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생, 갱신 이런류의 다시 한다는 의미의 갱
그런데 갱년기의 갱자도 같은 한자라일거란 생각은 못했다. 새로워진다는 의미도 있으니 그런가보다하면 되겠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은 좀 특이한 점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로 좌석 번호가 없다. 충분히 있을법한 신식 건뭉의 구조인데 없다. 그래서 선착순이라 일찍가서 기다려야 한다.
두번째로 티켓을 받으면 극장 입구(지하)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줄을 서게 만든다. 이게 다 좌석 번호가 없기때문인데
줄 서는걸 극장주인이 좋아하나?
일찍 가지 않아도 자리가 천천히 차서 정중앙 앞자리를 앉을게 아니라면 왠만해서 시간에 구애받진 않는데
아무튼 규모에 비하면 별로인 시스템이다.
그리고 의자도 접이식같은 간이의자 비스므리한 철재의자다. 그렇게 불편한건 아니지만 아무튼 별로
좌우로 엄청 길어서 관객석을 중앙무대를 기준으로 무대 앞뒤로 쪼개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이 그렇다.
참 싫어하는 구조다. 배우들의 뒷통수를 보며 대사를 듣는건 언제 봐도 적응이 안되고 별로다.
이것때문인지 관객들의 프라이버시때문에 빈무대 촬영 안되고 커튼콜도 촬영이 안된다고 한다.
뭐 사진 찍었는데 그 뒤 어두컴컴한곳에 귀신들처럼 관객들이 사진에 배경으로 깔리는것도 좀 무섭긴 하다.
구조적인 단점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습도를 맞춰주는 공조기(항온항습)가 가동되는데 가습기가 초음파 가습기같이 물 분자를 뿌린다.
그래서 그곳과 가깝기라도 하면 안경쓴 나로서는 치명적일수 있다.
이런 후진 공조시스템을 본다는건 참. 보통은 완전 기화된 공기로 습기를 맞추는데
또한 생수기가 설치 되어 있지 않다. 자판기에서 물을 사먹어야 한다. 오늘같이 습한날은 짧은 거리라도 잠시 땀이 나서
물 한모금 정도 생각나는데 마실수가 없다. 자판기 물은 다 먹기도 모하고 버리기도 그렇고 가방에 넣고 다니자니 번잡스럽다.
시설좋은 낙후된 소극장 같은 느낌이랄까?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서
초중반까지는 세대간의 인식과 표현과 시대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줄 알았다.
아버지(천태)와 딸(금옥), 딸(금옥)의 딸(피영), 그리고 할아버지(천태)와 손녀(피영)
아버지는 딸을 고아원에 맏겼다는 설정 같아보인다.
일터에서 팔 한쪽을 잃고 키우기 막막해서 좋은 집에 입양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고아원에 보낸거 같다.
부모로서 자식을 책임지기 어렵다고 판단이 된다면 차선책을 택할수도 있긴 하지만
이때 자식이 받는 불안감, 고통, 괴로움, 외로움 같은 감정도 크기때문에 서로간의 갈등의 깊이는 큰듯 싶으면서도
산재보상으로 돈을 받은 아버지는 딸에게 모두 주고 딸에게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되지만
손녀는 못마땅하다. 엄마가 그동안 큰 고통을 받고 살아왔다는 거 같음.(남편에게 폭행을 받았다는 설정같음)
두 세대간의 골은 매우 깊어보이는데 왜 깊은지는 모르겠다.
할아버지때문에 엄마가 남편의 폭행을 견딘것도 아니고 엄밀히 따지만 딸인 피영때문에 엄마가 모두 참고 인내한것인데
보면서도 답답하다고 할까? 하지만 중간에 낀 엄마는 아버지에게도 딸에게도 화 한번 제대로 못내며
참고 사는 모습에서 너무 마음이 아파왔다.
아버지는 이미 병을 얻었고 딸은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만을 전달하며 엄마의 살을 파먹는다.
(살모사도 아니고 자식을 먹고 부모를 먹고. 이런 문학적 표현을 잘 쓰나? 등골브레이커는 좀 유행이지만)
어쩌면 부모는 자식에게 먹히는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처럼 약간은 극단적으로 꾸며놓은 연극을 보며
착잡하고 답답하고 뭉클함 때문에 온간 감정을 모두 토해내는 피영에게는 상대적으로 별다른 연민이나 감정이
이입되거나 동화되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시대의 전형적인 노령층의 안좋은면을 모두 지니고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선 사랑하는 딸이 있다. 물론 이것도 과거(치매)의 산물이고 현재를 살아갈순 없는 상태기때문에
그렇게 측은하거나 암울하거나 허무하거나 한것 또한 별로 없었다. 발음이 썩 좋지 않은 설정때문에 알아듣기도 쉽지 않았고.
노인들의 현실을 어느정도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허무주의에 빠져들수 있는 위험성이 있긴 한데
이 연극에선 그런점 역시 표현되지는 않는다.
(왜 싯달타가 노병사를 깨달았는지 그리고 출가했는지 암수술이라는 절망에 찬 기분으로 다인실 병실에 누워있어보면
직접적으로 모든것을 느낄수 있다. 내가 이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오는데 거의 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도 완전한건 아니다.)
여기서 갱년기에 대해 은연 중 계속 비추는데 왜 일까? 여성에게 갱년기는 새로운 삶을 뜻하는걸까?
그럴순 있겠지. 근 40년간의 굴래에서 벗어날수 있고 한편으론 생물학적 여성성을 벗어던지는것일수도 있으니
하지만 이것이 어떤 시작을 알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갱년기를 겪을수 없기때문일텐데
이건 젊은 여자들도 크게 다를거 같진 않다.
가끔은 전위적 표현들도 좀 나오긴 하는데 그렇게 대수롭진 않고
주변인물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좀 간결하다고 해야 하나 한 사람의 손이 완전히 망가졌는데
그것을 옆에서 목도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 치고는 너무 담담했다. 자신들만의 신념은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의 인식을 대변하는 역할일텐데 그에 반해 큰 갈등이 없다는게 요즘 세대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나타낸것인지 어려운 삶을 나타낸건지 작가가 귀찮았던건지
전체적으로 많은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게 과장되고 강렬하게 표현되지만 처음 말한대로
세대간 인식과 표현의 차이, 시대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세대간 갈등 이런것은 아닌
이 가정만의 독특한(흔하지 않은?)은 사건과 쉽게 볼 수 없는 감정표현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연극이지만
엄마(금옥)의 삶이 인간적이며 서글프고 고통스럽게 보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아름답게 보인 연극이었다.
출연 : 강혜련, 공상아, 곽영현, 김은희, 이주협, 조하석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