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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6일 수요일

연극 -자살에 관하여-


갑자기 찾아온 습한 초봄 느낌은 무엇일까?
하지만 두꺼운 외투를 벗기엔 두려움이 앞선다.

혜화동을 한번에 가는 버스는 언제나 만원(배차시간좀 조절하지 에휴)

날이 초봄같더라도 공원에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는것을 봐선 분명 겨울인거 같다.
하지만 이대로 올 겨울이 지나갔으면 좋겠단 바람이 생긴다.
추운겨울이 될거란 예측이 어긋나길..

자살? 목숨을 끊는?
인간의 수많은 선택중 특이한 선택으로 죽기 전에 죽을 수 있다는것
이건 분명히 리셋(초기화)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전원을 끄는 행위 역시 아니다.
죽는 사람 기준으론 모든 시공간이 사라진다. 물론 그 자신도
돌이킬수도 없다. (시공간이 사라졌는데 무엇을 돌이킬수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무엇 하나 되돌릴수 없는 운명이기때문에 죽음을 택한다는것도 그다지 어리석은 짓은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신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살은 전체 사망률에서 극히 미비한 수준인걸 봐서
아무것도 없는 무엇의 세계를 가려 하는 사람은 없는거 같다.
(신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곳에 가려고 자살할 경우 벌을 받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뱉어내는걸 보더라도 그런것은 없어보임)

이 연극은 죽으려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약간만 집중하면 무척 재미있고 연극이란 공연에 적합한 설정과 소재를 사용한다.

무엇 하나 과함이 보이지 않아서 대단한 연극이 아닐 수 없는데
작가의 탄탄한 구성력이 대단하단 생각이다.
(보는 내내 작가가 누구길래 이렇게 치밀하게 묘사하는지 궁금했었음)

물론 배우들의 연기또한 일품으로 각각의 설정에 맞는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항상 중심을 잡으려는 방송국 남지인(극중인물),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한 유경화
누군지 모르는 남자(극중인물인데 이 사람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음)
배우들은 이 극중의 인물들의 색을 잘 표현하며 설정을 조화롭게 만든다.

그다지 긴장하는거 같진 않으나 약간씩 대사가 씹히는걸 보면
오히려 더욱더 현실같다.
(공연문화는 대사를 너무 정확하게 말한다는것, 그자체만으로도 현실과 다른 이질감이 느껴짐)

그래서였는지 다들 친구들 같은 친숙함이 느껴진다.

내가 자살이란것을 잘 모르다보니(생각은 깊게 해보지만 의미없는 생각일뿐임)
어느정도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상황, 정황 그리고 그들의 논리에 설득되듯 넘어간다는것은
많은것들이 치밀하게 구성됬다는 것인데 이런 바탕을 두면서도 극적요소를 벗어나지 않기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는다.
(내용이 학구적으로 치우치면 지루해지는데 이 극은 전혀 그렇지 않음)

그래서 짧지 않은 공연시간임에도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이유를 모르겠지만 긴장감이 잘 안생긴다.
분명 저들은 무엇인가와 끊임없이 싸우고 나는 그것들을 받아드리고 있는것을 느끼는데
왜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것일까?
의자가 불편한가? 겨울이라 옷이 너무 불편해서 그런건가?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도 내내 왜 그랬던걸까?란 생각을 지울수 없지만 마땅히 원인을 모르겠다.

저들이 모든 화를 내고 모든 해결책을 제시하기때문일수도 있고
제3자인 나는 강건너 불구경만 하면 되기때문이었을까

관객도 연극에서 빠질수 없는 요소라면 관객에게 주어진 몫이란것이 있을텐데
그 몫을 갖지 못했기때문에 공감력이 부족해졌던것일까

조금 더 깊숙하게 그들과 공감할 수 있었다면 그 여운은 매우 길었을거 같다.
그렇지만 지금도 연극 마지막 유경화(극중인물)의 울음이 머리속을 맴돈다.

이 연극의 피날레는 유경화의 울음일까? 그 울음에 공감하는 나일까?

여담이지만
연극 관계자들의 지인들께서 많이 온거 같은데(기분에 관객 대부분인거 같음)
배우의 어머님인거 같은데 하시는 말씀이 "앞에 앉으면 애가 보고 긴장할수 있으니 뒤에 앉자"라는 말이 들려오는데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의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는거 같다.

