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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4일 토요일

판소리완창_성준숙의 적벽가_동초제

 

코로나도 끝나고, 정부도 바뀌고, 회사 일도 많아지고
올해는 환경 변화는 많은데 막상 내 자신의 변화는 없다.

어젠가 그젠가 국립극장 홍보메일이 왔길래 뭐 있나 보니 판소리가 껴있다.
하지만 코로나때문에 자리도 별로 없고 그나마도 안좋은 자리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때문에
별 생각없었지만 예매처를 한번 들어가보니 제법 좋은 자리가 남아있던데 기존 예매자가 취소를 했던것인가?
아무튼 잠시 고민에 빠진다. 다음달 초까지는 공부할게 많아서 공연 보는것은 좀 쉬려고 했는데
좋은 자리와 판소리중 좀 특이한 적벽가를 하니 예매하고 만다.

2020년 10월에 본게 마지막이었으니 1년반만에 보는 판소리. 그렇다고 그전에 많이 본것도 아니다.
판소리 공연을 본게 몇년 안되고 볼 곳이 많은것도 아니니 분기별 행사정도

판소리 적벽가는 소재가 삼국지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도원결의 한 후 재갈량과 합세하여
관우와 조조와의 관계, 장판 전투, 적벽 대전까지 제법 긴 내용을 다룬다.
그런것 치고는 2시간30분정도(자르지 않으면 한 3시간30분정도 되려나)

소설을 보면 흥미진진하지만 단조로운 플롯에 비해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좀 어지럽고 조잡스럽지만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판소리의 적벽가는 이런 소설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세력간의 치열한 싸움과는 거리 멀어도 너무 멀다. 특히 적벽대전에서 박살난 조조는 군사들의 조롱거리처럼
다뤄진다. 호칭만 승상일뿐 다같이 죽어가는 처지라 그런지 친구처럼 대하며 농담을 주고 받는다.
소설이 상류층의 시각으로 쓰여졌다면, 판소리 적벽가는 졸병들의 시각에서 쓰였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것은 일부에서 그렇다는 것일뿐, 대부분 삼국지의 주역들이 등장하기때문에 판소리라고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것은 아니다. 몇몇 부분에서만 졸병들의 애환을 다룬것으로 소설에는 이런 얘기는 당연히 없다.

손오공 고전 소설을 원작에 가깝게 만든것은(구전을 모아서 만든것들) 전개가 단조롭고 화려하지 않지만
이후에 나온것들은 없던것들이 달라붙으면서 화려해지고 조잡해지고 난잡해졌듯
적벽가도 비슷한 현상으로 봐도 될법 하다.(한국에 먹힐듯하게 각색하고 첨삭해서)
그래서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만하다. 물론 대부분이 한문을 그대로 읽어대는 대사때문에
반드시 해설이 적힌 대사집은 읽어봐야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수 있으니 이부분은 참고 바란다.

간만에 자리에 앉았으나 여전히 불편한 좌석.. 이런 그지같은 자리에서 두세시간을 관람해야 하다니.
그리고 무대와 엄청 먼거리.. 이번엔 운이 좋아서 맨 앞자리였으나 소리꾼의 표정들이 잘 안보일정도로 멀다

성준숙 명창께서는 올해 여든이 다 되셨다고 해서인지 대사를 자주 까먹으신다.
그럴수도 있지만 수십년 한 프로치고는 대처 능력이 좀 아쉽다고 할까
리듬이 너무 많이 깨지는 느낌이라 해야 할지
판소리 완창을 언제까지 외워서만 해야 하는건지.. 저 노인이 받을, 수많은 소리꾼들이 받을 스트레스들
과학 기술이 발달되었으니 뒤에 쥐처럼 숨어 대사를 불러주지 말고
무선 마이크와 이어폰등을 이용해 또렷하게 불러주자. 아니면 프롬프터를 이용해서 주던가

책 한권이나 되는 대사에 모노드라마처럼 한사람의 일대기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서로 다른 느낌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데 대사를 까먹지 않는게 이상한거 아닌가

과거의 환경에서 어쩔수 없었던 이런 고문에 가까운 공연예술도 현대에 맞게 좀 편리하게 바꿔줄 필요도 있어보인다.

그리고 대본을 사서 판소리 할때 함께 보라는 엿같은 말을 하지 말고 자막을 틀어줘라
이런 사소한 편의기능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망하지 않는것을 보면 밑빠진 독에 얼마 많은 세금을
쳐박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되는거 같다. 관객이 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종사자들의 환경도 좋아질텐데
단지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말곤 없다.
서울에 무수히 많은 공연장들중 남산에 특어박혀있는 극장 한곳에서만..
이곳 대관료 보다 저렴한곳이 널려있을텐데 각 구별로 돌아가면서 할 수도 있는거고
때로는 거리공연으로 판소리 완창을 할 수도 있는것인데 유독 이곳에서만 한다. 접근성 똥이고 젊은이들 없는 이곳에서

인생 끝자락에 있는 한 소리꾼의 잃어가는 대사들을 보고 있자니
이쪽도 얼마 안남은것인지 착잡하고 쓸쓸한 고독이 밀려오는거 같다.





2020년 11월 21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수연의 수궁가_미산제-


근래엔 회사 일도 많고 이런 저런일도 많고 연말이고 해서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는다.
이럴땐 공연을 보며 좀 차분해지길 원하기도 하지만 나만의 욕심이겠지

극장에 앉아서 시작하기를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더욱더 의자가 불편하다. 몸 콘디션이 엉망은 아니지만
아무튼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는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조금 후 사회가 나와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바로 시작하는데 역시나 어렵다.
그전에 대본을 두어번 읽어본적이 있어서 개략적으로 이해 할 수 있지만 그정도에 그친다.
한글이 만들어지고 배포된지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사회에서 한문은 언제나 가득차있다.

별주부가 물위로 나오자 마자 1막이 끝났는데 이상할정도 짧다.
한 45분정도? 해설이 포함된 시간이니 한 30분만에 중간 쉬는 시간이 온것이다.
왜? 김수연명창 몸이 안좋은가.
두번째 역시 얼추 비슷한 시간만에 끝이 나버렸다. 역시 해설시간 빼면 공연시간은 35분정도일까?
이후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나와 육지에서도 몇몇 사건 이후 여생을 잘 보냈다는 마무리까지 하니 6시정도에 끝이 났다.

시원스럽지만 두툼한 목소리가 매력적인데 애원성이 좋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창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강한것은 몸 콘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건지 원래 수궁가의 특정 대목이 그런건지
여러번 본것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색하다.

소리하는 사람들은 평생동안 다섯개의 판소리중 몇가지를 완창할까?

