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창작 오페라 -3과 2분의1 A-

 요즘은 계속해서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공연을 보고 있다.
심지어 주중에도 볼게 있으면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도 보게 된다. 왜 이러지.. 공연은 너무 좋긴 한데

오페라를 실제로 본건 몇편 안된다. 주로 비디오 매체를 이용해서 봐왔다.
실제 공연은 비싸서 보기 쉽지 않고. 값이 비싼만큼 대형극장에서 으리으리하게 하는것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어찌할수 없는것이지. 비싼 공연 한편보고 한달동안 공연을 굶을순 없는거 아닌가?

예전엔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도 종종 있었는데. 심지어 소극장 가수 콘서트도 있었고..
(이선희 콘서트도 혼자 가서 보고 그랬는데)

아르코에서 올해부터 내년 초까지 이런 창작 오페라 몇편을 하길래 두어편 예매한것중 한편이다.
3과2분의1 A는 신데렐라의 신발 사이즈라고 한다.
단위가 인치라면 9센티미터밖에 안된다는거니.. 이것은 아닐거고 그들만의 사이즈가 있겠지
아무튼 작디 작은 발 사이즈라고 한다.
(어디서는 대략 215mm 정도라고 하니 작기는 한데 내가 260mm라서일까 엄청 작다는 느낌은 안든다.)

반면 언니들은 상대적으로 발이 큰 왕발 자매들(처음 부대에 등장했을때 엄청 웃겼음 ^_^)

그림동화를 원작으로(잔인한 부분때문) 의붓자매들 싯점에서 각색(재해석까지는 아닌거 같음)된거같다.
현대적감각으로 입혀진거 같지만 그림의 신데렐라 동화 자체가 아무래도 좀 독한 면이 있어서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크게 손색없이 맞출수 있는 훌륭한 동화다.(이정도면 잔혹동화라고 해야 하나?)

이걸 오페라로 만들었다니.
오페라는 음악이 있어야 하고 가곡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연극적 요소의 연기도 필요하다.
그러니 한 사람이 혼자서 해내긴 쉽지 않은 작업으로 보이는데(옛날엔 대부분 혼자 한건가?)
음악극(뮤지컬)도 그렇고 일이 많을거 같은 오페라 창작..

현대 작곡된 관현악은 몇곡 들어봤지만 내 취향엔 고전이 편해서 고전을 듣는 편인데
오페라, 뮤지컬 같은것도 새로 나온것은 보고 싶지만 막상 생각나고 선택하는것들은 과거의 것들이다.
이것은 익숙함도 있지만 과거에서 지금껏 살아남은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때문이고
그 이유란것은 아름다운 서사와 그에 걸맞는 음악(또는 노래, 춤)이 있기때문일것이다.

현대 작품들이 과거의 것을 이겨내기 어려워 하는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것이다.
그나마 연극이나 음악극 특히 뮤지컬은 현대의 것도 훌륭한것이 많아보이지만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생각해버려도 되는것일까?

그래서 한편으로 기대하고 다른 한편으론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뭐랄까? 성악이란게 한국말과 잘 맞는 느낌도 크게 없어서 듣는데 쉽지않기때문이기도 하고
붙는맛이 떨어지니 감동도 좀 떨어지는 감이 있어서다.(벨칸토 창법은 한국어와 잘 맞지 않는 기분임)

아무튼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는데.. 소극장이다보니 마이크 스피커 없이 공연한다.
뭐랄까? 사람의 목소리라는게 방향성을 갖는다는것, 어찌보면 이 방향성이 독이 되는 무대 디자인인거 같다.
마름모꼴로 무대를 설정하고 좌우 변에 관객석을 만들어놔서 원형극장 비스므리한 기분이 들도록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배우가 좌우 고개를 돌려가며 노래를 할수밖에 없는데 이때 음색이 바뀐다는 것이다.

보통은 무대를 전면으로 두고 배우들은 전면을 주시하며 연기를 하기때문에
관객들은 좌,중,우 중 한곳에 앉아있다면 배우들이 정면을 주시하므로 서로 다른 음색이지만 변화없이 동일하게 들을수 있는 반면
이번은 전혀 그러질 않는것이 큰 걸림돌이었다. 일반적인 대사라면 그 의미만을 집중 하면 되는데
노래다보니 노래의 음색이 계속 바뀌면 전달하려는 느낌이 퇴색된다.(적어도 좋아지진 않음)

작년 국립극장에서 한걸 유튜브에서 봤는데(아래 링크) 이때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한것으로 보인다.
이러면 일정한 음색을 스피커로 전달할수 있기때문에 같은 품질로 관객에게 전달할수 있다.
(영상을 보더라도 음색이 바뀌는 경우가 없이 일정함)

그리고 아르코 소극장이라도 무대가 작지 않는곳인데 꼭 이렇게 마름모꼴로 사용했어야 하는 의구심도 든다.
부채꼴모양으로 관객석을 만들고 무대를 좀더 넓게 썼으면 안됬던 것인지
전체적으로 아르코 소극장의 절반도 못쓴 모양세로 답답한 기분이 드는 무대 사용은 조금은 조잡하고 갑갑했다.
특히나 왕자와 신데렐라는 무용을 하는 분들로(대사, 노래 없음) 말 그대로 앞에서 무용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는데
그 좁디 좁게 만들어놓은 무대에서에서 몸으로 표현하는게 맞는건가 싶었다.

우리가 흔히들 기억하는 오페라는 아무래도 돋보이는 아리아가 생각난다
작곡가는 이부분에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을것이다. 기억에 멋있는 노래 한곡 남기를 기대하며
나는 첫번째로 기억남는것은 첫째 언니 그리고 후반부 둘째 언니의 각 각의 아리아가 어렴풋 기억은 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멜로디가 기억나진 않는다. 그만큼 무엇인가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약간은 산만함이 있었다.
작품보단 무대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다시 보지 않는이상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올해 말고 내년에 다시 기회되면 볼수 있길)

그러나 초반에 비해 시간이 흐를수록 몰입감이 올라가면서 배우들의 흡입력이 대단히 높아지는걸 봐선
처음의 어색함이 사라지면서 본연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때가 거의 후반부라서 이후의 감동이 길지는 않았던거 같다.

내용을 좀 뒤틀어놔서 현대사회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그다지 날카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엔딩은 개연성도 떨어지는데..(일반인이 왕자를 그리 쉽게?) 왜 그런 결론을 만들었을까?
억지로 현대물 느낌 나도록 뒤틀어 버린게 아닌가 싶었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저들의 노랫가사에도 나오고
뚜렷함은 있다. 딕션이 좋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그러한 것들.
다만 주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파헤치는 맛은 거의 없기때문에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온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공연 시간도 길지않고 내용도 쉽고 간간히 섞인 코믹은 보는 재미를 충분히 잘 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첫째 언니(한지혜)의 연기는 단연 탑이었다.(정극을 해도 훌륭할거 같은 연기력)
이분 아니었으면 연극에서 낭독극이라는 장르처럼 낭독오페라 느낌이 들뻔했다.

아직 일주일간 공연이 남았으니 시간되는 분들은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왠만하면 일반적인 무대 모양으로 하시길 권함 

출연 : 한지혜, 박현아, 김은혜, 백진호, 강혜림, 서보권
앙상블 : 김한수, 강진영, 김화영, 김하은

극장을 갈 수 없는 분이라면 https://www.youtube.com/watch?v=lFPHafpF7aA 이곳에서 공연을 공연하고 있음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2월 21일 일요일

 

판소리는 근래엔 좀 뜸했다.
이유는 아무래도 좀 길고 가사가 한문 그자체인경우가 많아서 어렵기도 하고
몇시간동안 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안쓰럽고 나도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국립극장은 음향이나 무대는 훌륭하지만 의자는 별로기때문에 서너시간 동연을 본다는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오늘 공연은 3시간 공연이었는데 특이한것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
3시간 공연인데 쉬는시간이 없다고? 주로 관객은 노인층이 많은데?

판소리 공연 문화가 특별히 쉬는 시간이란게 주어지는 공연은 아니다.
한국의 마당놀이란게 화장실가고 싶으면 그냥 다녀오면 된다.
이런점이 아무래도 서양 공연예술과는 많이 다르긴 하다. 조선시대에 무대라는게 특별히 있던것도 아니었고
실내악도 아닌 고관대작들 혹은 부자들이 초정하면 마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듣고 즐겼던 문화니
(영화 '서편제'를 보면 소리꾼은 돈있는 양반이 불러오지만 모든 사람이 다 듣도록 열어둔다)

일반적인 무대공연이 익숙한 나로서는 3시간은 그냥 참는 시간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다녀오는거 같다. 물론 한시간마다 해설자가 나와서 해설을 하는데 그때 잠시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별다르게 시간을 정해두진 않고 이때 다녀오라고 해설시간엔 관객석도 불을 환하게 켜둔게 아닐까싶다.

언제부터 홀로그램 아닌 홀로그램이라며 프로젝터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상을 틀어준다.
40주년이다보니 완창판소리에 출연한 모든 분들을 보여주는듯 싶다.
특이한것은 내가 알고 있는 분들이 제법 있다는 것인데 판소리를 들은게 몇년 안되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것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알게모르게 TV에 나왔었기때문에 알고 있는것일텐데
조금은 특이한 기분이었다.

공연은 한분당 30분정도씩 총 6분의 명창들께서 나오시고 고수는 두분이 맏으셨는데

김영자 '수궁가' 중 '토끼 배 가르는데 ~ 세상 나오는데'
조소녀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
성준숙 '적벽가' 중 '적벽강 불 지르는데 ~ 장승타령'
유영애 '심청가' 중 '추월만정 ~ 황성 올라가는데'
정순임 '흥보가' 중 '제비 강남 가는데 ~ 박 타는 대목'
김일구 '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데 ~ 자룡 활 쏘는데'

이런 레퍼토리였다. 이중엔 정순임 명창께서 올해 여든다섯이란 연세가 믿기지 않을정도로의 열정 그자체를
선보여서 보는 내내 감탄에 마지않았다. 젊은 사람 못지 않은 파워와 오랜 공연에서 익혀진 노련미까지

오늘은 40주년 기념 공연이므로 원로 명창분들만 나오셨기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우면서도 기분좋은 그리고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의 한장르를 보는거 같아서
소리보다는 예술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거 같아 눈물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오는걸 닦느라 신경좀 쓰였다.

