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이광복 흥보가(미산제)-

 

흥보가는 뭐랄까. 흥겹다? 판소리 다섯바탕 중 권선징악 끝판왕이라 해야 할까?
해학적이기도 하고. 당시엔 형제간 우애를 중시 했던것보다는 매우 수직적인 형태를 지닌다.
흥보가에서 놀보의 말에 흥보는 어떤 거부도 하지 않는다.
거의 왕적인 존재처럼 다가오는데 이 시대에 이런 문학이 나왔다는것은 형제들의 수직 관계가
깨지고 있었다는 소릴 수 있다.  조선 말기였으니까 동학운동도 그렇고 팍팍한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으니
기존 틀을 깨는 세력과 지키려는 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됬겠지.

흥보가에선 흥보가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유머에서는
놀부가 훨씬 현명하고 흥보는 집안을 말아먹었을거라는 얘기도 빈번하다.
제비덕분에 일확천금이 생겼더라도 금세 가산을 탕진했을거라는 것이 현대 시각의 중론이다.

그만큼 어떤면에서 보면 꽤나 말도 안되는 판타지 물로 심청가 같은 류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동화같은 이야기라서 TV에서 만화영화나 아이들용 프로그램으로 많이 제작되고 그림책, 만화책으로도 많이 나온다.
착하게 살아야만 복을 받는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현명하게 사는 법을 알려줘야지 흥보가 처럼 멍청함-당시엔 이것이 선이라 생각했었나? 작가가 기득권층이었나?-은
주변사람들에게 당하다가 홀로 길거리에 앉게 될뿐이다.)
그래서 나는 흥보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것을 반대한다. 특히 저소득층 부모의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건 더욱더 반대
하지만 고소득층 부모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건 어떤면에선 찬성이다.

한국사람이면 80~90%이상이 알법한 그러한 내용의 흥보가
이광복 소리꾼은 아직은 젊은 사람으로 명창대열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분인거 같다.
오늘 소리를 들어보면 틀린곳도 없고 진행도 매끄럽고
워낙 오랜 시간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무대에 설수조차 없으니 이 무대에 오른다는것 자체가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무대매너부터 순발력 소리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초반엔 약간 목이 덜 풀렸는지 목이 너무 젊은거 아닌가? 싶었지만
발음이 좋아서 듣는데 편하고 감정 전달도 잘 되어 흥보와 흥보마누라의 절절함이 적적한 한 가을에 잘 어우러쟈
흥보가가 비극적 서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구성지게 들리는건 왜였을까.
판소리 다섯바탕 중 슬프지 않은건 솔직히 거의 없다. 좀 덜 슬픈게 수궁가(별주부전) 정도랄까?

초반 놀보의 만행이 좀 우낀대목인데 이부분에서 목이 덜 풀렸는지 그 맛이 좀 덜 살았던 기분이다.(단가라도 하나 부르고 시작하지)
이상하지? 예전엔 무척 우꼈던 기억인데 이젠 헉! 범죄인데? 란 감정이 덜컥 들다니
시대가 바뀌긴 하는거 같다. 아이때의 기억과 감정이 늙을때까지 이어지는게 아니었나?
난 이런 전통 공연을 보면 나의 어릴적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단지 지금 내가 느끼는게
그 시대와는 좀 안맞는거 같은데? 좀 어긋난 기분이다. 옛것 그대로를 전승하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관람객 입장에선 이 어색함을 이겨내는것은 예술가의 몫인지 소비자의 몫인지.

판소리가 연기도 함께 해야 해서 연기력도 무척 중요한데
아직은 다양한 배역들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각 인물별로 색을 입혀야 듣는 사람들이 그 속으로 빨려들텐데
특히나 흥보전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해놓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거나
자식들의 무관심함 같이 캐릭터들이 명확한반면 이광복 소리꾼은 이 구분을 무엇으로 두었는지 살짝 아쉽다.
소리로 구분하기 쉽지 않으면 행동의 표현을 극명하게 드러내면 어땠을까싶다.
보통 소리꾼이 소리가 약간 부족하면 액션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서 명성을 떨치지 않는가.
이광복 소리꾼도 다 계획이 있겠지. 아직 그 시기가 안됬을뿐.

1장 80분 2장 70분으로 길다고 하기도 짧다고 하기도 어정쩡한 시간이긴 한데
이부분에서 대단히 이상한 선택을 했다.
놀부가 제비후리러 나가는것에서 끝낸다? 응?
놀부의 악행에 대한 벌을 받고 개과천선해서 놀부 홍보가 사이좋게 지내야만
이야기의 완성이 되는데 그냥 잘라버렸다?
춘향가에서 변사또가 남원으로 부임하고 끝내는것과 뭐가 다르더냐?
심청가에서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끝내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적벽가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일으키고 도망가는 대목에서 끝내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수궁가에서 토끼를 용궁으로 대려간 후 끝내는것과 뭐가 다르더냐?

가중치가 떨어지는 부분을 잘라서 전체 내용이 깨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줄여도 줄여야지
이렇게 20%정도를 그것도 피날레 부분을 잘라버린다고? 너무 한거 아닌가?

이러면 완창판소리가 아니고 그냥 판소리 무대 아닌가?

흥보가는 흥보가 흥해서 좋은게 아니고 놀부의 악행을 천벌로서 다스려진다는것이 좋은것인데
다 못외웠다면 프롬프터라도 놓고 하지. 한창 무르익고 기대되는 부분에서 막을 내리다니 조금은 황당한 완창 무대였다.
실력은 부족한것도 아니고 왜 이런 선택을 한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신기한 공연이었다.

소리 : 이광복, 고수 : 김태영

2026년 10월 23일 금요일

국악-2026 대한민국 전통춤 축제-

 가을밤 전통춤 공연? 뭔가 어울리는거 같지 않은가?
(토,일까지 하는데 이때는 낮에 함)
구성은 정말 축제같은 기분이 든다.

