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두산아트센터Space111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두산아트센터Space111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7월 4일 토요일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I Am My Own Wife)-

 

제목이 다소 헷갈린다. '나는 나의 아내다'? 자웅동체란 소린지.
조촐한 무대앞에서 연극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모노드라인줄은 몰랐다.
모노드라마는 가급적 보고자 하지만 아무튼 몰랐다.
생각보다 조금은 불편한 의자(심각한건 아닌데 두 시간 공연엔 조금 더 푹신한게 어울릴런지)

두산아트센터는 공연전까지 치~~익~! 거리면서 가습기를 뿌려댄다.
좋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공조시스템일텐데 눈앞에서 가습기 입자들이 보인다는건
안경쓰고 있는 입장에서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지좀 있으면 금세 안경알이 뿌옇게 될수 있음)
그리고 이렇게 가습기가 가동대는걸 티내는 공연장이 이곳 말고 또 있을까싶다.
(보통 습도는 눈에 안보는 곳에서 적절히 조절되지 않나? ^_^)

수녀복같은걸 입고 한 사람이 나오길래 나는 수녀인줄 알았다.
그냥 검은 드레스 같기도 하고. 내용상 분명히 수녀는 아니다. 그래서 외국 공연을 찾아봤지만 별반 차이는 없다.

주인공인 샬럿(샤로테)의 복장에 초점을 잡은건지 여성이면서 다역을 소화해야하기때문에
트랜스젠더란것과 사회적으로 사람취급 받지 못하던 어묵한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은건지
당시 독일 사람들의 복장이 그랬는지까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헷갈리는 옷이다.

전체구성은 회상하는 류다. 영화 '모짜르트', '뱀파이어와인터뷰'같은 (흔히 말하는 액자식 구성)
다만 샬럿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희곡이고
2차세계대전 이후 동독의 사회와 현재의 독일이 배경으로 나오긴 하는데
보고 나온 후 곰곰히 생각하면 할 수록 성소수자로서의 파란만장한 역경을 표현하는것도 아니고
당시 동독의 사회주의 이념을 앞세워 핍박래거 괴로워 하는 민중을 다루는것도 사실 좀 비중이 거의 없다.

이 시대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물락리쩨라는 술집같은 곳을 운영한다는것을 보면
그 동안 접해왔던 영화같은 매체에서 접했던 것과는 느낌이 좀 다른 느낌이다.
통일전의 동독의 생활을 모르기때문에 이런 괴리감이 드는것일수도 있는데 영화같은것을 보면
민중의 삶은 매우 고단할뿐 성소수자가 표면적으로 있을수 없을거 같은 사회로 보였다.

비밀경찰 슈타지의 강압으로 간첩이나 정보원같은 삶을 억지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도 그려지지만
이 모든것들의 비중은 사실 크지 않다.
(슈타지에게 스스로 협력한건지 강압에 못이겨 어쩔수 없던것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알프레드에 대한 마음은 알거 같기도 함)

그리고 성정체성을 알게 해준 이모(이모는 남성성)가 건내준 책한권
이런 조언자가 없었다면 제법 긴 시간 괴로워하고 방황했겠으나 이 또한 행운이 아니었을까.
폭력으로부터 살고자 해서 아버지를 살해했으나 뜻밖의 소련공습으로 탈옥에 성공.
나라가 쪼개지고 어지러웠던 시절이니 이후부턴 그냥 살아갈수 있었던거 같다.