개인적으론 사람들이 은퇴란것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힘들어서 쉴 지언정 자신이 평생 해왔던것을 일어서기도 힘들어하는 석양의 끝 자락일지라도
소년, 소녀가 무대에 처음 오르듯 한껏 긴장된 심정으로 공연해주시는 저들처럼
다른 모든이들도 그 끝까지 처음의 설램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던 시간으로

너무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끝에 다같이 모여서 인사해주셨으면 사진이라도 한컷 찍었을텐데 그런 커튼콜이 없다는게 아쉬웠던 진행이었다.

소리 : 김영자, 조소녀, 성준숙, 유영애, 정순임, 김일구
고수 : 조용안, 이태백
해설 : 김성녀, 최동현, 유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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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국악 -나례 儺禮-

 

국악을 몇해전부터 보다보니 묘한 루틴이 생기는거 같다.
나례, 축제, 묵향, 판소리(송년판소리) 같은 것은 고정 레퍼토리가 되가고 있다.

특히 나례는 작년과 레퍼토리나 안무, 구성등에서 변화가 거의 없다.
일종의 신년 맞지 의식같은것이니 구성이 특별히 바뀔 이유는 없기는 한데
그래도 어차피 현대적으로 새로 만든 안무같은것들이나 구성은 좀 바껴도 매년 조금씩 달라져도 좋지 않을까싶은데
특히 그해마다 발생했던 큰 사건사고들을 액땜한다거나 하는 식의 구성으로
매년 만든단게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굴직한 구성은 두고 한 페이정도라도 좀 공감되도록 해주면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것인지 탄핵, 대선 관련 이야기 한줄 없었다.

아직까지는 프로그램을 읽어도 막상 공연을 이해하기는 좀 어려웠다.
하늘에게 고하고 역신을 달래고 잘 안되니 쫓아내고 신년의 안녕을 기원한다.
(고천지,세역신,구나희,기태평)

겨울엔 대부분 이렇게 귀신을 달래는 의식들이 좀 있다. 팥죽도 먹고 쥐불놀이도 하고 채도 걸어놓고
춥고 배고프던 계절이니 병에 걸리지 않고 내년엔 풍년되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을까?

그러보면 십이지신은 우리 한국에서 신의 역할이었나?
이들이 한국에서 어떤 신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역신들과 싸우긴 하는데
지극히 중국 무협극 같은 기분은 지난번하고 크게 다르진 않다.

기태평에서는 대취타와 향아무락이 나오는데 움직임에 호흡을 맞추면 특이한 기분이 든다.
무엇을 형상화 한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의 신체리듬과 연관된 리듬으로 보는이로 하여금 안정된
기분을 주는것이 아닌가란생각이 든다.

무용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날엔 저들이 신과 우리의 안녕을 위해 왜 저와 같이 아름답고 우아하게
몸은 움직이는지 알게 되겠지.

출연 : 국립국악원 정악단, 무용단, 민속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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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연극 -올가미(완벽한 가족, 붉은 일기장)-

 

창조소극장이 즐겨찾기에 저장이 안되있다는건 여기를 처음 온다거나 저장하지 않았다는건데 기억은 없다.
바로 옆이 동국소극장이라 이곳은 일년에 몇번은 연극보러 오는 곳이니 늘 옆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배우 몇몇은 엄청 낯이 익다. 왜 일까? 어떤 연극에서 봤던걸까.
그 동안 극단대작에서 공연한 이십여편중엔 본게 없어보이는데. 정말 모르겠다. 저 분들을 어디서 봤을까.

이번은 두편의 연극이고 연관성은 없다. 신인작가전라고 하지만 다들 연배가 어느정도 되는거 같은데
신인작가라고 하는게 맞는건지 희곡을 이번에 처음 쓴 기성 작가인지 취미로 하다가 처음 등단했다는 건지
(연극 내용들에서 흡입력 있는 전개나 설정 표현같은것은 없어보이는데 어떤 기준으로 선발됬을까싶음)

50분정도 되는 '완벽한 가족'와 '붉은 일기장' 두편을 100분간 공연한다.

한편에 50분정도기때문에 강렬하고 인상깊게 치고 빠지면 되는 시간이다.
생선 중간 토막에 머리와 꼬리는 개미만하게 너무 맥락이 없으면 안되니까 흔적만 보이면 충분히 재미있을 시간이다.
처음은 '완벽한 가족'

응?????
뭐지???
뭔가 이상한데?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하지?
어떻게 3명 모두 연기를 못하지?
아마추어 극단인가? 팜플렛을 보면 아닌거 같은데.. 그 동안 이십여편 공연한것은 뭐였을까?

딕션, 감정표현, 몸의 표현, 시선, 템포 모든것이 어색하다.

그래서 연극의 내용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이 극단은 뭐지?

연극의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집착이 심한 어머니와 그에게 자란 아들과 딸.
여기서 아들은 거의 어머니이가 시키는 대로만 살다가 자아분열같은 증세로
회사도 때려치고 어머니의 요구를 모두 거절한 후 자신을 찾기위해 떠난다.
그 빈자리를 딸에게 대처하려는 와중 아버지가 자살한 이유도 어머니때문이란것을 알게 되는 등
어머니는 한순간 참회하고 아들과 딸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이건 오히려 제법 긴 연극이어야 할거 같은데 50분짜리로 만들다 보니 생선 중간토막 자체가 토막난 기분)

전혀 스릴러, 긴장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이 너무 소리를 가차없이 질러댄다.
얼굴의 표정없이 소리만 질러대는 통에 잠도 안오고 내용도 안오고 재미도 없다.

차라리 몇해전에 봤던 완전한 아마추어 극단이라면 그것을 감안하고 보면 기대감도 낮아져서
좀더 감동이 왔었을까? 이건 분명히 그것과는 다르다. 감정 고조가 너무 엉망이다.
대극장에서 마이크 없이도 저렇게 질러대진 않을거 같은데..
레퍼런스가 됬던 연기가 무엇이길래 이 세명은 모두 한결같이 질러대기만 하는것인지
최소한 표정이라도 좀 다채롭던다. 얼굴은 마네킹같이 굳어있고

솔직히 50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옛날 이야기 한자락만 해도 50분은 후딱인 시간인데
이게 이리도 길게 느껴지다니.. 연출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저들이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한것일까

그래서 두번째 연극도 걱정할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연극 흐름이 너무 이상하면
안아프던 엉덩이도 불편해지고 자세도 삐뚤어지고 그러다보면 신경통이 생겨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번째 '붉은 일기장'은 다섯명의 연기자중에 두명은 괜찮았다.
나머지 세명은? 처음과 별반 차이 없고 발음도 이상하고 감정표현은 이상하다.
딸이 오빠에게 성추행 당했다는데 엄마와 오빠는 무표정하게 말만 한다.
왜 연기를 이렇게 할까? 연출께서 지도하지 않나? 이분들은 지금 연기아카데미에서 현장실습하고 있는건가?
보면서 연극의 내용보다 저들이 왜 저렇게 연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커진것은 나만의 문제였을까?

이 연극의 내용은 이러하다.
딸이 교통 사고로 기억상실 되었는데 우연히 붉은 일기장을 찾아서 보게 된다.
그 내용인즉 오빠에게 성추행 당해서 괴로운데 어머니나 아버지는 그냥 잊으라고 딸에게만 강요한다.
그로 인하여 고립되는 자신. 결국 자살시도를 하게 된다는 것인데
다행이 살아났으나 기억상실, 이때 이상하게 또다른 자아가 나타난다.
플래시백도 아니고 아무튼 과거와 현재를 막 오가면서 딸이 과거와 현재 두명으로 나눠서 표현하는데
이부분에서 두 사람의 연기차이때문에 느낌이 많이 갈린다.

정말 참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왜 관객이 많을까? 다들 아는 사람들인가? 내용 자체도 암울한데 연기도 엉망이고
무대도 극 두개를 소화해야 하다보니 장치라고 할것도 없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은 뭐지?

이상하다. 어제 봤던 '서재 결혼 시키기' 보다 훨씬 뒷끝이 많이 남는 연극이었다. 매우 안좋은 쪽으로

다시 생각해도 이상하다. 연출은 이들의 연기에 만족했던걸까?

출연 : 박미숙, 한지연, 최현, 박미옥, 봉기한, 임유한, 이소예, 김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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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연극 -서재 결혼 시키기-

 

왜 제목을 헷갈리게 앤 패디먼 작품과 똑같이 했을까?
어떠한 이유에서든 제목을 같게하면 연극을 보려하는 사람들은 헷갈릴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다는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것인가?싶었지만
생각보다 그런 내용은 극중 김수영(정신상담사)과 송예은(송해원의 동생)이 그 부분을 담당한다.
주인공이자 서재의 주인인 현성주(남편)와 송해원(아내)은 이런부분과는 다른 부분을 이야기 한다.
(송해원이 나오는 것은 회상 일부와 현성주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인물임)

이미 식어버린 서로의 감정. (식었다기보다는 풀지 못해 엉킬대로 엉켜버려 더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
헤어진 상태에서 송해원이 자살을 했다는건지 사고사인지도 솔직히 불분명하다.
자살과 사고사는 감정의 상처 크기에서 다른 느낌을 줄텐데 작가는 크게 개여치 않은거 같다.
단지 현성주의 감정상태에서 집중하도록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래서 동생의 아픔이나 정신상담사의 감정상태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크다.
김수영의 누나도 자살을 했다는데 현성주는 짜증난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후벼판다. 저 친구가 곁에 있는 이유를
분명히 직시하고 있음에도. 이런점에선 우리들의 흔한 인간의 감정을 직설적이면서 멋지게 표현하지만
이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나몰라라 해버리게 되버리는 세상의 중심에 나 밖에 없는듯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는듯한 이기적 성향의 인물로 표현된다.