보듬고,고무악
숨:벽사와해원
청풍풍류
태평무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시작을 북으로 시작하기때문에 기분이 한층 올라갈수밖에 없다.
북의 소리와 리듬이 그렇듯 강렬하다. 간결하면서도 오고무 같은경우는 화려함도 겸한다.
그리고 리듬 악기만 다루기때문에 군무가 아이돌 저리가라 할정도로 뛰어나서
북을 이용한 춤중엔 젊음의 상징같다고 해야 할까? 활력넘치고 아름다운 인간의 딱 그맘때

북춤과 장구춤은 언제 봐서 흥겹다. 리듬악기가 갖는 매력이겠지

두번째는 갑자기 처용무가 나오긴 하는데 이게 참 난해하다. 귀신을 쫓기 위해 연초에 하는 나례라는 의식에 들어가는 춤이라곤 하지만
오늘까지 합해서 서너번 본 정도인데 처용가의 처용이 왜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는건지는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거 같은데.
아무튼 연말 연시 시즌이 오고 있으니 처용무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만 좀 더 이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래된 춤사위다.
그리고 살풀이라고 하는 살풀이 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여럿이 함께하는 살풀이는
현대무용과 고전한국무용을 컬레보레이션 한듯한?
화려하지만 한국적인 수려함도 겸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 여자들의 춤의 표현이 화려하진 않는데 바뀌고 있는 느낌)

청풍풍류는 장구춤인데. 선비춤하고 장구춤을 섞여서 남자 여자 특별히 나뉘지 않아 전통춤만으로 보면 중성적이라 해야 하나.
장구춤는 여성이 많고 화려하면서 파워풀하기도 하긴 한데. 선비춤들이 섞였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왜 전엔 이런 시도를 안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들정도다.(이미 전부터 시도해왔는데 내가 보지 않고 있었어서 모를수도)
북과 더불어 참 흥겹다. 박수와 환호가 절로 나올수 밖에 없는 한국 고유 전통공연 중 다 함께 즐기는 공연으론
단연 으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여성들의 군무는 또 얼마나 선이 아름다운가.
남성들은 근육이 많아서 몸의 움직임이 느리고 산뜻하지 못하고 선이 굵어서 둔탁한 느낌이라면
여성들은 하늘하늘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아 발랄하며 가볍고 힘이 넘치지만 굵지 않다. 그래서 보고만 있어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점때문에 나는 왠만하면 여성 춤을 좋아한다. 날고 싶지만 날 수 없어서 날아가는 새라도 보고 싶어하는 기분?

그리고 마지막은 태평무인데 특이하다. 모두 왕비 옷을 입고 있다? 보통 한명만 입고 있는거 아니었나?
찾아보니 한영숙류 태평무는 모두 같은 왕비옷을 입고 나온다고 한다. 오늘 처음봤는데 인원이 많아서 그런가
뭔가 좀 위압감과 위화감이 있고 긴장감이 생긴다. 왜 일까? 옷때문인지 춤때문인지 음악때문인지.
특이한건 20세기초에 도당굿 장단을 사용해서 왕비의 춤을 창작한것이라고 하니 이름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난 이름이 태평무 라고 하길래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위해 왕비들이 배운 춤같은건줄 알았다. 역사도 오래된 전통의례같은?
다른 영상들을 봐도 역시 혼자 나와 춤추는게 좀 더 집중하긴 좋아 보인다.

태평무 자체도 근현대 제작이지만 일단 왕과 왕비의 생활을 모르니 전통으로 넘긴다고 했을때
오늘 본 전반적인것은 전통과는 살짝 어긋난 느낌들이다. 다들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창작에 열심히인거 같기도 하고
내가 춤에 물드는건지 저들이 나같은 문외한에게 맞추려 애쓰는건지.
아무튼 점차 다가서는 느낌이 드는 훌륭한 전통춤 공연이었는데 좀 아쉽다.
내일과 모래 공연도 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한다니.

가을은 가을인가?
전엔 오늘같진 않았었는데 훌륭한 조명과 음악, 화려한 의상과 최고의 춤 그리고 국내 최고의 무대
너무 찬란하고 영롱하다. 그래서 극장을 나올땐 쓸쓸했던걸까? 가을이라서 더 그런건지

저들은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일까.

출연 : 국립무용단, 구미시립무용단, 청주시립무용단, 태평무전승회

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연극 -나, 배우_보르헤스식 꿈꾸기-

 

제목이 좀 어려운가? 포스터 느낌도 그렇고
흑백다방같은 느낌의 포스터(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임)

문제는 보르헤스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연극을 보면서 어느정도 흐름은 알것도 같고
집에 와서 보르헤스가 어떻게 꿈을 꿨다는건지 찾아보니 꿈을 꾸는 방법이라기보다는
현실과 비현실, 꿈 속의 자아와 또 다른 자아 간의 충돌, 갈등, 고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호접몽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뭔가 좀 다른 늬앙스다.
나는 '스크루지 영감' 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과거와 현재는 진실이고 미래는 허구

다만 이 연극에서 현실의 인물은 죽기 직전의 노인인것이 이야기 흐름상 맞고
나머지 시간대는 꿈 속의 꿈을 꾸고 있는것이란 설정이 맞을수도? 아닐수도?

1막에서 중간자 역할인 오십대의 한 연극 배우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배우
이 둘은 같은 존재로서 타임머신을 타고 내려온거 같은 설정인데
따지고 보면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이것보다 더 수직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이십대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이 신적인 존재로밖엔 보이지 않을것이다. 물론 믿는다면
그리고 오십대는 과거를 회상하듯, 이십대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배우의 생활들을 이야기 한다.
대화는 흐름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오십대의 윤상현이 말하는 것을 이십대가 어떤 반론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운명의 이십대의 심심한 미래일뿐인것을

보통 이런 전개는 미래를 바꿔가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데스티네이션' 처럼 죽을 운명이면 어떻게든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설정도 있지만)
신기할정도로 청년은 모든것을 순응한다. 이럴 수 있나?
꿈 속 자신의 자아라서 반항을 하거나 거부한다는게 의미없기때문일까.
그래서 1막의 중반부부턴 살짝 지루함이 있다. 내 자신이 운명론자이나 미래를 알게되었다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바꾸려 하는게 당연한것인데 아무리 꿈속이라도 너무 일방적인 흐름은
그냥 중년 남성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황 자체가 서로 대립될수가 없기때문이겠지. 서로 쌈박질을 하게 된다면 패러독스(Paradox)에 빠져드니
아마 작가는 이부분에서 스스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들었을것이다.

2막은 상황이 바껴서 오십대의 윤상현과 구십대의 윤상현이 나온다.
이건 상황만 바꼈을뿐 1막하고 다름은 없다.
죽기 직전의 윤상현은 오십대의 윤상현에게 또 다시 일방적인 설교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십대 윤상현이 구십대에게 순응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오십대 윤상현에게 토로하지만
글쎄 이미 오십년이나 살아온 인물이 노인과의 대화에서 어떠한 것들을 받아들이려 할까

오십대는 거부하지만 노인을 말한다. 모두 잊고 몇십년 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을거라는
이것은 청년 또한 몇십년 후엔 오십대의 윤상현이 되어 있을테니
발버둥 쳐봐야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순 없다는 천명? 천성? 같은 것일까. 배우의 숙명일까.

