가며
코믹함을 좀 넣어서 흑색빛을 조금이나마 회색으로 바꾸고자 했던걸까.
아들의 아내인데 엄마와 별반 차이 없어보이는 연배. 연기 호흡도 좀 특이하다.

연기가 특이한건 샛별도 못지 않다. 분노할때 그 독특하게 눌리는 톤은 어색한 보기 드믄형태다.
이런 발성은 본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특이하다고 하는게 맞을거 같다.(연기를 못한다가 아니라 특이함)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흘러가는 맛이 조금은 덜하다.
오늘이 두번째 공연이라 아직 몸이 덜 풀렸던건지.
아무튼 어두침침하고 눅눅하고 거칠어서 개운하게 털어버리고 싶은 극이다보니
그 여운이 생각보다는 길게 남지만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다.(달래 부조리극이라 하겠나)
이 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포스터와 잘 어울리는 극이란것을 느낄거 같다.
이 극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포스터만큼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낄거 같다.

나는 후자였고 포스터처럼 거친 연극이었기를 바랬지만 조금은 매끈매끈한 느낌이 살짝 아쉬웠다.

출연 : 이재희, 강선숙, 장용철, 이주화, 지근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연극 -뉴스데스크-

 

사업에 실패한 어느 한 부부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9시뉴스데스크가 전국민의 이목을 끌던 시기는 지금과는 좀 시간차이가 있다.
한 20년쯤 전 이야기일수도 있고. 프렌차이즈나 각종 사기맞아서
수많은 가정이 파탄난 경우가 급격히 증가했던때가 바로 IMF 이후 한 10년정도 일거다.
왜 이런 시차가 생기냐면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평생직장이란 생각때문에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고 프렌차이즈는 더욱더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IMF를 정통으로 맞은 세대들은 갑자기 평생직장이라 생각했던 일터가 사라지거나
쫓겨났기때문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제도약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시기였다.

이때 바이러스처럼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것이 프렌차이즈 사업들이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것이 없던 수많은 실업자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아닐수없다.
그래서 이쪽 시장이 급성장하게 되던 시기였다.
창업을 해서 가족 먹고 살정도로만 벌면 되겠지라는 소박한꿈을 안고 시작한 창업은 결코 녹녹치 않아서
어느 시점부터 연신 8~9시 간판 뉴스들에서 폐업으로 인한 가정 파탄에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주제로 한 연극이다. 그렇지만 사회에 대한 비판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초연엔 갑질관련 내용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연극엔 그런것은 좀 빠져있어보인다.
힘없는 가장을 무시하는 자식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정작 프렌차이즈를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원인은 나오지 않아서 블랙코미디로 보기엔 조금 미흡한면이 있다.
하지만 딸과 아들이 추구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결론은 오직 한가지 '돈'이란는 추상적 존재를 표한다.
기성세대들의 돈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 생명을 유지시키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정도로
여겨왔던 세대와는 다르다. 모든것은 돈으로부터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고 믿고 있는 지금의 세대
그러나 부부는 4가족 오손도손 살아갈수 있는 정도만을 꿈꾼다. 현실은 점차 떨어져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어
곰팡이를 꽃으로 여기는 낙천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한탄하지만 이러한 아내의 모습은 한 가정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있는듯 하다.
여기서 좀 의아한 부분이 가슴속에 쌓여가는 울분을 또 다른곳에서 풀어버리는데
그것이 꿈인지 상상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개새끼만도 못한 자신의 처지등을 비관하기도 하면서
쌓인 설움을 풀지만 솔직히 좀 이해가 안된다. 아기에게 무슨짓을 했다는것인지.
좀 지나치게 잠을 오래 잔다는것은 죽음을 말하는건가?

2인극이긴한데 인물이 둘만 있는것이 아니라 동물 포함하면 총 다섯이라서 남여 둘이서 설정에 맞게
배역을 바꾸다보니 황당하게 받아드려지는 부분도 좀 있고,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난감한 부분도 있었다.