표현의 무게 무거워지고 깊어질무렵엔 목이 망가지고 몸이 쇠하여 더이상 못하게 되는것은 아닐까?

아무튼 자막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든 판소리라는 것을 듣기 위해 애쓴 나도 고생이고
어려운 판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닦는 소리꾼들도 고생이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이난초의 춘향가_김세종제



춘향가는 이번이 몇번째일까?
제법 여러번 듣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재미있다.
하지만 언제나 들어도 이몽룡에 비하여 춘향이만 개고생한다는 느낌은 바뀌질 않는다.

초반 잠시 남녀간의 사랑으로 즐거워 보이지만 이후부터 고난의 시작
심지어 노래도 어렵고 처량하고 구슬퍼진다.

해피엔딩이라지만 아마도 성춘향은 이번 고생으로 암에걸려 단명하지 않았을까?싶을정도다.

이런 완창무대에 오를려면 오랜세월 공부하고 수많은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오는것일테니
그 경험에서 나오는 순발력이나 대처능력은 여유로워 보일정도다.

장시간의 1인극이다보니 엄청난 대사량과 1인다역등 그 자체가 쉽게 넘길수 없을텐데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면 장장 4시간을 혼자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지 경이롭다.

이난초명창의 힘넘치고 절도있는 소리에 푹 빠져들수밖에 없지만
한국판소리보단 서양 성악이 잘맞는 목을 가진거 같단 느낌도 들었으나
춘향이가 열대 장형을 받는 십장가에선 대사가 잘 들어오진 않았지만 춘향이의 절규가 전달되는 느낌이 다가온다
이부분이 이렇게 슬픈 대목이었나(열대 맞는 고통이 아닌 한 인간의 억울함의 절규)

그렇지만 판소리 특유의 쇳소리는 잘 없는것이 이난초명창의 특징이라면 특징일수 있는데
약간은 굵은듯한 목소리는 춘향이의 그리움, 옥중의 힘겨움등과는 조금 먼듯 느낌이 든다.
반면 표정변화나 몸의 표현등은 일품이다. 약간 굵은 목을 이런 외적 연기로 훌륭하게 대처하니
보고 듣는 재미나 월등하다.

아무래도 판소리는 소리를 듣는게 많겠지만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 무대예술에
더욱더 잘 맞는 변화가 아닐까싶은면이 있다.

요즘은 음원으로만 듣는 시대도 아닌 영상과 함께 음원을 보고 듣는 시대이니
소리만을 너무 열중하는것도 지금세대에 맞춰 가기엔 한계가 있어보여
어느정도 퍼포먼스도 충분히 감안해야 하는것은 현재의 무대예술이니 표현력또한 큰 몫이 되가도 있다.

춘향가에서 개인적으론 옥중 이몽룡 만나서 유언하는 대목이 너무 슬퍼서 좋아하는 대목인데
고김소희명창의 이 대목만이 내게 맞았던거 같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의 이 대목은 특별한 감흥이 없다보니 그냥 쉽게 넘어간다.
가사집만 봐도 절절한 대목인데 왜 이 부분에서 김소희명창 이외엔 느낌이 적어서
오늘도 약간은 기대했으나 큰 느낌은 없었다. 조금은 섭섭했지만 절절한 십장가를 들었으니 섭섭함이 덜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친내색 없이 끝까지 농담도 하면서 흐트러짐 없이 무대를 완성한
이난초명창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늘도 같은 얘기를 하자면
가사를 외워도 어려운게 판소리 내용들이다. 그러니 자막좀 넣어라.
즉흥적인 요소가 있더라도 가사를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해당 대목은 쉽게 찾을수 있을게 아닌가
오늘같이 6시간짜리를 4시간으로 줄이면 갑자기 건너뛰게 되는경우가 종종생길수 밖에 없는데
많이 헷갈리고 한시, 한문등은 가사를 들어도 그 뜻을 알수 없는 말들이라 귀에 더욱더 들어오질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급 예술을 어떻게 2년이나 같은 무대디자인으로 울궈먹는지도 짜증난다.
천정은 산만하고 의자는 으~
이공간을 설계한놈을 4~6시간동안 앉혀놓고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듣고 싶다.
엿같은 공간
귀명창 자리도 없어졌으니(등받이도 없이 몇시간을 앉아서 보라는 엿같은 자리을 만들어놓은 이상한 기획)
무대를 좀더 앞쪽으로 이동해서 관객과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하면 서로 좋은거 아닌가..

볼적마다 이처럼 게으르고 나태한 무대기획자가 있을까싶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도 어렵다.
몇시간을 그지같은 의자에 앉아서 보라고 누가 추천할수 있겠는가.. 에휴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최호성의 심청가_강산제-


화창한 늦봄이다.(절기로는 하지)
더울법도 한데 바람 잘 불고 건조하고 청명하다.

조금 일찍 끝났다면 남산을 걸어올라갔다가 내려오려 했으나 어김없이 4시간정도 공연

한사람이 몇시간동안 혼자 공연한다는게 쉬울리 없을게다.
(혼자 노래방에서 4시간동안 노래를 부르는것도 힘들텐데 관객이 있는 공연을)

판소리 완창 무대는 처음이라는 최호성 소리꾼(올해 33세라고 하는거 같음)

아직 십여편밖엔 못 봤으나 남자 소리꾼은 여지것 두번인가? 세번인가만 봤고 모두 여자 소리꾼 일색이다.
예전엔 모두 남자만 있었던 문화였다고 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밀려났을까
여자라고 손쉽게 소리꾼이 될수 있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노력은 비슷할텐데
해설자 말대로 청소년 변성기때를 넘기지 못하는건지
아무리 그래도 여자와 남자는 그 음색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 노래의 맛이 완전히 다르다.(대중가요를 들어봐도)
이렇게 성비가 적당하지 않다는것은 소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매우 아쉬울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초반 시작할땐 좀 잠겨있는듯한 답답함..
그리고 특유의 전라도 방언과 알아들을수 없는 발음들

한시같은게 나오기라도 하면 음 자체를 들을수 없을정도이다.
물론 이번 역시 자막은 없다.(이 놈들은 분명 한국의 창소리가 죽어 없어지길 바라고 있거나 대충 대충 기획하며 월급 받고 있거나)
알아듣기 쉬운 대목이 나오면 호응이 올라가는게 눈에 보일정도인데 관계자놈들은 전혀 그것을 신경안쓴다.