다만 여기서 오십대 윤상현이 현실일거란 추정이 되는데 어느 모텔방에서 쓸쓸히 홀로 죽어가는
구십대의 윤상현을 보며 회한같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저 말로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되묻지만. 답을 알곤 있지만 다른 결말을 원하는 것일까?
좋아서 배우가 되었고 좋아서 배우생활을 하고 대학로에서 다작 배우가 되었다고.
이 단 한가지의 이유때문에 모든 인생을 받친것이 아니었나? 그러면 된거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은 무엇인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오십대 무렵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현타 같은 현상?
이쯤 되면 아흔살의 자신의 미래는 어느정도 보일테니 그 미래의 나와 이야기 할 수록 공허함이 커지겠지.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친 후 결론에 다달았을때의 감정과 과정을 건너뛴 후 결과를 접하는 감정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1억원을 10년동안 힘겹게 일해서 모았을때와 갑자기 1억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그가 느끼는 1억원의 가치 크기는 완전히 다르듯
이 부분에서 1막과 2막에 공존하는 모순점이 있다. 과정을 이야기 한다고 해봐야 청년과 중년의 대화에서 청년은 이해 못하고
중년과 말년의 대화에서 중년은 이해 못하는 것이다. 서로 뜬구름같은 소리만 하는것이지.
그래서 중년 윤상현이 현실이어야만 이 이야기는 열린결말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끝도 비슷한게 맽음이 되었지만 뭐랄까. 중간이 좀 맹숭맹숭하다고 할까.
스크루지영감(원제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극적 요소가 좀더 가미되야 수직적인 관계라도 재미가 있을텐데
심리서사 모노드라마 형식의 인물 한명의 2인극이라서 사건을 만들긴 어렵겠지만
지나온 사건이라도 좀더 재미있게 구성이 가능했을텐데 아주 조금 아쉽다. (모노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지 않던가.)

양창완 배우의 양창완인물과 윤상현배우의 윤상현인물 두 연극이 설마 내용이 다른것은 아니겠지?
서사가 다르다면 두편을 모두 보는 재미가 있었을거 같기도 하고
두 배우의 스타일이 다를테니 느낌은 다르겠지만 내용이 동일하면 또 그게 큰 의미가 없어서
오늘이 하필 막공이라 한편만 본것은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출연 : 윤상현, 유무선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연극 -2인실 x 무간도-

연극 소개를 보지 않고 포스터만 보고 구입하고 관람것이라서(시놉을 미리 좀 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안됨)
두 편의 연극이 연이어 있는것인줄은 몰랐다.

그리고 140분이라는데 이상하다. 나올때 시간을 보니 한 80분정도? 됬던거 같은데. 집에 들어온 시간등을 고려하면
틀려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왜 140분이라 적혀있는걸까.

제목이 2인실과 무간도가 붙어 있다고 가정하면 스릴러, 호러? 심리물?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런건가싶었다.
포스터도 딱 그렇고. (2인실 병동에서 네명이 서로 뒤엉켜 말로 물어뜯는 치열한 토론의 장인줄 알았음)

하지만 두편을 연이어 공연하는 그냥 짧은 두편의 연극들이었다.

첫번째는 2인실. 두명의 환자가 침상에 누워있다.
한사람은 폐암 말기, 다른 한사람은 정신치료.(이런식으로 섞어서 병실을 배정하기도 하나? 위험할거 같은데)

폐암 말기 환자(화이트)는 몸이 너무 고통스럽고 다른 환자 한명(블랙)은 정신이 고통스럽다.
서로를 이해하진 못한다. 좀 납득이 안되는 대사가 있는데 사랑한다고 팔 다리같은거 막 내던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블랙은
화이트(폐암말기 환자)에게 몸(세포)이 아픈건 대수롭지 않은냥 말을 던진다. 헤어질때도 고통스럽다는걸 부인하는게 아니라
통증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니 피폐해진 정신상태 대화한다면
거칠고 투박한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연극이니 어느정도 정제된 표현을 쓰는데
훨신 더 현실적인 인간의 가장 밑바닥 언어가 나와야 하는게 아닌가싶었다.

이부분에서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아픔을 위로하며 끝나는줄 알았는데(보통 전개들이 그러하니)
갑자기 서로 영혼을 바꾼다?????????? 왜 갑자기 판타지로?
사이코드라마처럼 대상을 바꾼다기 보다는 상대를 완전히 바꾼다? 그리고 몸이 갖고 있던 기억들이 살아난다?
다시 말해서 폐암환자였던 화이트는 블랙의 몸과 기억을 갖으면서 폐암으로 부터 벗어난다.
블랙도 화이트의 폐암의 몸을 받게 된다. 서로 기억도 가져간다면 좀 우끼지만 둘이 하나로 합쳐져 퓨전이 되던가
아니면 영혼이 바뀐게 바뀐게 아닌 모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몸은 두개인데 기억이 같은 동일한 두개의 객체, 혹은 바꼈지만 바뀌지 않은 처음 그대로인 상태

아무튼 문학 허용으로 넘겨보자. 블랙은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에게 학대받아서 방화로 죽였다?
그리고 양부모가 다른 아이들을 입양한건지 친 자식들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도 함께 죽였다?
그 죄책감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던거 같고 그 기억의 고통을 계속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배경인데

이 기억이 일순간에 내 머리속에 들어온다면 죄책감으로 다가올까? 영화같은 기억으로 남게 될까?
우리가 영화를 볼때 느끼는 감정도 충분히 사실적이다. 그 강도가 좀 약할뿐
이 연극에서는 영화같은 감정보다는, 자신이 아니지만 기억을 하므로서 자신의 일이 되버린 쪽으로 선택된다.
그래서 똑같이 괴로워 한다? 이러니까 결국은 영혼을 바꿨는데 바뀐게 아닌게 되는거다.

반면에 화이트가 된 블랙은 어차피 죽으려 했었기때문에 폐암말기고 오늘 죽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개념치 않아보였는데. 고통스러워할순 있고 식도가 모두 녹아서 아무것도 못 먹기때문에
무엇인가 먹으면 죽는다고 하지만 가슴쪽에서 오는 뜨거운 통증때문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하는데
먹으면 죽는다는 화이트(현블랙) 말때문에 못 먹는다. 신기하지? 10년 후도 1년후도 일개월 후도 아닌 어차피 오늘 죽는다고 하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죽을까봐서 못먹고 있다니.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한건지 그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의 두려움을 표현하였지만
나 역시 저 사람이 아니니 저 심정을 이해할수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연출이 보여주려한것인지

막판엔 병실에 감금된듯한 늬앙스를 풍기는데 이건 어떤 의미였을까?
이 고통의 굴래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소릴까?