또한 아내의 그 낙천전인 면모를 연극은 충분히 잘 살리지만 좀 지나치다고 해야 하나?
그 한시간 사이에 지쳐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나만 그럴수도 아니면 의도된 결과일수도.
남편이 아내가 있음에도 도피생활을 못참고 죽겠다는 것도 이러한 배경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을 설득시킴에 있어 기가 빨린다는 느낌을 받으면 안될거 같은데 좀 그런 경향이 있었다.
(연출의 의도인지 아니게 표현했는데 나만 그렇게 받아드렸는지는 모르겠음)

어느순간 아침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상황으로 온가족이 참변을 당하게 되는데
난 여기까지는 문학적으로 충분히 넘길수 있었고 참혹한 현실을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하며 끝나는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남편의 온갖 형태가 나열되는데 엄청난 지루함이랄까?
의도치않은 아내의 죽음은 분명히 절망에 이를수밖에 없지만 그 부분은 좀 간결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건지
이부분이 없으면 한시간 공연밖에 안되서 좀 늘리기 위해 넣은건지, 그 전까지만 해도 해피엔딩이지만
저 부부를 응원할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이 기다리겠다. 정도로 마음을 닫으려 했는데
이 후 부터는 구차함이 거의 10분 이상 지속되는데 왜 이렇게 마무리를 신파도 아니고 이상하게 끌고 갔어야 했는지
그 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이 오히려 이부분때문에 산산조각나버린 기분이었다.
(공연예술은 마무리만 좋아도 여운이 몇개월은 가는데 이부분에서 무척 아쉬웠음)

공연이 80분으로 길지않은 극으로
정말 부부같은 연기로, 보면서도 저들 설마 실제 부분가?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가 일품인 연극이었지만
마무리 전개의 좀 섭섭함과 갑자기 예고없이 상황전개되는 부분은 좀 당황스러웠다.
시간을 좀더 여유있게 갖고 진솔하면서 부부만이 할 수 있는 깊은 대화가 좀더 있기를 바랬는데
뭐 다음엔 또 달라진 모습으로 나오겠지.

아무튼 부부 두분의 연기는 너무 일품이라서
무죽페스티벌은 이것만(배우자들의 연기)으로도 볼 가치가 항상 충분한거 같다.

출연 : 김현정, 손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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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5일 토요일

판소리 -절창VI(심청가)-

 

절창이란게 명창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거같다.
다만 문제는 내가 명창, 절창, 졸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내게 잘 부른다는 것은 귀에 가사가 명확하게 꼿히면서 각 인물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데
판소리는 기본이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에 창법 특성도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몇번을 들어도 귀에 꼿히질 않는다. 그러려니 하기엔 안숙선명창이나 김소희명창의 판소리는
딕션이 대단히 좋아서 알아듣기 좋다. 그렇다면 과연 명창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히 이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발음을 막 뒤틀어서 창하는게 과연 올바른것인가.

절창이 6번째인데 모두 달라서 1부터 보고자 해도 어디서도 볼 곳이 없다.
국악을 알리고자 한다면 일정기간이 지나명 유튜브같은곳에 공개하던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나머지도 공연을 꾸준히 좀 해주던가. 난 절창을 이번에 처음 봤는데 6번째라니
물론 감독이나 출연자들이 다르기때문에 제목만 같을뿐 모두 다를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6번째라면 나머지는? 내년엔 7번째가 되려나? 그러면 7번째를 처음 본 사람은 나머지를 평생 못 보는건가
꽁꽁 감추지말고 분명히 촬영했을테니 공개좀 하자. 있을때 활성화하는게 최고지 망한다음엔 다 소용없다. 

나눠주는 프로그램(팜플랫수준)을 보면 몇 대목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면서 끝난다.
이정도면 보통 완창 판소리에서 중간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인데 여기서 끝난다고?
프로그램에는 심청가 판소리는 5시간 남짓 걸린다는 둥 적어놓고 절창은 이걸 100분정도로 줄여놨다라고
말하지만 함축한게 아니라 절반만 공연을 하는 것이다. 특이한것은 뺑덕이네가 나오고(심청이가 죽은 후 등장하는 인물)
방아타령(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다가 방아를 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화초타령도 나오지만 추월만정은 안나온다.