개인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한것이 인간이고
성주라는 인물은 이 모든것을 조금은 강하게 묘사되어 연극이니 그러겠지라고 넘긴다기보다는
관객인 내 감정은 너무 자기방어적인데 라는 기분이 훨씬 앞섰다. 그러니 성주의 모든 말들은
매우 논리적으로 대하는거 같지만 이 모든것은 무엇인가로부터 감추려는듯한 행동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은 그렇게 신선하거나 새롭다거나 한것은 없다.
단지 대사들이 논리정연하다보니 이런것이 맞는 사람은 대사에 집중하게 되고
감정에 좀더 치우친 관객이라면 조는 경우가 생기는것일거다. (조는 사람도 제법 있어보임)

흐름자체는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듯(적어도 스릴러가 아닌이상)한 한 사람
그 감춰진 감정을 토해냄으로 봄에 눈녹듯 모든것이 해결되는 참 별볼일 없는 전개인데
장장 3시간동안 단 한 순간도 나는 저들에게서 시선을 놓을수 없었다.
일단 대사에 집중을 안하고 놓치게 되면 바로 잠이 올거 같은 긴장되는 흐름속에서
대화 주제 역시 논리적이면서도 주제를 놓치 않고 치밀하고 깊게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는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점은 한 순간에 모든 해결이 되 버렸다는 어이없는 상황이란것인데
그게 그렇게 바로 정점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었는가?다. 호흡도 가다듬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게 아니라
2시간50분동안 평지를 숨가쁘게 걷다가 1분만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가서 9분동안 계단으로 설렁설렁 내려온 기분이랄까?

이 마지막 1분이 없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성주가 계속해서 벽을 허물지 않고 꽁꽁 싸매고 그대로 남들앞에서 멀쩡한듯 있다가
그냥 끝나버리는것은 이상했을까?
우리의 현실에서는 보통 그러지 않나? 한번 엉켜 더이상 풀수 없게 되면 그대로 방치해버리지 않나?

특이하지만 이렇게 깔꼼(?)하게 모든게 해결되는 연극은 꽤나 남는게 없다.
3시간가량을 미친듯 집중했는데 극장을 나올때는 이리도 홀가분하고 텅빈 감정으로 나오다니..(이게 좋은건지 그렇지 않은건지)
아무튼 기회되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하고 싶다.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함)

그리고 제목처럼 '서재 결혼 시키기'는 원작 앤패디먼 작품을 읽어보는게 나을거 같은 기분이다.
(이 연극의 서재결혼시키기는 글쎄 뭐 그다지)

나도 적당히 큰 내 서재 하나 갖고 싶다. 그러면 지금보다 책을 훨씬 많이 샀을텐데..(읽는건 싫어함)

출연 : 이강우, 김희연, 정세환, 한수림

2025년 12월 6일 토요일

가을이 완전히 가기 전

연극 -당신이 잃어버린 것-

 

드림시어터는 적지 않게 갔던곳인데 이곳이 이렇게 자리가 넓었었나?
아니면 좀 바꾼건가?(좀 불편했던 극장으로 기억되는데 다른곳과 헷갈렸나)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됬던 사건이 있나?싶어서 광주에 버스 사고 같은것을 찾아봤는데
별다르게 나오는 기사는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수십명 이상 사망한 사건이 어디 한두건이던가.
무너지고 총을 쏴대고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고 한국전쟁도 실제로 그렇게 오래된 역사도 아니다.

이 연극은 이런 사건 후 남겨진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예전 세월호 참사관련 연극도 좀 있는데 마음이 편하질 않아서 가급적 기피하게 되었지만
이번 연극은 그냥 보게 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에게 '잊으라'는 말을 많이 하는거 같다. 그도 그럴것이
유족으로서 어둠이 얼굴에 각인 되 버렸으니 주변사람들이 모른척 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도 모르기때문에 나오는 말들 '시간이 약이니 다 잊어라','산사람은 살아야지'같은
감정이 퇴색된 흑백 위로들

아마도 사람을 잃어본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말들이 위로가 되진 않을거란것쯤은 적어도 당장은 의미없다는것을 알것이다.
어느순간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에피소드 1의 감식관의 남편이 죽은 후 어느시점에 자신에게 두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불현듯 잊혀지는것을 알게 되겠지만 이것도 모두 그런것은 아니다.
특히 자식을 잃었을때는 천륜이 끊겼으니 아마도 멍애가 평생 남을것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할머니의 남편이 자살한것 처럼

이 연극은 이렇게 가족, 연인 들을 잃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잊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준다.
옴니버스같은 형식으로 하나의 사건속에서 서로 관계 없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

그런데 첫번째 감식관들은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서로 모르는 한동내 사람들같이
조금씩 조금씩 엮이게 만들어놓고 약간의 코미디 요소도 넣어놔서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게 받지 않도록 설정하여 주제의 무거움에 비하여 무게감을 상대적으로 덜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무리 설정이 그렇더라도 분명히 이 대목에선 웃으라고 만들었을텐데 웃어야 하는지도 조금은 그렇다.
왜냐하면 내용 자체가 픽션(가상)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겨진 자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막 웃어도 되는것인지 이부분에서 조금은 난해한 기분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웃어도 될거 같은 기분도 든다.

인생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시간이 약인거 같다.
그 시간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그 때가 되었을때 웃기는 어려울수 있어도 잠시 덮어둘수 있지 않을까

다섯편의 에피소드중에 마지막 '언제나 꽃가게'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유일한 생존자의 가정. 관점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할지.
'크리스마스 특선'도 남겨진 자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다 말고 낙태한 젊은 엄마와 약간은 철없는 아빠(둘은 결혼하진 않음)

이렇게 보니 다섯편의 주제가 엄밀히 보면 모두 다른거 같다.
일부 사건과 시간을 공유하는정도이고 작가도 모두 달라서 표현하는 것 역시 모두 다르다.
잠시나마 왜 같은 줄기였다고 생각했던것일까? 연극을 보면서도 각각 다르게 봤으면서..

다섯편의 소품같은 연극이라 지루하지 않고 각각 말하려 하는 주제가 조금씩 달라서
생각하는 재미도 있는 괜찮은 연극이었다.
그리고 극장의 관객석도 적당히 넓어서 관람도 괜찮았는데..
가끔 스팟조명이 관객쪽을 쏴대서 눈뽕이 좀 있었서 놀랐다는 정도?
아무튼 시간이 약임에는 틀림 없는 사실인거 같다.

출연 : 승의열, 노윤정, 구혜령, 안근후, 김설, 이기현, 김남희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연극 -하얀 봄-

 

이번이 두번째 보는것인데 예매할때도 몰랐고 볼때도 초반엔 몰랐다.
중반쯤 되서야 아~ 본거였구나. 싶었고. 올해는 아르코쪽에서 동성애 관련 연극에 집중하는가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 연극은 사실 그런것하곤 거리가 있다.

세대간의 벌어질수 있는 이해의 장벽같은 존재.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하지만 그 시절 모든것을 담고 살았음에도
새로운 올챙이와의 상반된 사상들. 지향했던 삶과의 괴리, 왜곡과 굴곡
이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세대간 갈등의 문제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일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사람을 현혹시켜 인위적으로 갈등을 유발한것이지
연극에서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필연같은 현상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중의 배경 세대와 나와는 거의 같은 세대기때문에
연극을 보는내내 나의 행동이 지금 세대들에게 상처를 줬던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계속 곱씹게 된다.
그러면서도 연극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왔다 갔다 하는데(플래시 백이 좀 많지만 극단적으로 나뉘어서 헷갈리진 않음)
그와 동시에 나도 나의 과거 시간으로 왔다갔다를 해본다.
주말에는 어김없는 최루탄냄새로 친구를 만나려고 시내를 나가면 언제나 코를 막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연극 속의 그 격동기는 아니었다. 조금 흐른 김영삼-김대중 정부시절무렵이 내겐 20대였으니
김영삼정부때를 회상해보면 무언가 흥청망청 여유있는 시대였던거 같긴 하다. 하지만 내 환경은 부유함보단 빈곤함에 훨씬 가까웠다
바로 이후 IMF를 정통으로 맞았지만 워낙 저임금 직장이었기때문에 타격도 없었다. 더 내려갈수 없는 바닥.

내 바로 윗세대인 486세대가 이나라에서 제대로 민주화 학생운동을 했던 세대들이었을것이다.

이 연극의 내용도 이 세대를 주 타켓으로 하지만 연극이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이제는 같은 기성세대가 되버렸기때문에
저 교수(연수)가 고통받고 이해 못하는 그 벽이 이해되려하고 하고 있다.
젊었을때 추구하던 무엇들. 그것을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으나 이미 주변은 모두 퇴색되어
당시 타파하겠다고 목청 올렸던 바로 그 세대가 되버린 환경. 그러나 나(연수)는 계속 이어가고자 했는데
어이없겠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그것을 거부한다. 무엇이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바꿔버렸을까?
망가뜨려버렸을까? 내가 망가진것일까? 저 학생이 망가져있는것일까?
모든것이 조심스럽지만 모든것이 이해 안된다. 동시대의 친했던 친구도, 지금 세대가 나(연수)를 두려워 하며 고소한 학생의 이유도

나로서는 어떤 결론을 내주길 기대하지만 내가 못 찾았던, 내 길이 맞는지 증명받고 싶은 마음에
끝엔 어떤 해답을 원하지만, 연수 역시 아무런 해답을 찾이 못한다. 나 역시 극장을 나올때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해답도 갖질 못하고 나올수 밖에 없었다.

관객에게 너무 무겁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훌륭한 연극이지만..
아직도 좀 이해는 안된다. 학생이 시간강사를 두려워 하나? 전임교수도 아니고 문제생기면 다음학기엔 웬만해서 보기 어려운 강사에게?
학점이 엄청 좋아서 학점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하지만 성적도 별로인 친구가?
설정 배경은 좀 이해는 안된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이미 늙었기때문에 이해 못하는것일수 있다.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는 훨씬 예민하고 나약할수 있는데 젊다고해서 무조건 무모하게 덤비거나 하는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이게 나의 세대때와 지금의 세대의 어떤 행동양식이 달라서. 그 형태를 내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반대로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이해못하는건 마찬가지겠지. 오히려 이건 당연할거 같은데
왜 나는 저들을 이해 못하는 것인지.. 그냥 젊어서 저러겠거니라고 치부 해 버린다.
보기 싫어서 회피하는거 같아 마음에 드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참 우낀것이 연극에서 연수의 젊었을때의 사랑도 꽤나 어설프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이것이 미래의 연수에게까지 이어지는데 이건 누구나 비슷하지 않은가?
무엇인가 한창 어설플 나이때. 그때의 것이 생각보다 바뀌지 않고 늙을때까지 이어지는 어리숙함.