이것과 연결해서 다음은 무간도.
무간도(無間道)란 말은 영화같은곳에서 제법 쓰이는 소재이다.
무간지옥, 틈이 없다라는 의미의 무간, 영원한 시간동안 벌을 받거나 죽지도 못하고 계속 벌을 받거나 휴식없이 고통을 받거나
죄인들을 가득 채워넣어 피할 곳이 없게 한다거나 등 그래서 무간지옥이라고 하고 가장 쌘 지옥이라고 하지만
죽어서도 이런 물리적 고통을 받는다는게 조금은 유치하지 않은가?
지옥은 못된놈이 회계하도록 하기 위함보다는 착한사람을 계속 부려먹기 위해 강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다.
(지금을 보더라도 못된놈은 그냥 계속 못됬다. 지옥이란게 실제로 있다면 이런놈들이 생겨날수가 없지)

업보(카르마)와는 좀 다르긴 한데 한 남자가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삶과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삶
두 대립 관계를 일란성 쌍둥이의 인물로 표현하는데 주제나 배경은 제법 참신했다.
쌍둥이라도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는 좀 다른 문제고 성격의 성향도 다를 수 있어서
서로 다를수 있고 부모의 관심도 역시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집들이 그럴텐데 공부 잘 하는 자식에게 관심이 쏠린다.
아예 자식 중 누군가 엄청 몸이 아프다거나 해서 다른 자식들은 소외받아 가정불화의 씨앗이 되는 문제도 종종 있다.
이상한것은 이 소외 받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관심을 받기위해 많은 일들을 한다는 것이고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는 자식은 귀찮아한다는 것. (부익부 빈익빈. 인간의 본성에 문제인가?)

2인병실과 비슷한 설정이다. 서로 상반된 처지로 생겨나는 관점의 차이
이들은 이것을 좁혀가려 하는것인가?
독특하면서 식상한(?) 다중인격체로 묘사되기때문에 여기서는 그 마저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불을 지른 자의 의식과 그로 인해 화상을 크게 입은 자가 한 사람?
원래는 둘인데 하나는 불타 죽어서 다중인격이 된 형 혼자의 대화다.

엄마를 애증하는 형, 증오했던 동생
이 두 인격체는 서로의 주장을 하는데 판타지가 아니고서 애초에 이런게 가능한건지. '반지의 제왕'의 골룸도 아니고

동생은 분신자살, 엄마는 폐암으로 돌아가신 설정인데
처음에 나왔던 '2인실'에 한명은 방화를 했고 한명은 폐암으로 오늘 죽을 목숨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딘가에 갇혀있다?
'무간도'에 나온 분신한 동생과 첫째를 싫어했던 아니 둘째만 사랑했던 부모가 무간 지옥에 들어서게 된것인가?

두가지의 내용이 서로 연결점은 없다. 그러나 2인실에 갇힌 고통받는 두명의 환자는
현실세계의 죄에 대한 벌의 한 형태였을까.

전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멋진 주제긴 한데
흐름에 필요한 소재들이 조금은 낡은건지 해졌다고 해야 할지.
전체적으로 조금은 지루함이 있었는데 그래서 140분짜리를 80분정도로 자른건가?

좀 더 집중해서 보고 싶은 연극인데 다시 올라오면 그땐 오늘보단 더 집중을 해보자.

출연 : 배소희, 김명애, 강민석, 이헌일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국악 -상선약수(上善若水)-

 

마침 일이 있어서 휴가를 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미술관을 가려다가
무심결에 국립국악원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상선약수 예매를 하고 있다.

예매 시작한지 몇주가 지났으니 이미 자리가 없겠거니 생각했는데
맨 앞자리에 누군가 취소한건지 한자리가 남아있었다. 바로 예매.
하지만 군무 공연에서 최악의 자리는 가장자리가 아니라 맨 앞자리다.
전체를 볼 수없기때문에 조화로움을 보기 쉽지않지만 어쩔수 없다. 딱 한자리 남은것이니

맨 앞자리가 무대와 좀 거리가 있어서 다리를 편하게 뻗을수도 있어도 관람석으로만 보면 좋다.
그렇다고 눕다시피해서 볼순 없으니 목이 좀 불편할순 있지만
공연은 무대 중앙 부분이라서 크게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역시 입체적으로 봐야 맛이 사는
군무를 수평적으로 보니 저들의 위치나 조합은 가늠이 잘 안되는건 어쩔 수 없다.

01. 프롤로그
02. 태평무 :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
03. 훈령무 : 일만 년의 기상
04. 승무 : 법고는 그리움을 부르고
05. 살풀이 : 마음이 들고 나니 인연의 바다라!
06. 한량무 : 술잔을 피해가는 학(鶴)
07. 산조 : 흩어진 가락의 자유
08. 탈춤 : 또 다른 나를 찾아서
09. 장구춤 : 조화로운 기억
10. 에필로그..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

이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오늘 공연은 구성이나 안무, 조명, 사운드 등 많은것들이 너무 적절하다.
특별히 과하거나 못하거나 한것 없이.(국립국악원 음향은 좀 별로였는데 오늘은 훌륭)
초반엔 적응을 좀 해야 하니 인위적으로라도 집중을 하려고 약간 노력을 하다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인가 점점 더 감각적으로 이해되가고 있는? 아직은 표현하기엔 어렵지만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것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대한 절재하며 감정과 상황과 무엇을 묘사하는데
그 속에서 이야가가 있고 희노애락이 깃들어있다.

때때로 뜨겁게 뭉클해지거나 가슴 벅차거나 서스팬스 스릴러 같은 긴장감, 꽃과 나비같은 산뜻함

이번엔 탈춤에서 새로움이 보여 무척 신선해서 그 동안의 탈춤과는 다른 어떤 굴래(과거?)로 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 듯. 긴장감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개인적으론 승무나 장구춤은 언제나 봐도 봐도 좋다.

보통 선비들 추는 춤은 조금은 재미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오늘 보인 한량무는 완전히 다르다. 관객을 사로 잡는 독특한 매력들을 선보인다.
선비의 기개보단 섬세함이 있는 조금은 여성스러운 춤같다고 할까?

여성들이 나오는건 선이 아름답고 남성은 굵직하고 강인함이 있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점차 중성적으로 섞이는 듯 한 느낌이 들어 훨씬 다양한 감성을 만들어내는거 같았다.

마지막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에선 주마등 처럼 이번 공연을 긴 시간의 여정을
컷트 컷트 된 장면의 연출이 재미있고 공연을 다시 되새김 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획이었다.
아쉬운 점은 이때부터 커튼콜까지 사진,영상을 찍어도 된다고 했다면 사람들이 찍어서 올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영상만 봤을때 공연에 궁금증으로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까란 아쉬움이 든다.
(대부분 커튼콜의 구성은 심심한데 커튼콜을 연결한 엔딩은 재미도 있고 홍보효과도 있고)

완연한 가을 밤. 아름다운 공연 한편은 마음을 미소짓게 만들어준다.