전체 내용은 심청이가 빠져 죽으면 끝나지만 그나마 좀 유명하거나 다같이 할 수 있는 대목은 땡겨왔다.
흐름엔 크게 관계 없고 개연성도 그다지 있어보이진 않는다.
해설도 함께 해주는데 늬앙스는 심봉사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마음편히 살아가는 문제적 인물로 표현한다.
심청이는 자기가 살 수 있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택한것이 올바른 효인가도 말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뭐 하나 그럴만함 상황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용 자체도 곰팡내 가득하지 않은가.
고전이란게 그렇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을 솔직히 거의 보지 못했다.
(철학사상도 현대가 훨신 앞서 있는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발전시키는거니 당연한 현상)

그래서 고전을 접할땐 그 시대로 동화되거나 감동적인 몇 대목만 계속 접하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판소리 전체 중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은 1%나 되려나? 민요는 어떻고, 북한 민요는 사람이 더 모를거다.)
우리의 감각으로 해석하는것보다 우리시대에 맞게 각색하는게 훨씬 위대한 작업이라보는데
오늘 그 한 부분의 가능성을 보았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도중 귀신들이 나타나는데 중국쪽 귀신들이다.
이게 상황상 맞아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것을 이번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인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난 이 부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심청가가 기본적으로 슬프다곤 하지만 현대 감각에서 동감하는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벌어진 현재 사건으로 각색하고 구슬프게 한대목 읊조릴때 가슴 한 구석이 미치도록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공연예술의 가장 큰 힘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것일텐데 판소리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작품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그 가능성을 오늘 처음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파고드는 주체하기 어려운 뜨거움.
판소리가 고전이 아니라 현대예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것을, 앞으로도 개사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진정한 계파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경상도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전라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성된 문파.. 등)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바로 추임세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는 것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추임세를 넣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때 추임세가 일반 판소리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곡에 집중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러다보니 공연에서 시선 외엔 그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공연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박수를 쳐야 하는 순간마져도 고요히 여운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판소리 공연 예술의 열린무대가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엔 좀 동떨어진 경향이 있는데
공연과 관객이 약간은 벽이 있다는것이 흠이지만 다른 장점도 있으니(추임세는 집중엔 좀 방해가 됨)
이러한 형태(닫힌무대)도 함께 발전되어 관객과 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증대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긴 판소리를 관람함에있어 걱정하는게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때문에 인물에 동화가 쉽게 되기때문일텐데
아직까지도 잘 안되는 것은 역시 알아듣기 힘든 창법과 한문들이 내게는 큰 장벽이다.

왜 이런 규정된 공연에서도 자막을 틀지 않는것일까? 몰랐는데 창자들은 볼 수 있도록 프론터를 뒤에 틀고 있었다.
대사가 길고 하니 까먹으면 안되서 그렇겠지만 훤한 모니터에 대사를 표기해야 하는건가?
무대 바닥에 모니터 스피커 있던데 그곳에 길게 대사를 표기하는 모니터를 달아도 되겠던데
관객을 대사를 봐서는 안되는 것일까?
국립극장은 관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예의는 별로 없다.
오늘은 함축적이면서 유명한 대목들만 선별했기때문에 한문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해는 어려웠다. 특히나 완창 판소리는 대사집을 읽었다면 판소리가 진행 순서대로 나와서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판소리 진행과도 다르기때문에 머리속에 있는 판소리 흐름과 다르니 더욱더 듣고 이해하는것에 문제가 많았다.

자막을 달아주기는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걸까?
영어 모르는 한국사람도 분명히 어떤 외국 노래를 들으면 이해 못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충만해질순 있다.
하지만 노래의 실제 내용을 알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다.(반대가 될수도 있음)
판소리를 단순한 음율이 아닌 하나의 문학으로서 관객에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납득시키겠다는 노력을 느껴봤으면.
추임세 넣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데 자신들만의 잔치로 계속 머물게 하기 싫다면
나같은 문외한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때가 아닌가싶다.

절창 1~5는 어디서 볼 수 있으려나.

소리 : 최호성, 김우정
연주 : 최영훈, 전계열, 임이환, 오초롱, 한솔잎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연극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

 

명동에 이런 극장이 있다는것은 언제봐도 참 낯선느낌이다.
번화가 한복판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벚나무같다고 할까?

시설은 대단히 좋지만 극장이 한개밖에 없다는것은 조금 섭섭하다.
이 좋은 위치에 이렇게 좋은 시설 하지만 대형 극장 한개만 있다니 소극장도 두어개 더 있었으면.

내용이 무척 무거운거에 맞게 전개 또한 엄청 암울하게 진행된다.
자식이 왜 범인이 되었는지는 솔직히 그렇게 중요하진 않게 다루는데
범죄라는 소재보다 그로 인한 부모의 심리적 변화를 깊으면서 넓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주변인물들의 고충 또한 함께 곁들여진다.