어쩌면 인간의 시간은 생각보다 이러한 결점을 고치기엔 너무 짧게 주어진 단편이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무대 효과나 장치들이 좀 섭섭하긴 했지만(좋은 무대인데 좀 장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지)
지난번에 봤을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 아마도 내년에도 보게 된다면 오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거 같아서 기대된다.

출연 : 옥자연, 장선, 송치훈, 박다미, 황재성, 최강현, 김관식, 이서한, 최수현, 김하정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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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9일 토요일

연극 -청송-

 

퀴어영화였다니..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를 말하긴 하는데
간간히 정동극장도 그렇고 이런류를 무대에 올리지만 정작 퀴어하곤 크게 관계없다.
물론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때문에 당연히 성소수자긴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파해치거나 사회고발한다거나 하는게 아닌 그냥 멜로물이다. 이번 역시 거의 다름 없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퀴어 하면 동성애자들만 대변한다. 남여자동성애자 이들은 성소수자라고 하기엔
좀 많지 않나? 오히려 성소수자가 아닌 성비주류 라고 하는게 맞지 않나? 물론 퀴어에서도 빠져야 하고.
그리고 퀴어에 왜 양성애자가 들어있는걸까? 그리고 무성애자는 또 왜? 무성애자를 놓고 누가 뭐라 하나?
사회적 편견이 있어서 불이익을 받는 부류였던가? 세력을 키우려고 이런부류까지 억지로 붙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퀴어에 인간적으로 양성애자(이들은 엄밀히 봐서 욕심쟁이들이지)와 무성애자는 빼자.
아마도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탄압을 받는 대상은 트랜스젠더겠지만 절절한 영화나 연극을 본 기억은 없다.
동성애관련은 남녀 모두 영화도 훌륭한것들이 많아서 연극도 유명한 작품이 나올법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멜로정도로 가볍게 접근하는거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동성애를 다루는 연극은 아직 못본거 같다.
여자동성애는 한국사회에선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비아냥 거리는 반면 남자동성애는 도를 넘는 차별이 많아보이는데
남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사회에선 그렇다. 관객수도 엄청난 차이가 있을듯도 하다.

연극에서 청송은 지역을 말하는데 외진곳인지 이들은 이곳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못 들어봤다고 한다.
 TV가 있었을텐데.. 나도 TV에서 처음 이 말을 들은거 같은데.(애초에 관심 없는 주제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공부를 잘했다는 영주는 대학을 못들어가서 청송에 남고 가윤은 대학에 들어가서 서울로 상경했다.
서로 그렇게 좋아했다면 영주는 서울에서 재수 학원을 다니면 서로 헤어지지 않아도 될법 했지만
차별의 시선이 두려웠을까? 청송은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으니 둘만의 관계를 유지할수 있었겠지만
(내가 지금 서울을 못떠나고 어떻게든 여기에 남아있는것도 다른곳에 대한 두려움때문인데 비슷한건가)

서울에서 새로 만난 연인 은하. 이 캐릭터는 호방하다. 말 그대로 있는집 자식인지 사회생활을 하지도 않았는데
오피스텔이 있어서 가윤을 대리고 와 동거를 하면서 이 둘이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청송에 남아있는 영주. 그런데 영주는 가윤을 기다리는건가? 나(이산)역할이 계속 상황을 나래이션 하다보니
오히려 낭독극도 아닌데 좀 어지럽다고 해야 할지 산만하다고 해야 할지. 이 사람은 미래의 가윤인건지
저 가윤은 나의 과거의 나인지. (과거의 나를 회상하는거 같긴 함)

가윤은 사랑을 한것일까? 아니면 신분상승을 원했던걸까? 지상으로 나가고자 했던게
물리적 반지하 집에서 고층 오피스텔로 전환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말한것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철저하게 감추었을뿐
이걸로 보면 가윤은 영주와 은하를 이용 대상으로만 선택한 것인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반지하로 되돌아온것은 그것이 온전한 내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었기때문있었을거 같다.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처럼 쿨하게 훌훌 털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건가?
인생이란게 다 이렇게 한쪽으로 밀어내며 살아가는거긴 한데
무엇이 주제인지 모르겠고 왜 이런 연극에 퀴어라는 명사를 자꾸 써대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퀴어 어쩌구 저쩌구 하면 여성관객들이 확실이 많이 보인다. 오히려 연인관객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이러면 퀴어연극이라도 퀴어라는 수식어를 최대한 빼서 남녀 모두를 보게 해야 할텐데
연출 자신은 관객이 많이 몰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냥 멜로물..

성장통 드라마의 플롯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프고 고민하고 어려웠던 한때의 사랑 기억들의 몇조각 정도를 나열한것뿐이니
뭐라 말해야 할지 좀 난감하다.

그런데 영주는 뭐하고 있으려나. 오히려 이 사람이 훨씬 매력적인 인물인거 같은데
아직도 청송에서 살고 있나? 가윤은 청송을 왜 그렇게 증오를 했을까?
아무래도 결론은 삶의 질(돈)때문이었겠지. 그러니 누구는 좋은곳으로, 다른 누구는 꼴도 보기 싫은 곳으로 기억되는거겠지 

출연 : 김섬, 박은호, 이산, 정제이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연극 -순우삼촌-

 

언제적부터인지 이 극장에선 안똔체홉작품을 봐야 할듯하게 길들여진거 같다.
이번 연극 제목이 '순우 삼촌'이지만 변화되는 시대가 불편한 바냐 삼촌의 한국판이랄까

롯데월드 뒤쪽 석촌호수쪽 냇가가 한강 본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알게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있는 한강이 너무 거대하니 주변 지류들은 그냥 냇가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
실제 강이 이렇게 넓은것도 토목공사로 인한것일뿐 한국의 대부분 강을 보면 서울 한강처럼 넓은곳은 없다.

당시(1970년대) 잠실 일대에 개발이 들어가면서 일부는 매몰하고 일부는 한강을 더 넓게하는 등 이것저것 한 후
엄청난 아파트를 지어댄것이 지금의 대단지 아파트들일텐데 바로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당시에 잠실(섬)은 홍수가 엄청 자주 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백가구가 살곤 있었다지만
매년 장마가 있는 한국 기후에서 어떻게 살아갔을지.. 또 어떤 계층이 살았을지는 뻔한거 같다.

이곳에서 용이 나왔는데 바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강원 그리고 이 사람을 뒷바라지 한 조환
이강원이 갑자기 온것은 땅을 팔기 위함?(중간쯤 교수자리때문같음) 하지만 이 땅에서 먹고 살았던 조환은 반발한다.
우끼게도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이상하게도 순순히 모든 땅을 넘긴다. 왜 저항을 안한 것일까.
안똔체홉 작품도 그렇고 이 각색한 작품도 그렇고 (안똔체홈 바냐삼촌은 엄밀히 말해서 총으로 쏘기도 해서 팔지 않았는데)

좀 특이하다. 요즘 톨스토이 단편집을 좀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신을 빙자해서 자신의 처지에 저항하지 않는다.
왜 그러지? 왜 고통받고 탄압받는데 이것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인내하라고 하는거지?

결국 조환은 이강원의 딸마져 책임지며 남았는데 앞으로 땅도 없는데 어떻게 먹고살지도 좀 납득 안되는 상황이다.
바냐삼촌과는 좀 다르게 한국에서 개발이 들어가면 모두 다 갈아버리니 집한채 고작 있어봐야
그것으로는 어떠한 생계도 해결되지 않는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해 보이는 이 집에서 엄마라는 사람은 배다른 자식인 이강원은 남인데도 불구하고
이강원에 대한 엄청난 팬심을 보이는데 왜 이럴까. 바냐삼촌을 봤을때도 좀 이해는 안됬다.
하지만 그 작품과 이 작품의 배경이 좀 다른거 아닌가?
바냐삼촌은 적당히 먹고 살 정도의 토지가 있었지만 순우삼촌은 매년 홍수로 싹 슬려가는 잠실섬에서 농사로 먹고 사는 형편이다.
땅이 있어봐야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차라리 배경이 양재, 신사, 삼성 이런곳이라면 논밭이 있던 곳이니 납득될수도 있겠지만 하중도로 여의도, 밤섬, 섬유도같은 잠실섬이었는데
개천에서 용이 날순 있었지만(미국에서 공부하는 뒷바라지가 가능하긴 한 시절인가? 일단 대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연극 전반적으로 배경 해설이 좀 미흡해서
생뚱맞은 저 박사와 젊은 애인, 딸, 배다른 동생과 엄마 등 인물들에 대한 배경설명이 거의 없다.
바냐삼촌에서는 교수이자 매형을 지원하는 것이고 그쪽 세계를 동경하하니 그럴수 있는 심정적인 납득도 충분히 된다.
또한 전체적인 인물 배경도 별로 이상하지 않으며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어머니는 바냐편보단 교수편을 드는 신기한 현상이 있지만..

그러다보니 바냐삼촌의 답답하면서 암울한 격변하는 근현대서의 이면을 보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
어떻게? 왜? 저들은 뭐지? 저 사람은 왜? 라는 의문 투성이인 이상한 한국판 바냐삼촌 아류작을 본 느낌이다.

내용 흐름에도 어떤 기대를 할만하지 않고 새련되었거나 신선함은 없지만 고전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는데
이건 웬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한국의 바냐를 만들고 싶었던 욕심에서 나온 특이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은 너무 심한 격동기들이 있어서(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두번의 구테타 군부정권)
차라리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화될때가 더 잘 어울릴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출연 : 전순우, 전건우, 민다정, 전지숙, 강석준, 정문자, 정수자, 김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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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무용극 -춘향단전-

 

티켓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3층을 예약을 했지만 의외로 좋을수도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과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일거 같은 걱정의 양감이 복잡하게 섞여서 어지러웠는데
막상 3층 맨 끝 좌석에 앉았더니 이런 좌석을 팔다니 싶은 시야 제한까지 오는 엿같은 좌석이었다.