-출연-
국립국악원무용단, 청년교육단원, 국립국악원민속악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10월 11일 일요일

연극 -굿모닝? 체홉:그 많던 갈매기는 누가 다 죽였을까-

 

가끔 이런 식의 구성이 있다. 로드무비처럼 백스테이지를 보여주듯
스탭이나 배우들의 무대 뒤, 그들만의 이야기를 극화 한 구성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신선한것도 아니다. 그래서 근래 창작물을 이런 구성으로 하는건
조금 이해는 안되지만 연극계가 어렵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편으로 사용되는것일지도
일종의 항의 같은 것일까. 그것을 왜 관객에게?
관객은 돈을 내고 들어온 사람들이니 항의가 아닌 서비스(연극)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인데

그 많던 갈매기를 누가 다 죽였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주는게 인지상정(로켓단?)이겠으나
내가 기득권층이 아니니 대답하긴 어렵다.

저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왜 연극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내 입장에선 고맙지만 왜 하는지 저들의 내면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적지 않은 시간 제법 많은 연극들을 보고 있으나 연극 배우 한명 지인이 없으니
저들의 심정을 들어본적도 이해 해보려 한적도 없다. 하지만 극 중 배역에 동화되려 항상 노력은 한다.

그래서 무대 뒷이야기가 연극의 소재로 사용될땐 간접적으로나마 저들은 저래서 연극을 하는구나 생각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세계라서 심연을 확실히 이해하기엔 장벽이 높다.

누군가 우리 청년들의 날개를 꺾었다는 의미에서라면 글쎄.
과거부터 청년들의 미래는 청년들이 만들어가지 않았나?
수많은 민주항쟁의 역사, 독립의 역사, 개혁의 역사 모두 젊은 이들이 이끈 성과들 아니었나?
이들이 늙으면 기성세대로서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그 세대는 그걸 발판 삼아 다른것을 만들거나 바꾸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건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다른 동물들의 단물을 쪽! 빨아먹고 탄생한 생명체라서
어려울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것만도 많은 피가 필요하니
갈매기를 누가 다 죽였는지 궁금해 하지말고 까마귀, 까치로 대신할 수 있는지를 기득권과 싸워주면 안되는걸까?
아마도 지금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까마귀, 까치를 다 죽인 범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군사정변(쿠테타, 내란, 반란)이 갑자기 나오기도 하고(광주민주항쟁과 12.3내란 영상이 갑자기 왜?)
PPL을 구성해보기도 하고(연극속에 PPL? 재미있게 구성됬지만 실제로 들어간다면 조금은 짜증이 날지도)
몇 막으로 되어 있긴 한데 다 기억나진 않는다.
일종의 시행착오들을 표현한거 같기도 하고 그것들을 극화한것이 초기 기획인건지 하다보니 만들게 된건지
그리고 반야,세자매 등 이들의 대사들이 튀어나온다.(이바노프도 나오나?)
제목은 갈매기인데 체홉 작품들을 상황에 맞게 많이 가져온듯 싶지만 결론은 모르겠다.
영상 전 마지막 장면(PPL 이후)에서 저들의 독백은 정말 멋졌고 가슴 뭉클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십여분정도의 이상한 동영상때문에(에필로그?) 모든 감정이 다 무너졌다.
왜 아르코에서 공연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거지? 그것도 길게?
연극이 너무 짧아서 억지로 끼어넣은건가? 예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에필로그 영상을 연극 뒷쪽에 넣어서 망쳐버린 연극이 있었는데
난대없이 이게 무슨 만행인지 모르겠다. 잘 나가다가 판을 엎어버리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한 10여분 더 채울것이 그렇게 없었던가? 안톤체홉 작품 짜깁기 10여분 더 만드는게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아쉽다. 선호하는 구성이나 주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찰라였는데
때론 신선함도 있었고 몰입감도 잘 이어가며 긴장도가 최고조에 오를랑 말랑 한 순간.
이렇게 한순간에 엎어버린다니. 아니 싹 지워버리다니. 영화 맨인블랙의 기억 소거장치가 가동된거 같다.
차라리 커튼콜을 좀 미리한 후 에필로그 영상을 틀어놓 나갈 사람 나가게 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무슨 내용이었을까? 공동창작이라고 하니 이들은 마지막 영상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출연 : 이형우, 심태연, 서별, 김현영, 박진영, 박제훈, 최줄리, 안시연, 홍민국, 최지유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엄청 낯익은 제목이다. 영화도 있고 연극도 있고 뮤지컬도 있고 오페라도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본적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가 생소한걸 봐서는 어떤 장르로도 본적이 없던거 같다.
연극을 보기 전에 개략적인 줄거리라도 보려고 좀 찾아보니 안톤체홉의 '벚꽃동산'같은건가?싶었지만
완전한 오산. 몰락한 귀족(미국에서의 귀족은 노예들을 부려서 농사짓던 부농들인가? 각 나라에서 넘어온 귀족출신의 부자들일지도)

아무튼 몰락했다고 한다. 블랑쉬(송선아) 바로 윗대들의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하였기때문이라는데
빚더미때문에 한푼도 건지지 못한 처지.
좀 특이한건 동생인 스텔라(사강)는 어떻게 스탠리(송일국)를 만났다는 건지.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건지
와닿진 않지만 이들 자매는 아무튼 충실하게 현재 삶을 이어가고 있다.

블랑쉬는 모든 재산이 사라졌기때문에 몸을 파는 일을 했다는 건지(창녀들이 많았다는 호텔에 투숙했다고 하니)
1940년대는 미국쪽 여성 인권이 별로였던 시기라서 스텔라도 스탠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곤 하지만
그다지 대우 받는 느낌이나 흐름도 아니다. 남편인 스탠리가 폭행을 행사하기도 하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상

대충 전개는 이렇고 희극인지 비극인지도 가늠이 되진 않는다.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실주의라 평한 사람도 있다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였고 폴란드인 스탠리는 군인이었다가 공장 직공이니
거칠고 난폭하며 품위따는 없는 인물로 표현된다.(당대 군인들이 다 이런건 절대로 아니지만 스탠리는 그러함)

그렇다고 블랑쉬나 스텔라도 그렇게 귀족적 무엇이 풍긴다고 하기도 그렇다.(귀족 문화를 모르는데 품격이 높다고 볼순 없음)

마포아트센터라는 극장을 처음 오는데 무척 좋아보인다. 구립인가? 잘 만들어지고 훌륭한 대극장 규모이다.
음. 대강당을 겸한다고 해야 하나? 뭔가 묘하게 여느 대극장들하곤 조금은 다른 느낌이 있지만 좋은 극장.
이곳에 거의 가득찬 관객들.
엄청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니 나도 궁금해서 예매했듯 다들 유명한 배우들을 보러온거겠지
화창한 가을에 이렇게 우울한 연극이 너무 보고 싶어 만석에 가깝게 채워진건 아닐거란 생각이다.