이사람의 목은 아직 미완성인가
목이 잠겨있는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건지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입을 양 옆으로 찢어 말을 하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남자들은 좌우로 많이 벌리는거 같음)
(심청가 대사집은 대략 너댓번정도 읽은거 같고 본것도 춘향가 만큼 되니 중간에 갑자기 들어도 어느 대목인지는 알지만
문제는 말을 알아들으며 보는것과 외우고 있는것을 끄집어 내며 보는것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가끔 고(故)김소희 명창의 춘향가완창을 듣는데 이분것을 듣다보면 대사집이 필요없을정도로 명확하며
연기력 또한 대단하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듣다가 좀 슬픈 대목이 나오기라도 하면 갑자기 눈물이 날거 같아
사람들 많은곳에선 가급적 안듣게 될 정도다.

어떤 사람의 심정을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말속에 담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는것인데

젠장 거의 못알아들을정도로 창을 하면 도데체가 무슨 전달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문이야 음만 들어서는 소귀에 경읽기 마냥 알수 없으니 어쩔수 없이 해석한 걸 다시 읽어봐야 하지만
대중성을 잃지 않기 위해선 의미전달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런경우는 극히 없는거 같다.
(안숙선 명창의 소리 역시 발음이 또렷하게 들리는 편이며 연기력이 뛰어나니 각광받는것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알아듣기 어렵게 공연하는것 치곤 목소리 큰 지인들이 많이들 왔는지 호응은 전반적으로 매우 좋았지만
그냥 그들만의 잔치처럼 보였다. 오늘은 더욱더 우낀 느낌을 받았는데 전라도 토속 문화 잔치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좀 진한 전라도 방언, 억양
전에도 전라도 말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강하게 들린적은 없었다.
아마도 대사가 귀에 안들어오니 그 특유의 억양만이 들어와서 그런게 아닐까싶다.
그만큼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

목 음역도 아직은 좀더 연마해야 할거 같고
(남자들은 대금의 청같은 특유의 귀청을 간지럽힐정도의 강렬한 쇳소리가 있는데
이 분은 아직은 그런게 적어서 판소리보단 민요나 공연을 위해 다져진 목 같단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4시간 가량 엄청나게 힘들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굳건하고 당당하게 이끌어가 가는 모습은
그동안 봐왔던 다른 사람들 못지 않은 기품있는 멋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무렵엔 힘이 없어지는 느낌인데 이 분은 더 몰아붙여 힘을 쏟어내는 강렬함이 있음)

처음이라 긴장해서 약간의 조급함이나 목이 덜 풀린거 같다거나 발음이 이상했지만
일취월장할 큰 재목임에 틀림 없을거다.
부디 열심히 공부하여 찌릿찌릿한 판소리를 선사하여주길 기대함

다른 문제로 공연기획자는 계속 이딴식으로 편성할건가?
판소리 다섯마당이라 하는데 작년 초부터 올해 중반부까지
적벽가 한번, 흥보가 한번 그 외엔 모두 춘향가와 심청가 일색이다.
수궁가는 아직 구경도 못했다.
춘향가와 심청가가 인기가 많다손 치더라도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과는 느낌이 크게 다르니
충분히 즐길수 있어보인다. 내용을 보면 군사들이 질질 짜는 대목들이 워낙 많아서 그다지 남성에게 어울린다거나 하지 않는데
오히려 그 남성성을 풍자하도록 한거 같은 느낌까지 든다.(찌질하고 비겁하고)

흥보가는 내용 자체가 워낙 유명하기때문에 접근성이 대단히 좋으니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수 있는것에 반하여
공연횟수가 없고

수궁가(토끼 간 먹으려는 용왕의 얘기)는 약간은 좀 멀게 느껴질수 있지만 글쎄 판소리 12마당중 살아남은 5마당중 한가지니
재미는 어느정도 확보되어있다는걸텐데

결국 무엇이 나와도 손색없는것들만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대로 갔다간 춘향가와 심청가만 살아남고 나머지 3가지는 그냥 연극정도로만 남는게 아닐지

1년 2분기로 나눠 분기당 4편씩 한다면 적어도 3편은 서로 다른걸, 1년 8편중 판소리 다섯마당은 모두 넣자.
이게 뭐냐? 같은걸 두개씩 연이어
전 사람과 누가 더 잘했나 비교당하길 바라는것인냥 이따위로 편성하다니

그나저나 얘들은 분명 녹음이란것을 할텐데 이건 어디서 들을수 있는것일까
무료로 풀기 싫으면 돈을 내고 듣게 해주던가 동영상을 손쉽게 접할수 있도록 좀 해주던가
하여튼 꽤나 조잡한 기획집단이다. 마지못해 하는냥.. 작년에 썼던 무대를 올해도 또 써먹고
관객과의 거리는 더럽게 멀고, 기본이 3시간 공연인데 공연장 의자는 엿같이 불편하다.
이럴바에 차라리 바닥에 등받이 의자와 방석깔고 앉는게 더 편할수도 있다.

오늘 관객은 절반정도밖에 안찼다.
이게 다 너희 기획관계자들 때문이란것을 알고는 있는것이더냐?
보기 편하게, 몸이 편하게, 가격이 싸다고 무대를 후지게 만들지 말고
하늘극장의 정신산만한 천정 구조물은 안보이도록 좀 막고

명색이 국립극장인데 더럽게 안이쁜 주변 가건물들
(세계적으로 이런 엿같은 컨테이너 가건물을 국립공연장의 쉼터라고 만들어놓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거 같음)
그리고 공사하는 소리들 (공사는 평일 공연없는날 하면 안되나? 왜 휴일에 사람들 공연보러 오는날 지랄들인지)

이런건 기본적으로 이쪽 수장을 갈아치우는게 가장 효과적일텐데
공연예술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그런 사람이 수장으로 있어야
이따위 짓들을 안하지.. 에이..

계속 보면 볼수록 디테일한 그지같음과 천박한 운영이 보여 속상하다.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오민아의 심청가_강산제-


찢어진 가방을 구입가에 맞먹는 가격으로 수선에 맡겼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아마 공연을 보기전의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보기전엔 왠지 걱정이 되고 일같이 느껴지다가도
공인을 보고 끝난후엔 보기 잘했고 뿌듯한 기분을 안게된다.

이런 기분이 판소리 완창 시리즈에선 특히 더 크게 다가온다.

일단 공연시간이 짧은게 3시간 길면 6시간(소개하는곳에선 8시간도 한다지만 이건 있을까 말까 한정도고
대부분 줄이지 않으면 순수하게 5시간정도에 중간 쉬는시간-인터미션- 두번정도와 소개하는 시간 포함하면 6시간)

오늘 하는 심청가는 4시간(쉬는시간, 소개시간 포함)
그런데 이 공연시간은 공연장에 와야만 알 수 있다.
물론 어느정도 할거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안나오는 경우도 허다함(이번도 홈페이지엔 3시간이라 적혀있음)

나같이 끝나는 시간에 별 문제가 없는 사람은 관계 없지만
가정이 있고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좀 길게 할 예정이면 좀 일찍 시작하면 그래도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을텐데

4시간 공연인 오늘은 7시무렵 끝났지만 홈페이지 내용대로 3시간정도로 생각하고 이후 약속을 잡은 사람은 어쩌라는건지
공연 한시간 분량인 끝부분을 빼면 피날레를 모두 날려야 하는건데
조금 긴 시간 공연을 할거면 좀 일찍 시작하고, 어느정도 예정된 시간을 미리 공지하는게 현대사회에 맞을텐데
고급 공연예술이라고 모든 관객이 널널하게 시간 조정을 할 수 있을거란 거만함은 좀 안해줬으면 좋겠다.