무대 앞쪽은 아예 안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좌석을 팔수 있지? 보통 시야제약이 있는 곳은
좌우 일부분이 안보인다거나 하는거지 중앙 앞무대가 안보이다니..
그리고 앞뒤 폭이 너무 좁아서 발을 꺽어야 할정도였다. 국립국악원 극장이 이렇게 쓰레기라니..
요즘 소극장도 이것보단 넓은것이다.

그러나 3층이라 그런지 여럿이 나와서 보이는 군무용은 그 형태를 모두 볼 수 있어서
1층 앞쪽에 앉는것보단 훨씬 그 의도나 형태의 웅장함 등을 감상하는것에는 이득이 있었다.
군무가 많은 공연일수록 3층까지는 좀 오버고 1층 중간쯤을 공략하거나
티켓이 없다면 3층 중앙을 선택하면 그나마 후회는 덜 할거 같다.
(움직임이 없는 소편성 연주 무대는 다 소용없이 앞자리가 최고)
그리고 3층은 의외로 음질이 좀 괜찮은 느낌이었다. 음악감독이 달라진건지 기존의 후진 음향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뭐 엄청나게 좋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키는것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용을 좀 보자면..
전체적인 줄거리는 영화 '방자전'마냥 뭉클함은 있지만 그냥 아류작의 느낌이다.
난대없이 향단이가 이몽룡을 좋아한다거나..(그네 타다가 실수로 이몽룡과 뽀뽀해서? 뭐 그럴수도)
더욱더 황당한건 춘향이와 한창 사랑을 하는데 변학도가 나타나 짝사랑을 한다?
이 무슨 개풀뜯어먹는 설정인가? 졸지에 치정극이 되버렸다.
삼각관계도 모자라서 스토커물을 만들어놓다니..
게다가 초기엔 무슨 무속인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러저러 군무를 펼친다. 뭘까....

변학도가 탐관오리기때문에 암행어사에게 잡히긴 했는데 만약에 변학도가 탐관오리까진 아니었다면
이몽룡이 춘향이를 되찾을수 있었을까?
당시의 법률상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대했던 행동들은 그다지 위법하지 않았다고한다.
고을 사또로서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주색잡기만을 탐했다고 하니 내용이 완성되는것이지만 말이다.
변사또가 여색을 밝히는지 판소리에서는 크게 모르겠지만 내용 흐름상 알맞는 설정과 괜찮은 표현들이 마음에 든다.
조금 야할수도 있긴 하지만 충분히 괜찮은 정돈데
변학도 복부에 근육으로 왕자가 딱! 불필요하게 과한 설정 아닌가
무관이고 이몽룡을 시기할정도의 젊은이로 나오기때문에 저런 설정일수 있지만
꽤나 불필요한 장면 같다. 그냥 일반 사또 옷을 입고 있으면 될것을 웃통을 왜 까는지..

그리고 마지막 장이 '불타는 동헌' 이라길래 이몽룡이 춘향이를 구출하고 뜨거운 사랑을 하나?싶었는데
정말 불을 낸다? 이게 뭔 일인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모두 소복을 입고 나와서 뭔가 기분이 섬뜩했다.
불에 타죽은 기생들의 영혼같기도 하고
이몽룡과 춘향이 결혼예복을 입고 있지만 저들이 살아있는건지 죽은 귀신들의 원한같은것인지 난감한 설정이었지만
그래도 춘향전이 해피엔딩이니 다른 사람들은 다 타죽었더라도 이 둘은 살아서 결혼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십장가 대목 같이 춘향이가 맞는 장면이 있는데 아~ 이부분에선 정말 눈물을 찔끔 나온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슬펐는지. 맞을때 춘향이의 아픈듯하며 절규하든 무너지는 그 장면에서
내 감정마져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이 춤공연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처음 맞을때 그 순간 춘향이의 모습(표현)일것이다.
내가 이 공연을 다시 보게 된다면(웬만하면 보려고 할것임) 바로 이 장면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거 같다.

한서린 현실과 절망,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연속. 이 모든 시간이 이 한장면에 모두 녹아든거 같다.

춘향전을 보면 전체 6시간이라고 볼때 1시간정도만 춘향이가 좀 행복할뿐 이후 부터는 고난의 연속이다.
금세 헤어지고 괴로워하는데 바로 변학도가 부임하니 그때부터는 학대, 폭력 등으로 괴롭히니
춘향이가 아무리 성품이 뛰어나더라도 어디 버티겠는가.. 그럼에도 이몽룡은 유유자적 여유롭게 다니니..
뭐 공부하느라 애썼겠지만.. 아무튼 춘향이가 겪었던 고통에 비할수 있겠는가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춘향전은 해피엔딩으로 봐야 맞겠지만 나는 좀 인정하고싶지 않다.

여기에 향단이까지 저렇게 시기질투로 저러고 있고..(근데 막판엔 왜 불이 났을까?)

그렇게 저렇게 끝났는데.. 3층에 가장자리라 보는데 엄청 엿같았지만
어렵지 않은 설정으로 크게 난해하거나 하지 않은 어쩌면 너무 직설적인 표현의 무용극이었지만
일반 창극으로 하면 차라리 나을정도로 춤과는 거리가 먼 표현들이 중간중간 껴있다는것이
좀 아쉽다면 아쉬웠다. 무용으로 모든것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던것일까.

원전 그대로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면 안됬던걸까?
차라리 영화 '방자전'처럼 어!? 혹시 저럴수도? 라는 기분이 들정도로 제대로 각색을 하던가..
이도저도 아닌 줄거리는 좀 그랬지만 훌륭한 안무와 무용가들, 뛰어난 음악 덕분에
보는 재미는 제법 괜찮았다. 무용을 좀더 다채롭게 손보던가 무용창극처럼 대사를 좀 넣어서
대사까먹은 연기를 보는듯한 이상한 광경이 나오지 않기를 다음 공연땐 기대해본다.

그리고 제발 잘 보이지 않는 3층 양끝 좌석은 팔지 말자.. 기분 엿같았다.

출연 : 국립국안원 무용단, 창작악단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무용 -2025 안무가 프로젝트-

 

현대 무용을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공연을 본다는 것이 맞는지 때로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역시 어렵다.
프로그램을 1층에서 나눠주는데 있는지를 몰라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로 보게 되었다.
국립극장 예매 페이지에도 상세한 설명은 없었기때문에 더욱더 모르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크게 불안하거나 불편한 기분은 없었다. 무용이란게 무엇인가를 예술로서 형상화하는 것이니
보면 알겠지라는 막연한 오만함과 나태함 그리고 더 이상 무엇인가 할 수도 없었기때문에
편안하게 받아드리자는 심정으로 보기 시작

총 세명의 안무가가 각 한편씩 총 세편으로 구성된것이고 서로 연관성은 없어보인다.
처음은 죽 페스(Festival of Dance & Goodbye)인데 필멸의 존재로서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논한 바로 그 장르 죽음에 관한것이다.
이 작품에서 전재는 사후에 무엇인가 있다는것인지 단순히 망자를 위한 장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준것인지
무용을 보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사람이 생을 다한다는 것이 축제가 되려면 사후 세계가 있어야 하는데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두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갔다가 온 사람이 없다는것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또다른 세계로의 탐험이 낭만적인 서사는 아닐거라는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떠나가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서 축제보다는 한국처럼 상여소리 같이
값지게 보내주고 남겨진 자들은 그 시간만큼은 충분히 슬퍼해주는 것이 상황상 가장 적합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번 무용은 확실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 무용의 무지함으로서
거의 와닿는것은 없었다.(주제 특성상 꺼져가는 한 인간의 희노애락이나 남겨진 자들의 숙명같은 무엇도 크게 느껴지진 않았음)

단지 저들의 무용속에서 힘겨움같은것과 막판엔 정말 축제같은 분위기긴 했는데
나는 이것이 어떤 생명의 탄생과 고난의 과정을 지나 해탈같은 흐름의 순환이 아닌가란 느낌을 받았다.
생명의 순환의 의미로서 축제라고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무용이었다고 보여진다.

두번째는 옷(Beneath the cloth)인데 시작할땐 신선한 물속의 묘사에 놀랐었다.
옷걸이가 낚시 바늘이었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해초같은 그 풍경은 상상을 너무 자극해서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다.
그 이후부터는 잘 모르겠다. 수많은 옷들. 그것을 고르고 있는 어떤 존재들. 상호 연계가 되지 않아보이긴 하는데
주제가 단순해서 표현이 더욱더 난해한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저들은 끊임없이 갈망하고 무엇엔가 쫓기듯 괴로워하기도 하고
웬지 기뻐했던 기억은 나질 않는걸 봐서는 옷이라는것은 나를 가리고 변화하는 용도로서 남에게 나를 감추기 위함이니
그것에 대한 허무함 등을 표현한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것들을 잡아내면 훨씬 좋은 관람이 될 수 있었겠는데
사전 지식이 없이 보는것은 역시 힘들다. 장이 바뀔때마다 한줄정도씩 자막을 넣어주면 안되는 거였을까?

마지막은 너머(Beyond) 인데 가장 난해하고 가장 전위적이었던거 같다.
제목부터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수많은 복선들을 내포하는 제목이라서
희망도 있을수 있지만 절망또한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주같은 제목이다보니
표현또한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다. 이 작품이 오히려 페스티벌 같이 보였는데 훨씬 다채로운 넓은 설정때문에
무엇을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면부터 시작해서 쾌락의 정점까지 올려놔도 되서
곱씹어 생각하면 그 범주내에 있었던 훌륭한 작품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내 멋대로 생각한 것일뿐 정소연 안무가의 의도와는 많이 벗어났을것으로 본다.
그리고 기분탓인데 여성으로서의 상징성도 많이 표현된거 같기는 한데 꼭집어 말하기는 어렵고
느낌적 느낌이라고 할지 아무튼 생물학적인 여자로의 묘사가 좀 들어간듯해서
보면서 약간의 벽이랄까? 내가 남자라서 느끼는 어색함이랄까? 뭔가 아무튼 이질적인 기분이 좀 들긴 했다.