출연 : 권희락, 김중호, 김미나

2018년 8월 25일 토요일

연극 -나르키소스-



요 몇일간은 완연한 가을같은 날이다.
햇볕은 뜨겁고 날은 건조하고 구름은 높아 넓은 하늘이 잘 보인다.
먼바다에 있는 태풍때문인지 바람도 불어주고

그렇지만 역시 버스 중앙차로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것은 욕이 나온다.
그늘이 없고 차들이 뿜고 있는 매연과 뜨거운 열기들

이렇게 좋은날 그지같은 정책으로 기분을 모두 망친다.

이 버스는 왜 이리도 배차 시간이 긴지 그지같이 안온다.
시원한 날을 망치는 요소들이 왜 이렇게 많은건지
엄청 안온 버스 그래서 만원이 된 버스 속 에휴

혜화동엔 날이 좋아서 수많은 사람들과 행사를 하던데
마로니에 공원에서 대규모 고음량 공연을 하면 작은 거리공연은 하지 말란 소리겠지
이런곳에선 이런 대형공연을 안하고 앰프 사용하지 않는 작은 공연들만 허용되면 안되는건가?
대형공연은 시청앞,광화문앞 같은 곳에서 하면 될텐데
넓지도 않은 공원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언제나 소음으로밖엔 안들린다.

날이 좋아서 앞으론 평일에 미술관을 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이상하게 허전하고 처량하다.
이전 1년간은 한시적으로 허용된 시간이었지만 편하고 쾌적해서 무척 좋았는데
앞으론 사람 많은 곳을 가던가 아예 가지 말던가?(인기 없는 곳을 가면 휴일에도 여유있지만)
하지만 그림이 보고 싶다.

나르키소스는 무슨 말이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나르시시스를 말한다고 하던데 뜻은 잠, 무감각?

아마도 이 연극에선 무감각쪽이 아닐까싶다.

배경이 되는 로봇 같은 사회
관리자(브이)는 로봇같은데 출산을 주 업무로 하는 에이와 케이는 그냥 사람같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존재들 치곤 그냥 사람이다.

에스사의 소유물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계약 기간이 있는건지 계약 출산 수가 되면 나갈수 있다는 소린지
다른 업무처로 갈 수 있다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그들만의 미래를 그려간다.
(출산하는 아이를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데 생산적인 활동은 아닌거 같고 태교로 보이며
잤다가 태교했다가를 반복하는것이 케이지속 모돈(출산돼지)같은 느낌이 강함)

이렇게 닫혀진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지 납득이 안되지만 아무튼 그들은 그 끝을 향해
열심히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다.(생존계수란게 뭔지 모르겠음)

여기에 새로 들어온 피(리플렛엔 '피이'라고 적혀있던데 그냥 영문자 P피 아닌가? person의 P가 아닐까?)
이 사람은 여성이길 바라는 남성? 시대가 먼 미래니 인공자궁을 남자에게도 넣을수 있는 시대 같은데
미래는 뭐든 다 될거란 혹은 다 되야 한다는 망상이 SF란 장르속에 넣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시대라면 남녀란 의미도 어떻게 보면 의미 없을수 있는데 인공 자궁을 트랜스젠더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다니

아무튼 배경은 이러하고 이 여자와 남자관리자(브이)간의 감정에 관한내용이지만
피를 제외한 모든 존재는 일단 도구로서의 존재로 표현되고 에스사의 사유물 귀속되어 있고
에스사가 만들어낸 가공된 생명체들이라서 이들에 필요 없는 감정은 제외시켰지만
아쉽게도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서 피와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스사의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퐝당한 설정

뭐지? 이 퐝당한 스토리는
중간쯤 보고 둘이 에스사 시스템에서 도망가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런건 애시당초 없었다.
그리고 피는 난대없이 왜 자살을 하지?
자살을 해야 시스템을 리셋할 수 있는건가?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 저러는지도 납득이 잘 안되고 이후 무엇이 해결된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이들 넷이서 소꿉놀이 하는걸 곁에서 지켜본 기분이랄까.
(맥락도 모르겠고 왜 저러는지도 모르겠고 자기들만 서로 좋아서 낄낄거리며 즐거워 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놀음)

다들 연기는 너무 멋지던데..

에어컨 바로 아래 자리를 잡아 추워서 이해가 안된건가?
아니면 에이 케이 피가 잠자는 침대에 붙어있는 눈 아픈 조명들때문에 집중을 못했나?
(어느 나라가 사람이 눕는 침대 주변을 네온사인같은 조명으로 둘러치는지.. 그러면 미래스러울거라 생각한건지)

중반부까지의 전개는 괜찮았는데 후반부가 많이 아쉬운 연극같다.
연극 모든것을 후반부에서 다 날려버린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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