심청가는 이번이 3번째?
대사를 읽은것도 3번정도 되었나
아직 대사를 읽을때 소리꾼의 그 소리가 연결되지 않아서 크게 와닿진 않지만
(춘향가같은경우는 대사집만 읽어도 이젠 막 슬퍼져서 지하철에서 읽다가 울컥울컥 거릴때가 있음)
그래도 청이가 아버지에 대한 한탄은 글로 읽어도 그 슬픔이 바로 전해진다.

몇번 읽고 몇번 보다보니 내용이 점차 상세하게 들어오고 있는 와중이긴 한데
좀 이상하긴 하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신공양으로 죽는다?
그리고 죽은 부인도 남편을 신 떠받들듯 한다.

문학은 그시대의 사회문제를 대변 할텐데
그렇다면 이게 나올 당시엔 남편를 천대하거나 자식이 부모를 우습게 알았다는 것일까?
유교적 사고는 적어도 부모에 대한 공경(효)은 끝이 없을텐데
이런 사회에서 이런 문학이 탄생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독하디 독한 문학작품이 탄생했다는것은
군사부에 대한 공경이 땅에 떨어져버렸다는것으로 보인다
(춘향가역시 신분 차별에 대한 것이라 하지만 내용을 보면 창녀취급 받는 기녀의 자식이 수절을 한다?라는 독특한 설정을 한다.
이것은 당시의 성문화가 매우 부적절했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부종사와 거리 먼 대상이 수절을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해서
경각심을 주려 했던것이 아닐까싶다.)

이러니 남편을 위해 미친듯 밤낮없이 일만 하면서도 장님이라 일하나 못하는 남편을 받들며 살고(뺑덕어미가 훨씬 현실적임)
아버지를 위해 동냥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먹고 사는것도 아니고 눈뜬다는 중의 말을 들어 절에 시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해치는 행위를 나이 15세때 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보다 극적인 구성을 위해 이렇게 설정할수도 있지만 이게 먹히는 사회였고 좁은 공간, 돈 많은 사람들 아니면 초빙하기 힘들었던
판소리 장르에 이런게 유행했다면 역시나 꼰대들의 바람이 깃들어 있는(노인들이 대우 못받는 사회에 대한)듯 하다.
지금 어딘가에서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들에게 심청전을 보여주면 이들은 눈물을 흘리겠지.

각설하고
소리꾼 오민아씨의 목 음색은 낯익으면서도 그리 선호하는 목소리는 아닌데
너무 거칠다고 해야 하나
쇳소리를 넘어서서 굵은 사포에 긁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음역도 넓은 분 같은데 이러니 절규하는 부분에선 대단히 돋보이지만
아니리(가락이 없는 일반 말)에선 좀 그렇고
일인다역을 해야 하는 이상한 장르에 걸맞는 다양한 연기력이 돋보여야 하지만 좀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민아 소리꾼의 소리에서 기력이 빠져나간다는게 느껴지고
몸 콘디션이 안좋은지 물을 자주 마시는 모습이 좀 안쓰럽다.

이 사람의 소리를 듣다보면 툭!끊겼다가 숨이 이어지는 곳들이 종종 보이는데
왜 그런지 모르지만 대단히 어색하고 신경에 거슬리지만 숨을 끊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수와 박을 맞추기 위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개인 스타일인지 무엇인지
소리가 좀 여유롭게 박을 이어가면 좋았을텐데 약간은 조급해 하는거 같기도 하고
뭐에 쫓기듯 막 달려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약간 트리지기도 한다.

하지만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걸걸함에 호탕하며 여유있는 이분의 목은 어떤 대목이라도 여유있게 소화해낸다.
가끔 어떤 소리꾼은 특정 소리를 내기위해 얼굴이 찌푸려질정도로 쥐여짜듯 소리내는데
이분은 모든 부분, 모든 대목이 여유롭고 호기로워 매력과 호소력 깊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어떤 대목은 녹음했다가 다시 듣고 싶을정도로 강한 인상을 줄정도

막판엔 결국 눈물샘이 살짝 열리기도 해서 닦아내느라 눈꼬리가 쓰리다.
방아타령은 이 처량맞은 심청가에서 그나마 즐거운 대목인데 빠진건 좀 섭섭하지만
이런것들이 다 포함되었다면 5시간 공연이 되었겠지

훌륭한 사람들의 공연을 또 보고 싶어도 도데체 어딜 가야 찾을수 있는걸까
공연장을 나오면서 이사람 공연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을 되돌릴수 없고
이런 무대에 언젠가 또 서게 될때 내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판소리는 되돌릴수 없는
시간같은 존재로 지나치는걸까

언제쯤 자막이 달릴까?
오늘 보니 일본인 관객도 있던데 이 사람은 어떤느낌으로 봤을까
발음이 독특해도
청각이 좀 안좋아도
모두 즐길수 있게 공연에 방해 안되는 자막이 달리는 그날을 위해..

그런데 알고 있을까?
이 공연극장의 의자가 연극 소극장의 후진 의자 수준이란것을
이런곳에서 서너시간 이상 공연을 보는 곤욕을 치뤄야 한다
객석 바닥을 나무 마루 바닥으로 만들어 공연도중 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나무면 무조건 좋은것처럼 생각하는 또라이가 설계한거 같음)
천정은 온갖 구조물로 잠깐 고개라도 들라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조명과 음향 이외엔 좀 안보이게 막을수 없나?)

참 그지같은 공연장이다.(혜화동 초라한 소극장도 이보단 좋음)
소리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이렇게 쓰레기 같은 공연장에 있는것이다.

명색이 국립극장이고 한국의 전통중 최고로 치는 판소리 공연을 하는곳이 이러하다.



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판소리완창 안숙선의 심청가-강산제


하루 아침에 이렇게 추워져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공연시간이 어중간해서 월차를 내고(여지것 일을 하면서 연월차란걸 써본적이 없는데)

낮 시간엔 안경을 새로 구입하려고 남대문쪽을 배회하는데 전에 구입하던 업체가 사라져서
새로운 안경점을 찾다보니 감기에 걸려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콧구멍을 휴지로 틀어막고 있는 신세다.

