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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8일 토요일

연극 -파수꾼, 개인의 책임-

 -파수꾼-
두편의 연극을 이어서 하는 단막극으로 되어 있다.
옴니버스형식은 서로 약간씩은 연결되어 있지만 이것은 각각 다른 연극이다.

파수꾼이란게 엄청 낯익지만 마땅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내용은 대단히 익숙하다.

기존 체제의 연속성과 당위성, 유지하기 위한 불합리성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괴리, 그로 인한 고통, 그것을 이용한 기득권층

이 희곡이 나온지 반백년이나 지났고 비슷한 내용들이 없었던것도 아니라서
신선함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그냥 짧고 시끄럽게-북치는 소리때문에- 봤을뿐

그나마 엔딩에서 비참한 심정으로 북을 치며 조명이 꺼져갈때의 여운은 제법 괜찮았다.
이 연극의 하일라이트라 해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끝부분인데..

체제를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이 정당하지 않아도 될까?란 의문은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주제로 한국의 바로 전 정부(문재인)와 이번 정부(윤석열)간의 차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고통받은 사람들이 즐비하지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처리되야 한다며 참고 인내하는 전정부
개소리 집어치우고 내 마음대로 할거야라는 이번 정부

하지만 어느상황이던 고통받는것은 힘없는 사람들 뿐이다. 어차피 기득권층은 어떤 짓을 해도 보호받는다.
한국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쳤음에도 차별받는 나라니 당연한 결과일까 (현충원을 가면 바로 보임)

아무튼 어떤 것이든 해결되지 못한다. 그냥 일부는 그것으로 고통을 받고
일부는 그것으로 혜택을 받을뿐
이 연극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식상하다.

출연 : 최태식, 정채윤, 전혜린, 김주영

-개인의 책임-
이 연극은 뭐랄까? 난해하다.
불쾌하기도 한거 같고 아닌거 같기도 한거 같고

내용 자체는 남녀간의 흔한 인생 갈등이다. 다 큰 성인들이니 성장통이라 하기엔 그렇지만
아무튼 임신, 결혼 같은 어디에서나 볼법한(실제론 그렇게 흔하진 않음) 소재들이다.

문제는 이것을 풀어내는 방법인데
다른 연극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거 같지만 보는 내내 저들과 나(관객)와의 거리감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연극과 관객은 엄밀히 따져서 독립된 객체들이기때문에 타자 입장일뿐이지만 연극 속으로 들어가는
무엇인가 있다. 그런데 이 연극은 그것이 전혀 없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관객을 배척할수 있는지도 신기하지만
내가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관음증이 걸릴거 같은 불쾌감이 밀려올정도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서로 다투는 연인의 대화를 엿듣는 내 모습을 보는거 같은 기분좋지 않은 상황이다.
객석에 앉아서 저들을 보고 있자니 민망하여 일어나 극장을 나가고 싶은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본다.

감독이 의도한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기 힘든 연극이라서
몰입이 무척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한시간정도에 끝난다는 것

소재나 전개는 독립단편영화를 보는듯, 여성 배우의 극중의 짜증은 현실감이 엄청나던데
특이한 경험으로 넘기자.

출연 : 이의현, 강수현, 김민태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연극 -라스낭독극장-


오늘 내린 눈은 서울에서 내린 정식 천눈으로 기록되는것일까?
날이 춥지도 않아서 쌓이지도 않고 양도 적었는데 스쳐지나가는 허깨비로 지워지려나

수많은 날을 들고다녔던 우산이 하필 오늘은 없다. 젠장

낭독극이란 특이한 장르를 처음 접한게 올해인지 작년인지 아무튼 오래되진 않았다.
무언극(현대무용같은?)은 오래전에 봐보고 인상깊었지만 더이상 기회가 없었는데
낭독극은 눈을 감으면 라디오 극장을 듣는 느낌이랄까?

배우들의 큰 몸동작이 있는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배우들의 발성과도 좀 다른 성우느낌으로
정갈하면서 중성적톤으로 일괄된다.

그래서 나래이션 부분에선 약간의 음색차는 있을뿐 이사람이 하나 저사람이 하나
큰 의미를 찾을순 없다. 나래이션하는 대상이 본인 역일경우 그냥 본인이 대부분 함께 하는거 같다.

