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의 연강홀은 이번에 처음 가본곳인데 큰 극장이었다.
좌우로 엄청 큰것을 보면 뒤로도 깊을거 같지만 이번 극을 위해 막은것이 아니었을까
객석도 넓어서 국내에서 한손에 꼽히는 좋은 극장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공연전 기다리는 시간에 음악이 나오는데 음향 또한 대단히 훌륭하다.
마치 잘 조율된 콘써트홀을 온 기분이랄까? 무대나 내부 디자인은 그렇게 화려하진 않은데.
(보통 오페라하우스나 콘써트홀은 아무래도 음악을 주로 다루다보니 내부 인테리어도 화려고 웅장한데
이곳은 그런 느낌은 없었지만 소리가 디테인하면서 잔향도 적고 또렷한것이 뛰어난 음향전문가가 셋팅한것이 아닐까싶다.)
플리백이 무슨 뜻일까? 검색을 해보면 벼룩(flea)이 많은 자루 정도로 행색이 남루한 사람을 말하거나
싸구려 숙박업소같은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인 플리백 본인의 처지가 남루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섹스를 좋아하기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쉽게 들락 거려서일까?(영국의 성 문화는 모름)
실제로 본적은 없으나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이성이 있어야 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주로 여성을 의존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지만 남성도 이런 캐릭터인 경우도 가끔 있다.
연극에서 플리백은 이성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강박증이 있어보이진 않으나
애인과 동거를 하면서도 밤새 자위를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이별통보를 당하기도 하는걸 봐서는
극도의 외로움을 이성에게 찾고(후천성), 자신의 본능의 욕구는(선천성) 다른곳에서 찾은 모습은 보인다.
나같은 경우는 이 두가지가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연극에서 플리백은 이것을 나눠놓는다.
그 단면으로 썸타는 사람이 쥐공포증이 있다며 키우는 기니피그(햄스터?)를 발로 걷어차버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때 플리백은 그 상실감을 사람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서
방황하는 모습이 그리도 안타깝게 느껴진것을 보면 은연중 나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거 같다.
자신에게 정작 중요한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변하는 현실마다 익숙한 동굴을 찾아가는 동물적 성향만을
나타내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삶에 대한 자화상일까?
그 돌파구가 이 여성(플리백)에겐 무엇이었을까?
기니피그 카페에서 함께 창업했던 부우는 특이하게도 남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가벼운 사고를 내려고 하다가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여기서 이상한게 그 바람핀 대상이 플리백이었다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플리백에게 부우는 어떤 존재였을까?란 생각도 들게 한다. 플리백이 님포(메니악)도 아닌듯 싶지만
어떤면에서는 그런거 같기도 하고 내가 이쪽은 모르기때문에 플리백의 이성 의존성이 높지만
쾌락주의자는 아닌거 같단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더라도 동시대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립된 삶을
단편적이며 극단적으로 그리고 괴변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 전위적이도 않게 관객을 설득하는것이
초반엔 코미디인가?싶다가 점차 거울같이 투영되는 플리백의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이 죽어갈때의 그 나약함. 마지막 손가락 욕을 할때의 소심한 복수
모노드라마라서 기운이 빠질법도 하지만 처음과 끝이 다름 없는 일관된 훌륭한 연기와
좀 과하게 큰 무대를 종횡무진 부족함없이 꼼꼼히 오가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아름답고 처절한 멋진 연극이었다.
연인보다는 혼자나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보러가서 웃음 포인트에 편하게 웃으며 관람하길 권한다.
영국식 웃음 코드가 한국에서 통용 안될수도 있는데(인터넷에서 작가 초연한 연극 있으니 볼 사람은 찾아봐도 됨. 자막없음)
아무튼 웃어도 될(?) 부분들은 많이 있으니 눈치보며 삐죽삐죽하면 보인만 손해 아닌가?
세명의 여자배우들의 공연 모두가 보고 싶어지는 보기드믄 연극 플리백.
출연 : 김주연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