날만 좀 푸근해도 간만에 평일 쉬는 날이니 이곳 저곳 돌아다니려 했지만
너무 추워서 안경 맞추고 바로 집으로 직행. 공연까지는 너댓시간이나 남아있으니 어쩔수 없다.

판소리 완창 2018년 시리즈도 이것으로 마지막.
내년 상반기것은 이미 예매를 다 해놨지만 아무튼 올해는 이것으로 끝

안숙선 선생 음반을 가지고 있고 예전엔 좀 많이 들었었기때문에 기대되는 무대지만 감기도 신경쓰이고
저녁 7시에 시작하는 공연이라 몇시에 끝날지도 신경쓰인다.(다음날에 출근도 해야 하는입장이라)

왜 평일에 공연 일정이 잡혔는지 모르겠지만 판소리 같이 시간이 긴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앞으론 자중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연차를 이틀연속으로 쓰던가.

이번 판소리는 완창이지만 분창이라 해서 몇명이 나눠서 공연을 하기때문에
완창이라도 그 느낌은 좀 다르다.

창자가 바뀔때마다 새롭기도 하고
다시 분위기를 잡아야 하니 잠시 어색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5명이나 나눠서 부르다보니 한사람 한사람이 맡은 양이 많지도 않은거 같다.
안숙선선생의 제자분들이라 하던데 아마도 제자들의 경험을 위해서 함께 한것이 아닌가 싶지만
이번 공연의 주 목적은 안숙선선생의 판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는데
분량이 너무 적어서 실망감이 적지 않다.

절반정도는 제자분들이 하고 절반정도는 직접 하신다거나 하면 모를까
전체중 가장 적은 분량만을 하신다는게(연세가 있으시니 무리가 될수도 있지만)

이럴거면 포스터 사진도 제자분들과 함께 찍던가..(단독무대도 아니고 주된 무대도 아닌데)

제자분들중 박성희란 분은 여유넘치고 목소리도 참 좋아서 팬이 될거 같다.
(소리꾼의 팬은 음반도 구하기 힘들고 공연을 어디서 하는지도 정보가 마땅하지 않아서 의미 없으려나)

모든 분들의 각양각색 그 특색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은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보인다.
이래서 판소리는 가능하면 한사람 하는게 나은것일까?(다른 사람과 비교되면 아무래도)

심청가가 이번으로 3번째인가 그런데 잘라도 너무 자른거 같다.
밤11시가 다 되서 끝났지만 공연시간대비 창자들의 템포가 좀 느려서
많이 잘라버려 아쉽다. (내용을 줄이는건 창자 마음이라 하지만 내용을 적절하게
줄이고 늘려 내용에 지장없도록 하는것도 능력아닌가?)

맹인잔치 대목부터 안숙선 선생께서 하셨는데 원래는 방아타령부터 하신다고 하셨으나 잘라버리고
마지막도 일부분 잘리는등 전반적으로 섭섭한 공연이다.

아무튼 올해 마지막 판소리공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번 공연은 감기걸려서 집중력도 떨어졌지만 그냥 저냥 코감기로 머리속이 멍할따름이다.

내일은 연극을 봐야 하는데 감기가 나을런지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경호의 적벽가-박봉술제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리는 경우가 흔한지 모르지만 푸짐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날이 따뜻해서 대부분은 녹아내렸으나 아직은 하얀 기운 가득한 첫눈내린 첫날

적벽가를 듣기위해 국립극장으로(조합이 맞는거 같진 않지만 관계 없음)가지만
미술관에 들렀다가 커피숍 가는게 잘 어울릴거 같은 날이다.
(눈오는 날은 미술관이 제법 잘 어울림)

간만에 남산에 눈이 잔뜩 쌓여있는 풍경도 나쁘지 않다.

12월에 있는 판소리는 여러명이 나와서 하는 심청전이라서 일반적인 1인극과는 다르니
올해 판소리완창은 이것이 끝이라고 봐도 될거 같다.

적벽가

요즘은 적벽대전만 따로 영화로도 나오고 삼국지 책을 읽어도 되고

전체적인 내용은 그와 다름 없긴 한데
가사집을 읽어보려고 구입했던것을 두어차례 읽어봤으나 해학스럽다.
소설이나 영화같은 극적인 요소보단 드라마적 요소가 훨씬 많다고 해야 할지

조조와 그 부하들간의 대화도 그렇고(마지막 도망갈때라거나) 군사들의 타령들등
이렇게 바뀌는게 심한것중 한가지가 서유기(손오공, 삼장법사)인데 구전을 그대로 책으로 만든것은
의외로 담백한 반면 이것을 토대로 파생된 수많은 영화, 만화, 단편소설등은 온갖 살들이 잔뜩 붙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다.

판소리 적벽가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위촉오의 싸움이라기보단 전쟁통속의 모든 인간들의 내면을 엿보게 한다고 할까?
그러다보니 전쟁인데 전쟁과는 다르게 보인다.

판소리 적벽가를 처음 들어봐서 새롭게 느껴지겠지만 어찌됬던 흐름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또한 동편제는 남성스럽고 서편제는 여성스럽다고 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은거 같은데
오늘 본 적벽가는 동편제
하지만 남자가 하는건 오늘 처음 본것이라(그 동안은 모두 여자였음) 그 구분을 느낄수가 없다.
(남자가 부르니 남자같은거겠지.. 라고 생각할뿐 ^_^)

김경호소리꾼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동안은 못느꼈던
죽필(竹筆)같다고 해야 하나?
수많은 음들이 서로 갈라져있지만 흩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이런 소리가 여자에 비하여 남자에게 두드러지는건지 이 사람만 그런지 모르지만
그 맛이 일품이다.

대사를 전혀 못 알아들어도 소리만으로 좋을정도로 거칠지만 거부감 없는 소리

화선지위에 거칠게 뻗어나가는 붓이 그려내는 흔적이라 해야 할지

처음으로 남자소리꾼의 판소리를 듣다보니 느껴진것인데 왜 예전엔 소리꾼이 남자만 있었는지 그 이유가 느껴지는데
전개에 따른 소리 구성이 남자 목소리에 맞춰져 있는거 같다.