총 3편의 낭독극으로 구성되어 파트 1이 2편 파트 2가 1편으로 나뉘어져있다
나는 파트1만 구입을 했는데 이유는 파트 2는 오전 11시

이런 시리즈물은 다 보고 싶지만 시간 편성이 어중간하여 모두 구입할순 없었다.

그리고 2주도 아닌 3일만 하면 회사원들은 토요일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휴일 없이 토,일요일 모두을 나오거나 해야 한다.
평일도 있었지만 좀 그렇다.(어제 반차를 내서 서울시내를 돌아다녔으나
즉흥적인 휴가였기때문에 이 연극을 생각못해서 파트2를 못본것은 못내 아쉽다.)

파트 1이 두편의 극이라서 인터미션 포함 2시간20분정도 되지만 한편에 한시간 가량이니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REDO란게 무슨의미지? 사전적의미로 다시 한다는 것인가?
배경은 미래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한국 사회의 이기적인 부모를 표상한다.
자신의 생각속에 갖혀 자식을 외롭게 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사회 문제
'너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주제라고 하긴 모호하지만 아무튼 굵은 흐름은 이러해서
배경이 미래던 현재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모의 무모함으로 자식의 외로운 삶만 있을뿐 그리고 부모의 죽음.
자식은 홀로 남겨져 로봇과 함께 여차 저차 맺힌 한을 푼다?정도?

전개는 식상하기 그지 없다.
일본 애니매이션 같은 느낌도 들고
한국 특유의 최루성도 좀 있어서 눈물이 찔끔 찔끔

친구로봇과도 이러저러한 일들을 좀더 만들어넣지
너무 자기 과거사만 얘기하다가 끝나버리니 배경들이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두번째는 '딸에 대하여' 인데
글쎄
성소수자 RGBT(동성애,양성애,성전환)에 관한 모녀간의 갈등을 얘기하고 있는건지
사회적 편견의 불이익(불법해고)을 고발하는 것인지
약자(돈없는 치매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말하고자 하는것인지

이걸 합치면 사회적 약자를 인식하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일수 있지만
이렇게 모든것을 담으려 할 필요까지 있었나 싶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극은 아니기때문에 상황 상황 모두 나래이션(서술) 한다는것도
좀 지루하고 귀가 번잡스러워진다.

눈을 감아도 문제 안될거 같은 부연 설명은 머리가 귀찮아져서 간결한 맛이 없어진다.

라디오에서 성우들이 하는 드라마같은것은 귀에 의존하기때문에
상황설명이 필요하지만 내가 눈감고 연극을 들을려고 온것은 아니니
너무 상세한 설명까진 필요없어보인데 왜 저들을 저리도 상세히 설명을 하는것일까

하지만 이 두편을 보면서 낭독극도 제법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때때로 눈을 감고 싶어도 공연예술에서 눈을 감는것은 안보겠다는것밖에 안되는데
이 극은 눈을 감아도 된다. 그러다 눈을 뜨면 멋진 배우들이 강하진 않으나 약식으로 연기도 하니
연극을 보는 느낌도 어느정도 든다.

목소리에만 집중을 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라서 대사에 큰 집중이 자연스럽게 되지만
역시나 나는 연극을 보러 온것이지 들으려고 온것은 아니니 약간의 허전함은 있다.
(요즘 대부분의 라디오에서 하고 있는 '보이는 라디오'를 듣는 그 이상은 없음)

두편 모두 낭독이 아닌 실제 연기를 하는 극으로 구성해도 멋진 극이 될 내용들이지만
낭독극이라도 눈오는날 기분좋게 본거 같다.

다음에도 파트1,2로 나눠 하게 되면 꼭 2주이상 해서 둘다 볼수 있게 해주길 기대해본다.

출연 'REDO' : 윤성원, 김희연, 임현국, 임은조
출연 '딸에 대하여' : 임유영, 신현실, 김희연, 진소연, 이강우



2017년 4월 29일 토요일

연극 -호모 로보타쿠스-



따뜻한날 이불빨래하고 짧은 시간 빈둥거리기도 하지만
근래 가고 싶은 두어곳의 미술관을 계속 못가다보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하지만 봄에 걸맞는 게을리즘은 항상 우선일수밖에 ^_^

설렁설렁 바로 혜화동행 버스를 탔으나 승객이 너무 많다.
따뜻한 봄이라 그런거겠지만 버스가 자주오지도 않으니 다른 버스보다 더욱더 많은 승객들.