주저리 주저리 줄거리를 써내려가지만 역시나 이러한 배경은 한 인물을 간접적으로 이해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 인생에서 짧은 만남이었던 알프레드와의 동업자 관계에서 샬럿(샤로테)에겐 어떤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이 둘은 시계나 기타 물품들을 팔긴 했지만 감시하도록 협박받았던 상황때문에
친구(친구인지 연인인지는 모르겠음)를 잃게 되면서 깊은 상처를 담고 둘이 했던 직업이었던
가구와 음반이나 관련 제품들을 수집하게 됬고 지금에 와서는 박물관을 열 수 있을정도가 된 샬럿이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

성정체성이나 사회이데올로기, 생존에서 나타나는 번뇌
이 모든것을 냉혹할정도로 차분하게 한마디 한마디 또박 또박 설명한다.
난 이 부분에서 이 배우의 연기에 감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인35역을 하는것도 당황스럽긴 한데.(위키백과에선 1인 40여역이라고 하지만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서 실제로 몇역인지 모르겠음)
주인공인 샬럿의 캐릭터만큼은 언제나 정숙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배우가 남성이고 샬럿은 트랜스젠더로 나오지만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왔다는것을
태도로서 표현하기때문에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항상 샬럿과 호흡할 수 밖에 없었다.

남성의 외모와 여성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서두에서 말한 자웅동체일수도.
그래서 막바지에 어머니께서 말했다는 '너는 언제 결혼 할거니?'에 대한 대답으로
제목과 같이 '결혼하지 않아요. 나는 나의 아내니까요'라는 지극히 당연한 무엇인가 납득되는 대답이 나온것이 아니었을까.

관객에게 이 한 문장을 설득하기 위해 배우는 수십명의 인물을 소화하며 일관된 태도로 샬럿의 수십년 인생을 돌려봐야 했다.
인물의 심정을 이토록 아름답고 간결하게 표현한것이 있을까.

대단한 희곡에 엄청난 배우의 황홀한 연극이었다.

출연 : 지현준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2026년 6월 14일 일요일

연극 -원칙-

 

작가가 중국(홍콩)인인데 중국도 한국과 같은 학원문화에 대한 부조리들을 겪고 있는것일까?
땅이 워낙 크고 다양한 기후와 문화까지 다르니 한쪽에선 좋은 교육문화를 갖었더라도
다른 한쪽에선 학생들이 갈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질수도 있다.

한국에서 교육은 대학을 가기 위한 발판정도일뿐 인격을 만들도 사회 규범과 예절을 배워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는 과정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데 이것이 젊은 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분위기다. 단지 젊은 청소년, 청년들을 욕할뿐.
(내가 근래 학원문화를 접하는 곳은 인터넷에 떠도는 뜬구럼같은 소리일뿐)

내가 젊었을때 당시 기성세대들은 'X세대들'은 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곤 했었다.
('X세대'는 그다지 나쁜뜻은 아니지만 집단을 싸잡아 욕할때 'X세대'라는 이름이 있었기때문)
그래서 그때의 'X세대'나 지금의 'Z세대'나 별 차이 없고 그 나이때의 의무적 절차인냥 똑같은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교권이 무너졌네 하지만 예전엔 학생인권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공통점이라면 돈과 권력이 있는 자식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무런 불이익을 안받는것이겠지.

이 연극은 거의 두시간가량을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관객인 내게, 그리고 이 사회에, 한국의 젊은 이들과 늙은 이들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것을 고민하고 생각 할 결흘도 없이 다른 부류에서 다른 질문들이 날라온다.

원칙.
사회 규범, 법규, 질서, 관습, 세습, 도덕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엄청나게 많은 제약에 맞닥뜨린다.
아기때문에 죽을때까지 기존에 있는것부터 새로 생기는것들 모두를 적으면 법전만큼 혹은 그 이상이 될것이다.
컴퓨터의 성능이 날로 발달하지만 우리는 보안이란 문제때문에 컴퓨터 시스템의 엄청 큰 자원을 보안에 할당한다.
그래서 보안을 모두 꺼버리면 같은 시스템이라도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인간 사회에서 수많은 규약을 모두 제거하면? 컴퓨터시스템과 같이 인간사회시스템도 자유로운 사회에서 생산성, 창의성, 독창성 등
인류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빨라질까?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그래서 교장의 원리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무조건 배척할 수가 없다.
물론 규칙이란것은 시대에 따라서 그 구성원들에 의해 바껴야 한다. 일부 한두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해버리면 탈만 생길뿐이다.