유명 영화/TV 배우들이 나오면 티켓 파워때문이겠거니가 90%이상은 굳어진다.
그래도 이런 멋진 배우들의 연기를 실황으로 볼수 있겠나 싶어 보지만
대부분 그랬듯 무대공연예술은 아무래도 액션이 좀 다르다는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소극장이 아닌이상 배우의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는것인데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할뿐이었다.

어떠했냐면 낭독극을 보고 온 기분이다. 그것도 연기가 별로인 낭독극.(실제 낭독극은 연기가 매우 뛰어남)
이상하지? 다들 내로라하는 베테량 배우들인데
아무래도 카메라 렌즈에 익숙해서 그런지 미세하고 디테인한 꿈틀거림은 좋을지 몰라도
한순간에 지나가버리고 관객과의 거리가 5미터이상 수십미터도 떨어진 무대에서 자신을 알린다는건
쉽지 않겠지. 더군다나 관객은 이쪽 계통의 프로도 아니니 미세한 개미같은 액션으로 무엇을 알겠다.

우낀건 이것이 배우 자신도 느끼기 시작하면 갑자기 오버액션을 하게된다는것이다.
어?! 왜?! 목소리가 뒤집히고 발성 뭉그러지고 감정묘사 엉망이 되도 넘어간다.
차라리 격정적인 표현이 서툴다면 좀 부드러운 연극을 선택하면 될텐데.

그리고 왜? 영화, TV 드라마와 같이 연극 배역에 맞게 몸을 만들지 않나?
왜 스탠리는 탄력없는 헐렁헐렁한 하얀피부에 (극 중 나이가 30대인데) 옷을 훌러덩 벗지나 말던가
블랑쉬는 멋진 드레스들을 입는데 등에 살들이 삐져나와 옷과 겹친다. 뱃살은 3겹으로 접히고
연출이 일부러 추한 블랑쉬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망상에 사로잡힌? 과거를 잊지 못하는 쇠퇴한 현실

이들의 다음 작품이 좀 퉁퉁한 배역인가? 탁력없고 의지 없고 테토남은 커녕 다 늙은 할배,할매몸들을 해서
지난번 오이디푸스의 최수종 배우는 나이에 비해 몸관리를 엄청 잘해서 젊은 사람 못지 않음을 보였었는데
오늘의 이들은 무엇인가? 나태함의 상징인가?
연출은 왜 블랑쉬 목소리가 뒤집어지는걸 그대로 뒀을까? 엿먹으란 것이었을까?
배우가 가능한 음역에서 대사와 감정을 표현해야 전달이 잘 될 텐데. 이건 뭐 조금만 격해지만 톤이 바로 바뀌고 딕션이 흐트러진다.
이런 예외적인 감정이 어떤의미에선 사실적이긴 하지. 그렇지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할거면 연극,영화를 왜 보겠나. 주변을 보지.

반면에 스텔라 역을 맡은 사강(배우? 가수? 낯익은 얼굴이긴 한데 -.-;)이란 사람은 훨씬 나은 면을 보인다.
배우인가? 분명히 TV 어디선가 본거 같긴 한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다. 연극은 분명 아닌거 같고.

그 외 나머지 배우들은 다들 훌륭하다.
항상 이렇다. 티켓파워이 있는 사람들은 정작 연기가 이상하고
인지도가 낮은 배우들의 실력은 출중하지만 주연으로 써주질 않고
주조연(?) 같은 배역을 인지도 높고 티켓파워 있는 배우를 쓰고 홍보에도 동원하고
주연은 실력이 출중한 배우를 써서 앞으로 유명해지는 선순환은 어려운걸까?

왜 갖은 놈들은 항상 대가리에 앉아서 내려오려 하질 않는건지.

티켓파워 높은 TV/영화 배우들이 연극 시장에 들어와서 부익부빈익빈을 만들어 놓고 있는게
이쪽 세계에서 좋은건지 모르겠다. 최소한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할거면 단역부터 시작하자.
그것이 싫다면 좀 작은 극장부터 출발 하자.
이렇게 큰 극장은 얼굴의 미세한 감정표현이 보이질 않는다. 아니면 연극용 연기를 연마하고 나오던가.

도대체 왜 이렇게 관객이 많은건지.

출연 : 송일국, 송선미, 사강, 김주희, 장경애, 맹상열, 김기환, 김채하, 강희영, 김은경, 김형록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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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9일 금요일

연극 -색동가죽신(부제 : 파발)-

휴일이 껴서 3일 이상 쉬게 되면 하루는 그냥 쉬자라고 마음먹으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예매를 해버리다니.
연휴 첫날이 그런지 거리에 사람은 많지만 소극장엔 사람이 절반정도 찰까 말까?
국립극장같은곳은 재미 없는 연극이라도 인지도 높은 배우가 나온다고 비싼 가격임에도 가득 가득 차던데
열악한 환경이라 소극장 연극은 환경보다는 내용으로 승부를 걸수밖에 없기때문에 좋은 연극들이 많은데
막상 관객은 생각보다 적다. 그리고 동국 소극장은 열악한 환경중에 불편한 관객석을 가지고 있다.
발을 반듯하게 할 수 없을정도로 좁고 의자도 앉아있다보면 엉덩이가 아프다.
오늘 좀 자세히 보니 이마저도 모두 해져서 찢어지기 직전인 상태

그럼에도 이곳을 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연극의 품질이 다른 공연들에 비해 높아서인데
오늘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소재는 한국전쟁때 이산가족이 된 배꼭지(남쪽)와 이불동(북쪽)
서로 부부였는데 잠시 내려왔다가 전쟁때문에 돌아가지 못해서 배꼭지여사는 원치 않게 이산가족이 된것이다.
아마도 이때 실수로 서로 떨어지게 된 가족들이 무척 많았을텐 국가라는 이름으로 갈라놓고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게 있을수 있는 일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최소한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거 아닌가?
이승만 이 새끼가 철교를 폭파해서 피난 못 간 사람들에게 북한군을 도왔다고 누명 씌여서 죽인 사람이 비공식 수천명은 되니.
이런 개같은 상황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 찢어질수밖에

연극에선 이산가족을 다루고 있긴 한데 소극장 연극에서 보기 드믈 기괴한 방법을 택한다.

배꼭지여사께서 그리워 우는 장면이 많은데. 뭔가 좀 무섭다. 슬퍼서라기 보단 원한에 사무쳐서 흐느끼듯.
그래서 생존한 인물이 아니라 귀신이 밤마다 한 맽혀 떠도는거 같은 묘사
호러라고 보긴 그렇고 남편(이불동)이 유명한 가파치(가죽공인)라서 색동가죽신을 부인(배꼭지)에게 선물했기때문에
계속 그리워 하며 가죽신을 간직한다의 설정이지만 그다지 제목이나 소재에 비해 그렇게 부각되는 면도 없고
연극 자체가 70분밖에 되지 않지만 등장 인물들도 많고 서로들 몇 마디씩 하니 금세 시간이 다 된다.
배꼭지여사가 돌아가신 후 하루 정도의 이야기라서 생각해볼만한 무엇인가를 관객에서 전달하기엔
불필요하게 많은것을 넣어놓은 느낌이다.