이렇게 총 세편이 100분동안 공연되는데 암전 상태가 좀 길어서 긴장감이 깨지는것은 좀 아쉽기도 하고(인터미션은 없음)
각각의 연계성이 없다보니 생각의 틀 혹은 준비상태 역시 리셋되어야 하기때문에
공연이 시작되도 다시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다지 좋은 구성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공연을 한국무용이라 하는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현대무용이라 하면 안되는건가? 한국 정서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것일수 있지만 그것을 골라내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적어도 내가 춤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이상 연결점을 자연스럽게 느낀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현대무용공연도 내게는 난해함의 연속인 일종의 실패담이지만 뭐 계속 보면 무엇인가 팍! 오는 기분이 들겠지.
안오면 말고.

출연 : 국립무용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1월 7일 금요일

연극 -밤에 먹는 무화과-

 

토요일 공연은 집회가 있어서 안하는거겠지.
덕분에 쉬는 일요일도 나오게 만드는 세실극장
이상하게 이곳에서 하는 연극들은 웬만하면 다 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요즘은 연극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좌석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든다.
제법 일찍 예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자리는 늘 없다. 아주 운좋은거 아니면 희박하다.
그래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 아니겠나.

내가 좋아하는 호텔로비 배경. 하지만 카페같은 분위기의 로비. 난 폭신한 소파가 놓인 로비 배경이 좋은데
브라운톤의 약간은 어둡고 조용하지만 적막함과는 거리가 있고 약간은 사람들이 있는
대충 카페같은 로비에서 어떤 칠십이 넘은 소설가 윤숙(백현주)이 무화과에 대한 불만을 프론트 직원에게 항의하면서 시작한다.
무화과는 물러도 맛있는 과일(과일이라 해야 하나?)이긴 하지만 아무튼 여지것 먹어보지 못했어서
기대를 했다는 소설가는 어떻게 이게 물러서 안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글쓰는 사람들 특유의 집요함이랄까? 꼬투리 잡듯 프론트 직원을 괴롭히는듯 보이지만
약간은 웃기기도 해서 동화되지않고 웃음으로 지나갈수 있었다. (프론트 직원과 교감되는 순간 짜증으로 바뀔지도)

그런데 나이 칠십이 넘은 여성이 결혼을 안하면 이상한것일까?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는 수근거렸을지 몰라도 지금시대에 그게 특이하게 받아드릴것은 없을거 같은데
젋은 여성은 신기해 하는거 같다. '비혼주의자'란 말도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나 또한 결혼을 안했지만
결혼을 안하는것은 그냥 안한거지 비혼주의 뭐 이딴 유치한 발상에서 시작된것은 아닌데
오히려 결혼을 하는것이 그 동안 없던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가는 것이니 확고한 신념같은게 필요할텐데
그러면 '결혼주의자'란 말이 오히려 타당한거 아닌가? 아마도 비혼주의자란 말은 결혼한 사람들이 미혼인 사람들이 부러워
시샘하며 만들어낸 단어가 아닐까싶다. 태어날때부터 미혼이고 그냥 그대로인데 비혼주의는 무슨

이 소설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자신이 마무리하고자하는 소설을 마무리 하려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소설 속 인물의 주최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물론 특성상 소설가 본인이겠지.
전체 흐름상 큰 의미는 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분량이 적지 않아서
궁금함을 뒤로 밀어버리기엔 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호텔에서 청소일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는데 그 후엔 다른일을 한건가?(소설로 먹고사는것은 아닌듯 싶음)
어쩌면 성주신이나 지박령같은 존재인가?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죽어서 그곳에서 남아있는.
일단 배경은 좀 이러한데 매끄럽게 납득되는 설명은 없기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넘길수 밖에 없으나
크게 거슬리거나 하진 않고 소설가 본인의 이야기들도 제법 나오기때문에 궁금한정도이다.

비혼으로 살길 원하는 젊은 여자 김(백소정)과 이 사람을 무척 사랑하는 친구 윤(경지은)
이들의 관계는 동성애일수도 아닐수도 있는데 사람이 결혼을 하면 가정에 충실하게되지만
미혼일경우엔 친구와 나에게 충실하게 되기때문에 이런 관계는 어떤 상황이던 특별하거나 특이하지 않다.
나도 그래왔고 다른 미혼자들 모두가 그럴것이기때문이지만 끊임없이 갈등은 한다.
수많은것을 홀로 선택해야 한다는 고독감이 24시간 따라다니기때문인데 이것도 어느순간엔 무시가 가능하다.

그리고 소설가는 자신이 결혼을 안한이유는 책임지기 싫어서라고 한다.
역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심정이다. 무엇을 선택하던 그 길에선 잃는것과 얻는것이 공평하게 분배되기때문에
책임이라는 것을 잃게되면 홀가분함을 얻을수 있고
고독이란것이 버리고 가정이란것을 얻게되면 딱 그만큼의 중압감과 책임도 함께 따라오니말이다.

교인(류경인)은 그것을 정확하게 바꿨다. 아니 바뀌었다.
어머니로서의 삶이 사라졌지만 자식의 그리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버린 본의 아니게 바뀐 삶.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속의 갈래란것은 어떤것을 놓고 다른것을 잡는 행위의 연속이므로
소설가처럼 미완성 상태에서 완성을 위한 행보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같은 끝을 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일것이다.

연극이 전체적으로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거칠거나 과격하지 않고 소설가는 끝까지 차분함을 잃지도 않는다. (작가 기억속엔 이런 안정된 모습의 노인이 있었나보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관객에게 웃음도 선사하는데 이 웃음이 인위적이지 않는 생활에서 나올법한 소박한 웃음들로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지 않는 좋은 요소로 작용한다.

내가 좋아하는 배경과 분위기, 따뜻한 대사들, 가슴절절한 감정변화들, 다양한 소재가 지루하지 않게 연결되어
집중하면서도 피로하지 않은 벽난로 앞에서 사람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하듯 추운날 잘 어울리는 연극이었다.
약간은 강한 부분도 있었지만 오래 남지 않도록 배경전환 기술도 뛰어나고 멋졌다.

그런데 왜 밤에 무화과를 먹는거지? 생각해보니 왜 제목이 이런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자막이 외국인이 미국말을 하는걸 영어 자막으로 올리면 자막을 보라는걸까?
보통 자막은 관객이 볼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 표기되는 것을 자막이라 하지않나?
특이한건지 실수인지 뭔지 모르겠다. 특히 마지막에 화를 내며 뭐라뭐라 할때 뭐라뭐라 한건지 못 알아들으면
좀 섭섭하지 않나? 아무튼 그러하다.

출연 : 경지은, 김의태, 남동진, 류경인, 백소정, 백현주, 송민규, 양대은, 이미라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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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일 일요일

연극 -묵티(Mukti)-

묵티가 해방이란 뜻이라고 리플렛 우측 상단에 나같은 노안은 볼 수 없는 작은글씨로 써놓았다.
좀 이상하지? 해방? 독립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처음에 무슨 신들의 대화가 나와서 신화 이야기인가싶었다.
시놉을 약간은 훌터보고 들어와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내용쯤으로 생각했다가
시작부터 신이라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데 무슨 소릴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2천년간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신들이 정착하려하면 인간들이 배척한다는 둥 집을 구해야 한다는 둥, 돈(금,은)을 가져야 한다는 등
별의 별 말을 다하고 있다. 조금은 추상적인거 같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복선으로 뭔가 있을거 같은 겉치레에 속았던거 같다.

전체적으로 밀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제 한국의 농어촌엔 외국인 비중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심지어 이들이 땅도 많이 사고 있단다.
이들 아니면 한국의 식량 보급에 문제가 생길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없어서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있다고하는데
타국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거 같다.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1차 산업을 등하시하게 되는거 아닌가
아니면 엄청 넓은 땅을 거의 반자동 기계로 경작하는 농가들정도나 있을까.
한국은 땅이 넓은 나라처럼 효율이 좋은것도 아니고 사계절(이게 겉보긴 좋아도 사는 사람 입장에선 참 힘든 환경)때문에
뭘 해도 쉽지 않다. 그러니 내국인은 힘들고 돈 안되고 명예가 있는것도 아니니 줄어드는것은 당연한 결과
아마도 이것때문에 도시스마트팜을 국가차원에서 계속 엿보고 있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국내 사정이 이러하니 외국인 노동자를 그것도 불법체류자들을 많이 이용하는거 같은데
임금을 적게 줘도 추방당하지 않기위해 남의 눈에 띄는 곳도 아니니 농어촌은 임금만 만족하면 괜찮은 선택지일거다.
이런와중에 이들만 노리는 사냥꾼 같은 놈들(포상금이 나오나?)이 있다곤 하는데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의 약점을 노리고 돈을 빼앗는 등 가능하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연극에서 총이 나온다. 이건 좀 오버 아닌가?

마을은 왜 이들에게 집을 임대하지 않는거지? 외국인이 외국 말 하면 안되는건가?
한국에 돈벌려 왔으니 기본적인 생활한국어정도는 웬만해서 될터인데
그리고 무엇을 먹던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 연극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먹는것도 한국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걸까?
매맞는 외국인 아내. 그런 남편을 두둔하는 어머니

왜 귀농을 해서 연근을 수확하는 일을 하는걸까...도 좀 특이하다.
진흙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깨달음)같은 것을 상징하고 싶었나?
하지만 연꽃은 단 한번도 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연꽃이 피지 않아서 연근이 더 실하다고 외국노동자가 말한다.
은연중 이 노동자들에게 꽃은 필요없다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소리였을까.

내용이 조금은 허공에 있는거 같다고 해야 할지..
지금의 한국은 분명히 다문화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밀입국자도 늘어날만큼 국가가 부유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건 부유해질수록 더욱더 심해질거 같다.