각종 언론의 만행 이런것도 이 극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머니 브렌다의 심리를 자극하는 트리거 역활정도만 할뿐이다. 그래서 다섯명이 출연하지만
막상 기억나는것은 브렌다의 감정 변화와 한숨소리, 절규만이 남는 모노드라였다.

예전 어떤 1인극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설정처럼 보여서 그다지였는데
이 연극은 다인극임에도 단 한사람만이 기억에 남도록 구성된 전형적인 주인공 한명과 엑스트라 구조를 지닌다.

변호사, 아들들, 여친, 남편, 가정부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처럼
시간이 갈수록 단 한사람만이 떠오르도록 집요하게 한사람(브렌다)에게서 시선을 끊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연극의 주인공인 브렌다의 호흡에 맞춰 분노와 짜증과 울분이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인물로 동화된다.
배경이 무겁고 전개가 다크하고 끈적이고 밀도가 높아서 보면서도 지치는 경향이 있는데
지치지 않도록 약간씩의 장치들이 호흡을 다시 가다듬게 만들어 130분의 제법 긴 연극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의 몰입력을 선보여 대단히 흡족하며 끝의 찝찝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도록 약간은 밝은 톤으로 마무리 되어
극장을 나올때도 그렇게만은 무겁진 않았다.

한 가정에서 이와같은 일이 생겼을때 돕고자 하는이와 이용하려고만 하던 이가 양분되어 나타나는데
모든 상황에서 불편하고 귀찮게 다가올때가 있는데 이런부분이 조금은 이상적으로 참고 기다려주는건
좀 이상향에 가깝다고 할런지. 보기드믈 경우긴 하지만(주변에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는건 그만큼 대인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지킬때 가능한것이 아닌가싶기때문에 조금은 소설속 환상 같음)
극적 효과로서 본다면 어느정도는 용인되어 넘길수 있는 대목이다.

내용상 좀 아쉬운건 아들 매튜가 어째서 그런일을 저질렀는지. 이 가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과 어느정도 연관성있는 설정인지 그런것까지 느낄수 없었다.
그냥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지만 배경은 한 가정같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다정다감하다는 설정은 조금은 앞뒤가 맞아보이진 않는 어색함이 좀 있다.

급발진하는 매튜의 여자친구의 정신병적 발작은 심박이 올라가면서 순간 공포감마져 느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설명이 부족해서 충격이었지만 충격으로만 남는게 아쉬웠다고 해야 할지.
(일종의 화약 터질때 놀라는 감정같이 놀람만 존재하고 넘어간다고 할까?)

제일 궁금했던건 역시 매튜다. 뭘까? 원작도 이렇게 매튜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했나?
어떤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내면에 따라 브렌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수도 있을텐데
그것을 방지하기위해 정제한것인지 원작을 보지 못해서 구체적으론 말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이 가정의 배경지식없이 한 사건으로 인한 어머니(브렌다)의 상황전개와 터져나오는 심리상태에
가끔은 물음표가 좀 생길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불필요할정도로 늘어지는 곳이 있는데
긴장감으로 피로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호흡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내 몸도 순간 맥을 놓아서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졸정도는 아님)으로 '이대로 진행되면 졸겠다' 싶은 곳이 두어곳이 있다는게
섭섭하다면 좀 섭섭했지만 이런 기분은 하루 이틀 지나면 말끔히 사라지고
다음에 하면 또 보고 싶다는 기분만이 남을거 같은 뛰어남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빈 무대를 보며 든 생각인데 오늘은 이렇게 멋진 무대위해서 연기를 하는 저 배우들과
어제 본 훌륭한 연극에서 무대가 좀 더 좋았더라면 이라는 기분과,
어제와 오늘간의 차이는 자본 말곤 없는것인가?란 예술세계에 대한 씁쓸한 맞을 남긴 시간도 함께 지나갔다.

하필 유대인들의 만행이 전쟁속에서 나타고 있는 싯점이라 뭔가 시기도 좀 묘하게 겹치지만
기회 되시면 꼭 보시길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 쌘 느낌이 있어서 지칠수도.

출연 : 진서연, 정환, 홍선우, 김서아, 최호재, 최자운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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