술집에서 술을 파는 막내는 아마도 팔려왔을것으로 예상되지만 왜 그런지 왜 달을 보면서 부모 생각을 하는지
맹구는 이 여자를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등 뭔가 진행은 되는데 관객에게 이해, 납득시킬 시간이 없다.
가판대에서 신문같은걸 파는 여자. 구두수선, 청소부 등 다들 뭔가 이야기 하려하지만 특별히 없다.
가판대를 운영하는 가판네만이 자식이 이혼한 남편에게 가려 한다고 속상해 하는 정도?
이것도 불쑥 튀어나온 이야기고 왜 이혼을 했는지 자식은 왜 힘들어 한건지 왜 왕따가 됬는지 그 어떤 부연 설명도 없다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가 한마디 툭! 던지듯 이어져있다.
이혼녀가 아이를 키우니 그렇다는 둥 하소연 하는 구시대적 발상도 보인다.

이야기의 줄기가 될거 같은 구두수선집 나광삼은 아예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없다.
막판에 청소부에게 전달하는 편지는 또 무엇인지(이래서 부제가 파발인가?), 가죽신은 도망가는 술집여자에게 왜 주는건지.
(50년 이상 된 가죽신은 잘 관리해도 사용하긴 힘들지 않나?)

70분 연극치고 지루할정도로 맥락없게 진행되어 처음에 아이들이 나와 노래할때의 기대감이
초반에 대부분 사라지고 짧은 연극임에도 무척 길게 느껴졌는데
향수를 자극하는것도 아니고 실향민을 생각하게 하는 우리 한국의 현실을 되짚게 하지도 못한다.

한맽힌 어떤 할머니의 기괴한 울음소리 마져도 금세 지워질뿐인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알 수 없는 연극이었다.

출연 : 차태환, 오일용, 김기령, 정이주, 송원빈, 손현재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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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음악극 -돌쇠전-

 

국내 창작 음악극, 창극들은 좀 무엇인가 어색함이 있었다.
이게 한국 발음때문에 잘 안붙는건지 아직은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에 가까운것인지
혹자는 한국 음악극도 외국 나가면 극찬을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국내 고유 창작 음악극중엔
그렇게까지 감동을 받은건 솔직히 없었다. 물론 브로드웨이 뮤지컬 쪽도 크게 감흥이 있거나 한건 아니지만
(연기를 하면서 노래를 한다는게 잘 안붙은거 같기도 하고. 우리가 말할때 음율을 넣진 않으니)

돌쇠전은 고전은 아니고 예전에 우수갯소리로 '왜 돌쇠에게만 쌀밥을 주십니까?'라는 것도 있듯
그냥 섹스코미디일거라 생각은 했었다.
초반에 소리꾼이 나와서 분위기를 한껏 올리는 것을 봐도 일단 희극(코미디)인것만은 틀림 없어보인다.
소리꾼? 난 이 부분에서 창극인가 싶었다. 그리고 배우는 상대적으로 훤칠하고 젊음이 물씬 풍기는 젊디젊은 청년
그래서 젊은 배우들께서 창극으로 한바탕 하려나보다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외국 뮤지컬 같은 조명과 사운드 그리고 노래(창은 안나옴)
전형적인 서양 뮤지컬의 구성을 따른다.
내용은 돌쇠전???

에로스와 프쉬케를 모티브로 했다는데 시라노와도 흡사하다.
아마도 시라노때문인지 이와 비슷한 류의 신원을 감추고 진행되는 문학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음악극 아닌가.
(뮤지컬이란 말은 가무극이 더 잘 어울릴수 있긴 함. 춤사위도 남다름)

처음엔 뮤지컬 시카고가 떠올랐다. 어? 약간 아류인가? 싶은 기분이 살짝?
꼭찝을수 없는 어떤 분위기를 가져온건가? 이대로 진행되면 블랙 코미디인가? 아니면 스릴러?
일단 저들이 풍기는 느낌은 느와르하곤 거리가 너무 멀기때문에 이건 아닐거 같았다.

어느순간 몇번째 노래 넘버가 흘렀을까? 아직 초반인데 지킬엔하이드가 보이는거 같은 기분이 든다?
왜? 역시 꼭찝어 무엇이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노래풍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느낌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은 각 작품마다 노래의 묘한 색채가 있는데 내용과 얼마나 잘 붙냐에 따라 흥행이 결정되는거 같음)

이 느낌도 잠시
점점 이들만의 고유한 색채로 넘어간다. 가끔씩 소리꾼이 아니리(해설)를 해주고
내용 자체는 초반에 소리꾼이 말한대로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만
단 세명이 동분서주하며 무대를 장악하는데 숨돌릴틈을 주지 않고 100분을 몰아붙친다.
(거의 막판엔 저들은 암전도 거의 없어서 물도 못마셨을텐데. 라는 걱정마져 들 정도)

요 근래 몇몇 창작 가무극, 음악극들을 보면 우리만의 자리를 잡으려 하는가?라는 좋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오늘 본것은 정동극장세실 정도 규모에 잘 맞는 최고의 창작 음악극을 본거 같다.
고전이나 그것을 표방한 대부분의 작품들의 내용에서 기대할건 솔직히 별로 없다.
어차피 호랑이 담배피던 조선, 고려 혹은 그 이전, 아니면 판타지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것이니
아무리 새롭게 재해석했다고 난리를 쳐도 거기서 거기일뿐
문제는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으로 구성하고 전개를 어떤식으로 해서 관객에게 뻔한 이야기에 숨결을 넣어줄것이냐인데

오늘의 돌쇠전은 노래, 춤, 분위기, 적절한 각종 요소와 장치, 틈없는 묘한 긴장감과 그것을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지만 때론 충분히 눈시울이 뜨러워지기도 하는.
별볼일 없는 이런 내용에 이런 생명력을 넣을수 있다고?
이런 시답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저들은 이렇게 진진하게 온 힘을 다해 표현한다고?
허탈하면서도 벅찬, 빈듯하지만 모든것이 가득 들어차있는 훌륭한 음악극.

하지만 가족이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유는 분명히 성인물이다.
그러니 연인, 부부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마음을 열고 웃기면 웃고, 슬프면 슬퍼하고, 황당하면 벙쪄있으면 된다.
저들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즐겁고 행복해지게되는 아름다운 공연이 된다.
단 상상력이 너무 많으면 조금 야할수 있음은 주의해야 함.
(야한 장면은 안나오지만 야한 생각을 하도록 하는 장면은 몇 있음)

연휴 내내 참 좋은 연극들을 봐서 연휴를 알차게 잘 보낸거 같다.