그러면 이렇게 밀입국한 사람들을 무작정 그대로 둬야 하는걸까?
지금은 인원이 워낙 적기때문에 아무런 힘을 행사하지 않지만 유럽국가들은 이러한 타국 사람들때문에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썪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나라가 나의 나라라면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
줍지는 않아도 버린사람 욕을 할것이다. 하지만 돈만 어느정도 벌면 되 돌아 가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것이다. 당연하다는듯 그 사람도 같이 쓰레기를 버리겠지
왜? 나는 이곳에 있지 않을거니까..
도둑질을 해도, 사람을 해하더라도 이곳에 있지 않을사람들은 죄책감이 적을것이다
예전 미군들이 한국사람들을 못살게 군것만냥..

그래서 한국에서 타국사람들은 조심스럽다. 왜? 그동안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으까..
그들이 세력을 지니게 되면 어떻게 될걸지 뻔하니까..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라서 한국과 기조가 거의 같다.

나 또한 이런 부분에선 상당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이 연극은 거의 일방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을 다루고
주제지만 보고 느끼는 나로서는 밀입국자를 모른척 할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추방하자고도 못한다.
왜냐면 나도 농사를 짓기는 싫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는 싶기때문에 농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때문이다. 그렇지만 확고한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권력을 행사할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는것은 반대인 입장이다.
그리고 밀입국은 더욱더 반대한다. 아무래도 절박한 사람들이 밀입국을 할텐데 돈때문일수도 있지만
나쁜짓을하고 도망온 질 나쁜 사람일수도 있기때문에. 영화 '범죄도시'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듯
중국내에서 나쁜짓 하고 한국에서도 나쁜짓을 하기에 이러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만 끼치기때문이라서
외국 노동자를 받으려면 제대로 조사를 하고 임금이나 불이익, 피해 등을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순되게도 정식절차를 거쳐 들어온 노동자들은 험하고 힘든일은 안하려 든다고 하는데 이부분도 업종별로
잘 나눠 정책이 마련되길 바라는 심정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 연극이 다루는 내용이겠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라는 것이겠으나 인간의 본능에 이기심이 있는건지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왜 그리도 무시를 하는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또 왜 그렇게들 받들어주는지.. 이게 생존본능에 연결된 반응일까.

도데체 저 신들은 무엇일까? 이 설정이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들 의지로 들어와놓고 묵티(해방)라니 이건 도데체 무슨 말이냐.
한국내에 독립국이라도 마련해달라는건지. 독립마을이라도 만들어 자신들만의 문화를 누리고 살게 하라는건지
여기가 중국이나 미국 같이 온 사방이 지평선인 넓은 대륙도 아니고
직선거리 고작 400km 자동차로 4시간이면 한국 끝을 가는 크지 않은 나라에서
중국처럼 다민족국가를 만들겠다는걸까?
잘 모르겠다. 작가는 어떤 의미로 묵티라는 제목을 단것인지 그리고 저 신들은 왜 인간을 벗삼아 꾸역 꾸역 들어오려 하는건지.
그냥 자신들의 나라에서 터 잡고 행복하게 살면 될것을. 최소한 전쟁때문에 피난온 난민은 아니지 않은가.
온 세상이 모래나 얼음이라서 먹고살게 없는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기적인놈이기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거겠지만
때로는 외국노동자들 특히 동일국가의 국민수가 많은 노동자들은 저마다 힘을 키우고 있다.
불합리하게 탄압당할땐 분명히 그들은 한국을 상대로 저항한다.

이번 어떤 베이커리 과로사 사건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일면인데
외국 노동자들 그것도 밀입국자들의 처우를 고민해야 되는지는 조금은 답답한 주제였던거 같다.

내용 전체 흐름에서 아주 약간 늘어지는 기분이 좀 있었지만 대부분은 충분히 집중하며 생각해야만하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그래서 끝난 후에도 오랜시간 답을 찾으려 고민할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나는 섣불리 저들에게 심리적인 집을 내어줄기는 쉽지 않을거 같다.

무대를 좀 넓게 쓰니 가급적 B구역을 구입하셔서 보시길 권함.

출연 : 강세웅, 강현우, 김문희, 김정아, 김진복, 박지연, 배선희, 송주희, 유은숙, 이재호, 최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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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일 토요일

국악 -2025 대한민국 전통춤축제-

 

한국 전통 춤이란게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이럴려면 다른 나라의 춤들 역시 고려해봐야 할텐데
이쪽으론 워낙 문외한이기때문에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난감할때가 많다.
특히 현대무용은 난해하기 이를때없다. 과거로 넘어갈수록 추화상가 덜되었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직관적이라 할수 있지만 한국춤은 처용무같은걸 봐도 도통 모르겠는걸 봐서는
한국춤은 오래전부터 이미 크게 발전되어있던게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한국의 전통 춤 축제라곤 하지만 극장에서 하는 춤 공연인데. 국립극장 앞 넓은 광장도 있으니
이런곳에서 대대적으로 공연 해도 좋을듯한 가을이지만 고정된 공간에서 일방적인 시선을 줄수밖에 없는
극장 공연은 한국춤과는 무엇인가 맞지 않는 기분이 든다.

그 내면은 알 수 없지만 춤에 사용되는 음악은 멜로디보단 리듬이 강하고 한국 리듬악기는 강렬함때문인지
어떤 리액션(추임새)이 필요할거 같은데 의자에 앉아 일방적인 관람형태로는 그게 참 어렵다.
노동요라고 하나? 노동할때 부르는 노래로 민요같은것들인데 이런것도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고된일을 좀 잊으며 노동 효율도 올리는 리듬도 곁들이 등 대부분이 이러하다. 심지어 상여소리도 그렇고

이번 축제에 나온것 중 몸이 들썩이지 않는것이라고 하면 첫번째였던 '신태평무'정도
태평무는 아무래도 폼세가 일반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장르는 아닌거 같고
나라의 안녕을 위한것이니 궁중무용의 형태여서 관객은 마음편히 보면 된다. 각각의 춤사위는
나름 다 상징하는 바가 있겠으나 이것은 내가 공부를 안해서 아쉽지만 더 깊이 더 감동적으로 볼 순 없었다.

그리고 복개춤은 굿의 형태지만 관람용으로 잘 편집된듯 싶어서 역시 엉덩이가 들썩인다거나 하진 않았다.
기복적인 요소가 있다지만 그 상징성까지는 알아듣기 힘들정도로 한국에서 굿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거 같다.

나머지들이 문제인데 강렬하고 끌어내는듯한 리듬들과 춤사위
관객들은 박수로 리듬을 맞추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할정도의 흡입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이러한 무대의 공연예술로 바뀐 지금의 문화에서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관객들의 처지는 난감하다.
한국사람의 흥이 많다고 하는데 이런 문화때문에 흥이 많아진건지 흥이 많아서 이런문화가 만들어진건지
지금은 흥이 사라진건지..(현대 음악 콘서트에서 열광이 남다른걸 봐선 형태만 바뀐거 같음)

전통춤, 전통 무대 예술 분야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난제는 바로 마당놀이로 발전한 이 문화를 어떻게하면
현대적 극장에 맞게 각색할것이냐 또는 모든 극장을 마당놀이 극장처럼 만들것이냐에 달려있다.
아마도 후자는 어려울테니 각색해서 앉은 상태에서 박수정도로 해결하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대중가수들의 콘서트 공연처럼 국악도 모두 뛰면서 놀수 있는 그런 공연은 쉽지 않을거 같다.

이 숙제가 풀리면 한국의 전통공연예술을 르네상스가 찾아올것이고 아니면 희나리처럼 지리하게 이어가다가 사그러들겠지

보통 축제라 하면 굴직한 주제 혹은 슬로건을 놓고 거기서 파생되는 공연을 펼친다. 헌데 이번은 분명 축제라고 걸어놨지만
느낌은 춤 경연대회같이 보인다. 그래서 서로 장르의 연계성이 없다보니 다음 팀 다음 팀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좀 나태해진다고 할까?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기보다는 관광지에서 하루 종일 공연하며 관광객들 시선을 끄는 공연같이 보인다.
이런 공연의 특징이나 문제점은 지금 보는 공연이 다음 공연의 궁금증을 발생하지 않는다는것에 있다.
그래서 중간 한개만 보고 극장을 나온다고 해도 전혀 아쉬움이 안생길거 같은 식상한 흐름같은 기분이 든다는것이다.
물론 각각의 공연은 더할나이 없이 훌륭하고 멋지고 아름답다. 하지만 호기심, 궁금증을 자아내기엔 부족하다.

다음부터는 무엇인가 굴직한 주제 한가지를 놓고 각 지역 무용단들이 해당 주제에 맞는 춤들을 가져와서
서로 흐름에 맞게 설정해서 전체 줄거리가 놓고 시작부터 끝까지 어떠한 이야기 한편 보고 나오는 기분을
전해주는 방향의 구성이 되기를 내년엔 기대해보고 싶어진다.

이번 공연에서 특이했던게 천안시립무용단의 덧배기춤이란건데 현대무용과 접목된듯한 화려면서도
처량한 그리고 밝지만 그레이한 춤에서 묘한 희노애락같은게 느껴진다. 동서양 컬레보레이션인지
원래 한국 전통 무용에 이런 묘사들이 있는지 짧은 설명문구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신선하기도 했고
낱설기도 했다. 전통이란것이 곰팡내 나는 그대로를 앞으로 계속 그대로 하라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바뀌고 바뀌면서
과거와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져 가는것이니 저들의 도전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이틀간 공연하고 겹치는 공연이 없기때문에 4시간 축제 공연이라 해도 되지만
아쉽게도 두번째날 것은 티켓을 구매 못해서 볼순 없었다. 하루에 모두 해달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한 이주 정도 나눠서 두번정도 공연하면 안됬던건지 아쉬움이 생긴다.
회사를 다니는 입장에서 거리도 있고 끝나면 피곤함도 있어서 티켓이 있더라도 이틀 연속 보기에도 쉽지 않기때문에
한주에 한편씩 볼 수 있고 같은 공연을 두번 이상 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으니
전통춤의 저변을 확대하는데도 좋아보이지만 어찌된일인지 전통 공연은 하루 딱 한번씩만을 할 뿐이다.
어떤 정책이 있는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국립국악원에서도 그렇고 국립극장에서도 그렇고 다른 대형 극장들도 그러하다.
반면 서양 고전은 웬만해서 한번에 끝나진 않는다. (연주 리사이틀 같은 경우 혼자 하기때문에 단 1회 공연이 많긴 함)

이런 훌륭한 공연이 단돈 만원이니 티켓 구하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마저도 할인 혜택이 들어가면 몇천원 수준이고 여기에 자동차까지 있으면 주차료 5천원을 할인해주는데 이러면 무료나 다름없다.
너무 많은 횟수를 하는건 무용가들도 힘들테니 장르 특성상 두번정도라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좋은 공연을
좋은 극장에서 안락하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좀더 주길 기대해본다.
(1회 공연으로 끝나는건 기획자나 무용가 입장에서도 너무 아쉽지 않나?)