여자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으때면 가끔 너무 높거나 때론 너무 낮거나 뭔가 음역이 안맞어 보이던데
오늘 김경호소리꾼의 판소리를 듣다보면 남자 음역(가성 역시 포함해서)에선 매우 적절해 보인다.
남자소리꾼이 하는 심청가,춘향가,흥보가를 못 들어봐서 속단하긴 이르지만
오늘 들은 적벽가엔 안정적인 음역대 안에 안착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음의 높낮이때문에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경우는 거의 느껴지질 않았다.
(김경호소리꾼의 소리 능력이 좋아서 그런것일수도 있음)

오늘 김경호 소리꾼이 하는 말이 좀 기억에 남는데
'어느때부터 관객들이 대사집을 보며 판소리를 듣다보니 대사가 바뀌거나 틀리는데 무척 신경쓰인다'라는 말은 한다
생각해보면 판소리는 관객과 소통을 하며 소리꾼이 재량것 늘렸다 줄렸다, 붙였다 뺐다 등 전체를 조절하며 진행하기때문에
대사집과는 다를수도 있는데 그것과 비교하는 관객들을 보면 긴장되니 그것을 보지 말고 자신만을 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연극은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며 한국 공연문화중 판소리는 더욱더 중요하다.
(추임세를 관객이 넣는 공연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을듯)

그럼에도 나는 자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번을 읽고 갔음에도 소리꾼의 발음을 듣기 어렵다.
한번도 읽지 않고 듣는것보단 대목을 분별하기는 훨씬 낫지만
문맥에 잘 어울리는 중국시, 중국문장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고어들이 속속 박혀있는 공연에서
특히나 창법때문에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들로 대사집을 읽는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이해력이 떨어진다.
(소리꾼의 음율때문에 감성은 배가되지만 대사의 이해력이 부족해져 이성의 답답함이 남음)

자막은 소리꾼 리듬에 맞춰 템포를 조절하면 되고 빼고 넣을때는 잠시 멈춰도 될뿐이다.
실시간으로 누군가 입력해서 소리꾼이 어떤 것을 넣던 모두 표기되면 좋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
최소한만이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올해초 박애리라는 인지도 높은 소리꾼을 제외하면 언제나 절반이상이 텅텅 비어있는 공연장
(박애리소리꾼은 처음이라던데 6시간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신기함)

판소리 완창을 들을수 있는 자리가 국내에서 그리 흔하지 않을거다.
그럼에도 관객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다들 이미 떠나갔거나 그러고 있는 중이고 그것이 현실이겠지

상황이 이런데 이들의 노력은 열심히 노래만 불러대는것이 능사일까

현대어로 바꾸고, 발음도 잘 들리도록 창법도 약간씩 손좀 보는등
현대감각에 맞춰 바꿔나가야 살아나는게 대중문화인데 이들은 전통이라면서 전통=옛것=옛우리것 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거 같다.
전통은 옛부터 내려오는것이지만 그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것 역시 전통이다.
옛것 그대로 버티고 있으면 사장될뿐 무슨 미래를 볼수 있는것인가
(판소리 열두마당중 나머지 일곱마당이 사라진것은 그 시대를 반영하지 못해서 사장됬을텐데
지금 남아있는 다섯마당도 그 길을 가려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전라도 이외의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토속어(사투리)들로 이뤄진 판소리는 없는건가?
민요는 각 지역별로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판소리는?
없으면 각 도별로 자신들의 고유어를 넣어 만들어도 되지 않나?

해설자가 나와서 예전 조선시대엔 소리 잘해서 유명해지면 한번 판소리 공연으로 1년을 먹고 살았을만큼
큰 돈을 벌었는데 지금 이 공연에선 몇백만원정도를 받지만 실제론 몇천만원을 받아도 될만한 공연이라는 헛소리나 해대고
그런 국뽕같은 소리를 백날 해봐야 찾는 사람이 없어서 당장 사라져도 아쉬워 할 사람이 거의 없는 위기감은 개나 줬는지

착잡하지만 이 현실을 뒤로 하고

김경호 소리꾼의 소리는 일품이다.
여유가 있고 목소리에 막힘이 없다.

너무 젊은 사람은 힘은 넘치지만 노련미가 부족하고
좀 늙은 사람은 노련미는 풍부한데 힘이 부족한데
김경호소리꾼은 둘다 매우 적절하다.(소리꾼의 적정나이는 몇살이지?)

적벽가라는 왠지 모를 긴장되는 소재를 재미나게 그려낸것도 특이하지만
북소리 하나에 음율을 실어보내는 판소리라는 장르는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2018년 9월 29일 토요일

판소리완창 김정민의 흥보가 박록주제



가을 하늘 청명한 가운데 하반기 판소리 완창을 모두 예매해놓은지 몇개월이 지났을까?
달력에 잘 표시해놓은지 제법 시간이 길었다.

그 사이 다른 공연도 보려고 했으나 민요 아니면 판소리 일단 이 두가지만 먼저 좀 보려다보니
마땅이 보이는 것도 없고 가을은 다른 공연들도 많아서 이것에 너무 치우칠수도 없다.

흥보가(춘향가,적벽가,심청가가 12월까지 이어져있음)

흥보전은 어렷을적 TV에서 많이 봤었는데(춘향가도 그렇고)
내용 자체가 희극스럽기도 하다보니 코미디프로에서 각색해 나온거 같기도 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된다.

또 말소리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이번엔 대사가 나온 책도 샀지만 공연중 보려고 구입한게 아니라 월1회 공연이니
그전에 보고 가려고 산것이니 적어도 이번공연은 도움이 안된다.

김정민이란 분도 모르겠고(영화도 나왔다고 하지만 모르는 '휘몰이'라는 영화는 처음 들어봄)

판소리 다섯마당중 적벽가를 빼면(이것도 내용은 다 알지만) 그외것들은 소리로 접할기회만 없었을뿐
그외 다양하게 접할수밖에 없는 한국에선 흔하디 흔한 소재(권선징악의 대표적 사례)

아무튼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을 토대로 말을 못알아들어도 대충 끼어맞추자는 생각으로
객석에 앉아버렸다.

누군가 나와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해주고 역사도 얘기해주고
별로 귀에는 안들어오지만 아무튼 모든 말씀이 끝난 후 바로 시작

처음에 사운드 조절이 좀 이상한지(리허설 안하나?) 소리가 먹먹해서
이분(김정민)의 목소리가 원래 그런건지 음향쪽에서 설정을 잘못한것인지
계속 귀에 거리슬리는 목소리

그런데....
아~
이분의 퍼포먼스는 엄청나다.

관중을 휘어잡는 뛰어난 연기력(여지것 실제 공연을 본것은 몇회 안되지만 동영상으로 본건 좀 되는데 이분같이
재미나게 표현하는 분은 없었던거 같음)으로 대사가 머리속에 이미 있는듯한 착각이 생길정도

추임세가 필요 없는 박수 갈채, 환호
판소리 특성상 소리 하는 사람과 북치는 고수 한명 이외엔 있지도 않고
돗자리와 방석만이 썰렁하게 놓여있는 무대
(연극 모노드라마는 소품들이라도 있지만 판소리는 그 자체가 없음)

좁지 않은 무대에서 이 사람은 종횡무진한다. 무대 밖으로도 나갔다오고 관객석(앞쪽에 있는)까지도 갔다오는등
무대매너가 현대 가수 못지 않고 무대를 넓게 사용한다.
(뛰어난 가수들이 무대를 잘 활용하는데 판소리도 해당되나?)