아직 나이가 적은 학생들을 사회의 구성으로 인정하려는 교감과 아직은 미성숙하기때문에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전단계의
미완성의 인간으로 생각하는 교장의 대립관계를 다루며 이것은 기성세대와 신진세력간의 갈등을 보여주는것이기도 하다.

배경이 학교고 학생들과 선생들간의 논쟁이지만 양쪽 모두 뛰어난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때문에
일방적으로 한쪽에 마음을 줄수가 없다는게 이 연극의 강력한 매력이며 또한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각 장이 끝날때마다 몇십분씩 생각할 시간을 줄수도 없으니 관객인 입장에선 암전일때 더욱더 복잡해진다.

결론도 그렇지만 이상적인 상황은 정적인 요소와 동적인 요소가 조화롭게 섞이는 것이다.
이것을 지향하는 사회라야 옛것을 배우므로서 새로운것을 창조할수 있는것이겠지.

최대 피해자는 교감일까? 학생들은 투쟁하는 동안 많이 성숙했을것이고
젊은 교사들은 학원가를 전전하며 생업에 뛰어들겠지. 그리고 교장은 교장직을 계속 할것이다.
그러면서 원칙을 고수하려 할것이고 학생들은 어느순간 그것에 물들어있을것이다.
(사람이 한번에 바뀌는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일뿐)
하지만 교감은 그냥 집에 가서 여생을 위해 동내 산책이나 하겠지. 이게 교감이 학생들을 위해 투쟁한 말로이다.
인생의 허무함과 공허함도 함께 보여주는 부분이다.

예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같은 류랄까?
적어도 성장드라마는 아니다.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작가가 중국(홍콩)사람이니 중국의 현실일수도 있다. 한국의 학원문화는 예전에 비해 좋아진것이 없기때문에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로 봐도 일부는 그럴듯 하지만 한국은 연극같은 적극성을 띄지 않는다.
그 단적인 예로 드라마 '참교육'이라는 학생들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이 나타나는 드라마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니 교권이 얼마나 뭉개졌고 그 원죄를 뿌린 전 세대들의 교사들이 얼마나
똥을 싸놓았는지 알 수 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교사만 생각하면 몽둥이로 패버리겠다는 지인들이 있을정도)

그래서 홍콩에선 저랬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것은 약간은 이상적인 교육문화같은 기분때문에
영화 속의 장면같이 딴세상 혹은 환상같은 생각이 드는것도 어쩔수 없다.
(내 학창시절 전체를 돌이켜봤을때, 교사 중 진심으로 학생을 위해 마음 쓴 교사가 있었나? 싶다.
현업 교사인 지인들 중 그런 사람 하나 없고, 교권이 바닥이라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원망이나 늘어놓을뿐이다.
사설학원강사는 학생을 돈으로밖엔 보지 않으니 이 사람들을 교사나 스승이라 할 가치는 예전에도 없고 지금도 없다.)

내용이 무겁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때문에 중간 중간 분위기 전환을 위한 코미디 장치들을 넣어놨는데
젊은 관객들이 웃을때 이상하게 나는 함께 따라 웃기가 조금은 어려웠다.
저들이 고통받고 고뇌하고 좌절하는게 나때문인거 같아서였기때문일까?

우리 한국의 교육 현실은 어떨까? 폭력교사는 내 세대에 사라지고 영화 '화산고'를 끝으로 한국에서 사라졌어야 하는데
다시 드라마에서 폭력교사가 나쁜 학생들을 힘으로 누르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것은
그때로 회기하지 않으면 안될정도로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망가진것일까.

어렵고 외면하고싶고 찝찝한 뒷맛이 남지만
집중 안되는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는 훌륭한 연극이었다.

출연 : 박현숙, 오용, 박종태, 김현지, 김혜령

-추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극단 공연의 티켓가격은 최저임금 두배를 넘지 말자




스폰