출연 : 국립무용단, 남도국악원, 경기도무용단, 대전시립무용단, 천안시립무용단, 인천시립무용단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국악 -긴산조 협주곡 II-

 

아~ 맨 앞자리 티켓을 샀다니.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앞자리를 샀겠지만
무대가 너무 높아서 오케는 앞 두어줄밖엔 안보인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생생한 연주소리를 들을수 있는것은 엄청난 잇점이긴 한데
목이 약간 아프고 북소리는 아무래도 소리가 크다보니 귀에 조금은 쌔게 온다.
아무튼 맨 앞자리는 어쩔수 없는경우 아니면 구매하지 마시길.. 목아픔
(연극같으면 앞자리라도 크게 문제될거 같지 않음)

국악기로 관현악단이 있을수 있을까? 관악기를 보면 태평소, 피리, 단소, 생소중대금류, 그 외 길쭉한 나발, 소라같은것도 있고
현악기는 해금(깽깽이), 가야금, 아쟁, 거문고
타악기는 북, 꽹가리(이건 관현악기로 넣기엔 좀 무리가 있으려나), 징, 장구 같은거

분명히 한국 전통 악기의 종류도 서양 악기 만큼이나 다양하고 각각의 독특한 음색들이 있다.

그래서 산조(일반적인 독주로 봐야 하는지 궁중음악을 빼면 모두 산조로 보면 될려나)는 좋은데
합쳐지면 뭐랄까... 서양악기들의 조화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국악기들의 음색은 거칠어서일수도 있는데 악기에 노이즈가 너무 섞여있다고 하면 맞을런지 바람소리가 많다고 해야 할지
현악기들도 현들의 투박하고 거친 소리는 해금마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양악기들은 이런부분에서 체계가 잡혀서인지 음색이 엄청 정갈하고 맑은편이다.

이번 국악악단에도 북은 팀파니가 있는데(더블베이스도 있는거 같음) 그 소리는 역시나 엄청 튄다.
개인적으로 팀파니의 소리는 북소리중엔 단연 으뜸이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국악기의 거친 소리들과는 합쳐지기 쉽지 않게 느껴졌다.

소리가 명학하게 나뉘는 서양악기라고 해서 좋다는 의미는 아니고 단지 음색이 그러하니
연주형태나 청감에서도 느낌 차이가 크다는 것인데
거칠고 투박한 음색은 역시나 내면으로 침투하기엔 좋으나 이건 솔로일때 그런것이고
합쳐지면 비수같은 날카로움을 살려내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이런면에서 서양악기들의 간결한 소리들 일색인 악기들은 묶어놓으면 뛰어난 하모니가 형성되는게 아닌가싶다.

한국 고유 악기로 악단을 꾸려가는 단장의 최대 고민거리겠지만
오늘은 과거의 그 모래먼지같은 느낌은 확실이 줄어든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직까지 악단은 어떤 배경 효과음같은 조성이 많기는 한데 이런부분도
훨씬 극적이고 가야금, 피리 산조에서 서로 주고 받거나 받쳐주고 띄워주는 역할이 대단히 좋아서
웅장하면서도 감동적인 서양오케에서 맞보는 짜릿함을 국악단에서도 제법 감동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가야금산조 협주에서 가야금이 그다지 극적인 악기는 아닌지라(악기때문인지 연주법때문인지는 모름)
감정을 끌어올려놓은 악단의 기조를 고스란히 받아내기엔 쉽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바꿔놓는데는 충분한 협주자로서의 역할이 훌륭했다.
가야금이란게 쫘~악 뻗는 음색이 아니라서 웅장함의 바텀을 받아내기란 쉽지 않았을텐데
수십년간 닦아온 연주실력으로 만족스럽게 이끌어가는 모습은 산조를 들으며 울컥하게 만드는 드믄 경험이었다.

피리연주의 여유로운 솜씨(평생을 공부한 전문가들의 여유랄까?)는 표정에서 부터 즐기는것이 느껴질정도다.
무대를 즐기며 연주하는 모습은 전쟁터 가장 앞에서 말을 타고 전진하는 장수같은 풍모와 기개였다.

국악기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놈을 노력으로 다져진 실력으로 모든것을 커버치는 진정한 명인들.
아마도 오늘의 모든 연주자들과 지휘자가 그러하지 않았나싶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보고 싶은 연주였다.

출연 : 지성자(가야금),박범훈(피리), 지성택(지휘), 국립국악원창작악단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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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연극 -서울의 별-

 

혜화동엔 아직도 가보지 못한 극장들이 많은거 같다. 이곳도 이번에 처음 가보는거 같은데
출입구와 티켓 받는곳이 다른곳에 있어서 초반부터 짜증이 좀
하지만 이건 건물 생김세때문에 어쩔 수 없는것이니 어쩔수 없더라도 입간판에 안내를 좀 크게 적어놓던가
관계자가 나와서 설명을 좀 해주면 좋으련만 입구는 전자키로 굳게 닫혀있어서 처음엔 연극이 취소된줄 알았다.

입장도 15분전에 하다보니 밖에서 제법 긴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협소한 소극장 그자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건
안내해주는 사람 한명만 나와있어도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수 있지 않으려나

극장을 들어가니 좀 당황스럽던데 사진처럼 좌우로 아주 길다.(내가 B구역이니 좌측에 A구역이 더 있음)
건물 생김세때문에 이런 불편한 구조를 갖게 된것이겠지만 내가 앉아있는 위치에선 상대적으로 좀 불편함을
감소해야 할 위치다. 관객을 모두 받아야하니 무대를 중간으로 줄일수도 없을테고
실제로 연극 구성을 보면 좌우 30%정도는 그냥 없어도 될 무대라서 불편한 극장때문에 배우도 고생이고
좌우로 너무 길어서 보기 불편한 관객도 고생인 곳이다.
이 극장 공연을 보려면 가급적 중간을 잡고 특별한 연극이 아닌이상 그 외에 좌우 밖에 안남았다면
그나마 뒷자리가 낫다는것을 생각하는게 좋다. (좌우로 너무 김)

작가가 누군가 찾아보니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희곡 작가가 안적혀있는것도 꽤나 특이하다.
어쩌면 처음인거 같다.
왜 작가를 적지 않은걸까? 챵피한가
연극 내용은 식상함 그 자체
영화 타짜2의 전광렬 배경을 짜깁기 한거 같기도 하고
달동네 이야기라 하기에도 상황이 솔직히 맞지도 않다.
월세 낼돈은 없는데 좋은 오토바이를 타고
갑자기 여성이 들어오고(월세가 저렴해서 왔다는데 3류 밤무대 가수니 개연성이 없는건 아님)
집주인은 발성이 무슨 성악전공잔지 뭔지? 왜 딕션이 그렇게 특이한지..
TV나 영화에선 이러지 않는거 같은데 정극을 처음해서 긴장한건가? 이분 연극무대에서 왔던분 아니었나?
고전 연극을 하듯 발성이 초반엔 클래식하고 대사도 철학적이라서 넘길만 했는데 계속 그러니 점차 질리는 경향이 있다.
원형무대에서 타이즈 입고 칼 찬 서양 배우가 쩌렁쩌렁하게 떠드는 역할이 딱 맞을거 같은 특이한 딕션

연극을 보면서 내용에 놀란것이 박문호란 인물인데 도박으로 인생 한방에 해결하려는
전형적인 깡패, 건달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3류가수인 조미령에게 처음부터 반말을 해대고
추파를 던진다. 캐릭터가 그러니 그런것인데 조미령에게 성추행도 과감히 해버린다.
그렇지만 나중에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남자는 지가 나이가 많다며 반 폭력적으로 반말을 하며 여자는 힘에 눌려 존칭을 한다.
뭐랄까 현대적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상황.

이 작품이 한 수십년 전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다. 당시 사회를 반영하니 당연할수 있지만
나온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온갖 곰팡내나는 식상하고
줄거리는 어디선가 가져온거 같은 3류냄새나는 구성

그래서 유명배우의 티켓파워를 이용한 치졸한 연극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고..(왜 연기를 못하는 사람일수록 소리를 질러대는걸까)
아마도 이 연극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다역을 소화한 배우일거다.
가장 연극의 연기스럽고 가장 캐릭터를 잘 살리는 훌륭한 배우였다.

내용은 딱 50대 중후반 이후부터나 어색하지 않을법한 과거 편협한 내용들이다보니
절반은 노인이 되기 직전의 세대들이고
절반은 어떤 팬클럽 모임에서 나온건지 한사람만 집중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것도 색다른 구경이었다.
보통은 커튼콜땐 전체를 찍지 않나?

관객석이 거의 만원인데 노인직전의 세대들과 나머지는 젊은단체여성들인 특이한 관객 구성

아무튼 삼류연극의 전형이니 연극이 고픈사람은 극장동국(추천), 안똔체홉극장(추천), 혜화당, 아르코 등
연극제나 작가 작품위주로 많이 하는곳 또는 국공립극단이 하는 연극들을 보는게 훨씬 기분좋은 연극을 볼 수 있으니
이상한 관람평들 너저분하게 적어놓은 이런 연극을 선택할것까지는 없어보인다.

요즘은 티켓파워가 있는 인지도 높은 사람들을 집어넣고 내용 개판인 연극들이 가끔씩 보이는데
영화시장 망하듯 연극시장도 망할까봐 걱정된다.

이 후진연극이 5만원이나 했다니....

출연 : 정은표, 유희재, 배우희, 이열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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