연기는 현대 연극과 비교해도 손색없을정도로 다채로운 표현을 보여준다.
(1인 다역이니 목소리,행동묘사등이 다양할수밖에 없어서 그런지
다른 분들것을 보면 몸짓은 주된 인물을 제외하면 소박한데 이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코믹스럽다가도 슬프기도 하고 그러나 흥보가는 전반적으로 희극이다.
(이분만이 좀더 표출시키는것인지 모르지만 기억을 되새겨봐도 해학적 요소가 많음)

대사도 크게 어렵지 않고 이분의 말씨도 진한 지역말을 넣는것도 아니니
전체 공연시간이 3시간 조금 안된거 같은데 그 시간이 한시간같이 짧게 느껴진다.
(중간에 쉬는 시간 15분이 있는데 그냥 이어서 해도 괜찮을거 같은 훌륭한 진행)

판소리가 이정도의 호소력을 지녔었나? 싶을정도이고 이렇다면
국악이라는 장르가 지금보다는 더 좋은 위치에 있었을거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마도 이 사람에게만 국한된 경우일거 같다.
상반기에 봤던 3편의 판소리는 훌륭하지만 대중성을 놓고 보자면 뛰어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미 여러번 완창무대를 갖었다고 하니 그 속에서 여유와 기품이 느껴진다.
(한두부분에서 대사가 엉킨것을 느꼈는데 흔들림 없이 자연스럽게 넘기는것을 보면 쌓여있는 공력의 크기를 보는거 같다.)

목소리가 약간 보이시(중성?)해서였을까?
여자가 알토정도 음역일때 판소리같이 이상한(혹사 하는) 장르에서의 문제는 남자의 영역도 일반적인 여자의 높은 영역도 아니라서
어중간한 느낌이 든다. 뭐랄까? 묵직함도 없으면서 시원하지도 않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행동묘사(퍼포먼스)를 많이 곁들인 전략을 썼는지 모르지만
훌륭한 전략으로 보인다.
현대인들의 취향과도 잘 맞는거 같고 너무 정적이면 강해보이긴 하지만 고지식해보이기도 하니

볼수록 매력있는 공연으로 연극처럼 몇일 공연을 했다면 또 보고 싶을 정도지만
아쉽게도 단 하루 공연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으니 나중을 기약할수밖에 없다.

지금도 다시 보고 싶은 훌륭한 공연

그런데 3시간 이하로 짧던데 판소리 홍보는 대여섯시간은 기본 여덜시간도 한다는등 떠들던데
그런 공연은 언제 볼 수 있는걸까? 그런 공연이 있기는 한걸까?
홍보용맨트로만 써먹지 말고 실제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자막좀 붙이자.
이번은 상대적으로 잘 들리는 편이었으나 빠른 말들이나 무엇인가를 나열할때(제비올때, 보물등)는
전혀 안들린다. 안들려도 크게 문제 없겠지만 들리면 더 재미있지 않겠나?

자막좀 붙이자. 그리고 무대도 상반기에 썼던거 또 쓰지 말고 좀 바꿔주고..

오늘 드는 생각인데 무대와 관객석이 좀더 가까워야 하지 않나?싶은 생각도 든다.
마당놀이에서 무대예술로 바꼈다 하더라도 공연 내용이 바뀐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가까워야 그 예술을 보다 제대로 받아드릴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연극 극장의 무대와 관객석간의 거리정도로(수미터 내외)

올해는 안되겠지만 내년엔 가까워진 무대와 자막을 기대해보며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연극 -판소리완창 정신예의 심청가 동초제-



6월 말은 아직 장마전선이 올라오지 않아서 습도가 낮은것은 알겠는데
한낮에 선선함 마져 느껴지는것은 좀 특이하다.

봄 같지도 가을같지도 않은 이어폰 속 음악이 잘 어울리는 한낮

국립극장을 여유롭게 도착해서 남는시간 바람좀 쐬니 남산의 독특한 나무냄새가 풍겨온다.

올해 판소리 완창을 듣는것은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기분좋게 공연장에 들어가 앉아서 시작되기를 기다리니 어느세 소리꾼 정신예씨에 대해 설명을 한다.

판소리 완창이란게 들으면 들을수록 좀 특이한데
한국의 공연문화가 이렇게 혼자서 모든것을 다하는 것들만 있는게 아닌데(오히려 집단이 하는 공연문화가 더 발달한거 같음)
왜 유독 판소리는 혼자서 모든것을 다하고 있는것일까?

관객과의 소통이나 고수가 물론 있지만 이렇게 한사람을 혹사시키는 공연이 세계적으로 또 있을지 모르겠다.

이걸 하기 위해 수십년은 기본으로 연습을 해야 하니 쉽게 접근할수도 없고
(말이 수십년이지 보통 10년 하면 전문가 소리를 듣는데 오늘 나온 정신예씨는 30년을 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실수가 있을정도)

대사량만 놓고봐도 모노드라마가 따라 올 수 없고
노래, 1인다역의 연기등

이걸 모두 하는게 대단하지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판소리를 2인이 하면 안되나?
극이란게 대립적인 관계도 존재하니 1인보단 2인이 표현하면 훨씬 깊은 표현이 가능할텐데

혼자서 모든것을 다하다보니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넣을뿐 그에 따른 성과는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서편제 마냥 소그룹(스승,고수,소리 3명정도 한팀)으로 구성되는것인지 조선시대를 가본적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면 구성이 좀 바껴도 괜찮지 않을까?

서양 음악과 컬레버레이션 하는것도 좋지만 일단 고유의 색을 발전시켜야 할거 같은데..

오늘 심청전은 대사도 어느정도 귀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알아듣히 힘든 말들이 대단히 많다.
말이란게 그 시대에 많이 쓰이는 단어로 채워져야 할텐데
왜 이들은 이렇게 고립된 곳에서 벗어나려 하질 않는건지 모르겠다.

오늘 해설 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시길 외국에서 공연을 했고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가사의 뜻을 전달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귀를 닫게 했다면 좋아했을까?
외극에선 극을 잘 이해하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공연을 했을텐데
정작 본토인 한국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이들이 어떻게 공부고 얼마나 뛰어난지 자랑정도만 할뿐

현대어로 바꾸기 싫고 현대양식에 맞추기 싫다면
최소한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공연 역시 책에서 눈을 못 떼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는데
공연 예술에서 공연을 못보게 만드는 어이없는 공연기획은 누구로부터 비롯되어진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이 한국사람을 위한 한국전통예술의 현주소라는게 씁쓸한 맛만을 남긴다.