꼭 알맞게 도착을 해도 입장시간이 서로들 달라서 잠시 기다리다 들어갔는데
이 티켓은 뭘의미하는걸까?
목에 거는 이름표같은 이상한 티켓.
하지만 아무도 목에 걸지 않고 걸어달라고 부탁하는 관계자도 없는 의미없는 티켓

좌석이 무대이고 무대가 좌석인 구조로 되어 있고 좌석번호가 있는것도 아니다보니
입장 후 이어지는 고민
이 자리에선 잘 보일까?
배우들 동선이 어떻게 되지?
앞자리는 발 뻗기 힘들거 같으니 뒷자리에 앉는게 나을까?

자리 하나때문에 온갖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

이렇게 만들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덕분에 좁은 극장을 좀더 넓게 쓰려 한것인지(이것도 아닌거 같음)
입장권이 꼭 외부 방문자용 처럼(?) 만들어 견학하는 느낌이 들게 구성한것인지 모르지만
어찌됬던 내가 그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은 가끔(?) 든다.

호모로보타쿠스?
호모란게 인간을 뜻하긴 한데
로봇 인간?
신 인류?

영화속 로봇과는 다른 동물.
스타워즈의 자립심,독립심 없는 클론들 처럼 특정 목적만을 위하여 만들어진 동물형(?)로봇

전체적인 흐름은 아이로봇,에이아이 등 로봇이 사람과 공존 안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특히 영화 엑스마키나와는 더욱더 비슷하다.(엑스마키나 연극버젼같음)
(바이센테니얼 맨같이 공존하는 류가 좀 기분좋은데)

로봇이란 존재는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일수 밖에 없는걸까?
로봇이란 특정 객체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이겠지
새로운 무엇
새로운 모든 무엇

외면하며 살수도 있을텐데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카르마(운명)

이런것을 보면 인간의 파멸을 기정사실로 두고 전개되다보니
어떤 사건이 생겨도 그다지 의미있어보이지 않고 흥미가 생기지도 않는다.

이런 류중 그나마 매트리스(영화)의 결론은 다소 특이할 수 있지만 그런 결과를 도출 시키기 위하여
몇번의 리셋을 반복하였는지(인류의 멸망이 무한 반복)

신종 종말론일수도(신흥종교?)
(차라리 종교일경우 외면하면 되는데 이건 현실이니 외면하기도 불편함)

어째서 어떤 빌미만 제공하면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망할거라면 기분좋은 상상을 하는게 좋지 않나.
(멸망하지 않을거기때문에 암울한 상상을 하고 있거나 그런 미래가 되지 않도록 염두하는것일지도)

어찌됬던 이런 내용은 우울하고 씁쓸하다.
개개인의 멸망-사망-은 숙명이니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니 더욱더 씁쓸하다.

배우들이 왔다 갔다 무대이자 관객석을 돌아다니니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하고(이곳이 이렇게 작은 극장은 아닐텐데 전체적으로 너무 작게 세팅됨)
언쟁이 많다보니 느낌이 나쁘지 않지만 좀 어수선하다.
(일반 무대처럼 설치했다면 다른 느낌이 들었을수도 있지만 관객이 생각할 시간이 있는것도 아니니 관계없을거 같음)

토론의 내용을 좀더 깊게 그리고 관객이 생각할 것은 남겨두면
머리속은 복잡해도 얼마 후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깊숙히 들어올 품목이니 고민해도 나쁘지 않은 주제로 남을수 있을텐데
(관련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보니 이 변화를 늘 보고, 보려하지만 인간의 탐욕만 없다면 그 창조물 역시 인간을 해할거 같지 않으나
지금까지 나와있는 인공지능이란것들은 대부분 그 탐욕의 정점에 있는것들에 주로 투입되어 있는 형편-무기,돈,권력-)

차라리 철기시대로 돌아간 후 전쟁 없는 것만 보장되면(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직후 인디언들의 사회정도?)
그것도 크게 문제되어 보이진 않을텐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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