출연 : 박근식, 강수진, 김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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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4일 일요일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_리부트-

제목이 좀 특이하다. 산울림에서 고전 시리즈라고 하는데
이게 어딜 봐서 고전이란 말일까?
소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다. 물론 시대는 그 언제쯤이겠지.

이 극은 고대 그리스 신화를 빗댄 현대 페미니즘(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당시 시대를 풀어간다는것인데
이런식으로 따지만 일부 동물에선 암컷이 더 파워있고 심지어 수컷을 잡아먹는 종도 있는데
그러면 마스쿨리니스트 집단이 공룡나오던 시기에 박해받던 수컷을 예로 놓고 이야기 해야 하나?

이런 설정은 어떤점에선 설득력을 갖기 쉽지 않아보인다. 여성들은 속 시원할지 몰라도
함께 살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그리고 지배할 수 없다면
상호존중을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지 되도않는 수천년전의 허구속에서 박해받는 여성도 아니고 여신을?

엄밀히 보면 여신이 박해받는것도 아니다 헤라 같은경우는 헤라때문에 인간들이 박해받고 있다.
신들입장에선 미물같은 인간따위는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죽이는 개미정도밖에 안보일텐데
신분사회에 대한 갈망역시 깔려있어보인다.

개인적으론 그리스로마신화는 솔직히 애들 동화로서도 가치가 없는 형편없는 느낌이 강해서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철학적 사유나 고찰도 없고 능력도 허접하고(이때 사람들은 이정도 능력이면 신이라 느꼈을지도)
동물적인 감성과 원초적이며 원시적인 행동들. 지금 시대의 인간보다도 한참 못한 영생하는 미개한 동물에 가깝다.
이종 교배를 하지 않나. 자식들을 잡아먹기도 하고 난교까지. 이 신들의 무기보다 인간 무기 성능이 떨어져서 그렇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멸종해도 벌써 멸종했을 것들인데 힘과 기술을 앞세워 인간을 괴롭힌 또 하나의 종족일뿐으로밖엔 안보임 

아무튼 이런 원시적인 집단에서 살고 있는 세 여신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이 세 여신의
신세한탄같은 이야기다. 이것을 인간사회로 투영해서 세명의 여인들의 삶이라고 본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현실성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모 그룹 회장처럼 대놓고 바람피고 자식낳고 이혼 재판에서 재산분할이 억도 아닌 조 단위인
이들에게 있어서 남녀 관계라는 것은 성별을 초원한 존재들 아닐까?

아르테미스의 순결? 가장 여권을 강조하며 남녀간의 부조리를 울부짖지만 정작 자신은 순결을 지킨다?
뭔가 모순되지 않나? 권리의 본질은 자력의 힘으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일텐데
온갖 편견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스스로 억매여 살고 있는,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가장 천박한 사상을 지니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시에 이런 여신을 만들어 낸것은 남자들의 탐욕(소유욕)에서 나온 산물일테니
이럴수록 현대의 아르테미스는 더욱더 자신의 본능 그대로 움직여야 할텐데, 이게 진정한 페니니즘 아닌가?
여성우월주의의 기본은 발 아래 남성을 깔면서 자신이 꼴리는대로 물욕,성욕,권력욕 등을 채워가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관점에선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프로디테다. 자신을 흡모하는 많은 남성들을 발 아래 놓지 않는가?
물론 사랑도 마음껏 하고. 가끔 똥밟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또라이 일정성분비의 법칙'에 따라 고르는 눈을 키우는 수밖엔 도리가 없는 사안이다.
남자라서 여자를? 여자라서 남자를? 다 똑같은것으로 남자가 여자 등쳐먹으면 그 여자는 그것을 학습하여 남자를 등쳐먹고
지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 한다.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이지만 그것이 어떤점에선 훨씬 철학적이며 인간 추구의 이상향일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좀 순수하고 위태롭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러면 어떠한가. 현대사회에선 각종 보호대책들이 마련되고 있는데
보호책이 없다면 다같이 피켓들고 나오면 되는 일 아닐까?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라며 남녀 상호 보완적인 사회입장에서.

헤라는 보이는 그대로 충실하다. 이성적 판단과 감정변화 좋고 한 사회를 모두 집어넣은듯한
못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하고 순종적이며 반항적이다. 얼마나 인간다운지.
그래서 12신 중 최고가 되었으려나? 당시엔 여성 파워가 쌨었나?

이 세 여신이 당시 남성들이 바라보는 여성상이었을것이다.
아름답고 관능적이지만 순결을 지키고 아내와 부모로서의 권위적인 면들.
조선시대의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것이 있었는데 이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효를 중시하고 자식 순풍순풍 잘 낳고 순결을 지키고 남편이 바람펴도 시기하지 말고(이건 참 엿같은 항목)

이런걸 남성우월주의라고 해야 하나?
가끔 생각해보면 여성들은 왜 연약한 존재로 태어났을까?
힘이라도 남자보다 쌨다면 남자가 딴짓하면 강제로 억압할수 있었을텐데
출산하고 아이를 키운다고해서 몸이 남자에 비해 약해질 필요는 없는것인데 인간 이 외의 포유류들을 보더라도
수컷이 상대적으로 더 큰 몸을 지니고 있다.(아닌것도 있으나 몇종 안됨) 참 우낀건 수컷이 다른 종으로부터 암컷을 지키기 위함보다는
동종 수컷들끼리 싸워서 이긴 놈들이 암컷을 차지하게 되므로서 지들끼리 싸워서 이기도록 몸이 커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동물 세계에서도 암컷은 수컷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것이 유전적으로 자연스러운것인지 뭔지까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다는 것과
후천적인 문화의 세뇌로 그렇게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것 역시 만만치 않겠지.
이것이 여성을 혹은 남성을 벼랑으로 내몰지라도 그들은 운명으로 받아드리는 거 같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을 타파하려 하는것인지 여성우월주의를 내세우는건지 모르겠지만
글쎄 남성들의 욕구를 모아서 탄생시킨 세명의 여신들이 이 연극에서만큼은 살짝 삐뚤어져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가려는 그 시발점 같은? 페미스즘의 시작은 박해받던 여성들의 인권을 찾기 위함이었으니
한국도 조금은 남녀 공존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권리운동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묘하고 멋지고 조금은 어려운 연극이었다.

아르테미스가 중간에 너무 몰아부치는 바람에 조금 굳을뻔했지만 참 잘 만들고 훌륭한 연극
내년에 또 하려나? 또 보고 싶은데.

출연 : 한송희, 이주희, 김희연, 이강우, 김한빈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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