심지어 오늘 관객의 대부분 관련업 종사자들같이 보였다.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것이다.

이 모습은 판소리가 한국에서 점점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거 같아 안타깝다.

소리천재라며 모통신사 광고로 유명해진 누구의 공연은 이미 매진되었지만
외길로 수십년을 공부한 사람의 공연은 동종업계 지인들만이 모여있다.

심지어 판소리 완창이라고 하는데 오늘같은 경우는 앞에서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정도로 좀 특이했다.
이럴바엔 제대로 된 프롬프터를 놓는게 공연을 더 매끄럽게 진행될수 있는 방법이었을텐데

그 긴 시간을 공연해야 하니 대사를 까먹는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게다가 완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 하니 더욱더 긴장되겠지(실수에 대한 노하우도 아직 적을테고)

그러면 앞사람이 입모양으로 읽어주는 그런 불안정한 프롬프터 말고
관객에겐 티나지 않는것을 갖춰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적어도 몇시간을 혼자서 열연한 그 모습을 본사람이라면 말이다.

한국의 전통 공연문화는 분명히 무엇인가 바껴야 한다.
옛것이 좋은것이라며 현시대와 맞지 않는것을 우기지 말고
현대인 입맛에 맞게 끊임없이 발전하고 바꾸고 수정하는등 대중이 관심을 갖어야 소리할때 보람이라도 느낄거 아닌가
어느 기녀 처럼 시장속 작은 골방에서 아무의 관심도 못받고 생을 마감하는 기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대중의 관심을 좀 끌어주시길..
최소한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와 상응하는 기획이 뒷받침 되길..

그리고 자막좀 붙입시다. 젠장

2018년 5월 26일 토요일

연극 -판소리완창 유영애의 심청가 강산제-


집안은 시원해서 잠자기 좋은데 밖은 더워서 걷다보면 끈적인다.

저번달 장장 6시간 공연 춘향가를 보고 이번도 이렇게 긴 공연인가? 기대반 걱정반 하였으나
이번은 중간 쉬는 시간 15분과 해설 20분 포함 3시간 공연으로 저번에 비하면 비교적 가볍다.

심청가가 원래 이렇게 짧은건지 강산제가 짧은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2시간30분정도로
부담없이(?) 즐길만 하다.(음악극-뮤지컬-도 2시간 넘는건 흔함)

지난달 완창 무대 한번 봤다고 조금은 여유가 생긴걸까?
뭔지 모르지만 1부에선 머리속에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선다.
콘디션이 나쁜것도 아닌데 이곳 저곳에서 휴대폰 불빛들이 산만하고
한시간만 있으면 중간 쉬는 시간이 있으니 그때 나가면 될것을 왜 그리도 공연 중간에들 나가버리는지
(공연을 적지 않게 보는 입장에 이런 현상은 낯설다)

무엇보다고 속상한것은 도무지 못알아듣겠다는 것이다.
춘향가보다 훨씬 심각하다.

당시 대중예술의 중심이었던(중심 맞나?) 판소리란게 이런것이었을까?

지금과 말이 달라도 어느정도 이해될법 한데 특유의 창법으로 말 자체가 들리질 않는다.
(아니리 같은것은 일반적인 말이니 잘 들림)

그렇다고 매표소에서 팔고 있는 대사집(?)을 사서 읽는다면 공연예술을 보러와서 공연은 안보고 책을 읽으라고?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다음달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거 같은데
한국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좋아해주길 바란다면 최소한의 조건으로 내용은 이해되야 할거 아닌가?

전반적으로 한문(속칭 문자)이 섞여있더라도 일단 음이라도 들리면 어느정도 앞뒤 상황을 맞춰
이해할수 있으니 한글 자막정도 뒷쪽에 표기하면 되는데 그걸 안하고 관객에게 넘겨버리는 무책임함이 보인다.

뒤 어느 관객들은 창 하는 유영애 명창은 못 보고 책 읽으며 귀로만 듣다보니 고개를 들수가 없다는 대화가 들린다.

곰곰히 그리고 가능한 집중해서 듣다가 불현듯이 떠오른 느낌은
국가에서 예산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한세대도 안되 모두 사라지겠구나.. 란 암울한 미래가 보이는거 같다.
아무리 위대한 대중예술이라도 대중이 사라지면 그건 귀신일뿐. 대중이 그것을 듣고 보고 느끼게 하기위해서
손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그에 대한 아무런 배려조차 없다는게 한국 국악의 현주소일거다.
(그들이 선택한것은 팔고 있는 대사집이 배려의 전부)

명창과 고수는 온힘을 다해 몇시간동안 관객을 위해 공연을 하는데 관객은 함께 좋아하고 싶어도
무슨소린지 이해 못해 외면한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러고서 사람들이 국악을 외면한다며 신세한탄을 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일흔이란 믿기지 않는 나이로 몇시간의 어마어마한 공연을 하는 분들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것은 행운이지만
십분의일도 이해못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어렷을적 TV에서 밤 특정시간에 가곡 한곡씩 부르는게 있었는데(프로와 프로 사이에 가곡 한곡 부르고 끝났음)
그때도 서양 가곡 특유의 창법때문에 한글 가사가 전달이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끊임없이 해댔고
그로인하여 한국말가곡은 답답한 기억만이 남아있어서 점차 나이들면서 한국말 가곡을 전혀 안듣게 되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서양가곡은 무척 좋아하는데 이렇게 같은 장르이나 결과가 다른 이유는 시작점이 다르기때문일거다.
둘다 못 알아들어도 한쪽은 가사를 별도로 봤고 다른 한쪽은 가사를 보지 못해 의미 전달에 큰 장벽이 자리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의미전달..
내가 이것을 좋아하게 되거나 혹은 관심없게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지금의 판소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판소리와는 다르게 민요(잡가류)는 접근도 쉽고 전달력도 뛰어나서 무리없이 즐기고 있는 음악이다.
(장르별로 선호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좋아하면 계속 듣고 시들해지면 다른 음악을 들을뿐임)
그리고 대중성을 위해 무던히 노력도 하고 변화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거 같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위치를 보면 판소리는 얼마나 더 작을지..

문자는 내가 직접 찾아보는 수고를 할지언정 판소리 전체 흐름을 이해하려면 자막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어로 바꾸는 시도도 하지 않을거라면(일부 쉽게 풀이해놓는것은 있지만 그건 판소리하곤 장르가 다르니)
한국에서 국악이 사라지길 원하는게 아니라면
한국말을 아는 사람이 처음 들었을때 내용 정도는 알 수 있는 최소한을 기획해라..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국악은 한국에서 살아남지 못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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